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93
492화. 손을 물어뜯다
저녁상은 금세 차려졌다. 육함은 자기가 알고 있는 자세한 내용을 임근용에게 말했다.
“오상이 자기도 어쩔 수가 없다고 하더군. 처음부터 누군가가 계속 매보청을 주시하고 있었다고 하오. 오상도 처음에는 그 사람이 우리처럼 그 일에 투자해서 혹시라도 손해를 볼까 걱정돼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 별로 신경 안 썼다고 하오. 그런데 선단이 돌아오지 않으니 그 사람도 자취를 감춰 버렸다고 하더군. 선단이 돌아오고 나서야 그 사람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오……. 오상이 나중에 곰곰이 따져보니 매보청이 아마 그 사람의 계략에 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 만약에 배가 폭풍을 만나 10척이 부서진 게 아니었다면, 싣고 온 화물이 더 많아 죄는 더더욱 무거워졌을 거요. 사실 매보청도 깨끗한 사람은 아니지 않소. 그 밀수라는 죄명을 벗긴 힘들 거요.”
매보청은 상습 밀수범이면서 대상인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임씨 가문을 제외하고 도씨, 육씨, 오씨 가문 중에 정말로 깨끗한 집이 어디 있겠는가? 다들 각장에서 이득을 본 전적이 있지 않은가? 임근용이 이마를 쓸며 말했다.
“전에 경성에서 장산랑이 매보청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돈이 너무 많으면 그 돈이 그 사람 손을 물어뜯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육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매보청이 전부터 포섭해뒀던 인맥들이 지금 전혀 먹혀들지를 않고 있는 것 같소. 그 사람의 친여동생이 왕부로 시집가서 정식 봉호도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는 잠시 멈췄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게 복이 아니라 화가 될지도 모르겠군!”
그는 이렇게 말한 뒤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그것이 화가 된다면, 그자는 분명 매보청 뿐만 아니라 매보청이 줄을 댄 윗선까지 건드리려 할 거요. 그럼 아주 광범위하게 연루가 되겠지.”
육함은 어쩌면 매보청이 예전에 했던 일들까지 전부 파헤쳐져 평주의 몇몇 가문들까지 연루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되었다.
임근용이 그릇과 젓가락을 건네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니, 절대로 우리랑 연관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매보청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아마 이 일은 그분이 전부 책임질 거예요.”
전생에서 육씨 가문이 돈을 잃은 건 사실이었지만, 이런 일에 연루되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것만큼은 임근용도 자신할 수 있었다.
육함이 쓴웃음을 지었다.
“연루되더라도 어쩔 수 없지. 어느 정도까지 연루되느냐가 문제 아니겠소. 밥이나 먹읍시다.”
두 부부가 저녁을 먹고 나니 밖에서 방죽이 기다리고 있었다. 임근용이 그녀를 안으로 불러들이며 물었다.
“세전 오라버니가 뭐래?”
방죽이 말했다.
“세전 공자께서도 벌써 소식을 들으셨다고 하더라고요. 매 대노야가 사람을 보내 말을 전해달라고 하셨대요. 원래는 세전 공자께서 직접 와서 말씀하시려고 했는데 노비가 온 김에 가서 말을 전하라 하시더라고요. 매 대노야께서 면목 없지만 모두의 돈을 날린 것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한다고 하셨대요. 누굴 탓하고 싶거든 매 대노야를 탓하라고, 다 자기가 감당하겠다고 했대요. 만약 그분을 용서해 준다면 언젠가 그분께서 다시 재기할 때 모두가 입은 손해는 잊지 않겠다고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외 다른 일에 대해서는 전부 매 대노야 혼자서 한 일이고 모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하라 하셨대요.”
임근용의 짐작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육함은 차분한 모습의 임근용을 보고 절로 마음이 침착해졌다. 그가 말했다.
“누구 탓을 하고 싶어도 매 대노야 탓을 할 수는 없겠지. 계약서에 서명할 때부터 손실에 관해서는 틀림없이 명확하게 기재해 두었을 테니까 말이야.”
매보청이 나중에 이 곤경에서 벗어나 재기할 수 있을지, 또 사람들에게 배상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약속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매보청은 이 일을 다른 사람을 연루시키지 않고 혼자 감당할 것이니 그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살길을 열어 주길 바란다는 뜻을 전하며 그 은혜를 기억해 두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임근용은 그 사람도 참 그사람 답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고 육함에게 말했다.
“어쨌든 한두 사람이 연루된 일이 아니니 영칠 쪽에 서신을 보내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알아보는 게 좋겠어요. 그래야 무슨 계획이라도 세우죠.”
육함이 알겠다고 대답한 뒤 방죽에게 말했다.
“넌 우리랑 같이 가서 아버지께도 그 말을 전달해드리자.”
* * *
육건신은 근심 어린 얼굴을 하고 임옥진의 곁에 앉아 있었지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임옥진보다 훨씬 더 괴로웠다. 일찌감치 마음의 준비를 해 두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오랜 세월에 걸쳐 차곡차곡 모았던 돈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 데다 또 괜한 일에 연루될 가능성까지 생겼으니 어찌 마음이 답답하지 않겠는가?
임옥진이 그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잖아요. 어차피 처음부터 당신은 나서지 않고 내 명의로 투자했는걸요. 더구나 우리가 그 사람한테 돈을 투자했다고 그게 그 사람한테 법을 어기라고 했다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정말 안 될 것 같으면 우리 쪽에서 먼저 물어 버리면 되죠!”
육건신이 말했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요? 아버지께서 살아계셨을 때도 사업상 매 대노야하고 적지 않은 왕래가 있었소. 매년 청주 각장에서 밀수되어 그 사람의 손을 거쳐 팔린 금지 물품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오? 내가 모른다고 발뺌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 말을 믿어 줄 것 같소? 우리가 뭘 가지고 그 사람을 문단 말이오?”
임옥진도 더는 할 말이 없어 말을 돌렸다.
“사람을 보내서 소식은 알아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둘째랑 둘째 며느리 말을 들었어야 해요.”
육건신이 미간을 문지르며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서 무엇한단 말이오?”
갑자기 문발 밖에서 방 마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노야, 대부인, 하 이낭이 직접 끓인 구기자죽을 가지고 왔어요.”
육건신이 고개를 들어보니 문발 밑에 한 쌍의 작은 금련(*金莲: 전족을 한 여자의 발)이 보였다. 그는 하 이낭이 거기에 서 있는 걸 보고 임옥진을 힐끗 보았다. 그는 임옥진이 어두운 얼굴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탐색하듯 말했다.
“시간이 늦었군, 아무리 화가 나도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소?”
쫓아낼 수도 없는 비루한 개새끼가 사람을 계속 이렇게 몰아세우는구나! 임옥진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들라 해라.”
하 이낭이 죽 한 솥을 들고 천천히 들어왔다. 그녀는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임옥진을 보고, 다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육건신을 바라보았다. 육건신은 지금 하 이낭까지 신경 쓸 기분이 아니라 고개를 숙인 채 그녀가 건네주는 죽 그릇을 받아들고 임옥진에게 말했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니 많이 드시오.”
“대부인, 많이 드세요.”
하 이낭은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두 손으로 죽을 받쳐 올렸다. 그녀의 손끝이 무심코 그릇 옆을 스쳤다. 하 이낭은 임옥진이 화를 낼 거라 생각했지만 임옥진은 못 본 체하며 그릇을 받아 육건신의 면전에서 먹기 시작했다.
육건신은 기분이 너무 좋지 않아 반 그릇 정도 먹고 나니 도저히 더는 넘어가지 않았다. 그가 아직 그릇도 내려놓지 않았는데 또 방 마마의 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노야, 대부인, 이소야와 이소부인께서 오셨는데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해요.”
육건신은 이 일에 나이도 어린 육함 부부가 무슨 도움을 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두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소식을 알아보러 왔을 거라 생각하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들라 해라.”
그는 방죽이 같이 들어오는 걸 보고 자기도 모르게 육함에게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육함이 옆에 서 있던 하 이낭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방금 무슨 소식을 좀 들었는데 아버지한테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육건신은 거리낌 없이 하 이낭에게 손을 내저었다.
“그만 가 봐라!”
하 이낭은 얌전히 물러갔다.
육함은 그제야 방죽에게 매보청이 전한 말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하라 시켰다. 그는 방죽의 이야기가 끝나자 덧붙였다.
“전 돌아가는 대로 경성 쪽에 편지를 보내 이 일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부탁할게요.”
육건신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참 동안 생각해 보더니 입을 열었다.
“매보청이 그런 각오를 한 건 좋지만, 주변에서 그 사람을 가만 내버려둘 것 같지가 않아 걱정이구나. 그래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면 빠져나올 구멍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게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조용히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
* * *
날이 밝아오자 일찍 일어난 새들이 창밖에서 지저귀었다. 임근용은 몸을 뒤척이다 눈부신 아침 햇살에 눈을 가늘게 뜨며 옆에 있는 의랑이 이불을 걷어찬 건 아닌지 살폈다. 역시나 의랑은 연근처럼 하얗고 짧은 다리 절반을 밖으로 내놓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아이에게 이불을 단단히 덮어 주었다. 임근용의 손이 떨어지기도 전에 의랑이 속눈썹을 꿈틀거리며 눈을 뜨고 멍한 눈으로 잠시 그녀를 응시했다. 아이는 이내 웃으며 엉덩이를 뒤로 쭉 빼더니 그녀의 몸 위로 기어 올라왔다.
임근용이 얼른 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며 말했다.
“좀 더 자.”
어젯밤에 일찍 잠에 든 의랑은 아침부터 기력이 왕성한지 발버둥 치며 말했다.
“싫어, 싫어!”
임근용이 아이에게 바람을 훅 불며 장난을 쳤고, 이내 두 모자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밖에 있던 앵두가 이 소리를 듣고 재빨리 말했다.
“아가씨, 일어나셨어요? 대부인 댁에서 소식이 왔어요.”
임근용이 다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앵두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대부인께서 병이 나셨대요. 그래서 한밤중에 의원을 불러왔다고 하더라고요.”
임근용이 깜짝 놀라며 얼른 일어나 앉았다.
“멀쩡하던 분이 왜 갑자기 병이 났대? 어젠 왜 아무도 소식을 안 전한 거야?”
“음식을 잘못 드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앵두가 앞으로 나가 대야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이소야께서 의원을 불러오셨어요. 이소야께서 아가씨랑 의랑 공자께서 놀라실 거라며 알리지 말라고 하셨어요.”
임근용이 침상에서 내려와 옷을 입고 머리를 빗었다.
“어젠 너무 피곤해서 죽은 듯이 자느라 아무 소리도 못 들었어. 그래서 이소야는 아직 거기 있어?”
앵두가 말했다.
“좀 전에 돌아오셨는데, 아마 지금은 주무실 거예요.”
임근용은 말소리를 듣고 들어온 두아와 시녀들에게 지시했다.
“너흰 의랑이를 잘 보살피고 있어. 난 어머님 댁에 좀 가 봐야겠어.”
그녀가 가려는 걸 본 의랑이 즉시 칭얼대기 시작했다.
“가지 마, 가지 마요, 나랑 같이 있어요!”
사람들이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고, 임근용도 아이를 다독였다.
“할머니께서 아프셔서 엄마는 할머니를 뵈러 가야 해. 의랑이는 세수하고 나서 아침 먹고 와, 알았지? 엄마가 거기서 기다릴게.”
의랑은 그제야 순순히 두아에게 옷을 입혀 달라고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