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60
60화. 물 가까이 (1)
철 마마가 또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온천물은 청량사에서 흘러나와서 청량산을 돌아 청량강을 따라 계속 흘러내려 가요. 저 밑에서 일 리하고 반쯤 더 가면 제(诸) 선생댁이에요. 그 노선생께선 덕망이 높아 학당을 지어 학비를 받지 않고 가난한 집 자제들에게 글씨와 공부를 가르치고 계세요. 저 같은 사람을 만나도 겸허한 태도로 따뜻하게 대해 주시는 분이에요. 그 집 노부인도 선량한 분이셔서 이 청량사의 노비구니에게 자주 보시를 하세요.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부인께서 혼수로 가지고 온 이 땅은 배산임수에다 인재도 많이 나니 그야말로 보물 밭이지요…….”
“제 선생? 제몽악(诸梦萼) 선생 말하는 거야?”
임근용의 눈이 다시 한 번 반짝였다. 그는 평주에서 아주 명망 있는 대학자가 아니던가? 어쩜 또 이렇게 이웃이란 말인가? 임근용은 까치발을 들고 서쪽을 바라보며 뭐라도 보이길 바랐다. 하지만 청량사 뒤쪽의 그다지 높지 않은 작은 산이 산 저쪽의 풍경을 완전히 가려 버려 그저 저 멀리 물결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가씨, 제선생께서 청량산에 큰 복숭아나무와 배나무를 심었어요. 봄에 꽃이 필 때가 되면 하얀 배꽃잎과 분홍색 복숭아꽃잎이 강물을 따라 계속 흘러내려 가거든요. 그러면 물속에 있던 물고기가 꽃잎을 먹으려 머리를 내미는데 그때 그물을 치고 버드나무 가지로 물을 때리면 물고기가 놀라서 사방으로 도망을 쳐요. 그중에 운 나쁜 놈이 그물에 걸려 물고기 튀김이 되는 거예요. 정말 재미 있고 맛도 있어요! 아가씨랑 부인은 봄까지 머무를 건가요?”
누군가가 빠르지만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임근용이 뒤돌아보니 낡은 분홍색 치마를 입고 머리를 뿔처럼 둥글게 빗어 올린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소녀가 보였다. 그녀는 철 마마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자신을 보며 웃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달걀형 얼굴에 보조개가 유난히 뚜렷했다.
“이 계집애야! 누가 너더러 쓸데없는 소릴 하랬어? 아가씨 앞에서 버르장머리 없이.”
철 마마는 입으로는 혼을 냈지만 눈에는 웃음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가씨 그냥 웃어넘기세요. 이 아이는 저희 셋째 딸인데 아직 어려서 그런지 버릇이 없네요.”
“괜찮아, 아주 귀여워.”
임근용이 그 아이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름이 뭐야?”
아이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아가씨, 나는 묘아(苗丫)예요.”
계원이 “피식” 하고 웃었다.
“널 칭할 때는 노비라고 해야지, 네가 아가씨랑 나, 너 할 사이니?”
임근용은 시선을 돌리다 그 아이의 발에 눈길이 멈췄다. 그녀는 아이가 보통 사람의 큰 발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내심 웃었다.
묘아는 그때서야 얼굴을 붉히며 발을 치마 밑으로 숨겼다. 하지만 임근용의 온화하게 웃는 얼굴을 보고 자신을 탓할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채고는 계원에게 혀를 내밀어 놀린 후 희희낙락하며 큰 발을 들어 앞으로 쏜살같이 뛰어갔다.
“아가씨 내가 길을 안내해드릴게요.”
그녀는 역시 방금 전처럼 거침없이 ‘나’라고 했다
임근용은 문득 자신이 이곳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뒤돌아보며 쾌활하게 철 마마에게 물었다.
“마마, 여기 오는 길에 어떤 강을 지나왔는데 그 강가에 염지가 있었어. 그건 어느 집 땅이야?”
철 마마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가 묻는 곳이 어디냐는 반응을 보이며 웃었다.
“잘 모르겠어요. 그 땅은 계속 그렇게 황무지였어서 아마도 주인이 없지 않을까요?”
임근용이 눈살을 찌푸렸다.
“주인이 없다고?”
그녀는 주인 없는 황무지를 개간하면 그 땅을 가질 수 있다는 법률이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 땅은 세금도 매우 낮게 책정되고 심지어 어떤 곳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법일지 몰라도, 그녀에게는 오히려 더 까다로웠다. 그녀가 과연 무슨 핑계를 대 도씨의 마음을 움직여 그 황무지를 개간할 일손을 배치한단 말인가? 게다가 그 염분 많은 불모지를 또 어떤 방법으로 개간한단 말인가!
철 마마도 웃으며 말했다.
“그런 땅을 누가 원하겠어요.”
임근용이 웃으며 그녀에게 부탁했다.
“나랑 외숙부가 내기를 하나 했거든. 미안하지만 철 마마가 나 대신 거기가 누구 땅인지 좀 알아봐 줘. 자세히 알아봐 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또 말했다.
“이 근처에 그런 땅이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르겠네. 그것도 같이 좀 알아봐 줘.”
철 마마는 임근용과 도순흠이 무슨 내기를 했는지 궁금했지만 자세히 물어볼 배짱은 없어서 그저 알겠다고 하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임근용은 그녀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며 일을 무성의하게 얼버무릴까 봐 재차 신신당부했다.
* * *
일행이 저택으로 돌아오니 창 대부인이 도씨와 함께 앉아서 차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사람도 낯설고 땅도 낯설어서 하루하루 사는 게 참 쉽지 않아요. 그래도 작년에 댁에서 도와주신 덕에 안정이 되어 저희 장남이 장가를 들고 큰 손자도 낳았답니다. 저희 둘째는 이제 거의 스무 살이 다 되어 가는데 여전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네요. 준비해야되는 납채가 너무 많더라고요. 우리 셋째도 혼담을 진행해야 하는데……. 거기다 배 속에 또 하나가 생겨서 바깥양반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도씨는 깊은 동정을 표하며 말했다.
“다 잘 될 거에요.”
임근용과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창 대부인은 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녀는 하인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아이가 넷째 아가씨인가요? 예쁘게도 생겼네요.”
도씨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이가 한참 아랫사람인데 뭘 그리 예의를 차리세요, 어서 앉으세요.”
창 대부인이 환하게 웃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백모님께 인사 올립니다.”
임근용은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며 인사했다. 그녀는 창 대부인이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도씨 뒤에 가서 서서 창 대부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부인은 약 서른 살쯤 되었고, 참하게 생긴 편이었지만 생김새는 그저 그랬다. 그녀는 틀어 올린 머리에 금비녀 하나와 진주꽃 두 개를 꽂고, 옅은 파란색 비단 배자(*褙子: 추울 때 위에 덧입는, 주머니나 소매가 없는 옷)에 주름진 녹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유달리 큰 배였다. 나이든 시녀 하나와 겨우 여덟아홉 살짜리 어린 시녀가 그녀의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 나이든 시녀의 낡은 상의와 치마에는 아직도 구겨진 흔적이 남아 있었고 어린 시녀는 멍청한 얼굴로 과일 먹는 것에만 정신이 팔렸다.
임근용은 이 백부 집안의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사는 게 녹록치 않다는 걸 한눈에 파악했다.
창 대부인은 화제를 바꾸더니 도씨에게 황송하다는 듯 말했다.
“요즘 몸이 무겁고 날씨도 추워서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삼숙과 삼부인이 오지 않았으면 이렇게 외출할 기회도 없었겠네요.”
도씨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한가할 때 많이 움직여두는 게 좋아요. 산파는 준비됐나요?”
창 대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일찌감치 준비했지요, 얼마 안 있으면 이쪽에다가도 탕병(*汤饼: 탕면)을 대접해야겠네요.”
본조에는 아이가 태어나고 삼 일째 되는 날 친척과 친구들이 쌀, 조, 숯, 식초 등을 선물로 보내 출산을 축하하고 주인은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는 풍습이 있었다. 주로 대접하는 음식이 탕병이라 이를 탕병회(*汤饼会: 아이를 낳은 지 사흘 후에 벌이는 축하잔치)라 불렀고 탕병을 대접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었다.
도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이를 낳는 건 큰 경사인데 당연히 가서 축하를 해야지요.”
도씨는 이 말을 하다가 일찍 떠나보낸 그 불쌍한 아이가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자책하며 울화가 치밀었다.
공 마마는 금세 도씨의 마음이 불편해졌다는 걸 알아채고 춘아에게 눈짓해 찻물을 다시 끓였다.
일반적으로 손님이 오면 차를 대접하는데 이 찻물을 다시 끓이는 건 이만 가라는 뜻이었다.
창 대부인이 눈치를 채고 급히 임창에게 사람을 보내 이만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때마침 그쪽에서도 문병을 마치고 막 나오던 참이었다.
도씨는 얼른 사람을 시켜 건과 한 상자를 담아 창 대부인에게 답례했다. 임근용이 나서서 창 대부인을 부축하고 문 앞까지 배웅했다. 그녀의 눈에 푸른 비단 상의를 입고 약간 살이 찐 한 남자가 들어왔다. 희끗희끗한 귀밑머리에 눈이 가늘고 코가 높은 얼굴을 한 그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그가 임창이라는 것을 듣고 또 인사를 했다. 그렇게 손님을 배웅하고 서둘러 돌아와 다시 침상에 누워 있는 도씨에게 물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도씨는 마음이 몹시 우울하고 초조한 상태였다. 그녀는 임근용의 이 말랑말랑하고 걱정이 가득한 물음에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져 정신을 차리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우리 귀염둥이가 아까 참 잘했어. 가난한 친척이라도 예의 바르게 대해야 돼. 사람이란 언제 남한테 부탁할 일이 생길지 몰라. 그러니 선연을 많이 맺어두는 게 좋단다. 아가, 오늘 아침에는 뭘 하고 놀았니?”
임근용은 도씨의 기분을 좋게 해 주려고 손가락까지 꼽으며 풀뿌리 이야기부터 시작해 청량사의 온천 이야기, 그리고 묘아가 말한 도화어(桃花鱼) 잡는 이야기까지 한참을 재잘거렸다.
도씨는 턱을 괴고 조용히 들으면서 때때로 사랑하는 딸의 얼굴을 귀엽다는 듯이 꼬집었다.
“너 아주 즐거워 보이는구나. 어미는 네가 이곳이 쓸쓸하다고 싫어할까 봐 걱정했는데 네가 이리 개구쟁이인 줄은 미처 몰랐어. 오히려 물 만난 물고기 같네.”
도씨는 임근용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식에게까지 부담을 주었다는 죄책감을 많이 덜어낼 수 있었다.
임근용이 눈을 반짝이며 도씨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도씨의 팔을 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전 어머니가 이렇게 웃으시는 게 정말 좋아요. 어머니가 오랫동안 웃지 않아서 얼마 전까지 저와 언니가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이 어린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예민하고 총명한 아이가 안타깝게도 태를 잘못 타고나 자기와 같은 부모를 만났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육운이니 임근지, 임근주, 임근옥 같은 것들을 어디 이 아이한테 갖다 댈 수나 있었겠는가?! 도씨는 임근용의 검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아이가 자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워 수많은 말들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말로는 뭐라 표현할 수 없어 결국 가볍게 한숨만 내쉬고 꿋꿋한 말투로 말했다.
“아가, 너무 걱정하지 마. 이 어미가 얼른 건강해질게.”
‘너희들이 어른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가면 이 어미는 죽어서도 눈을 못 감을 것 같구나.’
임근용은 도씨의 품에 엎드려 그녀의 몸에서 나는 약 냄새를 맡으며 무한한 평온함을 느꼈다.
“어머니, 내일 청량사에 가보시는 게 어때요? 거기에 아주 맑은 온천이 있다고 들었어요.”
도씨는 요 며칠 수 의원이 처방한 약을 계속 먹어 하혈이 멈추기는 했지만 기력은 없는 상태였다. 지금 청량사와 온천을 유람할 마음의 여유와 기력이 어디 있겠는가? 그녀는 곧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어미는 아직 기력이 달리는구나. 우리 귀염둥이가 가고 싶으면 철 마마한테 부탁해서 시녀 몇 명을 데리고 향초와 은전을 챙겨서 갔다 오렴.”
임근용은 허락을 받고 뛸 듯이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