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43)
144화 보약
“마, 말도 안 돼.”
“뭐가 말이 안 돼죠?”
“일본을 멸망하게 두자는 겁니까?”
“제가요?”
미소가 희게 웃었다.
“전 어떤 것도 관여하지 않아요. 그저 망하길 기다린다는 거죠.”
“도울 수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왜요?”
“예?”
“일본에 쫓기고 있잖아요. 목숨을 노리는 그 상황에서도 왜 일본을 돕겠다는 거죠?”
“그야, 국민들은 잘못이 없지 않습니까? 무고한 희생은 막아야……. 아니, 언질은 주어야…….”
“아키코 씨.”
김미소는 처음으로 미소를 거두었다.
급변한 분위기에 아키코가 움츠러들었다.
“네.”
“인도주의적 정신 좋아요. 대격변 전에 혹 다른 나라의 전쟁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
“환경보호 같은 거 하셨나요?”
“아니요.”
“그럼 아프리카에서 굶어죽는 사람들한테 관심은 가져 봤나요?”
“…….”
김미소가 다시 미소 지었다.
“사람 참 간사하죠? 먼 나라 이야기라 안 와 닿나요? 그럼, 가까운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생각해 봤나요?”
대격변 이전 10년.
무고한 희생은 어디에나 있어 왔다.
대격변 이전, 동아시아는 긴장 상태의 주변국 분위기와는 다르게 전쟁과 먼 삶을 살아왔다.
그에 반해 중동지역은 내전으로 하루에도 수십 명이 죽어 나가는 전쟁터.
비만이 사회 문제가 되는 국가가 있는 반면, 하루 끼니가 없어 굶어죽는 이들이 있는 나라도 있었다.
“아키코 씨는, 입장을 분명히 하세요.”
“…….”
“일본 국민을 위해 본인을 희생해도 좋아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본인 걱정부터 하세요.”
김미소는 아직 그녀를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방금 대답이 조금 그녀를 신뢰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만약 일본을 열렬히 욕하며 복수심을 불태웠다면 믿지 않았을 거다.
‘여려.’
착한지는 모르겠으나, 강단 있어 보이진 못하는 모습이다.
사람이 모든 것에 완벽할 필요는 없다. 서로 보완하는 게 사회 아니겠는가.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사과하면서도 여전히 어두운 그녀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가족이 있군요.”
“……예.”
김미소는 검지에 낀 반지를 매만졌다.
깊은 고민이 있을 때 그녀도 모르게 나오는 버릇.
“충성심을 보여 보세요. 우리 사장님이 또 이런 데 열정적이라, 가족들을 모셔 올지도 몰라요.”
“저, 정말입니까?”
본인 목숨 구걸하러 온 처지에 가족들까지 어찌 부탁한단 말인가?
아키코의 눈에 맺힌 희망은 진실된 것이다.
“당연하죠. 부하 복수하러 무림맹도 박살 내신 분인데.”
“……?”
아키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신없이 도망쳐 와 아직 듣지 못한 소식이다.
언론에 노출된 정보는 박수호가 도쿄 포탈을 통해 구천 행성에 다녀왔다는 정도.
“설마 그것 때문에……!“
“네, 그러니 진심으로 한번 따라 보세요.”
죽은 눈빛이던 아키코의 눈동자에 빛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미소는 살풋 웃었다.
“그럼 일단 그 감옥선 위치랑 명단부터 이야기할까요?”
애초에 부정확해져버린 미래 일기에 기댈 생각 따위 없다.
인재 수집, 아니 약탈이 먼저다.
감옥에 있다 하여 꼭 죄인은 아니다. 정부에 반하는 자들일 확률이 높은 것.
그리고 정부에 반감을 가졌을수록 섭외하기 쉽다.
*슈아아악.
매가 날았다.
“흠, 전보다 훨씬 편하네요.”
동수가 입은 조끼형 배틀슈트는 어깨에 손잡이 같은 게 달려 있었다.
어깨 뽕이 귀까지 치솟은 모습이라 미관상 별로지만 기능적으론 아주 만족스러웠다.
더 이상 매로 변신한 수호에게 뒷목이 잡혀 가는 일은 없으니까.
“야, 저긴 뭔데 애들 움막 짓고 사냐?”
“저거 고블린 마을 같은데요?”
“이야, 바글바글하네.”
거대한 매와, 그 발톱에 낚아채여 날아가는 인간의 대화는 지극히 여상스러웠다.
“이제 사냥터 수준이 아니네.”
“그렇죠. 필드가 아니라 전쟁터죠.”
고블린들은 더 이상 삼삼오오 모여 약탈자 행세를 하지 않았다.
강한 개체가 나오면 그를 중심으로 뭉쳐 세력을 일구고 마을을 만들었다. 주변 짐승과 다른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번식했다.
던전 브레이크를 통한 몬스터 증가와 맞물려 자연번식으로 늘어난 몬스터들도 다수.
“와, 고블린이 오크도 잡네.”
“그렇네.”
필드의 몬스터들이 똘똘 뭉쳐 오직 인류만을 적으로 삼았다면, 지금의 인류는 화력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군수물자를 비축하며 도시 주변만 청소하는 데는 몬스터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필드에 대한 정복이나 욕심이 없으면 몬스터들끼리 알아서 싸운다.
새로운 던전이 터져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면, 이미 터전을 잡은 몬스터 무리와 전쟁이 일어난다.
총알 한 발 쏘지 않고 몬스터로 몬스터를 잡는 이이제이의 계책.
물론 군수물자 조달의 어려움으로 긴축에 나서서 알면서도 방관하는 이유가 크지만, 어쨌든 그들끼리 서로 적대적이란 건 인류 전체에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와, 형님. 쟤들 그래도 한 번씩 청소 해 주셔야겠는데요.”
“잘 살고 있는데 왜?”
“7성 보스 떠 봐요. 죄다 군대로 몰려들 텐데……. 어우.”
7성 던전 브레이크를 무조건 막아야 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던전이 터지면 보스 몬스터가 문제가 아니다.
던전마다 하나 있는 군주 몬스터가 나온다.
종에 상관없이 몬스터들을 한데 모아 부리는 존재들.
얼마 전 평양 던전 브레이크 때 등장한 뱀파이어 군주가 그런 경우다.
오크, 고블린, 오우거 할 것 없이 다양한 몬스터들에 대한 지배력을 발휘하며 군대로 엮어 남하하지 않았나.
“그럼 더 놔둬야지.”
“왜요?”
“알아서 몹 몰아서 오는데 왜 굳이 미리 청소하냐? 죄다 불바다로 만들어? 나무는 네가 심냐?”
“아하!”
매가 부리를 부딪혔다.
“쯧쯧, 애가 왜 그리 삭막하냐. 잘 살고 있는 애들 죽이려고 하고.”
“아니, 형님이 그런 말 하시면 안 되죠.”
동수가 고개를 들어 매를 올려다봤다.
마치 해괴한 생물을 보듯이.
“더불어 사는 세상 아니냐? 사냥에 미친놈도 아니고, 적당히 필요할 때만 하면 되지.”
“와아.”
이 형님이 갑자기 약이라도 거하게 하셨나.
하루아침에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나?
“아니, 무슨 일 있으셨어요?”
“뭔일?”
“형님이 그런 말 하시니까 안 어울리잖아요.”
“너, 라면 만들 수 있냐?”
갑자기 라면?
“내가 끓이는 건 해도 만드는 건 못해.”
매의 표정이 세상 다 산 늙은이 표정이었다.
동수는 분명 그렇게 느꼈다.
“그냥 사는 게 문제가 아냐. 더불어 사는 거지.”
생존만이 문제라면 수호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홀로 존재하며 1000년이 넘게 생존했으니까.
지구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이 그립고, 문명이 그리워서다.
여태처럼 제 식구만 챙겨서는 안 된다.
야생의 사람만 남을 뿐이다.
문명사회는 인류 그 자체다.
수호가 원한 건 문명인이지, 유인원으로서의 인간이 아닐 뿐이다.
“아 라면 이야기하니까 먹고 싶네.”
“그러게요. 엇, 저기 있는 거 같은데요?”
지면을 훑던 동수가 한쪽을 가리켰다.
당진철과 건우가 한 무리의 고블린과 대치하고 있었다.
*당진철은 엄숙한 얼굴로 건우를 마주보고 있었다.
“이 사부가 얼마 전 절정 단계에 입문하고 큰 깨달음이 있었다.”
역사의 축복으로 내공이 크게 올랐다.
덩달아 새로운 경지에 오르며 무공에 대한 이해도도 대폭 올랐다.
일류고수와 절정고수의 가장 큰 차이는 내력의 형태에 있었다.
간단한 예로 일류고수가 검기의 단계라면 절정고수는 검강의 발현이 가능한 경지다.
“본래 사부의 비뢰간지 성취는 겨우 7성이었으나, 이번에 10성 대성하였다. 그 맛을 조금 보여주마.”
아직 건우에겐 요원한 단계지만 상승무공을 견식하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되는 법이다.
“비뢰간지는 비도술일 뿐이라 일격필살의 소수의 상대를 상대하는 법이나, 대성의 경지에 오르면 그것은 틀린 말이 된다.”
당진철은 비도 하나를 뽑아 일직선으로 선 나무를 겨누었다.
“본디 방해물 뒤의 적을 공격하는 법의 기본은 이것이다.”
쇄애애액.
당진철의 손에서 쏘아진 비도가 활처럼 휘어져 앞의 나무를 지나 뒤의 나무에 틀어박혔다. 검기를 실어 날린 비도는 칼자루가 전부 박힐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와아!”
전에도 본 적 있는 시연이지만 건우는 또 환호해 주었다. 그 반응이 사부의 마음을 기쁘게 함을 아는 것이다.
“후후, 하지만 이제 이것 또한 가능하지.”
비뢰간지 10식.
당진천이 하늘로 휙 던진 비도가 어느 순간 꺾여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손바닥 한 마디의 비도는 강기를 머금고 있어 뒷나무에 내리꽂히며 굉음을 냈다.
콰아앙!
마치 번개라도 맞은 듯 나무가 쩍 갈라진 모습에 건우가 진심으로 환호했다.
“와! 대단해요.”
“후후, 언젠가는 너도 가능한 경지니라.”
제자의 공부를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의 무공 자랑인 것 같지만 건우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이 배우게 될 것이 아닌가?
“자, 일단 비도를 다루는 네 재능이 충분하니 이제 움직이는 표적을 맞히는 연습을 해 보자꾸나.”
“네!”
박건우의 손재주는 상상 이상이었다.
표적지에 원을 그려 비도를 던지면 백발백중 중앙에서 한 치 사이 공간에 전부 맞출 정도로 재주가 좋았다.
재능이 이러하니 당진철로서는 더 탐나는 인재가 아닐 수 없었다.
“자, 따라오너라.”
슈슈슉.
당진철이 조용히 보법을 밟자 건우가 따라 갔다.
두 사람이 움직이는데 풀벌레가 지나가는 정도의 소리만 남을 뿐이었다.
무공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성장이 남다르다. 박건우는 이미 당진철의 모든 것을 천천히 흡수하는 중이다.
무공은 물론 무인으로서의 자세, 평소 마음가짐까지.
[나는 숨어 있을 테니 저 두 놈 중 하나를 먼저 맞추고, 남은 놈을 맞추어 보아라.] [네, 사부.]10년의 내력만 있어도 전음이 가능하다.
방법을 조금 가르쳐 준 것만으로도 건우는 금방 터득해냈다.
쐐애애액!
아직 비도에 검기를 실을 단계는 아니지만 내력 운용으로 강화된 신체는 어른이 던진 정도의 힘은 내었다.
콱!
고블린의 짧은 목을 노리고 던진 비도가 정확히 틀어박혔다.
“케에엑!”
남은 한 마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건우를 발견하고는 창을 쥐고 뛰어왔다.
어린 인간 따위는 충분히 해치울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
악다구니를 쓰고 달려드는 고블린을 보며, 나무 뒤에 숨은 당진철은 조언을 해주려다 말았다.
‘부동심이…….’
긴장하지 말고 잘 처리하라 말해주려 했지만, 긴장은커녕 비도를 쥐고 신중하고 기다리고 있는 건우의 얼굴은 한없이 밝았다.
쐐애액.
기회를 노리다 던져진 비도가 고블린의 심장에 박혔다.
“퀘엑!”
놈은 치명적 상처에도 더 나아가 창을 내지르려 했다.
“음.”
하는 수 없이 비도 하나를 더 쥐고 움직임이 둔해진 놈의 창을 쳐내고 목을 스쳤다.
촤아악!
피분수를 뿌리며 쓰러진 고블린을 보는 건우의 눈은 침착하기만 했다. 외려 동요하는 것은 당진철.
‘당가의 맥을 잇는다면 저 아이뿐이다.’
완벽하다.
무공에 대한 재능.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
침착하게 마무리하는 독심까지.
샤아아아 탁!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동수가 히죽 웃었다.
“이야, 우리 건우 잘하네.”
“아니에요. 전 아직 한참 부족해요.”
슈우우우욱. 탓.
뒤이어 착지한 매가 사람으로 변신하며 삼촌이 되었다.
“넌 아직 어리니 조급할 필요가 없어.”
수호도 저 나이에 저만한 실력은 없었다. 그의 강함은 세월에 기반하니까.
“하지만 분한걸요. 제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비도 둘에 처치할 수 있었어요. 마지막 수는 필요도 없었을 거예요.”
“…….”
당진철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에 대한 향상심까지 완벽하구나.’
한동수는 경악했다.
‘아니, 그 귀엽던 애가…….’
박수호는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덜 자라 그런지 약하긴 약하지.’
몸이 덜 자란 건 세월밖에 어찌 해볼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 작은 몸이라도 강화해줄 내력은 다른 이야기.
“약이라도 한 제 먹을래?”
강해지고 싶은 조카를 위해 못해줄 게 무엇인가?
영약이라면 인벤토리에 한 가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