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99
498화. 개꿈 (2)
임근용도 변명하려 하지 않고 눈을 내리깔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냥 꿈이 너무 생생해서 실제로 겪은 일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또렷하게 기억이 나서 그래요. 다 도망가서 집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고, 대문 맞은편 왼쪽에 있는 만두 가게 아주머니는 배에 칼을 찔려 길거리에 죽어 있었어요. 서쪽에 있는 군순포(*军巡铺: 고대의 소방서) 건물에서 시작된 불 때문에 하늘은 반 이상 검은 연기로 뒤덮였어요. 여지는 무의부두 강변에 있는 누운 소를 닮았던 그 큰 돌 옆에서 칼에 찔려 죽었는데, 그 피가 사방으로 튀었어요.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난 지난번에 당신이랑 서서 이야기했던 그 자리에서 강물로 뛰어들었는데, 내리는 눈이 얼굴에 떨어져 천천히 녹아내리던 느낌이 정말이지…….”
이런 무서운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도 임근용의 얼굴에는 전혀 당황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담담했고, 이상할 정도로 냉정했다. 이런 꿈에 놀라서 깨면, 두려운 마음에 투정 부리려고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지 않겠는가. 이런 말투와 표정은 정말로 이상했다. 육함은 더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문득 옛일을 떠올리고 일부러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당신 그 꿈 말이오, 어째 전에 당신이 무의부두 강가에서 나한테 해 준 얘기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 당신이 얘기해놓고 잊어버렸소?”
육함은 이 이야기가 듣기 싫은 모양이었다. 그는 임근용이 자기를 놀리려고 말을 꾸며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임근용은 말없이 육함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것 같네요. 나도 잊고 있었어요.”
그녀는 육함을 바라보며 비록 아주 찰나이긴 했지만, 마치 예리한 칼 같은 날카롭고 낯설고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 임근용이 그에게 이런 눈빛을 보인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육함은 몇 번이나 자신이 잘못 본 건 아닌가 의심하며 숨을 죽인 채 임근용을 몰래 살폈다. 임근용의 긴 속눈썹은 눈꺼풀을 따라 조용히 아래를 향하고 있었고, 하얀 얼굴은 웃음기 하나 없이 서늘하기만 했으며, 허리와 등은 꼿꼿하게 서 있었다.
육함은 갑자기 살짝 후회되었다. 그녀는 절대 함부로 말을 지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듣기에도 기분 나쁠 만한 이런 꿈을 그녀가 무엇 때문에 지어내겠는가? 임근용도 감히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 나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긴 곤란했을 것이고,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그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육함은 오히려 그녀가 너무 실제처럼 자세하게 묘사한다며 싫어하고 그녀가 너무 태연해 보인다고 장난이라고 치부했다. 설령 그녀가 정말로 다른 여자들처럼 쓸데없는 상상을 하다 이런 개꿈을 꾼 것이라 해도 육함이 그녀를 이렇게 대해선 안 됐다.
죄책감을 느낀 육함이 임근용을 향해 다가가 가볍게 그녀의 손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잘못했소.”
그녀의 손은 너무 차가워 온기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표정에도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이에 육함의 죄책감이 더더욱 깊어졌다. 그는 임근용에게 입을 맞추며 안아 주고 싶었지만, 여기는 집이 아니라 사당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임근용의 손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아용?”
임근용이 잠시 후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육함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웃으며 그녀를 달랬다.
“내가 잘못했소. 내가 요즘 너무 다른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소.”
임근용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신은 아주 잘하고 있어요. 그래야죠.”
육함은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어 그저 그녀가 오늘 좀 이상하게 군다고 생각했다. 육함은 다시 침묵했지만 그녀의 손은 놓지 않았다.
멀리서 너무 가벼워서 들릴 듯 말 듯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육함은 황급히 임근용의 손을 놓고 재빨리 원래 자리로 돌아가 무릎을 꿇었다. 그는 예법에 맞는 바른 자세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둘째 형님.”
강씨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아무도 없이 혼자서 손에 찬합을 들고 왔다. 강씨는 말없이 조심스레 찬합을 내려놓고 한 층 한 층 차례로 열어 뜨거운 국수 두 그릇을 꺼내 임근용과 육함의 손에 건넸다.
“드세요. 제가 직접 만든 건데, 맛있을 거예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또 한 마디 덧붙였다.
“아마 아무도 모를 거예요.”
“고마워.”
임근용과 육함은 살짝 감동한 표정으로 그릇과 젓가락을 받아 들고 말없이 국수를 먹었다. 국수는 강씨의 말처럼 정말로 고소하고 맛있었다.
강씨가 고개를 숙이고 그릇과 젓가락을 치우며 나지막이 말했다.
“제가 어떻게 두 분을 도와드릴 방법이 없네요.”
그녀는 신분상 가서 말리기도 힘들었고, 간청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
육함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셋째 제수씨 감사해요. 우린 괜찮아요.”
임근용이 그녀의 손을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이렇게 국수를 가져다준 것만 해도 아주 큰 도움이지. 내가 한 가지만 더 부탁할게. 영경거에 가서 의랑이가 얌전히 잘 있는지 좀 확인해 줘.”
강씨는 두 부부의 기분이 괜찮아 보이는 걸 보고 진심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바로 가서 확인할게요.”
강씨가 나가자 육함이 나지막이 말했다.
“셋째 제수씨는 참 좋은 사람인 것 같소.”
임근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응, 아주 올바른 사람이에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육함이 그녀를 보며 정색하더니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입술 근처를 가볍게 문지르고 살짝 꾸짖는 투로 말했다.
“다 큰 사람이 음식을 먹고 입도 제대로 안 닦으면 어떡하오. 조상님들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소.”
입을 닦았는지 안 닦았는지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알지 않겠는가. 안 닦인 부분이 있을 리가 없었다. 육함은 이걸 핑계로 그녀와 화해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임근용이 엄숙한 표정으로 육함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조몰락대는 건 조상님들 앞에서 안 부끄러운가 봐요.”
육함이 얼른 손을 거두고 눈을 내리깔며 단정하게 무릎을 꿇었다.
임근용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됐어요, 어쨌든 내가 그런 꿈을 꾼 건 사실이에요. 믿든 말든 그건 당신 마음대로 해요.”
육함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게까지 될 일은 없을 거요.”
임근용이 그에게 되물었다.
“그건 꿈이었지만 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민행은 어떻게 할 거예요? 혹시 모르니까 그래도 뭔가 방법을 생각해 놓는 게 좋잖아요.”
우연히 꾼 허무맹랑한 개꿈을 가지고 그에게 방법을 생각해 보라니,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명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육함은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평소 평주의 정세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고, 유종성의 행태에도 불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방금 임근용의 성질을 건드린 터라 그녀의 비위를 맞춰 주고 싶은 마음도 약간은 있었다. 시국이 변화무쌍해 길흉화복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미리 방법을 생각해 놓는 것도 나쁠 건 없었다. 물론 이런 방법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만약 정말로 위기가 닥친다면, 뭔가 생각해 둔 방법이 있다면 그래도 좀 덜 허둥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육함은 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계획을 세워 두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한 육함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알았소, 잘 생각해보겠소.”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상황이 안 좋아지면, 우린 고택으로 달려가면 되오. 거긴 대영의 기병도 막은 적이 있지 않소.”
임근용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 고택을 할아버님께서 살아계실 때 수리했으니까 벌써 수리한 지 몇 년 지났네요. 창고에 있는 쌀이랑 곡식들의 도난을 막으려면 가서 담장이랑 대문, 창고 같은 데도 한 번 살펴봐야 하지 않아요?”
육함이 잠시 생각해 보다 말했다.
“며칠 후면 우기이니 그걸 핑계 삼아 내가 한 번 가서 살펴보고 오겠소.”
임근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 * *
한밤중이 되자 날은 서늘해지고 이슬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사당 깊은 곳에서 흔들리는 희미한 빛을 제외하고는 사방에 빛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달은 이미 서쪽으로 진 지 오래였고, 하늘은 너무 어두워 별빛마저 사라진 것 같았다. 임근용이 육함의 팔을 쿡 찔렀다.
“이러면 너무 힘들지 않아요? 무릎 안 아파요? 내일도 무릎을 꿇어야 하는데 힘을 좀 비축해 두는 게 낫지 않겠어요? 무슨 시위 하는 것도 아니고.”
육함은 그녀를 쉬게 한 뒤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역시나 아주 성심성의껏 무릎을 꿇었다. 임근용은 여태껏 육함에게 이렇게 귀여운 면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떠들지 마시오.”
육함이 정신을 가다듬으며 임근용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 윗 눈꺼풀과 아래 눈꺼풀이 서로 붙으려 하며 싸우고 있었다. 임근용은 이제 곧 그가 청석 바닥에 쓰러져 쿨쿨 잠이 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잠이 들 만하면 다시 눈을 떴다.
임근용이 다시 그의 곁으로 가 무릎을 꿇었다.
“당신이 안 쉬면 나도 안 쉴 거예요.”
빛이 어두웠지만 그럼에도 육함은 그녀의 얼굴과 눈에서 반짝이는 즐거움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아주 즐거워하고 있었다. 육함은 머리를 빠르게 굴려 그녀의 가볍고 즐거운 기분에 장단을 맞춰 주었다. 만약 임근용이 울상을 하며 계속 불평하고 질책했다면 지금 분위기가 어땠겠는가?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체력은 한계에 다다를지 몰라도 마음만은 계속 유쾌할 것이다.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마치 두 사람이 함께 힘든 일을 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럼 나도 좀 쉬어야겠군.”
육함이 손을 뻗어 임근용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그는 새삼스럽게 자신이 임근용과 의랑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또 지금의 이런 생활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었다. 육함은 임근용이 그저 그가 좀 쉬기를 바랐을 뿐이라는 걸 알고 순순히 그녀를 부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부부는 함께 천천히 정원을 몇 바퀴 돌고 돌계단에 기대앉았다.
밤바람은 차가웠고, 고양이 울음소리마저 그쳐 사방은 온통 고요했다. 옆에 앉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고요하고 따뜻한 기운에 상대가 깨어 있기만 하다면 왠지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임근용이 육함의 무릎에 손을 얹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꿈에서는 겨울이었어요.”
임근용이 또 그 이야기를 꺼냈다. 육함은 임근용이 지나치게 걱정해서 이러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가 육함이 위로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임근용의 등에 손을 얹고 나지막이 말했다.
“걱정 마시오, 내가 있지 않소.”
임근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조용히 하늘가의 별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