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92
92화. 있는 걸 다 팔아서라도
며칠 동안 계속 걸어 다닌 끝에, 도순흠은 마침내 서남쪽 모퉁이에 있는 100경에 가까운 땅을 사기로 마음을 정하고, 곧바로 평주 관아 사람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성 서쪽에 있는 수천 경의 염지는 모두 관아에 속한 땅이었다. 관청에는 언제나 총명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었다. 도순흠이 이 땅을 사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내자마자 누군가가 사방을 경계하며 그 땅을 사서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도순흠은 관아에서 이 일을 관리하는 몇 사람을 초대해 식사와 술을 대접했다. 임세전은 이날 난생 처음으로 기루에 발을 들였다. 연회 자리에서 가슴을 반쯤 드러낸 기녀를 보고 그는 감히 고개도 들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얼른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도순흠이 관청 사람들과 어떻게 교제하는지 열심히 관찰했다. 사람들은 반쯤 술에 취하자 서로 호형호제하기 시작했다. 기녀들이 사람을 노곤 노곤하게 홀려 놓고 나서 도순흠은 자기가 어느 날 꿈을 꿨는데 꿈에서 그 땅을 사 정원을 만들었더니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모든 일이 잘 풀렸노라고 말했다. 그는 이 땅을 사서 경작지로 쓰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 꿈 때문에 마음의 위안을 삼고자 사는 것이라 둘러댔다.
관리들 중에는 이런 주색에 미혹되지 않고 자신의 탐욕스러운 본능을 드러내며 도순흠을 괴롭히려 하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곧 그들의 최고 관리자에게 걸려 호되게 꾸지람만 들었다. 따뜻하게 서로 호형호제하는 분위기에서 땅의 거래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도순흠은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측량할 때는 80경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100경이 되는 땅을 구매했다. 그리고 그는 사람을 시켜 이 땅을 반으로 나누고 경계석을 세웠다.
임세전은 도순흠이 이 땅을 왜 둘로 나누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말을 꺼내자마자 도순흠은 화제를 딴 데로 돌려버렸다.
“잘 기억해 두거라. 땅을 사는 건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절매(*绝卖: 완전히 팔아 넘김)이고 다른 하나는 전당(*典当: 저당을 잡음)이라 한다. 이런 계약은 반드시 관청을 거쳐 붉은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이걸 홍계(*红契: 세금을 완납하고 관청의 도장을 찍은 계약서)라 하지. 관청의 도장을 못 받으면 백계(*白契: 관청의 도장을 받지 않은 계약서)라 하는데 이런 계약은 훗날 쉽게 분쟁이 발생할 수 있으니 하면 안 되는 거야.”
이어서 도순흠은 은전을 담은 주머니를 몇몇 사람에게 찔러주었는데 그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의 주머니가 제일 두둑했다. 임세전은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아에서 토지를 매매하는 건 본래 그들의 업무인데 밥과 술을 대접하는 것도 모자라 돈까지 찔러 주면 그 사람들이 너무 날로 먹는 거 아닙니까.”
도순흠이 팔짱을 끼고 웃는 듯 마는 듯하며 그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사실 난 하나도 손해 본 것이 없어.”
그러더니 그가 임세전에게 하나하나 따져가며 알려주었다. 그는 일단 저렴한 가격에 땅을 샀고 측량 값보다 실제로 더 많은 땅을 받았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건 나중에 무슨 일이 있을 때 그들을 찾아갈 수 있다는 점이라 했다.
“네가 정말 이쪽 길로 가고 싶다면 윗선과 이야기하면 금방 풀일 일도 아랫사람들은 더 애를 먹이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장사를 하는 데는 인맥이 가장 중요한 거야. 약간의 돈을 쓰더라도 그들이 우리를 귀찮게 하지 않게 만드는 게 가장 좋아. 또 이렇게 안면을 터 두면 언젠가 그들의 도움을 받을 날이 있을지도 몰라.”
이것이 도순흠의 가르침이었다.
임세전은 그의 말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기회를 봐서 여지를 찾아갔다. 그는 기루에 가서 술을 마신 일만 빼고 전후 사정을 일일이 임근용에게 전달했다.
“땅값은 1묘에 70문밖에 안 줬어. 측량 면적은 80경이었는데 실제로 재 보면 100경이야. 땅 사는 데 쓴 돈은 560관(*贯: 엽전 1,000개를 꿴 꾸러미)밖에 안 돼. 도 대인께서 관아 사람들한테 한턱 내시느라 얼마나 썼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 수십 관은 족히 될 거야.”
임근용은 놀랍고 또 기뻤다. 그녀는 자신이 유엽하(柳叶河) 부근에 산 땅보다 이 땅을 훨씬 싸게 샀다는 사실에 기뻤다. 하지만 도순흠이 이렇게 큰돈을 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잘된 일이긴 했다. 그런데 거의 600관에 가까운 돈을 또 어디서 마련해 외삼촌께 갚는단 말인가?
임근용은 지난번 은을 팔았을 때 자기 돈으로 58냥의 은자를 벌었다. 황 이낭의 돈을 굴린 것으로 46냥을 벌었고 임근음의 돈으로는 거의 80냥에 가까운 은자를 벌었다. 거기에 자기가 원래 가지고 있던 것까지 전부 합하면 은자로 394냥이었다. 이걸 동전으로 환산하면 315관(贯) 밖에 안 되는 터라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녀는 일찍이 도순흠에게 땅은 자신의 돈으로 살 것이며 어떻게든 자신이 돈을 마련하겠다고 큰 소리를 친 적이 있었다. 지금 이 돈을 어디서 마련해야 할까?
빌리려고 해도 단시간 내에 갚을 수 있는 돈이 아닌데 누가 빌려 준단 말인가? 곧 시집갈 임근음에게 말하자니 낯부끄러워서 또 빌려달라는 말이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도씨에게 말하자니 지난번에 유엽하 주변의 땅을 구입한 돈도 아직 다 갚지 못해 용돈에서 공제하는 중이라 곤란했다. 임근용은 가진 돈이 너무 적어 갑자기 난감한 상황에 부딪쳤다.
임근용은 도씨가 자신을 위해 준비한 혼수를 스스로 운용할 수 있게 맡겨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절대 그렇게 해 줄 리가 없었다. 임근용은 화장함을 열고 그 안에 있는 금과 은 장신구들을 바라보며 한참 머리를 굴렸다. 그녀는 우선 명절에 반드시 착용해야 하거나 절대 팔면 안 되는 물건 몇 개를 골라냈다. 모양이 단순하고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비녀와 장신구 등도 한쪽에다 빼놓았다. 화장함의 맨 아래 칸을 열자 붉은 비단에 감싸진 팔보 적금 장수목걸이(*长命锁: 어린아이의 목에 걸어 장수를 상징하는 자물쇠 모양의 목걸이) 하나와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적금 팔찌와 발찌 한 쌍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잠시 동안 멍하니 물건들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했다.
이것들은 그녀가 어렸을 때 찼던 물건으로 고승이 개광(*开光: 불공 의식을 드림)한 것이었다. 그녀는 나중에 이걸 나중에 육씨 가문으로 가지고 갔다. 녕아(宁儿)가 태어난 후, 그녀는 다른 사람이 선물한 장수목걸이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것을 아이에게 걸어 주며 아이가 무병장수하고 오래오래 평안하게 살 수 있기를 빌었다. 하지만 녕아는 너무나도 일찍 그녀에게서 떠나 버렸고 아무리 큰 소리로 불러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손끝이 장수목걸이에 닿자 임근용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당시 녕아의 피가 목걸이에 새겨진 그 ‘수(寿)’자를 물들였었던 것이 떠올랐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녀는 이를 악물며 앞으로 녕아라는 아이는 없을 것이고 이 목걸이가 녕아를 보호할 수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남겨 둔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거면 될 것이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그 장수목걸이에 가 있는 시선을 억지로 거두며 손수 붉은 비단을 단단히 여며 여지에게 건네주었다.
“이걸 세전 공자한테 가져다주고 돈으로 바꿀 방법을 찾아보라고 해.”
여지가 대경실색했다.
“아가씨,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이런 물건들은 전부 표식이 있어서 모양을 훼손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들켜서 괜히 듣기 싫은 소리를 듣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모양이 훼손되면 값이 많이 내려갔다.
임근용이 담담하게 말했다.
“오라버니한테 이걸 분해해서 팔라고 해. 먼저 위에 박힌 보석 구슬을 떼어낸 다음에 사람을 찾아 금과 은을 녹여서 따로 팔라고 해. 그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거야.”
사실 그녀가 가장 팔고 싶은 건 투차에서 포상으로 받은 그 수정연꽃비녀였다. 그건 임옥진의 물건이었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조차 꺼림칙했다.
“아가씨, 이건 부인께서 아가씨를 위해 손수 스님에게 개광해달라고 부탁까지 하셔서 만든 물건이에요. 부인께서 아시면 아마 많이 속상해하실 거예요. 더구나 이걸 팔아도 돈이 부족하잖아요. 도 대노야께서 그 땅을 사 주겠다고 말씀까지 하셨는데 아가씨는 굳이 왜…….”
여지는 그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염지가 뭐가 그리 좋다고 아가씨가 사고 싶어 안달을 하며 심지어 이런 짓까지 하는 건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임근용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기 때문에 임근용의 이 평온한 표정 아래 깊은 초조함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지는 시골 장원에 다녀오고 나서 임근용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실제로는 더 엄격하고 더 깊숙이 자신의 초조함을 숨긴 것 같았다. 이렇게 된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역시 그때 놀라서 병이 난 이후부터라는 생각이 들어 여지는 잠시 동안 스스로 자책했다.
그녀가 목소리를 떨며 임근용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가씨, 먹고 사는 데 아무 문제없으시고 부인께서도 계속 아가씨 혼수를 준비하고 계시잖아요. 도대체 뭘 그리 걱정을 하시는 거예요? 노비에게 말하고 싶지 않고 부인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으신 거면 셋째 아가씨께라도 말씀을 하세요. 셋째 아가씨께서 분명히 도와주실 거예요.”
“부모나 형제자매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그들에게 알려선 안 되는 일도 있는 거야.”
임근용은 마음속에 걱정거리가 아주 많았지만 그걸 다른 사람한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방긋 웃었다.
“여지야, 너 놀랐어? 난 아무 걱정 없어. 그냥 외삼촌한테 빚지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야. 언니는 곧 시집갈 거고 나도 어린애는 아닌데 낯부끄럽게 외삼촌한테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내가 외삼촌 돈을 그렇게 쓰면 청주에 있는 사촌 자매들을 보기 너무 미안하지 않겠어? 나도 어느 정도 체면은 세워야지.”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지에게 물었다.
“이 일은 절대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 알았지? 계원이가 그렇게 되고 나서 난 너 말고는 더 믿을 사람도 없어.”
여지가 살짝 시선을 피했다. 안 그래도 그녀는 임근음에게 가서 임근용을 설득해달라고 말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임근용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니 차마 임근용을 실망시킬 수 없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아니면 노비가 좀 저축해둔 돈이 있는데 그걸로 급한 불이라도 좀 끄실래요?”
임근용이 실소했다.
“아직까지는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으니 네 것까지는 필요 없어. 얼른 가서 시킨 일이나 해.”
여지가 나간 후, 임근용은 침상에 엎드려 한참을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가 마침내 어떤 방법이 떠올라 큰 소리로 외쳤다.
“앵두(樱桃)야!”
앵두는 공 마마가 새로 뽑아서 보내준 아이로 이제 겨우 아홉 살이었다. 그녀는 청록색 상의에 파란 치마를 입고 있었다. 홑꺼풀에 맑은 눈빛을 가지고 있었고 손발이 길쭉길쭉해 용모가 단정했다. 그녀는 깔끔하면서도 명랑한 성격이었다. 앵두가 가볍게 안으로 들어와 침상 앞에 서서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분부하실 일 있으세요?”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들을 초대해서 함께 차를 마시고 싶은데 네가 간식거리를 좀 준비해 줘.”
앵두가 나가고 나서 임근용은 계 마마를 불렀다. 그녀는 옷상자를 열어 새로 만든 옥색 연꽃 무늬의 얇은 비단 치마를 꺼내 입은 뒤 얇게 분을 바르고 그 수정연꽃비녀를 꽂았다. 임근용은 두아를 데리고 직접 임근지와 임근주, 임근옥을 초대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