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502
501화. 깜짝 놀랄 소식
오후가 되자 두꺼운 구름층이 하늘을 반쯤 뒤덮었다. 그 두꺼운 구름을 뚫고 나온 햇빛이 가뜩이나 무덥고 습한 날씨를 더욱 뜨겁게 만들어 사람들은 한껏 짜증이 났다.
임근용은 복도에 앉은 채로 잠이 든 의랑에게 가볍게 부채질을 해 주다가 작은 목소리로 임근음에게 말했다.
“만약에 우리가 비용을 부담해 고택을 수리하고, 아버님 대신 모든 걸 빈틈없이 잘 처리한 게 아니었으면, 이렇게 청주에 와서 언니를 보는 건 꿈도 못 꿨을 거야.”
그녀는 이번에 도씨와 함께 청주에 왔는데, 육함이 임신지와 함께 그녀 일행을 바래다주었다. 두 사람은 이틀 정도 청주에서 머문 뒤 다시 평주로 돌아가며 보름 후에 데리러 오겠다고 말했다.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 동생 자는 거 안 보여?”
임근음은 고개를 돌리며 한쪽에서 작은 소리로 장난을 치고 있는 두 아들들을 꾸짖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리며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일을 크게 벌이래? 자기들이 그렇게 큰 손실을 봤는데 네가 옆에서 돈을 펑펑 써 대면 꼴 보기 싫은 게 당연하지 않겠니!”
늘 그녀의 재산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육씨 가문 사람들에게 시달리다가 비적의 난 때 결국 털리느니 차라리 지금 유용한 일들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임근용은 임근음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어 그저 탄식하며 말했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는데, 제 부인께서 갑자기 날 그렇게 추켜세우실 줄 누가 알았겠어.”
임근음이 말했다.
“됐어, 이미 지나간 일 이제 와서 말해 봤자 뭐 해.”
그녀가 임근용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으며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얘긴 그만해. 우리 자매가 몇 년 만에 만났는데, 또 며칠 안 있으면 돌아가야 하잖아. 그러니까 우리 즐거운 이야기만 하자. 다음에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잖아.”
임근용이 임근음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다 같이 한 집에 살 때가 정말 그리워. 그때 언니가 나랑 일곱째한테 엄하게 굴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한테 정말 잘해 줬었어. 언니가 시집갈 때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언닌 모를 거야. 하루 종일 언니가 시집가고 나서 어머니랑 나, 일곱째 동생만 남으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만 했다니까.”
전생의 그녀는 정말로 멍청했었고, 현생에서는 그래도 좀 사리 분별을 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없어서 그때는 진심으로 걱정을 했었다.
임근음도 과거를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즐거운 듯 미소 지었다.
“환랑이랑 옥랑이가 싸우고 날 찾아올 때마다 나도 자꾸 예전 일들이 떠오르더라. 어렸을 때 넌 겁이 많고 늘 시들시들 했잖아. 생일날 어머니한테서 받은 선물도 여섯째랑 일곱째 쌍둥이한테 뺏겨 놓고 한 마디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그냥 울기만 했지. 그러다가 크게 한 번 앓고 나더니 순식간에 다른 사람처럼 변해서는 눈만 뜨면 돈돈 하며 돈타령을 해대고……. 근데 지금 또 이렇게 사람들을 돕겠다고 큰돈을 선뜻 내놓다니.”
임근용은 그녀가 처음으로 돈을 벌었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그녀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종잣돈을 만들어 도봉당을 찾아가 뻔뻔스럽게 금은 장사를 도와달라고 했다가 임근음에게 호되게 혼이 났었다.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때 언니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잘못을 일일이 짚어가며 어찌나 무섭게 혼을 내던지. 나랑 일곱째는 언니의 그런 얼굴은 그날 난생 처음 봐서 정말 깜짝 놀랐어.”
환랑은 자기 어머니와 이모가 어릴 적 이야기를 시작하자 절로 흥미가 이는 듯 옆에서 귀찮게 달라붙는 동생 옥랑을 밀치고 호기심 어린 표정을 하며 다가왔다.
“이모, 우리 어머니가 어렸을 때 그렇게 무서웠어요?”
임근음이 손을 번쩍 들어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때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어딜 끼어들어?”
환랑은 자기 어머니를 향해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고, 뒤를 돌더니 임근음을 그대로 따라 하며 옥랑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고 능청스럽게 꾸짖었다.
“들었지, 어른들이 말씀하실 때 아이들은 끼어드는 거 아니야.”
옥랑이 질세라 임근음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아직 앳된 목소리로 조그맣게 말했다.
“엄마, 형이 또 괴롭혀요.”
임근음이 환랑을 꾸짖었다.
“네 일곱째 외숙부는 너만했을 때…….”
환랑이 곧바로 한숨을 내쉬며 애늙은이처럼 말했다.
“알아요, 일곱째 외숙부께서는 저만했을 때 벌써 제 선생님의 문하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계셨고, 누나와 어머니를 보호하고 외할아버지를 돌볼 줄도 아셨다고요. 그럼 저도 그만 가서 할아버지를 모실게요.”
그는 빙그레 웃으며 임근용에게 인사한 뒤 옥랑의 손을 잡아끌고 말했다.
“가자, 형이 데려다줄 테니까 가서 낮잠 자.”
옥랑은 순순히 그의 손을 잡고 따라갔다.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은 두 형제의 뒷모습이 정말로 조화로워 보였다. 임근음은 두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 큰사촌오라버니가 일 년 내내 집에 없잖아. 나 혼자 모든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아이한테 신경을 많이 못 썼더니 환랑이 성격이 저 모양이야. 어린 나이인데도 내 일을 많이 도와주고, 할아버지 기분도 살필 줄 알고, 옥랑이도 잘 돌봐주니 좋긴 하지. 그런데 아무래도 아버지가 곁에 없고, 할아버지가 예뻐하기만 하다 보니 버릇이 나빠져서 늘 저렇게 히죽거리면서 날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는다니까.”
임근용이 절로 웃으며 말했다.
“아이가 벌써 철이 많이 든 것 같은데 뭐, 7, 8살 난 아이가 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고, 노인과 아이를 돌보고, 공부도 하는데 언니는 대체 뭘 더 바라는 거야? 성격도 쾌활하면 좋지. 우리 집에 계신 누구처럼 하루 종일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말도 손에 꼽을 만큼 하면 그거야말로 큰일인 거야.”
임근음이 부채로 가볍게 그녀의 머리를 때리며 말했다.
“이것아, 또 이렇게 뒤에서 딴소리하네. 육함이 어디가 어때서?”
그녀는 멀리 강남에 있는 도봉당이 떠올라 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린 나이에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은 처음부터 정이 깊었으나, 계속 떨어져 살 수밖에 없어 서로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어찌 서글프지 않겠는가!
임근용은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틀 전에 말했던 그 일은 생각을 좀 해 봤어? 요즘 외숙부 건강도 좀 좋아지셨으니 이참에 강남으로 모시고 가서 기분 전환을 시켜 드리고 언니네 가족들도 다 같이 모이면 좋잖아. 계속 이렇게 떨어져 살면 좋을 거 없어.”
임근용은 그러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아주 난감해하며 말했다.
“좋기야 좋겠지. 근데 집에 크면 할 일도 많은 법이잖아. 어디 그렇게 쉽게 다 내팽개치고 갈 수 있니. 더구나 너도 외숙부께서 정든 고향 땅을 어찌 떠나겠냐고 하시는 것 들었잖아. 외숙부께서 안 가려고 하셔. 근데 내가 뭘 어쩌겠어?”
임근용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계획을 세워 도봉당을 선발대로 보내서 이미 준비를 다 해 둔 상태였다. 그녀는 도순흠이 거절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실제로 실행할 때가 되니 이런 뜻밖의 난관에 부딪치고 말았다. 하늘에서 우르릉 쾅쾅 하며 무거운 천둥소리가 울렸다. 임근용은 조급한 마음에 몸에서도 열이 올라 온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연신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쪄 죽겠네.”
임근음도 따라서 부채질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비가 올 것 같진 않아. 구름이 이렇게 두꺼운데 바람도 안 부니 당연히 더울 수밖에.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지. 작년 여름은 이것보다 훨씬 더웠잖아. 매일 해가 쨍쨍하게 떠서 기름을 바르면 정말로 구워질 것 같았다니까.”
임근용이 투덜댔다.
“그다음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사람들이 다 쓸려갈 뻔했다는 말은 왜 빼?”
임근음은 그녀가 초조해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지만, 그녀를 초조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임근음이 그녀를 다독였다.
“걱정하지 마. 살아보니까 뭐든 처음만 어렵지 하다 보면 다 어떻게든 하게 되더라.”
임근용이 분위기를 맞추듯 웃어 보였다.
이때 갑자기 비파가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과 입술로 말했다.
“아가씨…….”
임근음은 자기 집에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황급히 물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말해.”
그녀는 비파가 임근용을 힐끗 보며 말하기 곤란한 표정만 짓고 있자 살짝 짜증을 냈다.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꾸물대지 말고!”
비파가 여전히 난감해하자 임근용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난 가서 어머니께서 일어나셨는지 확인해 볼게.”
비파가 이마에 땀을 닦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아니에요, 넷째 아가씨께 숨길 게 뭐가 있겠어요? 전 그저 넷째 아가씨께서 너무 놀라실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거예요.”
임근음은 그녀가 말을 하려다가 또 멈추는 걸 보고 참지 못하고 말했다.
“진짜 숨 넘어가겠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비파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소식을 들었는데 평주에서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켰대요! 수백명에 이르는 반란군이 벌써 관리를 여럿 죽이고 크게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임근음은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떨어뜨릴 뻔했다. 그녀는 얼른 정신을 가다듬고 임근용을 재빨리 훑어보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다는데? 평주 쪽에 무슨 큰일은 없대?”
결국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전생에서는 그저 수십 명의 병사에 불과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찌 수백 명이 되었단 말인가? 말이 와전된 걸까, 아니면 또 무슨 변수가 생긴 걸까? 임근용은 여러 가지 불확실한 상황들 속에서 한 가지만은 확실한 결론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야 할 일은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임근음이 말하는 큰일이란 반란군들이 이 틈을 타 부잣집을 공격해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짓들을 했는지 여부였다. 비파는 나름대로 짐작되는 바가 있었지만, 감히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밖에서 방금 전해진 소식이라 두리뭉실해서 정확한 상황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럼 빨리 사람을 보내서 알아봐야지, 뭘 멍청하게 서 있어?”
임근음은 내내 침묵하고 있는 임근용을 보고 그녀가 너무 놀라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거라 생각하고 얼른 임근용을 부축하며 위로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틀림없이 무슨 큰일은 없을 거야. 너도 알다시피, 세 사람이 모이면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잖아. 사람들 입을 통해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와전된 걸 수도 있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임근음 역시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도씨는 여기에 있었지만 임씨 가문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육, 오 두 가문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도씨가 이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황급히 주변 사람들에게 지시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때까지 어머니께는 이 일을 알리지 말거라.”
한바탕 광풍이 불어 와 온 정원의 나뭇잎들이 서로 부대끼며 솨아아 하는 소리를 냈다. 멀리서 습한 기운이 몰려왔다. 임근용이 임근음의 손을 꽉 잡고 고개를 들어 하늘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비가 올 것 같아.”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콩알만 한 빗방울이 떨어지며 짙은 흙 비린내가 풍겼다. 정원의 나무와 화초들이 순식간에 하얀 안개비에 둘러싸였고, 무거운 천둥소리가 사나운 번개와 함께 내리쳤다. 의랑은 깜짝 놀라 잠에서 깨 울음을 터뜨렸다.
임근용이 얼른 몸을 숙여 아이를 안아 올린 뒤 작은 목소리로 다독였다.
“엄마가 여기 있으니까 무서워할 것 없어. 그냥 천둥 치는 소리야.”
제때에 위로를 받은 의랑은 금세 울음을 그치고 착하게 임근용의 품에 안겨 비를 구경했다. 임근용과 임근음은 잠시 복도에 서 있다가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비가 들이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정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찻잔만 손에 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