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530
529화. 이유 (2)
육 노부인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임 노부인 등과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임씨 가문 사람들은 곧 그녀가 억지로 웃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이에 사람들은 식사가 끝나자마자 눈치껏 하나둘씩 작별을 고하고 가 버렸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자 육 노부인의 얼굴에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 사 마마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노부인, 왜 그러세요? 벌써 대노야를 진찰할 좋은 의원도 찾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집에 들여서 돌봐 주고 있다고 하니 대노야께서도 곧 회복하실 거예요. 그러니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이러면 남들 보기도 좋지 않아요.”
육 노부인이 탄식했다.
“너까지 내 앞에서 시치미를 떼려는 게야! 첫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으냐?”
사 마마가 다시 육 노부인을 위로하려 했지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염주를 들고 휘청거리며 걸어갔다. 육 노부인이 불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천만다행으로 둘째 손자는 무사하다 합니다. 그러니 우리 첫째 목숨을 좀 살려 주십시오. 부귀영화는 바라지 않겠사오니 그저 온 가족이 이 재난을 무사히 넘길 수만 있게 해 주십시오.”
그녀는 이렇게 말한 뒤 눈을 감고 경건하게 불경을 외기 시작했다.
사 마마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곁에 무릎을 꿇은 뒤 그녀와 함께 불경을 외며 부처님께 빌기 시작했다.
* * *
임옥진은 앞에 있는 하 이낭, 아유, 소성을 냉담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세 사람이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고 입을 열었다.
“너희는 우리 집에서 너희들에게 어떻게 대해 줬다고 생각하느냐?”
하 이낭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유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노야와 대부인께서 비첩들에게 태산과도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어요.”
임옥진이 비웃으며 말했다.
“너희한테 태산 같은 은혜를 베푼 건 대노야겠지. 난 그 정도까진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너희를 때리거나 욕한 적은 없지? 너희가 먹고 입는 걸 부족하게 만든 적도 없고?”
이 말을 들은 세 사람이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인께서는 비첩들에게 정말 잘해 주셨어요.”
임옥진은 그녀들과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대노야께서 많이 다치시는 바람에 밖에서 며칠은 더 치료를 해야 모셔 올 수 있다고 하더구나. 또 지금 같은 비상 상황에는 집안에 남자들이 자주 드나들 수밖에 없어.”
그녀가 하 이낭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그러니 누구든 법도를 어기고 감히 무슨 문제라도 일으킨다면 내가 절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옆에서 방관한 사람도 똑같이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걸 명심해라!”
그녀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너희 셋은 집 밖으로 나오지 말거라!”
하 이낭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예! 부인의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그녀가 대답하며 허리를 굽히고 절했다. 원래도 유순한 성격인 소성과 아유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무슨 말을 보탠단 말인가. 그녀들은 당연하다는 듯 알겠다고 대답하고 하 이낭과 함께 조심스럽게 물러갔다. 임옥진이 방 마마에게 지시했다.
“저 아이들이 묵고 있는 거처의 대문을 잠그고 열쇠는 네가 보관해라. 밥과 물건들을 가져다주는 시녀 외에는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해!”
육건신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건 절대 숨길 수 없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또 다시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장남가는 정말로 끝장이었다.
방 마마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임옥진을 위로하려 했지만, 임옥진은 눈가를 살짝 훔치고 등을 돌렸다. 그녀는 문발을 들어 올리며 들어오는 임근용을 보고 슬쩍 눈짓한 뒤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임근용은 말없이 다가가 임옥진을 부축해 눕힌 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고모, 할머님께는 이미 말씀드렸어요. 안채와 바깥채 모두 다 평안하고 오늘 밤은 친정의 큰 사촌 오라버니랑 셋째 서방님이 같이 야간 순찰을 돌 거라 했어요.”
임옥진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나지막이 말했다.
“아용, 네 시아버지가 좋아지실까?”
민란이 일어나기 전의 일이라면 임근용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이 있어 뭐라 말해 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녀도 마치 어둠에 둘러싸인 것처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위로의 말 몇 마디쯤은 해 줄 수 있었다.
“틀림없이 좋아지실 거예요. 고모, 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 아버님은 치료만 잘하면 금방 회복하실 거라 했어요. 그런데 고모께서 이렇게 걱정하시다가 건강을 해치시면 되겠어요.”
임옥진은 한숨을 내쉬고 어두컴컴한 천장을 올려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근용은 한쪽에 앉아서 시녀들을 불러 해야 할 일들을 분배해 주었다. 그녀가 일을 반쯤 처리하고 있는데, 주견복의 처가 문발을 들어 올리고 고개를 들이밀더니 임근용에게 슬쩍 눈짓하고 다시 물러갔다. 임근용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적당히 둘러대고 밖으로 나갔다.
주견복의 처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로 이를 덜덜 떨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소부인, 큰일 났습니다!”
임근용은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손을 꽉 부여잡고 나서야 겨우 좀 진정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인데? 똑바로 말을 해.”
주견복의 처가 울상을 한 채 말했다.
“대영에서 쳐들어왔답니다!”
임근용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게 이유였구나! 전생에 그 많은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강변으로 도망쳤던 건 다 이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걸 알았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전열을 흐트러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임근용은 정신을 가다듬고 굳은 표정으로 냉정하게 말했다.
“정확한 소식이야? 누구한테 들은 건데? 그래서 그놈들이 어디까지 왔대? 청주 쪽 상황은?”
주견복의 처는 몹시 당황해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지만, 임근용이 이런 표정과 태도를 보이자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지막이 말했다.
“이소야 쪽에서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하셨어요. 그 사람이 지금 이노야 쪽에 가서 말씀을 드리고 있으니 거짓말 같지는 않아요. 청주 쪽 상황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제 육건신을 말에서 떨어뜨린 그 관군들이 말했던 긴급 군정이란 것이 바로 이걸 말하는 것이었을까? 임근용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안에서 임옥진이 소리 지르는 걸 들었다.
“무슨 일이냐?”
곧이어 임옥진이 창백한 얼굴로 밖으로 나와 말했다.
“혹시 대노야께서…….”
그녀가 이렇게 말하며 휘청거렸다.
임근용이 얼른 그녀를 부축하며 작은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임옥진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결국 울먹이며 말했다.
“어찌 안정될 기미는 없고 끊임없이 난리가 이어진단 말이냐? 평주에 민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찌 막아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이런데 어쩐단 말이냐? 대체 이 일을 어찌하면 좋아? 네 시아버지와 둘째도 아직 거기서 꼼짝 못 하고 있지 않느냐.”
설마 계속 도망가야 한단 말인가? 어떻게? 어디로?
임근용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제멋대로 뛰어댔지만, 그녀는 이럴 때일수록 정신 줄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애써 냉정을 유지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고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궁하면 통하는 법이라 하잖아요. 우리는 식구들이 많으니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거예요. 일단 어르신들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들어보고, 제가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을 불러다 다시 한 번 자세히 물어볼게요.”
임옥진도 달리 뾰족한 수는 없어서 임근용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베개에 기댄 채로 축 늘어져서는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다.
임근용이 주견복의 처에게 지시했다.
“가서 그 사람을 데려오너라.”
주견복의 처가 명을 받들고 나가자 방령이 시녀들과 함께 음식을 들고 들어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부인, 이소부인 식사하세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밥은 먹어야 했다. 임근용이 임옥진에게 일어나서 식사하라고 말하려는데 임옥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랑이는? 빨리 가서 데려와!”
그녀는 이렇게 말한 뒤 침상에서 내려와 밖으로 뛰어나가려 했다.
임근용은 깜짝 놀라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국을 쏟을 뻔했다. 임옥진의 얼굴은 아주 초조해 보였고 눈빛에도 불안감이 가득했다. 임근용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그릇을 내려놓고 임옥진을 덥석 잡으며 황급히 물었다.
“고모, 어디 가시는 거예요?”
임옥진이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어딜 가긴? 당연히 의랑이를 찾으러 가는 거지! 빨리 가서 짐들 싸라고 해!”
임근용이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짐은 아직 풀지도 않아서 다시 쌀 필요도 없어요. 피난을 갈 생각이시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출발하면 돼요. 중요한 건 어떻게 갈지, 온 가족이 함께 갈지, 아니면 우리만 따로 갈지 같은 걸 결정해야 한다는 거죠. 아버님과 민행 쪽은 어떻게 하실 건데요? 기다리실 거예요, 말 거에요?”
임옥진은 그녀의 말에 멍해졌다.
임근용이 나지막이 말했다.
“의랑이는 지금 저희 친정어머니와 두아가 데리고 있고 역랑이랑 신나게 놀고 있으니까 아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여기로 데려오면 우리 때문에 더 놀랄 거예요……. 그러니까 고모, 일단 상황부터 확실히 파악하고 나서 결정하시는 게 어때요? 피난을 가자 하시면 바로 출발할게요. 솔직히 말해서 저도 고모 못지않게 마음이 조급해요.”
임옥진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날 좀 부축해다오. 가서 이노야 쪽에서는 어떻게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임근용은 잠시도 기다리지 못하는 임옥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육건중 일행에게로 향했다.
* * *
정당에는 육씨 가문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임 노태야와 임 대노야도 와 있었다.
육건중이 품위를 갖추며 임 노태야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견문이 넓으신 어르신께서 이럴 때 저희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좀 내주십시오.”
“다들 너무 당황하지 말거라.”
임 노태야는 사양하지 않고 목청을 가다듬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방금 소식을 전하러 온 자의 말을 들어보면, 대영에서 신의를 저버리고 선전포고도 없이 쳐들어온 건 사실이지만, 소규모의 기병을 파병해 살짝 소란을 피우고 탐색을 했을 뿐, 대규모의 병력을 보내 습격한 건 아니라고 하더구나. 더구나 청주에는 민란이 발생한 적이 없고, 아직 수비군도 남아있으니 그리 큰일은 아닐 게다. 청주가 무너지지 않는 한 대영의 오랑캐들이 여기까지 쳐들어올 수는 없을 게야.”
지금 평주가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영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오는 것보다는 백번 나았다. 모두들 임 노태야가 젊었을 때부터 오랫동안 관직에 몸을 담았었던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그가 피난을 오는 과정에서 보여준 예리한 안목에 모두들 그의 말을 신뢰했다. 임 노태야가 이렇게 말하자 한껏 동요했던 사람들도 마침내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육씨 가문 증조부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예전에도 대영의 기병이 여기까지 쳐들어와 며칠 동안 이 고택을 포위했던 적이 있지 않소!”
임 노태야가 담담하게 말했다.
“제 말은 당장은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아직은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대영은 지금 그저 탐색을 하러 온 것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조정의 대응이 부실해 평주의 민란이 지속된다면, 저희도 다른 계획을 세워야 하긴 하겠지요!”
육건중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럼 어르신께서 보시기에는……. 예?”
그는 감히 말로 표현하지는 못하고, 아래를 향해 힘껏 손을 뻗으며 손짓으로 표현했다. 사람들은 그 손짓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임 노태야가 한숨을 내쉬고 문가에서 바람에 빙빙 도는 등롱을 응시하다 나지막이 말했다.
“그걸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 내우외환(内忧外患)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