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51
51화. 매화가 떨어지다 (4)
한편 오상은 임근용과 그 무리를 눈으로 전송하며 궁금하다는 듯이 육함에게 물었다.
“너 근용이한테 무슨 잘못 했어?”
육함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몰라.”
육함은 그저 좀 전에 임근지가 임근용에게 임옥진과 육운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하는 걸 우연히 보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임근용이 그런 강요를 받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넌지시 말했던 거였다. 그는 그녀를 대신해 임옥진에게 잘 말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과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는 마치 원수를 대하는 것처럼 그를 대했다. 그런 증오와 원한이 일부러 꾸며낸 것이 아니라는 게 느껴져서 육함은 마음이 답답하면서도 싱숭생숭했다.
“그만해! 나도 모른다니까?”
오상은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근용이 성격은 내가 잘 알아. 온화하고 조용하고 항상 남한테 양보해서 그보다 더 답답하기도 힘든 성격이야. 그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다투지 않고 서로 편하게 지내는 거고 가장 싫어하는 건 문제를 일으키는 거야. 난 지금까지 그날 신지 때문에 화낸 것 외에 근용이가 화내는 걸 본 적이 없어. 네가 뭔가 큰 잘못을 한 게 아니면 근용이가 너한테 왜 그러겠어? 걔는 말이야, 길가의 꽃한테도 지금 너한테 보다 친절하게 구는 애야. 너 아까 혼자 여기 숲으로 뛰어가더니 임근지랑 합심해서 근용이 괴롭힌 거 아니야?”
오상은 이렇게 말하며 놀리듯 눈을 찡그렸다.
오상은 육함이 길가의 꽃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다며 냉정하게 말하더니 임근지와 함께 임근용을 괴롭힌 것 아니냐는 말을 하면서 더욱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육함은 아주 기분이 나빴지만 대응하지 않고 담담한 눈빛으로 오상을 힐끗 쳐다보았다.
“난 네 말 안 믿어. 너 지금 걔가 너보다 고훈을 잘 분다고 하니까 굳이 오늘 겨뤄 보겠다고 우기고 있는 거잖아. 내가 장담하는데 너 오늘 분명히 져.”
오상은 담담하게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두 눈에는 불꽃이 튀었다.
“좋아! 우리 내기해! 내가 지면 내 기보(*棋谱 바둑이나 장기 두는 법을 적은 책) 너 줄게! 이기면…… 네가 갖고 있는 그 진서(*珍本: 진귀한 책) 나 줘! 어때?”
육함이 잠시 생각해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상은 하하 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다. 그 귀중한 서책들은 정말로 구하기 힘들어서 그가 오랫동안 이리저리 수소문을 했는데도 구할 수 없었던 물건이었다. 그런데 지금 마치 그것을 벌써 손에 넣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육함은 입가에 거의 보일락말락 한 엷은 미소를 띠고 오상이 반드시 엄청나게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또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임근용이 온화하고 과묵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와 마주칠 때마다 매번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치켜세웠다.
육함은 임근용이 임근지나 다른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아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냉담한 눈길로 내심 비웃고 있다는 걸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왜 이렇게 그를 싫어하는 걸까? 임옥진 때문에?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이때 갑자기 양미의 시녀가 급히 달려와 인사를 하며 말했다.
“우리 아가씨께서 둘째 공자께 남쪽에 있는 대나무 정자에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두 분을 위한 자리도 따로 마련했으니 오셔서 고훈을 불어 달라 하십니다.”
양미의 계획은 정말 주도면밀했다. 쌍방이 매화림에서 우연히 마주쳤다는 것 보다 아예 대놓고 매화림에서 만나 임근용과 오상이 고훈 연주 시합을 하기로 했다고 하는 편이 훨씬 더 그럴 듯했다.
오상이 웃으며 말했다.
“양미 걔는 정말 잘도 꾸며댄다니까.”
오상은 소매를 더듬어 두 개의 고훈을 꺼내 자세히 살펴본 뒤 하나를 골랐다. 그는 하얀 손수건으로 고훈을 닦고 입술에 갖다 대더니 단전에 공기를 모으고 시험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육함은 옆에서 그의 운지법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자기도 모르게 소매 속에 숨긴 손으로 따라 했다. 오상은 즐거운 마음으로 고훈을 불다가 무심결에 힐끗 육함의 손동작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일부러 등을 돌려 육함이 운지법을 보지 못하게 했다.
둘 다 젊고 재기가 넘치는 사람들이라 겉으로는 친하게 지내도 사실 속으로는 경쟁심을 품고 있었다. 바둑을 예로 들면 오상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 기보를 가지고 어릴 때부터 혼자 연구해 와서 육함보다 한 수 위였다.
반면 육함은 미적지근하고 연연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바둑을 두다가 지면 대수롭지 않은 척하면서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가려 했다. 육함은 전혀 초조해하지 않고 오상이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침침해져 결국 체력이 달려 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이건 분명히 다른 방식으로 생떼를 쓰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오상의 인내심이 육함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오상은 오래전부터 그의 이런 행동에 내심 분노를 품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육함이 또 그의 필살기인 고훈 부는 법을 몰래 배우려 하는 것이다. 오상은 육함이 자신에게 애걸하지 않는 한 절대 그에게 가르쳐 줄 생각이 없었다!
육함은 오상이 이러는 걸 보고 아무 말 없이 그저 눈을 내리깔고 두 손을 소매 안에 집어넣은 채 매화림 깊은 곳을 덤덤하게 바라보았다.
오상은 살며시 얼굴을 옆으로 돌려 육함을 바라보았다. 육함은 화가 난 것 같지도, 그렇다고 어색해 하지도 않으며 그저 자신을 외면하고 있었다. 오상은 절로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예 몸을 돌려 육함을 바라보며 고훈을 불었다. 그는 육함이 다시 자신을 보게 만들고 싶었지만 육함은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한 곡이 끝나자 어린 시녀가 눈을 밟고 와 두 사람을 정중히 초대했다.
“아가씨들께서 대나무 정자에서 난로를 둘러싸고 눈과 매화를 구경하고 계십니다. 모두들 고훈 소리를 듣고 감탄하셔서 두 공자님을 초대하셨습니다.”
오상이 고훈을 집어넣고 한 걸음 내딛는데 육함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그 정도 정서가 전부면, 넌 이미 한참 진 거나 다름없어. 분명 질 거야!”
오상은 이겨야만 했다! 그는 화가 나서 걸음을 멈추고 육함을 돌아보았다. 육함은 그 말만 남긴 채 이미 저만치 가버린 뒤였다.
일고여덟 개의 황동 화로에서 은목탄이 붉게 타오르며 사방이 뚫려 있는 대나무 정자를 훈훈하게 데웠다. 소녀들은 가벼운 가죽 외투를 입고 작은 손난로를 안은 채 빙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뒤쪽에는 시녀들이 서서 바람을 막고 있었고 앞에는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차가 차려져 있었다. 눈을 들면 눈 내린 아름다운 풍경이 보였고 코끝에는 차갑지만 향긋한 납매의 향기가 스쳤다. 이런 광경은 육운이나 임근지 같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진심 어린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매화림 깊은 곳에서 한 쌍의 소년이 천천히 걸어오자 사람들의 눈은 더욱 반짝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드러내지 않고 힐끗힐끗 훔쳐보며 고개를 숙인 채 미소를 지었고 또 어떤 사람은 담이 커서 옆 사람의 몸으로 자신을 가리고 계속 주시했다.
임근지는 자신이 그 두 사람과 친척 관계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친하다고 생각해 자리에서 일어나 열정적으로 인사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이 부러워하자 임근지는 초연한 척하면서도 의기양양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양미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사람들 맞은편의 거위목 난간을 가리켰다.
“둘째 오라버니, 거기 앉아요!”
오상은 웃으며 그녀의 말대로 앉았다. 육함은 말을 하기도 전에 알아서 그 옆에 앉았다. 몇 개의 숯화로와 다과상을 사이에 두고 남녀가 뚜렷하게 분리가 되었다. 다과상에는 간식과 따뜻한 차가 차려져 있었다.
육운은 아무 말 없이 손수 뜨거운 차를 두 잔 따라 시녀를 시켜 오상과 육함에게 보냈다. 육함은 뜨거운 차를 들고 손을 데우며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육운도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재빨리 오상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오상은 양미를 쳐다보며 눈짓을 하고 있었는데 양미는 여유로운 태도로 눈을 내리깐 채 앞에 있는 숯화로를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손에 든 손수건만 구기고 있었다.
임근지는 그녀와 오상을 번갈아 가며 보더니 기침을 한 번 하고 양미를 쳐다보았다.
“양미 언니?”
양미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둘째 오라버니, 방금 오라버니가 고훈을 부는 소리를 들었는데, 다들 흠, 흠, 이 세상의 소리가 아닌 것 같다며 명연주라고 칭찬하더라고요. 혹시 우리를 위해 한 곡 더 들려줄 수 있어요?”
아가씨들은 모두 오상이라는 평주에서 제일이라고 이름 난 소년이 재능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육운은 손에 들고 있는 비단 손수건을 자꾸 비틀어 댔다.
임근용은 냉담한 눈빛으로 이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녀가 전생에서는 알아채지 못했던 작은 비밀 하나를 발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상은 모처럼 이렇게 많은 여자들 앞에서 양미로부터 “이 세상의 소리가 아닌 것 같다”라는 칭찬을 들었지만 전혀 얼굴을 붉히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그는 태연하게 웃더니 사람들에게 공수하며 인사했다.
“하찮은 재주로 여러분의 귀를 어지럽혔다니 정말 부끄럽군요. 홀로 즐기는 것은 다 같이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 하였지요. 나 혼자서 불면 너무 재미없으니 이렇게 합시다. 우리 쪽에서 한 사람이 나오고, 여러분 쪽에서도 한 사람이 나와 승부를 겨루면 어떨까요?”
모두들 웃었다. 막 육운이 입을 열려고 하는데 임근옥이 먼저 가로채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좋아요, 우리 쪽에서는 다섯째 언니부터 시작해요! 언니도 고훈을 불 줄 알거든요!”
그러자 모두들 임근지를 쳐다보았다. 임근지는 화가 나서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분노한 눈빛으로 임근옥을 쳐다보며 딱딱하게 말했다.
“난 못해.”
이건 분명히 사람들 앞에서 임근지에게 망신을 주려는 속셈이었다. 임근지가 임근용에게 고훈을 배운 지 채 보름도 되지 않아 아직 제대로 입문했다고 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도씨가 병이 났다. 그 이후 임근용은 더 이상 그녀를 가르칠 마음과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지금 어찌 고훈을 분단 말인가?
임근옥이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다섯째 언니, 겸손 떨 필요 없어요. 며칠 전까지 우리는 매일 언니가 고훈을 부는 소리를 들었는걸요. 어느 날 아침에는 거의 반 시진 동안 불기도 했잖아요? 언니 고훈도 넷째 언니가 준 거고요, 맞죠? 넷째 언니?”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증언해 주기를 바라는 눈빛으로 임근용을 바라보았다.
임근용은 그들 사이의 우스운 장난질에 끼어들 생각이 없어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근지는 화가 난 나머지 입술을 깨물고 억울해하면서 구원을 청하는 눈길로 육운을 쳐다보았다.
“나 정말 못해. 다른 거라면 몰라도.”
육운이 그녀를 위로하듯 흘끗 보더니 눈썹을 치켜올리고 웃으며 말했다.
“고훈을 부는 건 오상 오라버니네 가문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기예라 소수의 인재들만 할 수 있어요. 오상 오라버니만 괜찮다면 제가 금으로 한 곡 연주하고 싶어요. 제 금을 타는 솜씨가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어도 꽤 능숙한 편이긴 하거든요.”
“괜찮긴 한데, 그 얘긴 이따 다시 하자.”
오상은 지금 임근용과 정정당당하게 겨루어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이겨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육함도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는데 육운의 제안에 흥미가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는 직접 임근용의 이름을 불렀다.
“근용아, 넌 어릴 때부터 고훈을 배웠잖아, 왜 거기 숨어서 모르는 척하고 가만히 있어?”
임근옥이 즉시 시원하게 받아쳤다.
“그래요, 맞아요, 넷째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고훈을 잘 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