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00)
101화 천재
지구면 지구지, 뒤에 숫자는 왜 붙지?
“지구7이 뭔지 알아?”
“알아보겠습니다.”
수호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쓸모 있군. 부하로 받아주지.”
이 정도면 충분하다. 토들러 박사도 인재지만 그는 자신의 사람이 아니다. 롤랑 사 소속으로 자신의 일이 있고, 동시 진행하는 연구 프로젝트도 많았다.
수호의 옆에서 과외선생님처럼 붙어 그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없는 사람이다.
장순필은 그와 다르다.
연구소장으로 곁에 두면서 함께 이 문제를 관찰하고 연구해보면 된다.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중원에서의 8년 경험 때문일까?
윗사람에게 깍듯한 태도가 어색하지 않았다.
“복수부터.”
“…….”
장순필이 손을 떨었다.
그 또한 새롭게 얻게 된 주군이 더없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좋아. 바로 해결하자고. 길드 애들 다 모아.”
상대가 누군지 들었을 텐데도 거침이 없었다.
길드의 모든 사람들이 중앙 광장에 모였다.
야수 쉼터 입구에 우뚝 선 본사와 맛집 골목 사이의 뻥 뚫린 평야의 잔디광장이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몇몇 야수들도 구경삼아 몰려들었다.
애초에 어슬렁거리며 광장 주변을 배회하던 놈들이다.
“자, 여긴 새로 합류한 연구소장 장순필.”
“잘 부탁드립니다.”
수호는 이 자리를 새로운 식구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 구천 행성에 가볼 생각이야.”
“거긴 가이드 없으면 위험한데요?”
앞자리 앉아 있던 동수의 물음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었다.
평화로운 아루카 행성에 비해 구천 행성은 마몬족과 중원인의 전투가 끊이지 않는 격전지다.
대륙을 절반 갈라 딱 각자의 영역으로 삼는 게 아니라, 두 종족 모두 부족 개념으로 각각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몇 개의 부족이 뭉쳐 세력권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마몬족 나라 50국과 중원인 나라 50국이 대륙 곳곳에 넓게 퍼져 있는 것이다.
야만적인 마몬족 진영은 아예 관광이 불가능했고, 중원인들도 호전적인 데다 베타적인 습성이 강해 중원인들의 습성을 잘 알고 경험 많은 가이드를 대동해야 관광이 가능했다.
괜한 원한을 사 자다가 칼 맞아도 이상하지 않을 동네니까.
“가이드라면 여기 있지. 8년 동안 구천 행성에서 지내다 온 귀환자다.”
“오오!”
차원 관광은 대부분 아루카 행성으로 간다.
구천 행성으로 가는 건 가이드 섭외도 그렇고, 경호원 구성도 신경 써야 해서 비용이 꽤 많이 든다.
그렇기에 부자들만 갈 수 있지만, 보수적인 그들은 리스크가 큰 구천 행성에 잘 가지 않는다.
“저 데려가 주세요!”
“저도 꼭 가 보고 싶습니다!”
“소승이 합류하겠소!”
누구보다 명진이 격렬히 바랐다.
구천 행성은 관광이 어렵지만, 반대로 무공을 배우거나 기술을 배우기 위한 유학 개념의 차원 여행이 더 많다.
무공에 관심 많은 명진에게 있어 이번 기회는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
박수호와 함께 가기에 경호는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가이드로 경험 많은 장순필이 함께라면 딱히 위험한 상황이 생기지는 않을 거다.
중원인 마을 여럿 돌아보다가 무공서적만 하나 얻어도 대박인 여행.
“뭐 좋다고 이렇게 따라가려고 난리야?”
수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 죽이러 가는 길에 이토록 열렬한 지원자라니.
꽤 어두운 표정의 김미소를 보니, 아직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 같았다.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
살인행이든 관광이든 한 명 정도야 대동해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충분히 보호할 힘도 있고, 유사시에 야수 소환이 있기에 증원 병력은 충분하다.
“좋아. 다른 포상을 생각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한 명은 구천 행성에 같이 데려가지.”
“무슨 문제예요?”
“지구에서 구천 행성에 간 나와 연락할 방법.”
SOS 신호 정도면 충분했다.
긴급하게 돌아올 테니까.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아이디어 하나 없을까?
“진짜 그것만 풀면 데려가시는 거예요?”
“무르기 없습니다!”
수호는 전 길드원이 모인 자리에서 공표했다.
“누구든 맞추면 데려간다! 이건 나 박수호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맹세다.”
“와아! 내가 풀어야지.”
“나무아미타불, 제게 지혜를 빌려주소서.”
중얼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해산을 지시했다.
“누구든 선착순으로 내게 와.”
수호는 장순필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당장 떠나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마. 집 단속은 하고 가야지.”
“아닙니다. 몇 년이든 기다릴 수 있습니다.”
2년을 시체처럼 살았는데 이렇게 목표가 생기니 이제야 살아나는 것 같다.
“좋아. 오늘 저녁은 족발로 하지.”
둘은 식당 거리의 족발집으로 향했다. 가게 안에도 테이블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큰 거리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노천식당처럼 꾸몄다.
오며 가며 인간들 음식 맛을 보는 야수들도 배려한 차원이었는데, 그 덕분에 해가 진 뒤에는 좀 더 운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제 인구수 300을 넘은 수호 길드는 혈석 발전소 하나로 모든 전기가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하루에 소비되는 혈석은 아주 작은 양.
새로 뽑은 인턴 용병들의 교육 도중에 수급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밤에도 전기 사용에 문제가 없어, 둘은 불을 밝히는 가로등 아래 노천식당에서 족발에 소주를 마셨다.
“저는 술 대신 음료수 마시겠습니다.”
“좋을 대로 해.”
복수를 완료하기 이전에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 다짐한 장순필이다.
“월, 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오는 백구에게 족발 두어 점을 던져 주기도 하고, 소주를 마시기도 하며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주제는 업적상점이었다.
“확실히 특이합니다. 지구에서는 몬스터를 죽이면 일부 흡수되는 에너지를 그냥 차원에너지, 경험치 등으로 부르지요.”
그걸 수호는 업적 포인트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이름은 내가 붙인 게 아냐. 보이는 거지.”
“시각화된 능력의 발현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한데 확실히 사장님의 능력은 게임의 그것을 닮았습니다.”
“게임?”
“예.”
수호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었다.
“게임 해 본 지 천 년이 지나서 잘 모르겠군. 내일 해 보지 뭐.”
“하하, 확실히 흥미롭습니다.”
수호의 강함의 비결은 세월이다.
지구의 누구도 그것을 처음부터 믿는 사람은 없었으나, 장순필은 달랐다.
“사장님의 기준으로 구천 행성에서의 레벨업 방법을 찾아보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뭐지?”
“마몬족을 죽이는 거지요. 중원인들은 그걸 공적이라 합니다. 강한 자를 상대할수록 더 많은 공적을 얻지요.”
지구와 조금 다를 뿐이다.
몬스터를 사냥하냐, 상대 진영의 종족을 사냥하냐의 차이일 뿐.
“두 번째는 심법 수련입니다.”
“심법?”
“제가 배운 건 기공들이 익히는 것으로 고작 몸을 튼튼히 하고 체력을 키우는 정도입니다만, 이것도 꾸준히 하니 어느덧 D급이 되었습니다.”
“이야, 그런 게 있어?”
사냥하지 않고도 자동으로 레벨이 오른다니.
솔깃한 방법이다.
“그래 봐야 무림에선 하수 수준입니다. 여기서 S급인 고수들이 거기선 1류 고수라 하여 수천이 넘지요.”
“와우, 몬스터 걱정은 없겠네. 아니, 다른 게 더 걱정이겠네.”
마몬족도 그 정도 전력은 유지하고 있었다.
더욱이 서로 서로가 공적 점수의 대상이 되니, 그 강함을 뺏고 뺏기며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뭐, 어쨌든 상관없어.”
수호가 전혀 겁먹은 표정이 아니자 장순필은 속으로 안도하면서도 말을 덧붙였다.
“여기서 SS급이 거기선 절정고수라 하여 가문마다 두엇, 많게는 열도 넘게 있습니다.”
“나같이 집 지키는 걱정은 없겠네.”
그 정도 인력풀이면 언제든 여행을 다녀도 되겠다.
수호가 진심으로 부러워하자 장순필은 본론을 꺼냈다.
“남궁장천은 초절정 고수로 소문나 있습니다.”
“이야, 그럼 80레벨이 넘네?”
지구엔 아직 70레벨도 없다.
아니, 딱 한 명.
챔피언이었던 이성우가 SS급에 올랐을 뿐이다.
비공식적으로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단 한 명뿐.
그 정도 레벨을 올리려면 얼마나 많은 몬스터를 학살해야 할까? 수호가 순수하게 감탄하자 장순필이 조금 안심되는 말을 했다.
“초절정 고수라 해도 잘 단련된 1류 암살자에게 죽는 게 구천 행성입니다.”
암살자들의 비법은 은밀하고 또 치명적이니까.
수호가 지구 최강이라지만, 남궁장천을 일대일 비무로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스킬과 강함을 암살에 쓰길 원할 뿐이다.
“그렇지. 강한 야수도 독충에 죽는 게 세상이니까.”
둘의 대화는 깊어졌고, 또 길게 이어졌다.
장순필이 수호 길드의 연구소장이 되고 가장 처음 맡은 연구주제는 다름 아닌 ‘박수호’였다.
*장순필이 길드에 합류한 지 보름이 지났다.
“이거 곤란하네.”
그동안 몇몇 아이디어를 가진 직원들이 찾아오긴 했으나, 아직 제대로 된 방법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 방법뿐인가.”
구천 행성의 게이트 앞에 직원이 상주해 있다가 위급한 일이 생기면 바로 차원 게이트를 넘어 박수호를 찾는 방법.
거기에 더해, 게이트 너머에 가장 가까운 무림 가문과 거래해 그들의 전서구를 이용해 수호를 찾는 방법이다.
둘 모두 하루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라 수호는 당장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다.
“별수 없이 애들 좀 더 굴려야 하나.”
이렇게 되면 구천 행성처럼 절정고수들 여럿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도 방법이 될 터였다.
슈아아아악.
머리도 식힐 겸 비룡의 등에 타고 비행하던 수호는, 봉림사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곤 천천히 하강해 착륙했다.
“와아, 비룡이다!”
동자승들이 반기는데, 그 앞에 장순필과 명진이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있었다.
“뭘 그리 재밌게 놀고 있어?”
“대장, 여기 장순필 시주께서 가르침을 내려 아이들에게 심법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호오.”
수호의 시선에 장순필이 멋쩍은 얼굴을 했다.
“대수롭지 않은 재주입니다.”
야장들이 배우는 수준 낮은 심법이지만, 이렇게 외부인에게 전수하는 걸 남궁세가에서 내버려둘 리가 없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여기는 지구고, 어차피 남궁가와는 이제 원수지간인데.
“이거 봉림사가 소림사가 되겠네.”
“내가 제일 고수가 될 거야!”
“난 명진 사숙보다 더 강해질 거야.”
심법을 배운 지 이제 고작 3일 된 녀석들이 벌써 마음은 절대고수다.
그런 가운데 빡빡이가 아닌 아이도 하나 있었다.
“건우야.”
“…….”
“건우.”
“……네, 삼촌.”
잠깐 눈동자에 현기가 감돈 건 착각일까?
건우는 잠깐 멍한 얼굴이더니 곧 초점이 돌아와 해맑게 웃었다.
“언제 오셨어요?”
“아까 전에 왔지. 너도 소림사에 들어가려고?”
“네? 아뇨 아직. 헤헤.”
이제 내년이면 학교에 갈 나이다.
슬슬 수호시티에 애들 학교도 만들어야겠구나.
지금은 또래라곤 동자승들뿐이지만, 조만간 길드 사람들의 가족들이 하나둘 이주하면 외성벽에 거주지가 만들어질 것이다.
“어? 삼촌.”
“어, 왜?”
“그거 있잖아요. 저거.”
“응? 비룡?”
“네. 저기 안장에 글을 써 보면 안 돼요?”
비룡의 안장은 탑승 부위인 위쪽과, 배틀 슈트 소재로 만들어져 비룡의 배를 가리는 아래쪽 갑옷으로 이뤄져 있었다.
거기엔 관리국과 협상 끝에 자유로운 비행을 위해 태극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글은 왜?”
“여기에 글을 써 놓은 뒤에 삼촌이 소환하면 따라가지 않아요?”
“…….”
장순필이 손바닥을 쳤다.
“전서구! 아니, 전서용인가.”
장순필은 수호가 야수를 소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아직은 더 깊은 대화가 필요한 둘이었다.
“호오.”
당장 실험에 나선 수호는 가까운 1성 던전에 들어가 비룡을 소환했다. 미리 약속된 안장의 한쪽엔 글씨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허, 이것 참.”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을 줄이야.
이거면 하루의 연락기한도 필요 없었다.
매시간마다 소환해 보면 되니까.
아니, 이 방법이면 서로 서신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도 있었다.
1성 던전을 클리어한 후에 수호 길드로 날아온 수호는 조카를 끌어안았다.
“요 기특한 녀석!”
“헤헤,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에요.”
다들 얼굴이 밝은 가운데 명진이 탄식하며 말했다.
“아, 그럼 구천 행성엔 누가…….”
공으로 따지면 건우가 그 차지다.
건우 아빠인 박준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안 돼. 거길 애를 어떻게 데려가?”
“으음.”
수호는 고심했다.
좋지 못한 길이긴 하지만, 모든 영역의 식구들 앞에서 공표한 대장의 발언이다.
“그리고 얘는 각성도 안 했어. 애한테 몬스터를 잡으라 시킬 거야? 그건 절대 안 돼!”
형의 도움으로 꽤 과격한 방법으로 각성한 준호다.
아들에게까지 그 끔찍한 짓을 시키기엔 7살의 나이는 너무 어렸다.
“……아빠, 저 삼촌 따라가면 안 돼요?”
“뭐? 아들. 각성자가 아니면 포탈 자체를 못 타. 좀 더 어른이 되면 아빠가 구천 행성이든 아루카 행성이든 구경시켜 줄 테니…….”
“저 각성한 것 같아요.”
“뭐?”
건우의 말을 듣고 수호는 즉시 관찰 스킬을 써 보았다.
레벨 1 – 입문자(F)
무인
스킬 – 침묵, 운기조식
“허, 진짜네.”
수호와 마찬가지로 눈썰미를 동원한 장순필은 건우에게서 내공이 느껴지자 경악했다.
“고작 3일 만에 내공을! 기재! 천 년에 한 번 날까 한 기재요!”
박준호는 우는 듯 웃는 듯 요상한 얼굴로 아들과 장순필을 번갈아 보았다.
‘내 아들이 그럴 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