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65
65화. 슬픔과 절망
눈보라가 몰아쳐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탓에 마부는 빨리 달리지 못했다. 도씨와 임근용은 서로 다정하게 기대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도씨는 피곤함에 나른해하고 있다가 밖에서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 철괴가 밖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부인, 도착했습니다.”
이윽고 마차가 그다지 크지 않은 정원 입구에 멈추자 곧 우산을 쓰고 초롱을 든 누군가가 마중을 나왔다.
“제수씨,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이런 날씨에 여기까지 오게 하고 자꾸 폐만 끼치는군요…….”
임창은 양털로 만든 옷을 입고 추위에 목과 손을 움츠린 채 도씨에게 인사했다. 그는 도씨 옆에 서 있는 임근용을 보고 조금 놀란 듯했다.
도씨는 임근용을 힐끗 보고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아이가 혼자 집에 있는 걸 무서워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아주버님께서 이 아이와 시녀들이 있을 만한 따뜻한 곳을 좀 찾아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산삼 한 뿌리를 가지고 왔는데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산모는 어디 있습니까?”
“고맙습니다, 제수씨, 이쪽으로 오십시오.”
임창은 여러 번 감사 인사를 하고 도씨의 뒤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후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처마 밑에 서 있는 젊은 부인을 대충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넷째 조카를 네 방에 데려다 불을 쬐게 해 줘라. 대접을 소홀히 하지 말고.”
“내가 동생한테는 새언니뻘 되겠네.”
그 젊은 부인이 얼른 다가와 임근용에게 인사를 했다.
“넷째 아가씨, 시녀들을 데리고 이쪽으로 와요.”
임근용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시어머니가 난산인 상황이라 며느리와 주변 사람들은 당연히 가까이에서 시중을 들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복도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하인이나 시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임창 가문의 맏며느리 마씨(马氏)일 줄이야.
마씨는 호리호리하고 키가 컸으며 피부는 하얗고 얼굴은 긴 편이었다. 입은 좀 큰 편이었고 광대뼈가 살짝 높아 똑똑하고 유능해 보였다. 임근용은 그녀가 임창 백부나 창 대부인처럼 외지 말투를 쓰지 않는 걸 보고 아마 이곳 출신일 거라고 추측했다.
“새언니는 이 동네 사람인가요?”
“응.”
마씨가 말했다.
“우리 친정은 여기서 50리 떨어진 좌각촌(座脚村)이에요.”
임근용은 집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마음이 불안해졌다. 임창 백부의 집이 별로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인의 고통에 찬 신음 같은 건 전혀 들리지 않았고 주위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마씨의 방에는 20대 중반 정도의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반 정도 임창을 닮은 그는 코가 높고 눈이 가늘었다. 그는 품에 한 살 안팎의 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한창 웃는 얼굴로 아기와 놀아 주는 중이었다. 마씨가 안으로 들어가며 그에게 눈짓했다.
“이쪽은 셋째 숙모님 댁의 넷째 여동생이에요.”
그 젊은 남자는 급히 아이를 작은 침상에 내려놓고 일어나 임근용을 향해 인사를 건네고 밖으로 나갔다.
“집이 좁아서 발 디딜 틈이 마땅치 않아 영 부끄럽네요.”
마씨는 의자를 가져와 임근용을 앉히고 몸을 돌려 침상에서 작은 이불을 가져다 아이를 감싸 안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빵떡아, 빵떡아, 얼른 와서 아기 좀 데려가라!”
“예, 가요.”
이 소리와 함께 그날 창 대부인을 따라와 과일 먹는 데만 몰두했던 일곱, 여덟 살쯤 된 시녀가 급하게 들어왔다. 임근용이 그녀에게 눈인사를 했지만 그녀는 허겁지겁 달려가더니 아이를 안고 나가 버렸다.
임근용은 이것이 자신을 위해 방을 비워주려는 것임을 알고 미안해하며 말했다.
“불편하게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전 아기를 좋아해요. 꼭 안으면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한데요.”
“불편하긴요. 옆방도 따뜻하고 괜찮아요.”
마씨는 숯 화로를 임근용과 여지 앞으로 밀어 주고 웃으며 말했다.
“넷째 아가씨가 모처럼 이렇게 왔으니 잘 대접해줘야 하는데 하필 집안에 이런 일이 있어서 어쩔 수가 없네요. 여기서 몸 녹이고 있어요. 가서 차를 좀 끓여 올게요.”
임근용은 마음이 불편해서 얼른 말했다.
“아니에요. 새언니도 바쁘실 텐데 저까지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마씨는 재빠르게 문발을 치우고 나가더니 확고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서 쓰나요.”
임근용과 여지는 그제야 비로소 방을 좀 훑어볼 틈이 생겼다.
* * *
비록 방이 넓지는 않았지만 아직 새로 지은 건물 티가 났다. 임근용은 두 칸 안으로 들어와 있었는데 그녀가 앉아 있는 곳은 바깥방이었다. 벽에 붙어있는 책장에는 낡은 책 몇 권이 드문드문 꽂혀 있었고 책장 옆에는 자물쇠를 채운 큰 상자 몇 개와 궤짝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노란색 희자(*喜字: 결혼이나 약혼 등 경사스런 날에 붙이는 경사를 나타내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또 긴 탁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위에는 꽃병, 향로 등이 놓여 있었고 주변에 6면에 옻칠을 한 의자가 몇 개 있었다. 방 안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있어야 할 것은 다 있었지만, 가구의 목재나 수공을 보면 전부 지극히 평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씨가 황동 주전자를 들고 들어왔다.
“정말 미안해요. 집에 좋은 차가 없어요. 이걸로 몸이나 따뜻하게 녹여요.”
그녀는 임근용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주고 볶은 씨 한 접시를 내놓았다. 그녀가 한두 마디 말을 건네고 있는데 누군가 밖에서 창문을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마씨는 벌떡 일어나더니 허둥대며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 있나 봐요. 넷째 아가씨는 여기 앉아서 쉬고 있어요. 피곤하면 침상에 누워도 되고요. 새로 깐 이불이라 깨끗해요.”
“바쁘실 텐데 신경 쓰지 마시고 어서 가 보세요.”
임근용은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 여지에게 건네주었다.
“한밤중에 날 따라오느라 너도 찬바람을 쐬고 고생했지. 얼른 마시고 몸 좀 녹여. 의자 가져와서 앉아.”
“아가씨, 무슨 말씀이세요. 아가씨와 부인께서 이렇게 걸음을 하시는데 노비가 어찌 모른 척하고 있겠어요?”
여지는 임근용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찻잔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그녀는 몸을 숯 화로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인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집안이 아주 조용하네요.”
보아하니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녀 혼자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임근용은 여지의 손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주인과 노비 두 사람은 숯 화로를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갑자기 바깥에서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춘아가 창백한 얼굴로 들어와 말했다.
“틀렸어요, 부인께서 아가씨는 일단 여기서 기다리라 하셨어요. 괜히 나가서 사람들과 마주치지 마세요.”
생사의 갈림길에 한 발을 걸치고 있던 창 대부인은 결국 되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 임근용은 잠시 침묵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는?”
춘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애인데 몸이 좀 허약하다고 하네요.”
수 의원이 도착했을 때 창 대부인은 이미 의식이 없었다고 했다. 그가 침을 놓고 도씨가 가져간 산삼을 쓴 건 그저 아이를 낳게 하기 위한 방책에 불과했던 것이다.
임근용은 이런 가정에서 후처인 창 대부인이 낳은 딸은 장남과 그 부인이 아주 인자하지 않는 한 삶이 아주 고달플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좀 전에 봤던 마씨와 임 대공자의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 아이의 삶이 고단할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씨가 참담한 표정으로 공 마마와 철 마마의 부축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입술이 하얗게 질리고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니 그녀가 좀 전의 광경에 충격을 받은 걸 알 수 있었다.
임근용은 재빨리 일어나 도씨를 부축해 자기 자리에 앉히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 건네주었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참 생각해 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 우리가 여기 이렇게 있는 것도 폐를 끼치는 것 같아요. 일단 돌아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좀 준비해 두고 이쪽도 정리가 되면 다시 오는 게 어떨까요. 일손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사람을 보내 도와주면 될 거예요.”
도씨도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아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일행이 밖으로 나가자 임창이 달려와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으로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하고 그들을 배웅했다. 도씨도 계속 그를 위로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천명이 다한 걸 어쩌겠습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변고에 잘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이때 갑자기 안에서 시끄럽게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고함을 지르는 소리와 여자가 소리 지르는 소리, 그리고 개 짖는 소리까지 뒤섞여 아주 요란스러웠다. 흰옷을 입은 한 소년이 안뜰에서 뛰쳐나와 도씨를 향해 달려왔다. 그는 털썩 하고 무릎을 꿇더니 쉰 목소리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삼부인, 삼부인, 자비심을 베푸시어 이 불쌍한 여동생을 구해 주십시오. 제가 부인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임근용이 살펴보니 이 소년이 입은 흰옷은 겉옷을 뒤집어 입어 상복처럼 보이게 한 것에 불과했다. 그는 품에 강보에 싸인 아기를 꼭 안고 있었다. 그의 뒤에서 마씨와 임씨 가문 대공자, 그리고 그와 생김새가 비슷하고 나이가 스물 남짓 되어 보이는, 아마도 임씨 가문 둘째 공자인 듯한 젊은 남자가 정신없이 뛰어나왔다. 그들은 이 광경을 보고 모두 아주 불편한 표정으로 자리에 멈춰섰다.
마씨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삼공자, 철없이 함부로 이러지 마세요, 셋째 숙모께서 놀라시잖아요!”
임창이 도씨를 쳐다보더니 이를 악물고 소년의 가슴을 차며 꾸짖었다.
“이 짐승같은 놈! 얼른 꺼지지 못하겠느냐! 넷째 조카가 놀라지 않았느냐!”
“아기를 안고 있잖아요!”
임근용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몰랐지만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소년은 임창에게 차여 몸이 기울어졌어도 고집스럽게 그 아기를 받쳐 들고 눈을 크게 뜨며 죽어라 도씨만 쳐다보고 있었다. 강보에 싸인 아기는 고양이처럼 가느다란 울음소리를 냈다.
임창이 굳은 표정으로 소년을 잡아당겼다.
“얼른 꺼지래도!”
그 소년은 눈처럼 하얀 얼굴로 발버둥 치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삼부인, 삼부인, 한 생명을 구하는 건 7층 탑을 세우는 것보다 더 값진 일이라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 몸이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그의 뒷말은 임창에 의해 가로막혔고 마씨는 이 기회를 틈타 그 아기를 빼앗아 쏜살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도씨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입니까?”
임창은 뒤에 있는 두 아들에게 소년을 끌고 들어가라고 한 뒤 웃으며 말했다.
“제수씨한테 못 볼 꼴을 보였습니다. 저 녀석이 제 어미가 그리 된 걸 받아들이기 힘든가 봅니다. 정신이 흐려져서 살짝 미친 것 같습니다. 아마 방금 태어난 여동생이 몸이 허약한데 우리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오해한 모양입니다……. 별일 아니니 마음 쓰실 것 없습니다.”
임 대공자가 비웃듯 말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다 우리 혈육인데 신경을 안 쓸 리가 있겠습니까?”
그 소년은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고 있었다. 입이 틀어 막힌 그의 얼굴은 불빛 아래에서 심하게 일그러져 보였다. 눈송이가 그의 머리와 얼굴에 떨어져 곧 물로 변했고 그의 볼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는 전혀 한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고 있었다. 창 대부인과 쏙 빼닮은 눈동자가 도씨와 임근용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고 그 눈빛에 슬픔과 절망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