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542
541화. 봄날
육함이 그녀에게 다가가 귓가에 가볍게 바람을 불었다.
“내 기억에 당신 월경이 얼마 전에 끝난 것 같은데?”
임근용이 즉시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쓸데없이 아첨하는 사람은 강도 아니면 도둑이라던데요!”
“말을 뭘 또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 사람이 이렇게 매정해서야.”
육함이 뻔뻔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귓불을 깨물었다.
“지난번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정말 오래 참았소. 지금은 아무리 해도 문제없을 거요.”
“뭘 어쩌려고요?”
임근용이 그를 막았다.
“의랑이가 지금 안에서 자고 있어요.”
최근 들어 의랑이는 점점 더 영특해지고 있어서 얼버무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육함은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말했다.
“두아한테 데리고 가라고 하시오!”
“지금 아이를 방해꾼 취급하는 거예요?”
임근용이 그를 힐끗 흘겨보며 말했다.
“두아한테 우리가 뭘 할지 선전하고 싶은가 보네요?”
육함은 순간 맥이 빠져 몹시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나가서 산책이나 좀 하는 게 어떻소? 당신이 내 방 청소를 좀 해 줄 수 있소? 아, 내 이부자리가 영 불편하더군, 당신이 가서 좀 봐 주시오.”
임근용이 손을 뻗어 그의 허리를 꼬집었다. 그녀는 두아를 불러 의랑을 살피라 한 다음 육함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육함의 서재는 바로 옆 건물이라 겨우 십 여보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밝은 달빛 아래 사방이 고요했다. 나뭇가지에 활짝 피어있는 납매화 몇 송이가 창문 밖에서 조용히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어느 집의 소년 공자가 피리를 부는 건지 피리 소리가 유유히 귓가를 맴돌았다. 임근용이 황홀해하며 감상을 말하려는데 문득 목 언저리가 근질거렸다. 육함은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임근용이 손을 들어 그의 턱을 밀며 속삭였다.
“저 피리 소리 좀 들어 봐요.”
육함이 불만스러워하며 손을 들어 그녀의 귀를 막았다.
“잘 부는 것도 아니고만? 다음 달에 내가 불어주겠소, 내가 저치보다 훨씬 더 잘 부니까.”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자화자찬도 참 잘하네요.”
“당신은 사람을 참 잘도 괴롭히는군.”
육함은 더는 그녀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 곧바로 그녀를 안아 침상에 던진 뒤 옷을 벗기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기 시작했다. 임근용은 그의 목을 감싸 안고 파도를 타는 것처럼 위아래로 격하게 오르내렸다. 계속해서 바뀌는 자세에 그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쾌락을 느꼈다. 육함이 유달리 열과 성을 다하고 있어서 임근용도 좀 더 적극적으로 장단을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한 차례가 끝나고 나자 육함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임근용을 바라보고 웃었다. 임근용은 그에게 예쁜 미소로 화답한 뒤 나른하게 몸을 뒤척이며 살짝 하품을 했다.
“너무 추워서 움직이고 싶지 않으니까 당신이 나가서 자요.”
육함은 한참 동안 말없이 누워 있다가 영 내키지 않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구시렁거리며 옷을 걸쳤다. 임근용은 그가 옷을 입고 신발까지 다 신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
“됐어요, 내가 가는 게 낫겠어요.”
육함이 약오른 눈빛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다.
“처음부터 갈 생각이었던 거 아니오?”
임근용이 아니라는 듯 말했다.
“무슨, 방금 전까지는 정말로 움직이기가 힘들었어요. 그냥 갑자기 이러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거예요…….”
육함이 그녀의 코를 꼬집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가 들수록 어린애처럼 장난만 느는군.”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 어느덧 삼년상이 끝났다. 육함이 복직할 자리를 찾으려 상경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손님이 불쑥 찾아왔다.
* * *
한설매가 지고 봄바람이 수양버들을 푸르게 물들이는 계절에 임근용은 새 집의 작은 누각에 서 있었다. 강을 따라 내려오던 오봉선 한 척이 집 앞에 있는 홍예(*虹霓: 아치형)형 돌다리를 지나 대문 앞의 부두에 멈춰서는 것이 보였다. 평상복 차림의 한 남자가 기름종이로 만든 우산을 들고 10살 남짓 되어 보이는 시종과 함께 가볍게 배에서 내리더니 그녀의 집 대문 앞에 서서 고개 들었다.
때마침 내리쬔 오후의 햇살이 살짝 치켜든 그의 얼굴을 정확히 비추고, 바람이 그의 상의 자락을 흩날렸다. 사실상 그는 아직도 꽤 젊어서 26~7세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외모는 아주 수려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외로운 기색이 어려 있었다.
임근용은 손에 들고 있던 홍매화를 떨어뜨렸다. 그녀는 옆에 있던 여지가 구시렁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재빨리 치마를 들어올리고 탁탁 발소리를 내며 누각을 뛰어 내려간 뒤 육함이 있는 서재로 달려갔다.
“민행, 민행, 빨리 가서 손님을 맞아요!”
고개를 숙인 채 편지를 쓰고 있던 육함이 이 말을 듣고 얼른 붓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었다.
“누가 왔소? 당신이 이러는 걸 보니 도씨 가문이나 임씨 가문에서 누가 왔나 보군?”
“아니요.”
임근용이 숨을 몰아쉬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햇볕이 좋길래 차 마시면서 책을 보고 바느질도 좀 할까 해서 누각에 갔었거든요. 마침 홍매화가 예쁘기에 화병에 꽂으려고 손질하고 있는데 배가 한 척 와서 우리 집 문 앞에 멈춰서더라고요. 누가 왔는지 당신이 맞춰 봐요.”
육함이 말했다.
“글쎄, 혹시 양미인가? 한동안 외출하기 힘들다고 하지 않았소?”
임근용이 그의 팔을 껴안고 웃으며 말했다.
“반 정도 맞았어요, 다시 맞춰 봐요!”
육함은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지만 기쁘면서도 또 살짝 질투가 나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무슨 천리안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모르니까 안 맞출 거요!”
임근용은 그가 협조하려 하지 않자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오상 오라버니가 왔어요!”
“그 친구였군! 그럼 얼른 마중을 나가야지.”
육함이 미소 지으며 임근용을 바라보았다.
“설마 날 따라서 대문까지 달려갈 생각이오? 당신은 빨리 가서 차랑 음식들을 준비하시오!”
임근용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러네요, 오라버니가 멀리서 왔으니 얼른 손님방을 치워 두라고 해야겠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육함이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큰소리로 말했다.
“여봐라, 몸 단장을 해야 하니 물을 좀 가져오너라!”
그는 재빨리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을 보며 몸단장을 한 뒤 빠른 걸음으로 손님을 맞이하러 나갔다.
오상은 이미 사람들의 안내를 받고 안으로 들어와 홀로 정원에 선 채 활짝 핀 매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붉은 매화가 그의 푸른 옷과 대비되어 마치 이 세상에 홀로 외로이 서 있는 것 같은 고독감을 자아냈다. 육함은 순간 꽁했던 마음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홍?”
오상이 고개를 돌리고 그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민행.”
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가 동시에 한 발 앞으로 다가갔다. 그들을 주먹을 부딪치며 똑같은 말을 했다.
“정말 오랜만이야!”
두 사람은 절로 탄식했다.
임근용은 즐겁게 식사 준비를 하다가 문득 오상이 아직 상을 치르는 중이라 육식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사람들에게 고급 채식 요리로 다시 준비하라 지시했다. 임근용이 시녀들을 데리고 음식을 들고 가니 육함은 벌써 오상과 함께 집안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고 의랑을 데리고 나와 인사를 시키고 있었다.
의랑은 절을 한 뒤 희고 통통한 두 손을 공손하게 맞잡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오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는 어디서 왔어요? 왜 한 번도 못 봤어요? 어디 살아요? 사람들이 아저씨도 배를 타고 왔다고 했어요. 나도 배 타본 적 있어요. 아주 큰 배였어요.”
육함이 참지 못하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
“버르장머리 없이!”
오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의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네 아들 성격은 대체 누굴 닮은 거냐, 원래 이렇게 아무한테나 친근하게 굴어?”
“아니에요, 오라버니가 선하게 생겨서 아이도 허물없이 구는가 봐요.”
임근용이 안으로 들어가 웃으며 오상에게 인사했다.
“오 둘째 오라버니, 오랜만이에요.”
그녀는 오상에게 그의 큰형이 어떻게 되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대놓고 묻긴 힘들어 돌려 말했다.
“식구들은 다 평안하세요?”
오상이 웃음을 머금고 말없이 그녀를 훑어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다들 잘 지내셔. 지금은 화정현에 와 있어. 거기에 우리 가문에서 운영하는 가게가 있거든. 큰형의 상처도 이제 거의 다 나아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할머니께서는……. 고향에 묻히시지 못했어.”
현재 평주와 청주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라 언제 다시 안정을 되찾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임근용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오상이 소탈하게 웃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로병사를 겪게 마련이잖아. 다른 건 괜찮은데 연세도 지극하신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그런 큰 고초를 겪으신 게 가슴이 아프네.”
임근용은 그의 말에 코가 시큰거렸지만 재빨리 표정을 숨기고 말했다.
“배고프겠어요, 일단 밥부터 먹어요, 술안주도 다 채식으로 준비했으니까 걱정 말고 천천히 이야기 나눠요. 오라버니, 기왕 왔으니 며칠 머물다 가요, 내가 방을 준비해 둘게요.”
그리고 의랑에게 말했다.
“오 백부께 작별인사 올려야지.”
의랑이 가기 싫어하며 핑계를 대려 하자 임근용이 가볍게 기침하며 아이를 흘겨보았다. 아이는 임근용의 좋지 않은 표정을 보고 얼른 태도를 바꿔 오상에게 그럴싸하게 절을 한 뒤 웃으며 말했다.
“백부, 우리 집에서 며칠 놀다 가요.”
오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쪼그려 앉아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았어, 근데 백부가 사탕을 참 좋아하거든. 의랑이가 백부한테 좀 나눠줄 수 있을까?”
의랑이 손가락을 배배 꼬며 잠시 망설이다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버지한테 물어봐요! 그건 내 맘대로 못 해요.”
사람들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슬픈 기운도 이내 흩어져 버렸다.
임근용 모자가 밖으로 나가자 육함이 오상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두 사람은 서로 헤어진 후 있었던 일들에 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은 상에 차려진 음식이 몇 번이나 바뀌고 달이 중천에 뜰 때까지 계속 술을 마셨다.
도수가 그리 높은 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많이 마시면 취하기 마련이었다. 임근용은 내심 걱정스러워 어쩔 수 없이 직접 해장국을 끓여 들고 갔다. 복도에 이르니 오상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행, 너 의랑이가 막 태어났을 때 나한테 보낸 편지 기억나?”
육함은 침묵하다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기억하지.”
오상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민행, 내가 널 비웃겠다는 건 아닌데, 가끔 보면 너도 참 소심하다니까. 너 그 편지에 썼던 말 있잖아. 쯧쯧…….”
“너 취했구나? 취했으니까 봐 주는 줄 알아.”
육함이 살짝 수치스러워하며 화를 냈다.
“네가 이유도 없이 아용에게 무슨 금장 백옥 매화 비녀인가를 선물했는데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솔직히 네가 잘못한 거잖아!”
오상이 하하 하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 친구야…….”
육함이 다소 거칠게 말했다.
“할 말 있으면 빨리 하든가! 괜히 술 취한 척하지 말고!”
오상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건 말이야……. 네가 아용이랑 약혼하고 나서 항간에 갑자기 아용이 장사를 하니 어쩌니 저쩌니 하며 소문이 돌았던 거 너도 기억하지, 그 바람에 너희가 어쩔 수 없이 혼인을 앞당겼었잖아? 그거 사실 나 때문이야. 그때 어떤 사람이 누구누구가 얼마나 대단하네 하며 칭찬을 해대기에 내가 분한 마음에 한 마디 하려다가 근용이가 한 거라고 말을 해 버렸거든. 그땐 근용이가 재능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될 테니까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지. 근데 그 일이 사람들 입을 통해 그런 식으로 와전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나중에 후회가 되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근용이한테 가서 사과할 용기가 도무지 안 나더라고.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사촌 동생이 혼인 선물을 하는 틈을 타서 근용이한테 그 비녀를 선물한 거야……. 한 마디 거짓말을 무마하기 위해 열 마디 거짓말을 하게 될 줄 알았나…….”
그랬던 거였군. 임근용은 침착하게 듣고 있는데 반해 두아는 이를 갈며 화를 냈다.
“오 이공자는 도대체가 생각이란 게 없는 사람이네요!”
임근용이 웃으며 쌍전을 부른 다음 해장국을 가져다주고 그녀의 말을 전하라 지시했다.
“도수가 높은 술은 아니지만 어쨌든 많이 마시면 취하니까 두 어르신들께서도 할 이야기 다 하셨으면 쓸데없는 소린 그만 하고 얼른 들어가서 쉬시라고 해.”
* * *
방으로 돌아온 임근용은 육함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씻고 침상에 누웠다.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밖에서 쌍전이 육함에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고 임근용은 얼른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자는 거요?”
침상이 살짝 가라앉는가 싶더니 육함이 그녀의 옆에 누우며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임근용이 담담하게 말했다.
“가서 씻고 와요.”
육함이 그녀의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
“씻었소. 씻었으니 이리 침상에 들어왔지. 못 믿겠으면 냄새 맡아 보시오? 당신이 보낸 해장국을 받고 바로 헤어졌소.”
“응.”
임근용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육함은 어둠 속에서 그녀의 맞은편에 누워 혼잣말을 했다.
“좀 전까지 오상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소.”
“으흥.”
임근용이 별로 흥미 없다는 듯 콧소리를 냈다.
육함의 손이 짓궂게 그녀의 옷자락 속으로 파고들었다.
“오상이 화정현 쪽에서 한 아가씨를 만났는데, 그 지방에서 명망 높은 집안의 아가씨라더군. 집안에 말씀을 드리고 납채까지 보냈다는데 불행히도 그런 일이 생겼으니, 이제는 탈상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거요.”
그가 잠시 생각해 보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그 아가씨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소.”
“잘 됐네요.”
임근용은 이 말을 듣고 진심으로 기뻐하며 육함의 손을 저지했다.
“해장국을 가지고 갈 때 무슨 백옥 매화 비녀가 어쩌고 하는 것 같던데요?
“응.”
육함이 대충 얼버무리며 말을 돌렸다.
“사람을 보내 할머니를 모시고 와야 할 것 같소.”
이미 지나간 일을 굳이 들출 필요는 없었다. 임근용도 그와 말씨름을 하고 싶진 않아서 그의 뜻에 따랐다.
“알았어요,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어머님께서 할머님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둘째 숙부께서 편지도 한 통 안 하시니 할머님께서 거기서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다고요. 여기서 모시고 싶으면 가서 모시고 와요. 근데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예요?”
그녀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데 성공한 육함은 티 내지 않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나지막이 말했다.
“오상이 그러는데 며칠 전에 육경이 셋째 제수씨랑 역랑이를 데리고 화정현으로 이사를 왔다더군. 지금 직접 해운 쪽 일을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소.”
임근용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갑자기 왜요? 잘 지내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차남가는 늘 하나로 똘똘 뭉쳐 있지 않았던가.
육함은 그 틈을 타 그녀에게 더 달라붙으며 계속 손을 움직였다.
“할아버지께서 따로 다섯째한테 남겨 주셨던 가게 기억하오? 그 가게가 화근이 됐더군.”
알고 보니 육륜이 편지로 태명부에 있는 그 가게를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육건중은 주려 하지 않았고, 이에 육륜도 억지로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다른 데서 생겨 육소와 육경 형제가 이 가게를 두고 다투기 시작했다. 차남가는 이미 가산을 많이 잃은 데다 지금 있는 가게도 장사가 잘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가진 가게들 중 제일 돈을 많이 버는 가게가 바로 거기였기 때문에 모두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육소가 육경을 향해 친동생을 독살해 죽이려 했다고 비방하며 이렇게 악독한 인간과는 도저히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육경도 화를 내며 재산을 분할해달라고 난리를 피웠고 소란은 두 달이 넘게 지속됐다. 려씨까지 합세해 예전 일까지 들먹이며 난리를 피웠고, 송씨와 육건중이 말리려 했지만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다. 결국 육 노부인이 나서서 계속 이러다가는 형제간에 원수가 될 것 같으니 그냥 재산을 분할해 주라 지시했다. 육건중은 어쩔 수 없이 재산을 분할해 주었고 이 일로 화병을 얻어 지금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또 재산을 분할해 주었음에도 형제는 결국 원수가 되고 말았다. 애초에 남은 가산도 얼마 없었던 차남가는 이렇게 또 한 번 가산을 나눠 이제는 정말로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초라해져 버렸다.
차남가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른 건 임근용과는 무관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사실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임근용이 말했다.
“내일 아침 일찍 할머니를 모시고 올 사람들을 파견할게요.”
그녀는 육 노부인과 임옥진이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창살을 뚫고 들어온 달빛이 방 안의 장식품들을 옅은 은색으로 물들였다. 육함은 한숨을 내쉬고 임근용을 품에 안으며 그녀의 미간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께서 관직에 복귀하게 되면 어디로 가게 되든 당신과 의랑이를 데리고 가고, 가서 아이도 몇 명 더 낳으라 하셨소. 이 집은 어머니께서 돌보실 테니 우리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고 자주 찾아와 살피는 정도만 하면 될 거요.”
임근용이 손을 뻗어 육함을 힘껏 끌어안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붙이며 가볍게 웃었다.
“부군께선 지금 집안 상황에 만족하시나요? 소첩은 이대로도 참 괜찮은 것 같아요. 전란이 평정되고 평주로 돌아가면 우리 가문은 틀림없이 번창하게 될 거예요.”
“정말 만족스럽소.”
육함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말로 지금 집안의 상황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와 임근용은 생사고락을 거치며 더는 서로에게 떳떳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믿음이 생겼다. 또 육건신이 병이 나는 바람에 모든 희망과 의지처가 사라진 임옥진도 크게 달라졌다. 임옥진은 비록 두 사람을 친자식처럼 친근하고 다정하게 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에게 예의를 갖췄다. 그녀는 의랑을 몹시 아꼈고 여씨는 여전히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참아 주려 노력하며 표정 관리도 하고 듣기 싫은 말은 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평화롭고 안정적이었다.
육건립의 병세도 크게 호전된 것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안해 보이고 혈색도 많이 좋아진 상태였다. 육선은 열심히 공부하며 집안일도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고향을 떠난 슬픔 때문인지 여씨는 여전히 자주 울며 엄살을 부렸지만 그래도 제멋대로 굴지는 않았다. 그녀는 가끔 임옥진을 추켜 세워 주기까지 했고 의랑에게도 정말 잘했다.
육함이 중간에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그들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 할 수 있었다. 서로 더 친해지려 노력해야지 소원해지거나 적대적으로 굴면 안 되는 사이였다. 더구나 이렇게 타향에 와 있으니 두 집안이 서로 더욱더 의지하며 살아야 했다. 자기 본분을 다하며 말썽을 부리지 않고 시비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가끔 티격태격 하더라도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허물없는 사이까지 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기만 하면 충분했다.
옛 기억이 떠올라 육함은 가슴이 복받쳐 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품 안에 있는 임근용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말했다.
“아용, 우리 앞으로 같이 행복하게 삽시다.”
임근용이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꼭 이요!”
다시 살아난 것에 부끄럽지 않도록.
육함이 미소 지었다.
“의랑이한테 동생이나 하나 만들어 줄까!”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두 사람의 얼굴은 평온하고 고요했다.
지금까지 을 애독해 주신 독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