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5
5화. 호의를 보이다 (2)
임역지가 또 임근용을 불렀다.
“넷째야.”
그가 임근용의 치마를 쳐다보고는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
“오늘은 손님이 많으니, 치마를 갈아입는 게 어때? 아까 보니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누이는 다 예쁘게 차려입었더라고.”
임근용이 잠시 멍해졌다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나요. 오라버니 눈에는 별로예요?”
그녀의 세 사촌 여동생들은 전부 그녀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다들 혼담을 진행할 시기였다. 노인의 생일잔치 같은 자리는 본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보고 고를 기회를 갖는 자리이니, 어찌 다들 예쁘게 꾸미지 않았겠는가?
특히 오상과 육함(陆缄) 같은 사람이 있으면 대부인(大伯母)과 이부인(二伯母)은 자신의 딸들을 예쁘게 꾸미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별로 거기에 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장남가와 차남가가 그 무정한 남자를 위해 쉬지 않고 싸워 대는 꼴을 구경하고 싶을 뿐이었다.
임역지는 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아무래도 임근용의 나이가 어린 데다가 삼부인이 세심하거나 잔꾀를 부리는 성격도 아니니 아무도 그녀에게 이런 것을 가르쳐 주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임역지가 대놓고 말을 하기에는 좀 껄끄러웠다. 그는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모습을 보고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예뻐, 아주 예뻐.”
임근용은 입술을 오므리며 웃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인정, 그래, 인정을 베풀어야 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 필요가 있었다. 그녀가 전생에 실패했던 이유는 아마도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 줄 모르고 베푸는 척도 할 줄 몰라서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임역지는 눈으로 임근용을 전송했다. 그는 오늘 그녀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다른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다. 전에 그녀는 항상 자신을 무관심한 눈길로 보았는데, 오늘은 아주 상냥한 눈길로 보지 않았는가?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참 동안 생각해 보았지만 여전히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속으로 어쨌든 자신에게는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점점 나이를 먹어 가는데 삼부인 앞에서 자신을 위해 좋은 말을 해 줄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것만 해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그녀와 교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 그만이었다.
* * *
임근용은 물 위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를 건너고 두세 개의 정자와 누각을 돌아서야 비로소 그녀의 친어머니인 임 삼부인 도씨의 정원 입구에 도착했다.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안에서 누군가가 가볍고 쾌활하게 웃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임씨 가문에서 이런 웃음소리를 낼 수 있는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꾸지람을 듣고 시무룩해하던 계원이 눈을 깜박이며 여지에게 유쾌하게 말했다.
“외숙 부인이에요! 이제 도착하셨나 봐요!”
여지는 담담한 눈길로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원이 말한 이 외숙 부인이 바로 임근용의 외숙모이자 도씨의 큰 올케인 오씨(吴氏)였다. 그녀는 오상의 친고모이기도 했다.
오씨는 성격이 활발하고 씀씀이가 커서 조카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선물을 주었는데 옆에 있는 시녀들에게까지 용돈을 주니 계원이 싫어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여지는 이렇게 희색이 만면한 것은 역시 너무 체신머리 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오씨 입장에서는 임씨 가문이 얼마나 가난하면 하인들이 이렇게 천박하게 굴까라며 오해할 수도 있었다. 어쨌든 여지의 생각은 그랬다.
임근용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그녀는 걸음을 재촉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진심으로 이 외숙모를 좋아했다. 성격이 활발하고 대범했으며 자애롭고 현명하기까지 했다. 외숙모는 언제나 그녀의 남매들에게 잘해주었다.
친정은 시집간 여자의 대들보라는 말이 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만약 외숙부와 외숙모가 지탱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어머니는 진즉에 쓰러져 버렸을 것이다. 다만 외숙모가 몸이 좋지 않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못내 애석했다.
다시 생을 건너와 외숙모를 만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녀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으랴?
* * *
임근용이 발을 돌계단에 올리자마자 그녀의 친언니 임근음(林谨音)이 장막 아래에서 급하게 튀어 나왔다. 그녀는 얼굴을 숨긴 채 앞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돌진해 와서 하마터면 자매끼리 부딪힐 뻔했다.
“언니 어디 가는 거야? 뭐가 이렇게 급해?”
임근용이 딱 제때 멈춰 서서 임근음을 잡았다. 그녀는 언니의 부드러운 웃음을 바라보았다.
임근음은 외숙부댁의 큰 사촌 오라버니인 도봉당(陶凤棠)에게 시집가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녀가 이러는 걸 보니 분명 외숙모이자 미래의 시어머니에게 놀림을 당해서 부끄러운 마음에 도망가려 한 것 같았다.
열여섯 살의 임근음은 부끄러움에 온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그녀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여동생의 오색 머리끈을 살짝 정리하더니 그녀의 얼굴을 만지며 다정하게 말했다.
“좀 괜찮아졌어? 아침에 보러 갔었는데 아직 안 일어났더라.”
도씨의 미모 덕분에 임근음의 얼굴은 복숭아꽃처럼 예뻤다.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듣기 좋아서 또렷하면서도 달콤한 느낌이 드는 것이 마치 구슬이 옥쟁반에서 구르는 것 같았다.
“많이 좋아졌어. 아침에 죽 한 그릇이랑 만두 네 개나 먹었어.”
임근용은 언니에게 자신이 얼마나 먹었는지 보고하며 언니의 친절한 관심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임근음의 하얗고 아름다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무리 봐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서는 잘 몰랐지만 다시 살아난 이후 그녀는 가족들의 사랑과 따뜻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그랬어? 잘했네.”
임근음은 부끄러워했던 것도 잊고 동생의 손을 잡고 천천히 말했다.
“계 마마 말을 들어보니 밤에 무서워한다던데 그럼 내 방에 와서 며칠 같이 자도 돼.”
그녀는 여동생이 왜 겁을 먹었는지 알고 있었지만, 아직 출가도 하지 않은 소저가 그런 일을 입에 올리기는 불편해서, 그냥 좀 어설프게 여동생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별일 아니니 잊어버려. 어머니께서 며칠 후에 우리를 데리고 연화사(莲花寺)에 향을 피우러 갈 거래. 공 대사(大师)님께 부탁드려서 너한테 경을 읽어주면 좋아질 거야.”
임근용은 눈을 반짝이며 입술을 오므리고 귀엽게 미소 지었다.
“아니야, 벌써 며칠 동안이나 악몽을 안 꿨어. 어젯밤은 아마 손을 가슴에 얹고 자서 눌려서 그랬을 거야.”
그녀가 어찌 감히 임근음과 같이 자겠는가? 만약 그녀가 꿈을 꾸다가 말이라도 해서 임근음이 들으면 큰일이지 않은가?
그녀는 분명 죽었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린 시절로 되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이런 괴이한 일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걸 또 누가 믿는단 말인가?
사람들이 그녀가 정말로 정신이 나갔다고 오해해서 그녀에게 소금을 뿌릴지도 몰랐다.
‘악몽은, 이제는 정말로 악몽이 되어 버렸네……. 시간이 지나면 분명 괜찮아질 거야.’
만약 한 번의 고생으로 영원히 그 혼사를 없던 일로 만들 수만 있다면, 그녀도 좀 더 안정되고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임근음은 귀여운 듯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착한 것.”
그녀는 사실 임근용보다 겨우 몇 살밖에 많지 않았다. 그녀가 어르신 같은 말투로 말을 하니 시녀들이 듣고 슬그머니 웃었다. 하지만 임근용은 전혀 짜증을 내지 않고 오히려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 귀염둥이 왔어?”
금속을 두드리는 것처럼 까랑까랑한 도씨의 목소리가 방 안에 천천히 울렸다. 듣자마자 그녀의 기분이 매우 좋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난 먼저 할머니한테 갈게.”
임근음은 다시 들어가기 부끄러워 임근용을 향해 손을 살짝 흔들며 웃었다.
임근용도 대답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웃음을 머금고 침상 왼쪽에 앉아있는 오씨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외숙모께 인사드립니다.”
그녀가 오씨를 힐끗 보았다. 그녀는 아주 아름답게 차려입고 있었다. 남색 인이 찍힌 금소매 상의에 울금향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유행하는 비싼 백각관(白角冠)을 쓰고 있었다. 다만 피부가 노랬고 눈동자에도 약간 노란기가 있었다.
임근용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외숙모는 결국 이 병으로 죽었다.
오씨는 웃으며 임근용을 끌어당겨 이리저리 유심히 살펴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반년쯤 못 본 사이에 또 이렇게 자랐구나. 우리 셋째보다 훨씬 더 철이 들었네. 어찌 이리 잘 키웠어요?”
이 마지막 말은 옆에 있던 도씨에게 한 것이었다.
집안에 경사가 있는 날이라 도씨도 화려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은청색 소매 상의에 단색(檀色)의 주름치마를 입고 금팔찌를 차고 머리를 높이 틀어 올렸다. 그녀는 서른다섯 살이 되었는데도 눈이 마치 가을 물이 넘실거리는 것처럼 반짝거려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녀가 뾰로통하게 말했다.
“큰 올케가 또 나를 놀리시네요.”
이렇게 말을 하며 그녀는 예쁜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불평했다.
“올케도 알다시피 우리 집 그 양반이 좀 꼴불견이어야죠! 우리 딸이 놀라 자빠졌는데도 이렇게 그냥 넘어갔다니까요! 내가 가서 따지지도 못하게 하고요! 아이들이 뭘 모른다고 그게 괜찮은 건가요? 공연히 남한테 피해만 당한 꼴이잖아요?”
그녀는 한 번 입을 열자 말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당한 억울함을 오씨에게 다 털어놓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도씨 가문은 원래 부유한 집안이었다. 도씨가 처녀였을 적에 그녀는 외동딸이었다. 그녀는 예쁘고 재능이 출중해 바느질, 금 타기, 바둑, 서화 등등에 모두 능했고 사람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그녀의 올케는 도량이 넓고 선량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녀와 아주 평화롭게 잘 지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도씨의 가족들은 오히려 그녀의 성격을 그대로 방치해 굽히지 않는 불같은 성질을 키웠다.
시집오고 몇 년 동안 도씨는 여러 번 충격을 받았다. 불같은 성질은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본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원한이든 사랑이든 전부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녀는 비위를 맞출 줄도 고개를 숙일 줄도 몰랐다. 자기가 좋아하고 믿는 사람 앞에서 집안의 허물을 밖으로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도 잊고 전혀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친정 식구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이게 시집 식구들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집에 분란이 일어날 것이 뻔한 데도 말이다.
두 가문이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임근음은 장차 도씨 가문에 시집갈 사람이었다. 이런 추한 일을 미래의 시어머니에게 많이 알려서 좋을 것이 없었다.
임근용은 체면도 그렇고 엿듣는 자가 있을까 걱정도 되어 얼른 웃으며 도씨의 팔을 껴안고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어머니, 오늘 아침에 작은 어머니께서 저를 보러 오셨어요. 놀란 걸 누르라고 옥패 한 쌍을 보내 주셨어요.”
도씨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경멸하며 말했다.
“그 여자가 보낸 물건이 뭐 좋은 거 겠어?”
이 라씨(罗氏)는 임 노부인의 생질녀로 가난한 사람은 비웃고 부자는 미워하는 옹졸하고 악독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공교롭게도 도씨의 말은 정확했다. 정말 순도가 그저 보통 정도인 청옥으로 만든 옥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