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14)
115화 전초제근
“천검야장이 맞습니다.”
문상길은 총관의 보고를 받고 설핏 웃었다.
“건방진 독사가 담을 넘어들어왔는데, 보물을 물고 왔구나.”
“어찌하옵니까?”
“남궁가의 사라진 천검야장이 2년 만에 나타났다라…….”
문상길은 한참을 고민해보았다.
섣부른 욕심에 화를 입는 가문이 한둘이던가?
하나하나 생각해 보며 이해득실을 따져 봐야 한다.
이것이 과연 독이 될지, 득이 될지…….
“아버지! 이는 조상님들이 도운 기회입니다. 그의 손에 탄생한 명검이 천 자루입니다. 앞으로 문씨세가는 보검으로 무장한 무사들을 얻을 것입니다.”
“좋지. 달콤한 말이지…….”
탐이 나지만, 남궁가에서 애지중지 키운 천검야장이다. 남궁세가라면 당대의 무림맹주직에 오른 중원 제일 가문이다.
괜히 천검야장 하나를 붙잡아두자고 남궁가의 눈 밖에 났다가는…….
“되었다. 남궁가에 전서구를 보내라.”
“아버지, 어찌 이런 기회를…….”
“명검이 매질로 재촉해 벼릴 수 있는 물건이더냐? 놈의 목줄을 잡을 방도가 없는데, 쥐고 있어 봐야 무엇하느냐? 이 기회에 남궁가에 줄을 대는 것이 낫다.”
남궁세가처럼 가족을 만들어주고 그것을 볼모로 잡았다면 모르겠지만, 달리 방도가 없다.
“소자, 짧은 생각으로 집안에 화를 불러들일 뻔하였습니다.”
“되었다. 그보다 지금 대장간에 들렀다했느냐?”
“예, 야장들 말로는 최소 열흘은 걸린다 하옵니다.”
“흐음, 열흘이라.”
문상길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욕심은 딱 거기까지로 해야 할 듯싶었다.
운철 스무 근으로 만들어내는 보검은 어떤 것일까?
“대장간에 일러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라 하여라.”
“별관은 어찌합니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일신의 무공만 믿고 버르장머리가 하늘을 찌르는 놈이다.
“종성이에게 듣기로 일류고수 둘도 쉽게 제압했다 하니, 감시 인력을 늘리고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라.”
“존명.”
총관이 고개를 숙여 명을 받았다.
“넌 외부에 파견 나가 있는 양검단을 모두 불러들여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고, 인근 고수들을 모조리 불러모아라.”
일류고수 50인으로 이뤄진 문씨세가 최정예집단이다. 거기에 절정고수인 자신도 있으니, 어지간히 놈이 고수라도 비등할 실력이다.
“어떤 고수를 말씀이십니까?”
“은자를 얼마든 써도 좋다. 돈으로 구할 수 있다면 정사 가리지 말고 모든 고수들을 초빙해라.”
독이 센 놈이다.
집 안에 독사가 들었으니 땅군을 불러 해결하면 된다. 괜히 가문의 무사들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
“예, 아버지. 명을 받듭니다.”
*대장간은 제법 넓은 마당을 중심으로 세 채의 건물이 동, 북, 서에 배치되어 있었다. 다른 길은 없고 남문의 대문으로 모든 출입을 했는데, 자재 밀반출을 막고 야장들을 관리하기 위해 부러 입구를 하나로 두었다.
건물 세 채는 창고, 작업장, 숙소였는데, 북쪽의 건물이 가장 높고 큰 작업장이고 동쪽이 창고, 서쪽이 숙소였다.
당진철은 작업장 지붕에 올라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야, 정신 사나우니까 그냥 내려와.”
“지금 완전히 포위된 상태요.”
“포위가 아니라 눈치 보는 거지.”
대문이 남쪽에 있다 하여 그쪽으로만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니다. 겨우 3미터 남짓의 얕은 담장이야 무사들의 뜀박질 한 번에 넘을 높이.
절대 고수가 있다지만 인원이 적으니 당진철이 경계에 만전을 기하는 이유였다. 상대가 아무리 일류고수라 하여도 자신의 비도술이라면 접근하기 전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어찌되었든 장공의 작업을 방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네.”
작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기다려 주는 건데, 괜히 애먼 놈들의 소란에 집중한 장인의 정신력을 흩트려 놓을 수는 없다.
그는 지금 복수의 칼날을 벼리는 중이니까.
“음?”
여전히 지붕 위에 올라 있던 당진철이 황급히 비도 하나를 내던졌다.
슈아아악!
그의 성명절기인 비뢰간지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낙뢰가 치는 듯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가 비둘기의 머리를 꿰뚫었다.
“이런!”
당진철이 낭패한 얼굴로 하늘을 허망하게 보았다.
“왜?”
“전서구가 날았소.”
잡은 건 겨우 한 마리.
“여섯을 놓쳤으니 적어도 여섯 명의 고수들이 머지않아 당도할 것이오.”
“뭐, 여섯이나 일곱이나. 그거 이제 안 쓴다고 막 버리네.”
일곱 남았던 비도가 여섯이 되었다.
어차피 장공이 만들어 주면 더 이상 쓰지 않게 될 것이니 아깝진 않다.
“후, 이를 어찌한담.”
“아, 더럽게 쫑알쫑알 거리네.”
일류고수는 근심걱정으로 땄는지, 염려증이 떠나지 않는 그를 보며 괜히 정신이 사나워 수호가 스킬창을 띄웠다.
삼재심법뿐만 아니라 기공단련 종류의 스킬엔 다 딸려 있는 하위스킬.
스킬 설명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집중해서 내력 생성에 들어가려던 그를 건우가 불렀다.
“삼촌!”
“왜?”
“전서구요!”
“응?”
“전서구! 전서구 불러야죠.”
“아!”
수호가 무릎을 탁 쳤다.
“어쩐지 뭐가 허전하더라.”
삼촌간의 대화에 당진철이 관심을 보였다.
“전서구? 어디 도움을 청할 데가 있소?”
“주긴, 내가 줘야 할 판이지.”
“삼촌! 빨리 불러보세요.”
평소 어른스러운 건우도 수호를 보챘다.
처음엔 영문도 모른 채 쫓겨 다녔고, 이후엔 무공수련에 심취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빠가 걱정하실 텐데.’
“백구야.”
파팟!
수호의 부름에 대장간 마당에 흰 연기가 뭉쳐들더니 죽통을 목에 단 하얀 개가 한 마리 나타났다.
“응? 전서구가 그 구가 아닐 텐데?”
지구에서는 개 구(狗) 자를 써서 전서구라고 부르나?
“왈, 왈!”
“이리 와.”
“헥, 헥!”
수호는 목에 단 죽통을 열었다.
“왜 이렇게 빡빡해.”
억지로 연 죽통 안에는 편지가 빼곡히 말려들어가 있었다.
“뭐야, 며칠 지났다고.”
고작 열흘쯤 지났나.
구천 행성의 시간과 지구의 시간은 같다.
수호는 동생이 쓴 편지를 가려냈다.
아니, 동생의 편지가 아닌 것을 가려냈다.
“이건 다 네 거네.”
“네, 삼촌.”
건우는 아버지의 편지를 하나하나 펴 보았다. 걱정스런 부모의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짠했다.
하루에도 몇 통씩이나 적어놓은 편지를 보며, 뭉클한 마음에 건우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천재니 뭐니 해도 건우는 7살 아빠 아들이다.
조카가 편지를 보며 눈물 짓는 사이 수호는 9장의 서신, 아니, 보고서를 펼쳤다. 보고서가 9장인 것을 보니 딱 9일이 지난 모양이다.
찐빵 전문점, 호떡 전문점 입점 계약 완료.
길드 외성 내에 마을 조성 초안.
길드 외성 교육시설 설립 건의.
…….
쭉 이어지는 보고서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딱히 그의 허락을 구하는 것도 없고, 그저 이러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정리된 상황보고일 뿐이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9일차 보고서.
“오늘이겠네.”
박쥐 몬스터 다섯이 외성을 넘어 침입, 독수리들이 사냥.
경기도, 강원도 필드 일대와 북한 지역에서 넘어오는 몬스터 개체수가 점점 증가 추세.
대공방어에 대한 대책 필요.
대공방어 세부 계획서.
“하늘이 문제네.”
해자를 깊고 넓게 파고 악어를 풀어놓았지만 그것으론 역시 역부족이다. 하늘은 제쳐두고서라도 악어의 개체수가 적어, 수영에 능한 몬스터의 접근은 종종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300마리의 악어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중랑천과 해자가 이어지는 수문의 방어와 남문 인근의 방어 정도가 전부이리라.
그렇다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해자에 상위포식자인 악어 같은 개체를 마구잡이로 길들여 풀어놓을 수는 없다.
아직 생태계가 잡히지 않아 악어 300마리의 식량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소비되고 있었다.
“대공공격이라.”
뭐 대비책이 줄줄이 적힌 것을 보니 딱히 수호의 손길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았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잘 지켜내고 있었다.
“하긴.”
던전이 생겨 봐야 브레이크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뭐 큰 전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별일이야 있겠는가.
“편지는 뭐래?”
“그냥 걱정하세요.”
“어휴, 어련히 알아서 잘 챙길까.”
그래도 뭔가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는데, 이렇게 지구의 소식을 전해 받으니 큰 안심이 되었다.
“음, 보자.”
수호는 업적상점에서 연필 하나를 구입해 이곳의 상황을 적기 시작했다.
“잘 넘어왔고, 어쩌다가 상승 무공 하나 가르치고 있고, 음, 이제 슬슬 복수 시작했다.”
수호는 상황 정리를 간략하게 하고는 연필을 조카에게 넘겼다.
“아빠한테 편지 쓸래?”
“네.”
“그래, 그럼.”
수호는 연필을 주고 백구를 신기한 듯 관찰하는 당진철에게 다가갔다.
“백사랑 같이 있으면 잠깐 여기 지킬 수 있지?”
말투를 보아하니 어디 가려는 모양이다.
저 혼자였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걱정이나, 속가라곤 해도 제자를 거두고 보니 이래저래 걱정이 많아진 당진철이 염려 가득한 음성으로 물었다.
“절정고수 하나 빼면 다 잔챙이라며? 걔 잡아올게.”
“옳거니! 묘수요! 진정 묘수요. 전초제근의 수라니.”
위험요소가 있다면 문씨세가의 절정고수 문상길이다. 물론 수호는 그저 대가리를 잡음으로서 싸움을 끝내려 할 뿐이다.
수호의 싸움에 학살은 그다지 없다.
영역의 최고 대장을 잡아 자신의 힘을 과시하면 그 아래 생태계는 알아서 굴러간다.
물론 그건 야생의 이야기고, 이곳 문명세계는 조금 다르겠지만 뭐 달라야 크게 다르겠는가.
“뭐, 말 통하면 좋게 이야기 하고 올게.”
“……그러길 빌겠소.”
당진철은 진심으로 그리되길 기원했으나 이뤄지지 않으리라 봤다. 은원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무림인들이다.
세가 내에 일어난 휘하 무사들의 살인을 가주가 넘어가주는 무림세가는 없다. 적어도 사파가 아닌 정파 내에서는 말이다.
파팟.
수호가 고양이로 변해 조용히 담을 탔다.
“허, 허장성세라니. 대협께서는 계략에도 밝으시구나.”
몰래 빠져나가야 혹시라도 수호가 있는 줄 알고 적이 기습하지 않으리라.
*문씨세가주 집무실.
“뭐라?”
“…종명, 이수, 당산, 상무가 당했습니다. 넷이 한 번에 덤볐는데 모두 일초지적이 못되었다 합니다.”
모두 일류고수들이다.
내당의 당을 하나씩 이끌고 있는 고수들도 있고, 양검단 단원들도 있다.
“……당장 양검단을 소집하라.”
“아버님. 신중을 기하셔야 합니다.”
“나서지 말라! 내 자식 같은 녀석들이 죽었다! 내 어찌 더 참으란 말이냐!”
문상길의 진짜 아들 문주산이 읍했다.
“나흘이면 절정고수 여섯이 당도합니다. 아니, 이틀이면 둘이 당도합니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참으소서.”
“네놈은 자식 복수도 남의 손에 맡긴단 말이더냐?”
그 대상이 자식 복수는커녕 자식의 은인이지만 문주산은 아비를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일류고수들을 하수 대하듯 하는 괴물이다.
“예, 확실히 놈의 목을 칠 수 있다면 이틀이 괴롭겠습니까? 나흘, 열흘을 기다려서라도 놈을 죽일 수 있다면 그리할 것입니다.”
“…….”
“천한 놈 하나 잡는데 아버지까지 나서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노여움을 조금만 거두어 주십시오.”
문상길이 속으로 대견해하며 분한 듯 테이블을 내려쳤다. 자신 또한 절정고수이긴 하나 일류고수 넷의 합격을 받아 단번에 이길 정도의 실력은 아니다.
‘최소 초절정.’
그리 상정하는 게 맞다.
적어도 절정고수 다섯은 있어야 놈을 잡을 만하지 않은가? 거기에 양검단의 일류고수 50인까지 더해 놈을 포위하면 반드시 목을 칠 수 있으리라.
“전서구를 띄워라. 놈의 목에 천금의 상금을 건다 일러라.”
“예, 아버지.”
무거운 분노가 휩쓸었던 회의가 결론 났다.
“냐아.”
“음?”
고양이 울음이 들리더니 대들보에서 웬 고양이 하나가 뚝 떨어져 내렸다.
“와, 내 목에 돈을 걸어?”
떨어진 건 고양이인데, 그 입에서 익숙한 건방짐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