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93
93화. 비녀 팔기
햇빛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연꽃수정비녀가 임근용의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일곱 가지 빛을 눈부시게 발하고 있었다. 임근지는 이 모습에 잠시 눈앞이 아찔해졌다가 꽃처럼 예쁘게 웃고 있는 임근용을 보고 절로 화가 났다.
지금 임근용이 입고 있는 옷과 치마는 자신이 입었어야 했던 것이고, 머리 위의 수정비녀는 원래 육운이 가졌어야 했던 것이다. 전부 다른 사람에게서 빼앗아 온 것을 가지고 이렇게 거들먹거리며 자랑을 하다니 세상에 어쩜 이리 뻔뻔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정말로 짜증이 나 죽을 지경이었다.
임근지의 이런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넷째 언니, 옷이 정말 예쁘네요. 그 비녀는 투차 때 고모한테 받은 선물이죠?”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
임근용은 가볍게 비녀를 뽑아 자랑하듯 보여주며 말했다.
“예쁘지? 나도 수정비녀를 많이 봤지만 이렇게 순도가 높고 정교하게 조각된 물건은 본 적도 없어. 고모께서도 선물로 주시기 아까우셨을거야.”
이 비녀의 끝에는 쌍연꽃(并蒂莲)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맑고 투명한 꽃잎이 반짝반짝 빛났다. 살얼음처럼 섬세해서 조심하지 않으면 초여름의 햇빛에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임근용이 비녀를 천천히 돌리니 찬란한 광채가 사방으로 퍼졌다.
여기 모여있는 여자아이들은 이런 물건을 아주 좋아했다. 임근주는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임근옥은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하고 다가왔다.
“우와, 정말 예뻐요. 아주 섬세하네요. 대체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임근지는 반쯤은 슬프고 반쯤은 질투가 나서 이로 부채를 깨물며 임근용을 바라보았다.
“넷째 언니, 내가 한 가지 알려 줄 게 있는데 듣고 화내지 마요. 사실 이 비녀는 언니가 쓰긴 좀 그래요.”
‘정말 바보인 거야, 아니면 그 정도로 뻔뻔한 거야? 고모가 설마 이 아까운 걸 널 주려고 했겠어? 친딸 체면을 세워 주려고 내놓았던 건데 중간에 이런 강도 같은 인간한테 뺏길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임근용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임근지가 부채를 입을 가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쌍연꽃(*并蒂莲: 화목한 부부의 상징)이 있잖아요. 언니, 이런 걸 우리 같은 아가씨가 차는 건 좀 그렇죠. 그리고 언니는 색깔이 좀 더 화려한 게 어울려요. 이런 건 너무 수수해서 언니가 차면 별로 빛도 안 날 거예요.”
갑자기 임근용의 표정이 살짝 의기소침해졌다.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네.”
임근지가 하품을 했다.
“생각 못 했다고 해서 언니 잘못은 아니에요. 원래 사람은 자기 단점은 잘 못 보는 법이잖아요.”
임근주가 느릿하게 말했다.
“다섯째 언니는 어쩜 그리 생각이 깊은지 모르겠네요? 이걸 쌍연꽃으로 볼 수 있긴 하지만 그냥 연꽃 두 송이로 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넷째 언니는 확실히 화려한 색깔이 더 잘 어울리긴 해요. 이건 너무 밋밋해요.”
임근용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근주야, 내 기억에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수정이었던 것 같은데, 맞지? 넌 수정어(水精鱼) 귀걸이도 있으니 분명 이 비녀와 잘 어울릴 거야. 시녀한테 가져오라 해서 어울리는지 한 번 볼래?”
임근지는 하품을 하다 미처 다 나오지 못한 공기가 목구멍에 콱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속이 아주 불편해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설마 임근주한테 주려는 건 아니겠지? 뭣 때문에 쟤한테 준다는 거야? 서열대로 따지면 나한테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임근지가 얼른 말했다.
“넷째 언니, 근주도 안 돼요. 아무리 잘 어울려도 헛수고일 뿐이에요.”
임근옥이 바로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다.
“우리가 넷째 언니한테 비녀랑 귀걸이가 잘 어울리는지 보여 주겠다는데 무슨 문제 있어요? 녹평(绿萍)아, 빨리 가서 그 수정어 귀걸이랑 내 매미 귀걸이 가져와.”
“이 비녀는 나한테 별로 안 어울리는 거 같아.”
임근용이 눈을 내리깔고 세 사람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아무리 예뻐도 내가 쓰긴 힘들 것 같아. 고모께서 보시면 화내실 수도 있잖아.”
임근용은 정확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 비녀가 자신에게 계륵 같은 존재이며 다른 사람에게 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은근히 드러냈다.
임근주가 웃으며 떠보듯 말했다.
“언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 비녀를 다른 사람이 찬 걸 보면 고모께서 화내시지 않겠어요?”
임근용이 눈을 들고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다르지. 고모께서 너희들을 그렇게 좋아하시는데 너희들한테 화를 내시겠어? 근주야, 고모가 널 많이 예뻐하시지?”
임근주가 임근용의 말을 긍정하듯 눈을 내리깔며 웃었다.
“넷째 언니!”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본 임근지가 재빨리 말했다.
“나도 수정연잎 귀걸이가 있는데, 이거랑 어울릴 것 같아요. 나도 가져와서 한 번 비교해 봐도 돼요?”
임근지는 이 비녀를 본 처음 본 순간부터 아주 마음에 들었지만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마음을 다스렸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생겼는데 어찌 쉽게 놓칠 수 있겠는가? 설령 비녀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임근주가 공짜로 이런 이득을 보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임근지가 너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말을 하자 임근옥이 분개하며 말했다.
“언니는 왜 또 끼고 난리예요?”
임근지가 고개를 돌리고 임근옥을 보며 냉소했다.
“이게 네 거야? 너희들은 어울리는지 봐도 되고 난 안 돼? 넷째 언니도 가만히 있는데 왜 네가 화를 내고 그래?”
임근용이 얼른 일어나 타일렀다.
“왜 그래, 싸우지 마. 우린 한 자매잖아. 누구든 어울리는 사람 있으면 가져가.”
임근지는 의기양양해져서 시녀에게 얼른 가서 자신의 수정 연잎 귀걸이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임근주가 임근용을 한 번 보더니 다시 임근지를 보고 갑자기 비웃듯이 말했다.
“왜들 이렇게 싸워요? 넷째 언니는 그냥 귀걸이를 가져와서 어울리는지 보라고 한 것뿐이고 누구한테 준다고 한 적도 없는데 왜 둘이서 먼저 싸우고 난리예요. 남들이 보면 얼마나 우습겠어요…….”
임근주도 이 비녀가 마음에 들긴 했지만 임근용이 이걸로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임근용이 정말로 순수하게 선물하려는 거라면 그녀도 임근지가 거저먹게 둘 생각은 없었다. 만약 누군가를 놀리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면 그녀도 기꺼이 임근지를 희롱하는 데 협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선은 임근용의 진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했다.
역시 자매들 중에서 임근주가 제일 머리가 좋았다. 이 아가씨는 몸은 어린아이였지만 생각만큼은 어른에 맞먹었다. 그녀의 이 말은 임근용에게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에 임근용이 아예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할게. 이 비녀는 내가 가지고 있어도 쓸모가 없어. 누구든 제일 잘 어울리는 사람한테 줄게. 나중에 내가 줬다는 것만 기억해 줘.”
누가 가장 잘 어울리는지는 임근용이 마음대로 정하면 그만 아닌가. 임근지는 좀 전에 임근용이 임근주가 수정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귀걸이를 가져와서 어울리는지 보라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임근지는 자신이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넷째 언니, 왜 그렇게 사람을 편애해요! 언니도 참 옹졸하네요!”
임근옥이 곧바로 임근용의 편에 섰다.
“다섯째 언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넷째 언니가 벌써 말했잖아요. 제일 잘 어울리는 사람한테 줄 거라고. 아직 누구한테 줄지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편애한다고 하다니 옹졸한 건 언니 아니에요? 까놓고 말해서 그걸 언니한테 안 주면 편애하는 거고 옹졸한 거라고 말할 거잖아요.”
임근지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럼 이게 편애가 아니라는 거야? 다 같은 자매라면서 왜 나한테는 묻지도 않고 너네한테만 귀걸이를 가져오라 한 건데? 분명히 전에 난로회에서 내가 언니 마음을 상하게 한 것 때문에 일부러 불러다 들러리 세운 거겠지! 넷째 언니, 내가 언니한테 괜한 사과를 했네요!”
임근옥이 차갑게 웃었다.
“어머, 넷째 언니한테 사과하면 이 비녀를 언니한테 주기라도 할 줄 알았어요? 언니한테 안 주면 넷째 언니가 용서를 안 한 거란 뜻이에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죠? 잘못한 사람이 선물을 하며 사과를 하는 건 봤어도 잘못한 사람한테 도리어 선물까지 주며 용서해 준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요. 진짜 바보야, 뭐야!”
“잘못한 사람이 나라고? 뻔뻔하게 그런 말이 나와?”
임근지가 벌떡 일어나 임근옥의 코끝에다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이 음흉한 소인배들 같으니라고, 다 너희들이 모함한 거잖아. 넷째 언니를 꼬드겨 날 미워하게 만들고 너희들이 중간에서 이득을 챙기려 했던 거겠지. 내가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아? 아니면 이참에 넷째 언니 앞에서 다 까발려 봐?”
“삿대질 하면 어쩔 건데요? 까발릴 거 있으면 어디 한 번 해 봐요.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요?”
임근옥이 임근지의 손가락을 툭 치며 경멸했다.
“여기 신아가 왜 쫓겨났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어디 다시 한 번 읊어 볼까요? 낯짝도 참 두껍네요!”
“제발 싸우지 마. 어른들께서 아시면 꾸지람 정도가 아니라 또 벌을 받게 될 거야.”
임근용은 괴로운 듯 길게 한숨을 내쉬고 곧 화가 폭발할 것 같아 보이는 임근지를 꽉 안았다.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생각이 짧았어. 사람이 셋인데 비녀를 하나만 가져온 게 잘못이지. 이건 없던 일로 하자.”
“안 돼요!”
임근지와 임근옥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며 진심으로 소리쳤다.
임근주도 임근용을 쳐다보며 딱딱하게 말했다.
“넷째 언니, 언니는 누구 말을 믿어요? 언니가 근지 언니를 말을 믿는다면 그 수정 비녀를 근지 언니한테 줘요. 그럼 난 두말 않고 바로 근옥이를 데리고 갈게요. 만약 언니가 나를 믿는다면 그 수정비녀를 나한테 줘요. 나한테 주면 절대로 언니가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제는 단순히 이 수정비녀를 갖고 안 갖고의 문제가 아니라 인품의 문제로 비화되어 버렸다. 이 수정비녀를 얻는 사람이 수정비녀처럼 영롱하고 흠잡을 데 없는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고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임근용은 난로회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임근주가 절대 손해를 보지 않을 거라고 한 말에는 흥미를 느꼈다. 임근주가 자신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임근용이 가장 원하는 건 금과 은이었다. 임근용은 마음과는 다르게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날 곤란하게 만들지 말아 줘. 이런 걸로 자매들 간에 의가 상하면 안 되지.”
임근지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넷째 언니, 나 정말로 그날 신아한테 언니를 밀라고 시키지 않았어요. 언니가 내 말을 믿는다면 비녀 나한테 줘요. 나도 언니 물건을 공짜로 가져가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에요. 그저 오랫동안 참고 있던 억울함이 풀리기를 바라서 이러는 것뿐이에요.”
‘좋아, 이쯤이면 가격을 제시하고 사고 싶으면 줄을 서라고 유도하면 되겠어.’
임근용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한참 후에 고개를 들고 세 명의 사촌 동생들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얘들아, 그냥 수정비녀잖아? 왜 이런 것 때문에 서로 싸우고 그래? 난 그날 일은 그냥 우연히 생긴 사고라고 생각해. 내가 이 수정비녀를 누구한테 주든 받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못 받은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그런 뜻은 전혀 없어.”
그러더니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귀걸이를 가지러 갔던 시녀들은 왜 안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