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08)
109화 문씨세가 (2)
준호는 오늘도 발을 동동 구르며 백구를 찾았다.
“백구야! 백구야!”
식당가에 빈 가게마다 하나둘 새 주인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그중 이번에 새로 들어온 양꼬치 가게 사장은 개를 키웠다.
백구가 숫놈인데 마침 양꼬치 가게 사장이 키우는 용순이가 암컷이라, 요즘 시간만 나면 거기에 가 있는 백구다.
“왈! 왈!”
그래도 부르는 소리에 용케 골목길에서 뛰쳐나온 백구를 보며 준호는 실망한 얼굴을 했다.
애타게 찾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표정.
“아직도 안 불렀어.”
준호는 시계를 봤다.
벌써 형이 떠난 지 4일 1시간 21분 38초가 지났다.
“왈, 왈!”
왜 불렀냐는 듯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백구를 보며, 준호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착하지.”
백구를 쓰다듬어 주고는 목에 걸린 죽통을 열었다. 죽통 안에는 돌돌 말린 종이들이 가득했는데, 이를 꺼내본 준호의 얼굴은 다시 실망으로 가득 찼다.
다 자기가 아들에게 쓴 편지이거나, 김미소가 작성한 길드 현황 보고서였다.
‘없어.’
혹시 편지 뒷면에 답장을 썼나 펼쳐봤으나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어이구, 박 부사장님.”
“예, 명구 씨.”
김명구는 새로 입점한 양꼬치 전문점 주인이자, 골든 리트리버 용순이의 주인이다.
“허허, 아직 편지가 안 갔나 보죠?”
“그러게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소리가 있지 않습니까. 염려 마세요.”
“하하, 네.”
자식을 멀리 안 보내봤나 보군.
전혀 공감 가지 않는 위로에 준호는 헛한 웃음만 지었다.
새로 작성한 편지를 돌돌 말아 다시 죽통에 추가로 넣고 뚜껑을 닫았다.
“쳇, 그렇게 걱정을 하더만.”
걱정 돼서 못 떠나느니, 못 미덥다느니 핀잔을 해놓고는 막상 집 나가서 연락도 없는 수호다.
“혹시!”
준호는 덜컥 드는 불안한 생각에 김미소 부사장을 찾아갔다.
“미소 씨!”
“네, 준호 씨.”
김미소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뛰어오는 준호를 보며 미소 지었다.
“큰일입니다.”
“몬스터 웨이브라도 났나요?”
“아니 그거 말고요.”
박준호의 표정은 진지했다.
“백구가 아직도 소환이 안 됐어요. 이거 도어포탈은 넘고, 브릿지포탈은 못 넘는 거 아닙니까?”
그럴듯한 추론. 하지만…….
“비룡이랑 일곰이가 갔다가 돌아왔잖아요?”
선례가 있다.
타 차원이라도 야수 소환이 가능하다.
그저 수호가 백구를 안 불렀을 뿐이다.
“그럼 왜 백구는…….”
준호가 시무룩해지자 미소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다 준호 씨를 믿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요?”
“하아…….”
형이 자신을 믿어?
개가 웃을 일이다.
아니, 개 이야기 하니까 또 백구 생각나네.
왜 안 부르지.
내 편지는…….
“혹시 형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
이 또한 합리적 추론.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역시 그렇죠?”
합리적 개소리로 종결 짓고 나자 더 이상 떠오르는 게 없다.
왜 형은 백구를 소환하지 않는가?
하루에 한 번은 꼭 소환하기로 해놓고.
“편지지 좀 더 주세요.”
“편지지가 아녜요. 보고용지예요.”
수호의 업적상점에서 구입한, 포탈 통과가 가능한 두꺼운 종이다.
“조금 진정하세요. 답장이 오면 또 쓰시면 되잖아요? 아까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 준호 씨 이성을 찾을 필요가 있어요. 지금 너무 다급하세요.”
“…….”
준호의 눈에 습기가 배어나더니 금세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다 큰 어른이 우는 모습은 무방비한 무언가가 있었다.
“왜, 왜 울고 그러세요.”
김미소가 당황하자 준호가 울먹이며 말했다.
“몰랐습니다.”
준호의 눈물이 더 굵어졌다.
“저 힘든 줄만 알았지. 아빠 일 나가면 기다리는 건우가 얼마나 힘든지는 몰랐어요.”
늘 일 나가는 아빠를 걱정하던 아들이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운전 조심하세요.’
‘천천히 오셔도 되니까 안전운전하세요.’
녀석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시티 밖 필드의 도로를 운전하는 아비를 생각하며 녀석이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준호 씨…….”
미소가 엉엉 우는 준호를 살포시 안아 달래주었다. 더 감정이 북받쳐 울던 준호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한 장만 더 주십시오. 한 장만.”
“후, 알겠어요.”
줘야지.
편지로나마 미안한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 옅어질 수 있다면.
*문씨세가 별관.
중요 손님을 모시는 아담한 정원이 꾸려진 작은 장원이었다. 별관 식당에 한상 차려진 음식을 앞에 두고 수호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와아, 이거 아까랑은 차원이 다르네.”
“음식은 식기 전에 먹어야 제 맛이지요.”
장순필도 오랜만에 먹는 중원 음식에 손을 바삐 움직였다. 당진철은 아대에서 침 하나를 꺼내더니 음식마다 찔러보고 있었다.
“뭐하냐?”
“독이 있나 보는 것이오.”
“웃긴 놈이네. 그냥 보면 되잖아?”
“그냥 봐서 독이 있는지 어찌 안단 말이오? 중원에는 무형무취의 극독이 널렸소.”
“그냥 뜨잖아.”
“훗. 아루카 행성의 마법 같은 거라면, 여기서는 소용없소.”
수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서 만난 아루카 행성 출신의 마법사가 없으니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허나 분명한 것은, 수호의 눈에는 훤히 보인다는 거다.
몸에 좋은 한약을 넣고 달여 원기 회복에 좋다.
어디에도 독이 들어 있다는 말은 없다.
전에도 쥐약의 정보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분명 상태이상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대장께서는 음식의 정보마저 보이십니까?”
“응.”
“연구해볼 가치가 있군요.”
장순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선 그가 천검야장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수호의 휘하에 들고부터는 수호 길드의 연구소장이다.
그가 첫 번째로 맡은 연구는 다름 아닌 박수호.
“구천 행성과 아루카 행성, 그리고 미드얼 행성이 평행이라면 지구는 그 아래 있지요. 셋 모두의 세계에서 귀환한 자들이 지구에서는 문제없이 그 행성의 기술들을 썼으나, 그 반대는 되지 않았습니다.”
구천 행성에서 무공을 배운 귀환자는 이후 아루카 행성에 관광을 갔다가 일반인이 되어버리는 황당한 사건을 겪었다.
그 이후 여러 가지 조사 끝에 나온 이야기가 차원 등급 설이다.
차원에도 던전처럼 등급이 있다는 것.
높은 등급의 차원에서 낮은 등급의 차원으로의 이동은 제약이 없으나 그 반대는 불가하다는 것.
이것의 유일한 예외는 차원에너지를 받아들인 각성자뿐.
“그럼 내가 있던 행성이 그보다 더 위라는 말이야?”
“가설은 그렇습니다.”
수호는 곰곰이 생각하다 물었다.
“그럼 던전도 위라는 말인가?”
“으음. 그렇게 되지요.”
조각조각난 세계인 던전이 윗등급이라 하기에는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했으나 최근에 해결의 실마리를 얻었다.
“대장님의 흔적이 여러 던전에 걸쳐 나타났습니다. 행성이 조각나 던전이 되었다는 던전기원설의 결정적 증거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음, 그건 그래. 그 행성은 지구보다 월등히 컸으니까. 달도 두 개였고.”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아루카 출신 귀환자를 데려오는 건데 말이다. 장순필의 경우처럼 그 출신 귀환자가 어딘가에 아직 스카웃되지 않고 있다면 끌어와야겠다.
김미소에게 시켜놓으면 알아서 잘 꾀어 올 것이다.
“건우 많이 먹어라.”
“네, 삼촌.”
건우가 씩씩하게 말하곤 오물오물 잘도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종일 걸어서인지 전보다 배는 더 먹는 조카였다.
“넌 아직도 찌르고 있냐.”
막 오리구이에 은침을 빼 신중하게 침의 변화를 보던 당진철이 씩 웃었다.
“식전 습관 같은 것이니 괘념치 마시오. 이제 오리 다리만 하면 되오.”
오리 다리에 다시 침을 찌르는 걸 보고 수호가 슬쩍 건우에게 말했다.
“너 다른 무공 배우고 싶으면 말해.”
“네, 삼촌.”
“아, 그리고 얘 데리고 다녀라.”
수호는 이무기를 소환했다.
츄르르륵!
소환된 하얀 백사가 몸을 키우려다가 수호의 손아귀에 모가지를 잡혀버렸다.
“터지고 싶으면 커져봐.”
[나의 힘이 필요해서 부른 게 아니었나?]“어, 아냐.”
수호는 정상적인 뱀의 크기로 돌아온 설산이무기를 건우에게 주었다.
“얘랑 같이 다녀. 안전할 거야.”
“이름이 뭐에요?”
“백사로 하자.”
파팟.
레벨 98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의지로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야. 너, 나 말고 다른 애들하고도 말이 통해?”
[그렇다.]“그럼 첨에 왜 말로 안 하고 싸웠냐?”
[나의 둥지. 선택은 나의 권리다.]“이해해.”
어쨌든 이제는 수호의 야수들 중 가장 강력한 전력.
“얘 따라다니면서 지켜. 이왕이면 말도 좀 가르쳐 주고.”
[시시한 첫 임무군.]백사는 건우의 소매를 통해 쏙 들어가 버렸다. 놀란 건우가 뻣뻣이 굳어버리자, 백사는 몸을 타고 들어가 건우의 허리 부근에 벨트처럼 쓱 둘러버렸다.
쉬쉭!
빼꼼 셔츠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주위를 보는 것이 장난스러워 보였다.
“그럼 우리 조카 보모는 됐고.”
당진철 하나로는 불안하다.
어딘가 모르게 나사 하나가 빠져 보이는 데다, 장순필에게서는 전투력을 기대할 수 없으니.
느긋한 식사가 한창인 가운데 문종성이 중년인과 함께 다가왔다.
“은공! 식사는 어떠십니까?”
“맛있어. 음식은 역시 따뜻할 때 먹어야지.”
“맞습니다. 하하하.”
문종성은 함께 온 중년인을 소개했다.
“이쪽은 문씨세가 내총관입니다.”
“내총관 정관흠이오. 우리 세가의 소공자를 구해주어 감사드리옵니다.”
소공자라는 소리에 당진철이 흠칫 놀랐다.
‘적통?’
그냥 문씨세가에서 좀 영향력 있는 어린놈이라 생각했건만, 후계 서열에 있는 적통인 모양이었다. 소가주가 아닌 것을 보니, 손자뻘인가?
“필요한 것이 있다 하여 내총관을 불렀습니다. 뭐든 말씀만 하시면 즉시 대령할 것입니다.”
“음, 대장간 좀 며칠 썼으면 좋겠는데.”
“마침 세가에 운철이 조금 있는데, 어떠십니까?”
“흠, 도련님.”
내총관이 흠칫하며 문종성을 불렀다가 입을 다물었다. 괜히 여기서 그가 입을 놀려봐야 소공자의 권위만 상한다.
분명 그의 권한을 넘는 일이건만, 문종성은 자신을 믿어달라는 듯이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일행 중에 실력 좋은 야장이 있다 하니, 사례로 드리겠습니다.”
수호가 장순필을 돌아봤다.
“과한 물건입니다.”
당진철도 회의적이었으나, 그 운철로 만들 물건이 다름 아닌 자신의 애병이 될 비수임을 알기에 아주 곤란한 얼굴이었다.
고민이 조금 길었으나 그가 고개를 저었다.
“부담은 사양하는 게 좋겠습니다.”
운철이면 무인들에게 금보다 더한 보물이다.
그런 걸 척 내어주는 저의는 필시 빚을 지우고 싶어 하는 것.
저 어린놈은 속이 너무 훤히 보였다.
“운철 따위가 제 목숨보다 귀하겠습니까. 받아주십시오.”
여우같은 놈이군.
당진철은 또 말했다가 거절당할까 봐 물끄러미 수호를 보았다. 어차피 문종성을 구해준 것도 수호이니 결정권도 그에게 있었다.
“어? 그걸로 퉁치자고? 그럼 안 받고 다른 부탁 하나 하지.”
“으음, 어떤 것입니까?”
“역사의 증명.”
“아.”
지구인이라고 했지.
역사의 증명은 구천 행성의 역사의 기록이자 행성 그 자체의 눈과 귀.
마몬족과 중원인에게 있어서는 힘의 원천이자 삶의 목표.
그렇기에 마을 중심부에서, 삼엄한 경비 아래 지켜지고 있었다.
“좋습니다.”
문종성이 흔쾌히 허락하고 내총관도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보니,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닌 모양이다.
수호는 아쉬워하는 당진철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운철이 그렇게 좋은 거야?”
“물론이오! 병기 쓰는 무인들에게는 바라마지않는 보물이오.”
“음, 어디 보자.”
당진철의 무공을 배울 건우다.
애초에 장순필이 대장간을 쓰고자 하는 이유는 건우의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아이의 손에 맞는 비수가 필요한 것이다.
당진철의 것은 그냥 곁가지로 딸려오는 것일 뿐.
“여기 있네. 얼마 안 하는구만.”
수호는 업적상점에서 찾은 운철을 구입했다.
사자마자 인벤토리의 한쪽을 차지하는 그것을 꺼내 놓았다.
쿵!
족히 스무 근은 나가 보이는 많은 양에 장순필과 일행은 물론, 문종성과 내총관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