Sehon RAW novel - Chapter 482
481화. 발단
육건중이 안절부절못하며 다급해하는데 반해 육건신은 처음과 다르지 않게 침착한 모습으로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육건신 역시 매보청에게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슬슬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이런 일에 대해 알아보려면 시박사의 사람을 찾아 알아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일은 육함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적합했다.
임근용이 책상으로 다가가 촛불을 켠 뒤 육함 대신 종이를 깔고 먹을 갈았다.
“세전 오라버니도 얼마 전에 편지로 오상 오라버니한테 물어보았는데, 오상 오라버니가 이런 경우는 아주 흔하다고 했대요. 바다로 나가면 원래 풍향과 운이 따라야 하는 거라면서 돌아올 날짜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항구에 들어오는 배를 기다렸다가 물건을 사다 파는 것이 이윤은 적을지 몰라도 훨씬 안전하다고 했대요.”
육함은 육건신의 성격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버지께 가서 그렇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 않소? 어쨌든 이 편지는 제대로 써서 보내야 하오. 오상한테 답장이 온 다음에나 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지 않겠소.”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언제 당신한테 편지를 쓰지 말라 했어요? 이것 봐요, 내가 벌써 종이랑 먹을 다 준비해 뒀잖아요.”
육함은 붓을 들고 창밖에서 하얗게 흩날리는 눈송이와 방안에서 붉게 타고 있는 숯불을 바라보며 오상에게 편지를 썼다. 임근용은 책상에 앉아 붓을 휘두르고 있는 육함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에게 다가가 뒤에서 그의 허리를 껴안고 그의 등에 얼굴을 붙였다. 육함은 쓰고 있던 글자를 조심스럽게 마무리하고 붓을 내려놓았다. 그가 허리춤에 감긴 임근용의 손을 잡고 고개를 돌리며 속삭였다.
“왜?”
임근용이 그를 껴안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일 세전 오라버니를 만나야 할 일이 있으니까 당신이 핑곗거리를 찾아서 날 좀 데리고 나가 줘요.”
육함이 말했다.
“알았소.”
* * *
눈이 녹는 날은 눈이 내리는 날보다 더 춥고 땅도 질퍽거려서 길에 행인이 드물었다. 그래서 오후쯤 되자 경양가의 끝자락에 있는 향약가게는 문을 닫아걸고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았다.
큰 화로 안에서 숯불이 반짝이며 타올라 건물 안은 어느새 봄처럼 훈훈해졌다. 창가의 책상 위에 놓인 반쯤 시들다 만 수선화가 쓸쓸하게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임세전은 찻주전자를 들고 육함에게 뜨거운 차를 한 잔 따라 준 뒤 한쪽에 앉아 장부를 뒤적이고 있는 임근용을 바라보았다.
“아용, 너 정말 그렇게 할 거야?”
임근용이 보고 있는 건 강남 쪽 사업 장부였다. 이 사업은 육함에게는 숨기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눈으로는 사방을 살피고 귀로는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임근용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이 일은 원래 작년에 하려고 했던 건데, 상중에는 너무 눈에 띌 것 같아서 못 했어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어요.”
임세전이 다시 육함을 보고 떠보았다.
“죽막(*粥棚: 죽을 나눠주는 막사)을 설치해 사람들에게 죽을 나눠주는 것 정도는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의장을 설치하는 건 아마 파장이 좀 클 거야.”
육함이 손에 든 찻잔을 돌리며 말했다.
“내년에 상복을 벗을 때쯤 되면 우리도 이런 일을 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 그러니 지금이 딱 좋아요. 아용의 소원이기도 하고요…….”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아용이 직접 번 돈인데 누가 뭐라 하겠어요. 또 그래서 이렇게 형님한테 부탁을 드리는 거예요.”
육함이 말을 끝내고 임세전에게 깊이 절했다.
임세전이 얼른 일어나 답례했다.
“오라버니가 동생을 도와주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근용이도 좀 더 힘 있는 조력자를 찾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임근용과 육함은 아직 너무 젊어서 이런 일을 단독으로 하는 건 쉽지 않았다. 뒤에서 그들을 지지해 줄 명망 있는 어른이 필요했다.
임근용은 준비를 다 해둔 상태였다.
“며칠 있다가 민행이랑 같이 제 선생께 인사드리러 갈 생각이에요. 제 부인이 마음이 아주 따뜻한 분이시거든요.”
임근용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녀는 제 부인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이런 일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분명 뭔가 유익한 조언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제 선생마저 나서 준다면 육건신도 뭐라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임세전은 이 말을 듣고 그녀가 벌써 계획이 다 섰다는 걸 알아챘다. 그는 더는 잔소리 하지 않고 다시 해운에 관한 일로 화제를 돌렸다.
“난 이미 손해 볼 각오가 돼 있어.”
육함은 일전에 이 일에 대한 임근용의 말을 듣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지만, 임세전까지 이런 말을 하자 자기 가족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절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세전 형님이 볼 때도 상황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아요?”
임세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근 몇 년 동안 화정현을 드나들며 외국 상인들 가게에서 물건을 떼와서 그 사람들 하는 말을 많이 들었어. 화정현 쪽에서 바다로 나가는 경우 대부분 왜국 쪽으로 가는데 돌아올 거였으면 벌써 돌아왔겠지. 1년이 넘게 안 돌아오는 걸 보면 틀림없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그가 고개를 들고 임근용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육함이 말했다.
“그때 근용이의 충고를 들은 게 천만다행이네요.”
임세전이 육함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다른 이유로 지체된 거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냥 돈으로 화를 면한 거라고 생각해야지 어쩌겠어.”
육함이 마지못해 미소를 지었다.
“복이든 화든 피할 수는 없는 법이죠.”
하지만 육함은 마음속으로 집안의 어르신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행운만을 기대하리라 생각했다.
임세전이 말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고. 너희들 여기서 저녁 먹고 가. 이렇게 모인 것도 오랜만이잖아. 내가 채식으로 한 상 차리라 할게.”
육함이 바로 대답했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요.”
임근용이 장부를 덮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주방에 가서 반찬을 몇 개 만들어 볼게요. 두 사람도 한 번 맛봐요.”
임세전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민망해했다.
“넷째 네가 한 요리를 맛보는 게 쉽지 않은 기회라는 건 알지만, 솔직히 나도 우리 집 주방에 뭐가 있는지 잘 몰라. 더구나 우리 집 주방은 아주 작아서 너희 집의 소주방보다도 더 작고 지저분할 거야.”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에요?”
그녀는 이렇게 말한 뒤 앵두에게 손에 낀 팔찌와 반지 등을 맡기고 소매를 걷어붙인 뒤 진짜로 바깥에 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임세전이 얼른 뒤따라 나가며 말했다.
“나도 가서 같이 가서 준비를 좀 할게.”
두 남매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밖으로 나갔다. 임세전이 빠른 걸음으로 임근용을 따라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남 쪽 일은 숨기기로 한 거야?”
임세전은 두 사람 사이에 이미 아이가 있고 금슬도 좋은 상황에서 계속 이 일을 숨기다가 서로 사이가 틀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다.
임근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분간은 말 안 할 거예요. 오라버니, 걱정 말아요. 때가 되면 내가 다 말할 거예요.”
오상이 전에 그녀에게 만들어주었던 호적은 별 쓸모가 없었다. 만약 운이 좋아 살아남게 된다면, 그녀는 그런 방식으로 살 필요가 없었다. 만약 그녀가 죽게 된다면 그 호적은 아무 의미도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그 사업에 대해 굳이 지금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하긴, 만약 이번 일로 육씨 가문에 불운이 몰아치면 사람들도 동요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런 사람들한테 너무 많은 걸 알려 주는 건 좋을 게 없지. 일단 상황이 안정되고 난 다음에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임세전이 주방 찬모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다들 이소부인의 지시에 따라라.”
임근용은 손을 씻고 국을 끓인 뒤 가장 자신 있는 채소 요리도 몇 가지 만들었다. 육함은 임세전과 술을 마시며 오후부터 저녁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는 작년의 흉작에서부터 시작해 조정의 사치스러움으로 넘어갔고, 거기서 또 북막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육함은 마지막에 가서 또 육륜을 떠올리며 길게 탄식했다.
* * *
두 사람이 집에 돌아오니 이미 등불을 밝힐 시간이었다. 그들은 잠시 씻고 몸단장을 한 뒤 손을 잡고 함께 육건신 부부에게 문안을 드리며 겸사겸사 의랑이도 데리러 갔다.
육건신은 이날 왼쪽 엄지발가락이 빨갛게 부어올라 줄곧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그는 밤새도록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별다른 이유 없이 하루 종일 짜증이 났다. 임옥진이 계속 육건신 곁에 있긴 했지만, 그녀의 신경은 거의 의랑에게 가 있었다. 육건신이 의랑에게 사탕 먹는 것과 실뜨기 놀이를 못 하게 하자 임근용은 의랑에게 고무공을 하나 주었다. 공교롭게도 의랑은 이 고무공을 너무 좋아해서 잠을 잘 때나 밥을 먹을 때에도 늘 곁에 둘 정도였고, 놀 때는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육건신의 귓가에 하루 종일 고무공이 땅에 부딪혔다 튀어 오르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이 산란해져 짜증이 치밀었다. 육건신이 의랑을 노려보자 아이는 임옥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더니 얼마 안 있어 또 다시 공을 땅에 튀기며 조심스럽게 육건신의 반응을 살폈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해대자 육건신은 정말 어처구니가 다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임옥진마저 그에게 너무 오랫동안 아이를 곁에 두지 않아 이런 사소한 것도 참아 주지 못하고 가혹하게 군다며 비꼬아댔다.
임옥진과 시녀들, 아유, 소성 등이 전부 의랑을 둘러싸고 아이와 놀아 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육건신 또한 자기가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는 너무 시끄러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하 이낭이 온화하고 상냥하게 그의 시중을 들어주고 있었지만, 육건신은 정신이 산란해 한시라도 빨리 임근용과 육함이 돌아와 저 기운 넘치는 작은 폭군을 데려가 주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육건신은 육함과 임근용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내 두통이 가시는 것 같았다. 그는 시녀가 문발 밑에서 통보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즉시 대답했다.
“어서 들어오라 해라.”
육함과 임근용이 안으로 들어와 육건신과 임옥진에게 인사를 올린 뒤 병세에 대해 묻고 자리에 앉았다. 조용한 걸 좋아하는 육건신의 성미를 아는 육함은 아직도 쉬지 않고 놀고 있는 의랑을 보고 육건신이 한껏 짜증이 났으리라 짐작했다. 그가 의랑의 공을 뺏으며 말했다.
“하루 종일 공 가지고 놀면서 할아버지께 시끄럽게 굴었구나?”
육건신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직 어린아이지 않느냐…….”
이건 의랑이 하루 종일 시끄럽게 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