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514
513화. 점진적인 발전 (2)
여씨는 목소리를 낮추고 흐느껴 울며 원망을 늘어놓았다. 앵두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도 임근용을 욕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임근용에게 물었다.
“아가씨 들어가 보시겠어요?”
그녀가 들어가면 여씨가 어디 채신없이 계속 험담을 할 수 있겠는가.
임근용이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됐어, 난 그냥 여기 있을래.”
이럴 때 들어가면 모두가 난감해질 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녀도 여씨나 육건립, 육함이 난감하든 말든 신경 안 쓰고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도 생각이 바뀌어서 여지를 좀 남기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여씨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육건립은 나쁜 사람이 아니어서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육함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역시나 안에서 육함이 낮은 소리로 뭐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문발이 들리며 그가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복도에 서 있던 임근용이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짓자 육함도 화난 표정을 거두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만 돌아갑시다.”
임근용이 여씨의 시녀에게 지시했다.
“셋째 숙모님께서 육공자한테 보내는 물건들은 전부 우리 집으로 가져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임근용은 육함에게 여씨에 관한 말은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굴었지만 육함은 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는지 진지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숙모께서 당신한테 다시 그 일에 대한 말을 꺼내는 일은 없을 거요.”
그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에 큰형수가 당신한테 와서 그 찻집에 대해 물으면, 아주 비싼 값을 부르시오.”
임근용은 웃음을 터뜨리며 육함을 힐끗 보고 말했다.
“달빛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때마침 그 작은 마왕한테서도 풀려났는데 부군께서는 저와 함께 정원으로 가서 산책이나 하시는 것이 어떠실지요?”
육함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가 임근용의 손을 잡더니 감히 함부로 쳐다보지 못하고 눈만 내리깔고 있는 앵두에게 지시했다.
“너흰 먼저 돌아가라.”
두 부부는 손을 잡은 채 꽃밭 사이로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달빛을 벗 삼아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천천히 정원을 한 바퀴 돌며 속마음을 털어놓고 일상적인 이야기들도 했다. 육함은 역시나 앞으로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다. 임근용은 웃음을 머금고 조용히 그가 하는 말을 듣다가 가끔씩 농담을 던지며 그의 말에 화답했다. 두 사람은 달이 중천에 뜰 때쯤, 돌아가서 의랑이를 재워야 한다는 걸 떠올리고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 * *
이틀 후 육함은 태명부로 출발했다. 임근용은 의랑을 돌보며 마음 편하게 육건신이 또 무슨 계략을 꾸밀지, 려씨가 언제 그녀를 찾아와 흥정을 할지 기다렸다. 려씨는 정말 침착했다. 여씨가 거절당한 후로 그녀와 임근용은 여러 번 마주쳤지만 한 번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임근용은 급할 것이 없었다. 언젠가는 본색을 드러내지 않겠는가. 그녀 입장에서는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보름여가 지나 가을색이 완연해지고 공기도 서늘해졌다. 도순음과 임근음 일가는 짐을 꾸려 마차를 타고 평주로 왔다. 그들은 청주에서 평주를 거쳐 강남에 있는 도봉당에게 갈 예정이었다. 몇 년 동안 평주에 오지 못했던 도순흠은 온 김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옛 친구들의 집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그의 몸이 버티지 못할까 걱정했지만 그는 오히려 이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니 더 기운이 나는 것 같아 보였다.
임세전이 무의부두에서 급히 돌아와 배를 산 일에 관해 임근용에게 말했다.
“네가 말했던 배는 이미 샀어. 선장은 강신묘에서 살다가 네 도움으로 시집을 간 그 금고라는 여자의 남편이야. 성은 웅(熊)인데, 사람들이 다 수웅(水熊)이라고 부르더라고. 그 수씨가 그 동네에서 이름 좀 날리는 것 같은데, 성품도 괜찮고 믿을만 한 것 같아. 내가 금고한테 돈을 주고 내일부터 너 대신 배를 좀 관리해달라고 했어. 그러니까 너도 매달 사람을 보내서 월급 줘야 한다는 거 잊지 마. 그리고 그 사람들이 혹시 배를 방치하거나 사적으로 유용하지는 않는지 잘 살피고.”
임근용은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일주일 후 그녀는 도씨와 함께 류아와 임신지를 도순흠, 임근음 일가와 함께 마차에 태워 전송했다. 임신지와 류아는 흥분하며 기뻐했지만, 도씨는 아쉬운 듯 눈물을 흘렸다. 이에 임세전이 반드시 일행을 도봉당에게 무사히 데려다주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그는 기회가 되면 인편에 편지를 보내겠다고 말하며 내년에는 꼭 류아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도씨는 그제야 겨우 눈물을 그치고 사람들에게 어서 떠나라 재촉했다.
임 삼노야가 임신지에게 한 마디 했다.
“혹시라도 나쁜 걸 배워 오거나 공부를 제대로 안 하면 집에 오자마자 맞아 죽을 줄 알아.”
그러더니 또 강조하며 말했다.
“이건 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걸 그대로 전달한 거야. 또 네가 맞아 죽기 전에 네 하인들부터 먼저 두드려 패서 전부 팔아 버릴 테니 알아서 하라 하셨어.”
이에 임신지와 동행한 하인들이 전부 겁에 질려 무슨 일이 있어도 상전을 잘 모시겠다고 연거푸 다짐했다.
임근용은 벌벌 떠는 그들을 보고 처음으로 임 삼노야가 쓸모 있을 때도 있다고 생각을 했다. 적어도 하인들이 임신지를 꼬드겨 나쁜 짓을 배우게 할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임신지와 임세전 일행이 길모퉁이를 돌아 더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으로 전송한 임근용은 갑자기 온몸에 긴장이 확 풀려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아 침상에 누워 쉬고 싶었다. 그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병이 났다는 핑계를 대고 방에 틀어박혀 다음에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때 마침 려씨가 찾아왔다.
“둘째 동서가 요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 하던데. 가게를 팔아 큰 아버지와 둘째 서방님 복직하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려씨가 찾아낸 이 구실은 정말 그럴듯했고 동시에 임근용에게 모종의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역시 육건신이 남모르게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에 임근용은 부정하지 않고 기뻐하며 려씨를 맞았다.
“솔직히 그렇긴 해요. 혹시 큰형님께서 가게를 살 사람을 좀 소개시켜 주실 수 있나요? 성사만 되면 제가 잊지 않고 큰형님께 감사 인사를 드릴게요.”
려씨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잔소리 하려는 건 아니지만, 둘째 동서도 사람이 어쩜 이렇게 바보 같아. 있는 돈은 다 남한테 펴 주고 자기 식구들한테 쓸 돈이 부족해서 가게를 팔다니, 이게 다 무슨 짓이야.”
임근용은 성격 좋은 척 듣고만 있었다.
“제가 가끔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해요.”
려씨는 그녀가 이렇게 대답하자 더는 비꼬지 못하고 말을 돌렸다.
“동서는 내가 어떤 사람을 소개해 줬으면 좋겠어? 일전에 셋째 숙모께서 넘겨달라고 하셨다던데 그땐 왜 안 넘겨드린 거야?”
임근용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셋째 숙모는 그럴 능력이 없으신 분이에요. 만약에 운영을 제대로 못 해서 손해라도 보면,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보고 살겠어요.”
려씨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는데 내 친정집의 친척이야. 일전에 동서네 찻집에 간 적이 있는데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고. 마침 수중에 여윳돈이 좀 있다면서 나한테 그 가게가 얼마나 하는지 물어봐달라고 부탁했어.”
그녀가 임근용의 안색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동서도 잘 생각해 봐. 너무 비싸면 그쪽에서도 사긴 힘들 테니까.”
아마 돈을 강탈당할까 봐 겁나서 이러는 것이리라. 임근용은 그 속을 훤히 들여다보면서도, 여전히 높은 값을 불렀다. 려씨가 화를 내며 말했다.
“그건 좀 힘들 것 같네. 그쪽에도 어디 그렇게 많은 돈이 있겠어?”
임근용이 담담하게 말했다.
“진심으로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면 가격을 좀 조정해 줄 수 있겠지만, 그냥 거저 주워 가겠다는 마음으로 말을 꺼낸 거라면 그렇게는 안 될 거예요. 큰형님한테 허풍을 떨려는 게 아니라, 그 가게를 가져갈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요.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의장의 잡일들을 처리하러 갔는데, 여러 명이 와서 묻더라고요. 이미 잘 되고 있는 가게라 가져가기만 하면 바로 수익이 날 텐데 이렇게 좋은 조건이 또 어디 있겠어요?”
려씨가 한참 동안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그쪽은 진심인 것 같으니까 정말로 원하는 가격을 말해 봐.”
임근용이 그녀에게 손가락을 하나 내밀며 말했다.
“백만 전이요. 안에 골동품이랑 서화가 꽤 많고 비싼 화초도 많아요. 다기도 전부 고급품만 들여놔서 이 정도면 정말 싸게 드리는 거예요. 못 믿겠으면 가서 확인해 보셔도 돼요.”
“내가 볼 땐 이 정도면 적당할 것 같은데.”
려씨가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였다.
임근용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려씨는 언짢은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가 버렸다.
춘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대소부인께서 비싸다고 안 사겠다고 하면 어쩌시려고요?”
임근용이 담담하게 말했다.
“사든 말든 그건 자기 맘이지. 내 물건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어. 한 푼도 안 깎아 줄 거야.”
려씨가 임근용에게 했던 짓이 있었기 때문에 임근용 역시 려씨에게 무슨 짓을 해도 죄책감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 * *
그날 오후, 임근용이 의랑을 데리고 낮잠을 자다 잠에서 깨니 방령이 문발 밖에서 앵두에게 작은 목소리로 묻는 소리가 들렸다.
“이소부인 몸은 좀 어떠셔? 대부인께서 몸을 보양할 식재료를 좀 가져다주라고 하셨어. 또 몇 마디 전해드릴 말도 있고.”
임근용이 말했다.
“일어났어.”
잠시 후 몸단장을 마친 임근용이 앵두에게 방령을 들여보내라 지시했다. 방령이 웃으며 말했다.
“대부인께서 이소부인 몸이 좀 나아지셨으면 상의할 일이 있으니 한 번 들르라 하셨어요.”
임근용이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어머님께서 무슨 일 때문에 부르시는 건데?”
방령이 잠시 망설이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대노야께서 앞으로 어디로 발령이 날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만약 운 나쁘게 혹독하게 춥거나 더운 먼 곳으로 발령이 나면 건강도 안 좋고 나이도 많은 두 분이서 어떡하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미소를 지으며 작별을 고했다.
“대부인께서 노비의 대답을 기다리고 계셔서 노비는 먼저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임근용이 말했다.
“그래, 먼저 가 봐. 나도 곧 갈게.”
앵두가 방령을 배웅하러 나가자 춘아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가씨,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네요. 이소야께서 집에 안 계시니 핑계를 대고 계속 미루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육건신의 그 말은 귀에 거슬릴 뿐만 아니라 살짝 위험한 느낌마저 들었다. 만약 그가 한발 더 나아가 임근용에게 의랑을 데리고 따라와 두 사람 곁에서 시중을 들라 하고 육함에게는 혼자 부임지로 가라고 한다면, 임근용의 입장에서는 정말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도리상 옳은 일이고, 전혀 잘못된 부분을 찾을 수 없으니 누구도 그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임근용이 침착하게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육건신은 단지 방법을 바꾸어 돈을 요구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가 뇌물을 바치지 않는다고 설마 정말로 혹한과 혹서가 있는 먼 곳으로 발령이 나겠는가? 임근용이 육건신에게 돈을 건네는 순간, 그런 걱정 따위는 순식간에 싹 사라질 것이다. 육함은 원래부터 그를 믿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그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가 육함을 들볶으면 들볶을수록 육함은 그에게서 더욱 멀어질 뿐이었다. 그렇다면 임근용은 육건신이 언제까지 그렇게 발버둥을 칠지 지켜볼 작정이었다. 언젠가 그도 자기가 뿌린 씨앗의 악과를 받게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