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61
61화. 물 가까이 (2)
저녁 식사 후에 임근용은 기회를 봐서 도순흠을 찾아갔다. 그녀는 예전에 언급했던 금과 은을 많이 사서 이듬해까지 남겨 두었다 파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외숙부는 성격이 좋아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지 막지는 않았지만 그저 웃으며 듣기만 할 뿐 마음에 두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임근용에게 그녀 자신과 도씨를 잘 보살피라고 당부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편지를 써서 청주로 보내라고 했다. 그러더니 또 임근용의 정수리를 두드리며 웃었다.
“아가, 조급해할 필요 없어. 때가 되면 이 외숙부가 섭섭지 않게 첨장(*添妆: 결혼할 때 신부에게 재물을 선물하는 것)을 할게!”
그는 원래 후한 성격인 데다 친여동생이 도씨 밖에 없었기 때문에 임근용에게 첨장을 한다면 적지 않게 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전생에서 이런 약속을 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수백의 금을 주었었다. 단지 그녀 자신이 그것들을 지켜내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임근용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운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어떻게든 오고, 운명에 없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단 말인가! 그녀는 도씨 가문이 당분간 이 방법으로 그녀와 함께 돈을 벌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나중을 기약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부끄러워하는 척하며 도순흠이 어린 외생질녀의 욕심을 놀린 것에 성공한 기쁨을 맛보게 해 주었다.
도순흠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임근용이 작은 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외숙부, 우리 아버지 병은 무슨 병이에요? 큰 병은 아니지요?”
도순흠은 눈꺼풀을 치켜들더니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그냥 작은 병이니 걱정할 것 없어. 수 의원은 의술이 아주 뛰어나서 평주의 명의에도 뒤지지 않는단다. 외숙부가 그 사람한테 은혜를 베풀어 준 적이 있어서 그 사람도 아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돌볼 거야. 네 아버지는 물론이고 네 어머니도 이번에 몸조리를 잘 하면 앞으로는 병이 나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질 거란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어떤 말들을 감추지만 사실 주의 깊게 잘 들어보면 어느 정도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즉, 이 병은 임 삼노야를 어떻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큰 변화를 일으킬 정도도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 수 의원은 아주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도 담겨 있었다. 임근용은 그때서야 정말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녀는 턱을 괴고 온 정신을 집중해 전생의 일을 회상했다. 그때 임 삼노야가 병이 난 적이 있었나? 아픈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날마다 외출해서 도 외숙부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자주 어울렸던 것 같았다. 어쨌든 삼남가 여자들의 배가 더 이상 불러오지만 않으면 뭐든 다 괜찮았다.
* * *
어느새 이틀이 지났다. 임 삼노야는 탕약을 먹은 뒤 무료함을 참지 못하고 철괴를 불러 근처에 무슨 재미있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철괴가 그에게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임 삼노야는 쉬라는 권고를 무시하고 기어코 도순흠과 함께 청량사의 온천에 가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도순흠도 별로 토를 달지 않고 그저 사람을 시켜 임근용을 불렀다.
“이틀 전에 네가 어머니한테 청량사에 가 보고 싶다고 했다던데, 우리랑 같이 갈래?”
임근용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클 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외출해 볼 기회가 없었어요. 어렸을 때 정월 대보름 꽃등 구경도 외숙부가 데려가셨었잖아요.”
이 말은 가겠다는 뜻이었다.
임 삼노야는 그녀의 말을 듣고 짜증이 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차마 딸을 거절하지는 못하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 아비가 바쁘니 가려면 빨리 가서 짐을 꾸리거라. 갈 길이 멀고 또 걸어 가야하니 나중에 발이 아파서 못 걷겠다고 불평하지 말거라.”
임근용은 굳이 그의 ‘깊은 속내’를 까발리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귀엽게 인사를 한 뒤 손을 흔들어 잡일을 하는 나이든 시녀를 불렀다.
“가서 묘아를 찾아와. 나랑 같이 청량사에 놀러 가자고 해.”
도순흠은 침착한 눈빛으로 임 삼노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임 삼노야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칠함 속의 말린 과일을 만지작거리며 그 때가 되어 자신이 일을 편하게 보려면 어떤 핑계를 대서 임근용을 도순흠에게 맡겨야 할지 마음속으로 생각해보고 있었다. 심지어 혹시 젊고 예쁜 비구니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그는 먹지는 못해도 눈이라도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 * *
저택에서 청량사까지는 삼, 사 리 정도에 불과했다. 임근용은 이미 발을 풀어 놓아 전혀 피곤하거나 아프지 않았고 오히려 묘아에게 이런 저런 것들을 물으며 흥미로워했다. 그녀는 때때로 논두렁에서 풀을 뽑아 묘아에게 이건 뭐고 저건 뭐냐며 질문을 해댔다. 또 도순흠과 임 삼노야가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몰래 묘아에게 곡씩 낱알을 가져오라 한 뒤 밭에 뿌렸다. 그러고 나서 먹이를 먹으러 온 참새 떼를 놀라게 하고 눈을 휘며 웃었다.
임 삼노야와 도순흠은 주변에 농민이 하나도 없고 또 그녀의 얼굴이 모자에 꽁꽁 가려져 있어 그런 그녀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일행이 절에 도착하자 얼굴이 나무껍질처럼 늙은 두 비구니가 염불을 하며 그들을 맞이했다. 도순흠은 엄숙한 표정으로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임근용은 다시 태어난 이후 귀신의 존재를 믿게 된지라 마음을 가다듬고 도순흠을 따라 흉내를 냈다.
임 삼노야는 깜짝 놀랐다. 그가 오기 전에 가졌던 흥분과 기대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젊고 예쁜 비구니를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결국 이 놀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는 도순흠이 여승과 인사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별로 관심 없는 척하며 물었다.
“이 절에 온천이 있다던데…….”
이 절의 여승의 이름은 지청(智清)이었는데 그가 저쪽 마을 저택의 남자 주인인 것을 알고 소홀하게 대접할 수 없다는 듯이 급하게 다른 여승인 지평(智平)을 불렀다.
“사매가 임 시주를 뒤쪽 온천으로 안내해드리게.”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도순흠과 임근용에게 직접 차를 따라 주었다.
“절이 누추하고 저희 두 자매밖에 없는지라 혹여 대접이 소홀하더라도 양해해 주십시오.”
임 삼노야는 아직까지도 두 늙은 비구니를 모시는 젊은 비구니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손님이 뒤에서 즐기려면 바로 그런 젊은 비구니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 둘밖에 없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실망한 건 둘째 치고 저런 쭈글쭈글한 늙은 비구니를 계속 봐야 한다니……. 그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됐네, 자네들도 바쁠 테니 나 혼자 알아서 돌아다녀 보겠네.”
지청이 푸대접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약간 난처해하는 기색을 보이자 도순흠은 얼른 덧붙였다.
“편하게 하시게 두게. 난 오늘 부처님께 누이동생과 안사람의 병이 하루 빨리 좋아져 건강해지고 아이들이 평생 동안 행복하고 근심 없이 살도록 해달라고 빌기 위해서 온 거라네…….”
지청과 지평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지금 임 삼노야를 신경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녀들은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도순흠 옆에 둘러앉아 한참 동안 그를 치켜세웠다. 그녀들은 그 소원을 이 청량사에다 모셔야 하고 보시를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고 필사적으로 권유했다.
임근용은 옆에서 듣고 있다가 콧날이 시큰해졌다. 그녀가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것들이 효과가 있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자신의 가족들이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묵묵히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당시 비적의 습격으로 흩어진 도씨와 그 주변 사람들조차 그녀를 위해 이렇게 밤낮으로 걱정하며 복을 빌고 있지 않은가?
임근용이 잠시 넋을 놓고 있는 사이에 철괴가 들어와 웃으며 말했다.
“삼노야께서 이 온천이 피로를 풀 수 있는 말을 들으셨다며 몸을 좀 담그고 싶어 하시는데, 주지, 언제쯤 들어갈 수 있습니까?”
지청이 이를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 온천은 평소에 거의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이라 어제 청소를 했습니다. 물을 다시 새로 채우긴 했는데 혹시라도 귀한 시주께서 온천이 더럽다고 싫어하시진 않을까 걱정입니다…….”
철괴가 도순흠을 한 번 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싫어하시긴요.”
임근용은 도순흠이 두 늙은 비구니와 대전의 대불상을 금으로 새로 만드는 일에 대해 의논하는 틈을 타 묘아를 불러 물었다.
“너 여기 온천탕 본 적 있어? 크기가 커? 수심은 어때?”
묘아가 손가락을 깨물며 말했다.
“당연히 봤죠. 청마석을 쌓아서 만들었어요. 크기는 딱 적당하고 물도 얕지는 않아요. 이렇게 추운 날 들어가서 목욕하면 정말 천국이 따로 없어요. 삼노야께서 안에 있는 것만 아니면 아가씨를 데리고 가서 재미있게 놀았을 텐데 아쉽네요. 난 물속에서 눈감고 벽을 짚으면 고개를 한 번도 안 들고 한 바퀴 돌 수 있어요.”
이 말에 임근용은 구미가 당겨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다음에 또 올까? 내가 너희를 데리고 올게.”
“좋지요.”
묘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다정하게 임근용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가씨, 우리 저쪽에서 참새 먹이 줄까요? 아직 주머니에 곡식 낱알이 많이 남았어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선행이잖아요.”
묘아의 손끝에는 아직도 침이 묻어 있었고 손톱 밑도 깨끗하지 않아 까만 때가 끼어 있었다. 임근용은 잠시 망설였지만 미소를 지으며 묘아의 손을 잡았다. 묘아가 갑자기 그녀를 잡아당기더니 대전 뒤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지는 얼떨떨해하면서도 내심 좋아하는 게 분명한 임근용의 모습을 보며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계원은 눈에서 불을 뿜으며 낮은 목소리로 화를 냈다.
“새파랗게 어린 계집애가 또 아가씨 앞에서 못된 장난질을 하고 있네. 노비 주제에 말끝마다 나, 나 거리고.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저 버릇을 뜯어고치든가 해야지…….”
여지가 우습다는 듯이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 낮은 목소리로 타일렀다.
“아가씨는 우리 둘한테 속한 분이 아니야, 우리 둘이야말로 아가씨한테 속한 사람이지.”
계원이 입술을 꽉 깨물며 눈시울을 붉혔다.
“여지 언니, 우리 어머니가 없다고 바로 이렇게 날 괴롭히는 건가요.”
여지가 항복한다는 듯이 얼른 손을 들더니 매몰찬 말투로 내던지듯 말했다.
“아니, 우리가 지금 임씨 가문 저택에 있는 게 아니란 말을 하는 거야.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다 철 마마의 도움을 받아야 해. 네가 네 마음대로 하는 건 상관없는데 나까지 너랑 한통속인 것처럼 말하고 다니지는 마.”
계원이 발을 동동 구르더니 이를 악물고 임근용을 쫓아갔다.
“아가씨 좀 천천히 가세요, 같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