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95
494화. 교훈
임근용은 한껏 올라갔던 기분이 순식간에 추락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꼿꼿이 서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임근용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 둔 상태였다. 이 일이 알려지면 친정에서든 시댁에서든 그녀를 쉽게 용서해 주려 하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은 그녀가 어리석게 제멋대로 행동했다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었다.
특히 임근용의 앞에 있는 두 사람은 성격이 불같기로 이미 명성이 자자한 사람들이었다. 도씨가 최근 몇 년간 마음이 평안한 상태에서 진심을 다해 불도에 정진해 마음이 많이 너그러워지고 부드러워졌다 해도 그런 성격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었다. 임옥진도 충격을 받아 전처럼 교만을 떨거나 제멋대로 굴지는 않았지만, 일단 성질이 폭발하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라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직접 맞서는 것보다 공손한 태도로 잘못을 인정하는 편이 나았다.
어머니만큼 자기 딸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지 않은가. 도씨는 임근용이 이렇게 시들시들한 모습을 보이는 건 불쌍한 척을 하기 위함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보고 더더욱 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임옥진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걸 보고 그녀가 또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해서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구기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얼른 말머리를 뺏으며 임근용을 꾸짖었다.
“평소에 내가 널 이렇게 가르쳤니? 네가 어릴 때부터 선행을 하는 걸 좋아해서 나도 널 굳이 막지는 않았다만, 어떤 일이든 정도라는 게 있지 않느냐. 어찌된 것이 어른이 된 후로 더 정도를 모르고 날뛰는 것 같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아주 감쪽같이도 속였구나! 우리 같은 집안 어르신과 가족들도 모르는 사실을 외부인만 알고 있다는 게 대체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네가 정말로 우릴 가족으로 생각하긴 해?”
그들에게 미리 말을 했다면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일은 이미 벌어졌으니 무슨 욕을 먹든 그건 임근용이 감당하면 그만이었다. 임근용은 도씨가 무슨 말을 하든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임옥진은 이미 뱃속에 화가 그득 차 있는 상태에서 도씨의 이 말을 듣자 더욱더 화가 나는 것 같아 임근용에게 한소리 하려 입을 열었다. 그런데 또 도씨가 말을 가로챘다.
“이 멍청한 것! 몇 년 동안 고생고생하며 번 돈을 이렇게 물 쓰듯 써 버리다니, 돈이 산더미처럼 많아도 너같이 쓰면 언제나 부족하지 않겠느냐. 네 시어머니가 친고모이니 그나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지금 네 꼴이 아주 볼만 했겠어!”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임옥진을 힐끗 쳐다보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 확 두드려 패 버리고 싶네요! 하지만 저 아이도 이제 한 아이의 엄마인데 그렇게까지 체면을 짓밟을 수는 없잖아요.”
임옥진은 어두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근용은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뭐가 어찌 됐든 도씨는 자신의 친어머니가 확실했다. 아무리 그녀의 의견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결국 이렇게 그녀를 보호하고 있지 않은가.
도씨는 임옥진의 안색이 좋지 않은 걸 보고 분명 화를 분출하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심 계속 자기 혼자 화를 내고 임옥진에게 화를 낼 기회를 주지 않으면 임근용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또 다시 욕을 먹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됐다. 그때 가서 시부모에게 한꺼번에 욕을 먹는 모습을 떠올려보니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도씨는 차라리 자신의 면전에서 임옥진이 임근용을 한 번 꾸짖게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임옥진이 아주 심하게 꾸짖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도씨가 교묘하게 말했다.
“아가씨, 벌써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려서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돈을 돌려받긴 힘들 거예요. 그래도 얘는 좀 호되게 혼이 나야 해요! 그러니까 예의니 체면이니 그런 거 따지지 말고 제대로 한 번 훈계를 해요! 욕하고 때려서라도 다음부턴 제멋대로 이런 대담한 짓거리를 할 수 없게 만들어야죠!”
도씨가 부채로 열심히 부채질하며 화를 냈다.
“이 불효막심한 것, 아휴 성질나!”
임옥진은 순간 화가 확 치솟았었지만 연이어 두세 번 기선을 빼앗기자 그마저도 시들시들해졌다. 처음에는 노기등등했던 그녀도 도씨가 말을 가로채 자기가 하려 했던 말들을 다 해 버리자 정말로 자신이 말할 차례가 되었을 때는 별로 할 말도 없었다.
“됐다, 네 어머니께서 벌써 내가 할 말을 다 하셨구나. 네 혼수는 네 것이고, 나머지 돈도 네가 힘들게 번 것이 맞긴 하다만, 네 혼수에는 육씨 가문에서 보낸 납채도 들어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되지. 넌 여전히 육씨 가문의 며느리야. 의랑이에게도 남겨 주지 않고, 너 자신의 노후를 위해서도 남겨놓지 않으면 앞으로 누가 널 보살피겠느냐? 돈이란 건 네가 다른 사람에게 주긴 쉬워도 다른 사람에게서 얻는 건 정말 힘든 거야.”
그녀는 힘을 빼고 말했지만, 정말로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임근용과 도씨는 임옥진이 이런 태도로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라 약간 의아해졌다. 도씨가 엄한 눈빛으로 임근용을 바라보며 꾸짖었다.
“이거 봐, 네 고모께서 너한테 어떻게 하시니? 꾸짖지도 않고 이렇게 잘 타이르시잖아! 얼른 고모한테 사과 안 드려?!”
도씨는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임근용의 어깨를 후려쳤다.
임근용은 어깨를 맞고 아파하다가 임옥진에게 큰절을 하며 간곡하게 말했다.
“고모 감사드려요.”
대체 뭘 감사한단 말인가? 임근용은 그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고 임옥진도 깊이 파고들려 하지 않았다. 더구나 임근용은 임옥진이 자신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 이런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임옥진은 몇 년 동안 실제로 임근용과 부대끼고 살며 이미 그녀의 성격을 파악하고 있었다. 임근용은 입으로는 뭐든 알겠다고 대답하며 얼버무렸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임옥진이 다소 시들시들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전에는 나도 뭐든 다 간섭하려 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내 뜻대로 되지는 않더구나. 이번 일도 마찬가지겠지. 내가 너희들 일에 간섭할 수도 없고, 잔소리를 해도 아무 소용없을 거야. 그러니 넌 지금 여기서 나한테 이 일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할 생각을 하는 것보다 나중에 집에 돌아가서 네 시아버지께 어떻게 설명할 건지 생각해 보는 게 나을 것 같구나. 너도 알다시피 네 시아버지께서는 그런 규칙을 정말로 중요시하시는 분이니까!”
육건신이라는 관문은 확실히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가법 역시 그의 편이지 않은가. 임근용은 기분이 확 가라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임옥진에게 다시 공손하게 절을 했다.
도씨는 화가 났지만 자신의 딸이 앞으로 육씨 가문의 가법에 따라 처분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또 걱정이 밀려왔다. 그녀가 임근용의 팔을 힘껏 꼬집으며 화를 냈다.
“이 웬수 같은 것! 귀신에 홀리기라도 했니?”
도씨의 손아귀 힘이 꽤 세서 임근용은 숨을 훅 들이마시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어머니…….”
도씨가 냉소했다.
“왜? 아파? 어릴 때 이렇게 꼬집혀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가 보구나.”
그러더니 또 한 번 비틀어 꼬집고 말했다.
“어디 또 감히 이런 짓을 해 봐? 알량한 명성을 얻자고 아주 속옷까지 홀랑 팔아치우겠구나.”
“다음부터는 절대 숨기는 일 없을 거예요. 반드시 어르신들과 상의하고 할게요.”
임근용이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빌며 나지막이 말했다.
“명성을 얻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복덕을 쌓으려고 그런 거예요.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요. 전 제가 차라리 영원히 남한테 베푸는 사람이 될지언정 남이 무언가를 주기를 바라면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요!”
임옥진이 참지 못하고 냉소했다.
“앞으로 네가 우리한테 숨기지 않고 우리하고 상의한다 해도 상의는 상의일 뿐이고 결국 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 아니냐.”
도씨가 가만 보니 임옥진은 그녀가 임근용을 혼내는 걸 보고도 말리지 않고 있었고, 말하는 것도 왠지 그녀를 부추겨 임근용을 더 꼬집게 만들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도씨는 더 이상 임근용을 꼬집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이 불편해 임근용을 꼬집었던 손에 힘을 풀고 소리만 요란하게 임근용의 등짝을 때리며 화를 냈다.
“이 정신 빠진 것! 이게 다 내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니, 부끄럽지만 이 어미가 네 시아버지께 가서 사죄를 드려야겠구나!”
그러더니 막무가내로 임옥진과 임근용을 따라 마차에 올라 육씨 가문으로 향했다.
* * *
“가족들이 큰일을 당해 거액의 가산을 잃고 식음을 전폐하고 있는데 며느리란 아이는 밖에서 얼굴도 모르는 남한테 돈을 물 쓰듯이 썼다고?”
육건신이 냉소하며 손에 든 청자 찻잔을 탁자 위에 무겁게 내려놓고 육함을 흘겨보았다.
“네가 참 좋은 부인을 두었구나! 네 부인은 효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몰라. 허울뿐인 명성을 얻자고 이리 대담한 짓을 하다니, 대체 누가 그 아이에게 이런 용기를 주었단 말이냐? 우리 며느리께서 이 평주 땅의 일인자라도 되고 싶으신 모양이지?”
누가 그런 용기를 주었느냐고? 이건 육함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겠는가? 육함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는 어떤 해명도 변명도 하지 않았고, 굴복하지도 않았다.
“너희 부부가 이미 한마음인가 보구나.”
육건신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육함의 지금 이런 모습을 제일 싫어한다는 걸 누가 알겠는가. 육건신은 육함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눈을 내리깔며 입을 꾹 다문 채로 말없이 고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고,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육함은 계속 이런 태도만 보일 거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욕을 하든 때리든 육함은 절대 굴복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굴복하는 척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육건신은 깊은 무력감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돈을 되찾아올 수도, 이 일을 빌미로 공개적으로 두 사람을 벌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장남가 후계자의 며느리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무시하는 건 도저히 그냥 넘어가 줄 수가 없었다. 육건신이 정말로 두 사람에 아무것도 못 할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가? 그가 냉소하며 말했다.
“그래, 너도 머리가 커졌다 이거지. 돈 잘 벌고 머리 좋은 안하무인인 부인한테 장가를 들더니 이제 나 같은 건 신경 안 써도 된다 이거구나. 그만 일어나라, 내가 어찌 감히 너한테 무릎을 꿇으라 하겠느냐!”
그러더니 옆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주견복에게 엄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둘째 며느리가 돌아오면 즉시 이쪽으로 오라고 해라!”
육함이 그제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너무 노여워하지 마세요. 사전에 아버지께 말씀드리지 않은 건 저희 잘못이지만, 전 이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육건신은 소리 없이 냉소했다. 육함은 사전에 그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할 뿐, 이 일 자체가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 말인즉, 임근용이 돈을 기부하며 선행을 한 것에 대해서는 해명할 생각이 없단 뜻이기도 했다. ‘예의와 효도(礼义仁孝)’는 육건신이 줄곧 표방해 온 것이었다. 그가 뭔가 꼬투리를 잡는다면, 임근용이 무례하고 불효를 했다는 두 가지 방면에서만 가능했다. 하지만 말이 길면 반드시 실수가 생기게 마련이지 않은가. 괜한 소문이라도 나면 오히려 육건신이 명분을 잃고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을 당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는 짜증 나게 육함하고 입씨름을 할 바엔 차라리 가서 실컷 무릎이나 꿇으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