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52)
153화 혈마신교?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공도는 무너지고 깨져 형편없이 변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산짐승들이나 그곳에 새로 자리잡은 몬스터 무리에게는 훌륭한 도로가 되어줬다.
“점점 산세가 험해지는 것을 보니, 이 길이 분명 혈교로 향하는 길일게다.”
가파른 산세가 이어지고 주변에 폐허가 된 민가들이 하나둘 늘어선 것이 으시시함을 더했다.
관리한 지 꽤 된 길은 이미 엉망이고, 짐승인지 몬스터인지 모를 놈들의 백골이 군데군데 방치되어 있었다.
혈교의 교인들이 부러 위장한 것인지, 아예 관리하지 않은 것인지 모르지만 은폐하기 좋아 보였다.
지세를 살펴보니 이 산만 넘으면 딱 은신하기 좋은 터다.
함께 걷던 아이가 폐가에 걸린 글을 보고 지나가듯 읽었다.
“영수펜션.”
“응? 뭐라 했느냐?”
“저기 그리 적혀 있어요.”
“옳거니, 아비에게 글을 배웠었구나.”
“네에.”
절맥을 타고난 이들이 명이 짧은 만큼 천재 아닌 아이가 없다더니, 사질 또한 그와 같은 모양이다.
7살 나이에 비해 조숙한 것이야 여태 봐왔으니 적응이 되었지만, 아비를 떠날 때 나이가 고작 다섯인데 그때까지 배운 것만으로도 글을 깨쳤을 줄은 몰랐다.
“말도 아느냐?”
“네에.”
“그런데 어찌 아는체를 하지 않았느냐?”
“혈마가 난 지구의 말인지라 혹, 문파에 해가 될까 하여…….”
“어이쿠.”
태사신니가 이마를 짚었다.
이 어린것은 마음 고생을 혼자 하는 버릇이 있다.
혹여 자신으로 인해 아미파와 혈교가 연관지어질까 저어해 말과 글을 알고도 눈을 감고 입을 닫았다.
“그럼 너는 어제 연회 때 하는 말들을 다 이해했겠구나.”
“제가 아둔하여 모두를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가 아비와 헤어진 게 5살 때다.
그때까지 대화 상대는 모두 아비뿐이었으니 습득한 단어도 한정적이었으리라.
태사신니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덕에, 지구인과 만나도 괜한 오해를 쌓을 일은 없겠구나.”
“사숙께서는 저만 믿으세요.”
눈치가 빠른 아이다.
괜히 가라앉는 분위기를 다잡으려는 듯 아까의 겸양은 어디가고 당돌한 그녀의 말에, 태사신니가 부드럽게 미소지어주었다.
“어서 가자꾸나. 자, 손을 잡으렴.”
이토록 사랑스럽고 영특한 아이를 사질로 연을 맺은 것이 안타까웠다. 비록 사매의 제자이긴 하나,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주어도 아깝지 않을 아이다.
제자가 없는 태사신니는 마음속으로 거의 사질인 정심을 진정한 후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파계한다 하더라도 말이야.’
파계하여 속세로 돌아가고자 하더라도 후인으로 여기고 모든 걸 전수해주리라.
슈슈슉.
아직 신법 수련이 부족한 정심의 손을 잡고 나뭇 가지를 가볍게 밟아 몇 번 질주하니 순식간에 산 하나를 넘어 버렸다.
“으음.”
산 정상에 올라 그 아래를 본 태사신니는 신음을 삼켰다.
천혜의 요새와 같은 자연환경에 진법으로 위장하였으리라 여긴 혈마의 본산은 그 상상과는 꽤 다른 모습이었다.
“취이익.”
산 아래 계곡에 자리잡은 것은 리자드맨 무리였다. 그것도 꽤 수를 불린 무리라 어디에도 인적은 없었다.
“괴물들이 득실거리는구나.”
아무리 진법의 수준이 높다 한들 공간을 왜곡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없는 공간을 창출해 낼 수는 없다.
리저드맨들이 계곡에 저리 활보하고 다니니, 저곳은 혈교의 본거지가 아니다.
‘어디 보자.’
태사신니는 실망을 감추고, 가장 높은 산에 오른 김에 주위를 휘 둘러보았다.
‘혈교는 어디 있단 말인가?’
마땅히 수상한 곳이 없어 살펴보고 있는데 남쪽에서 거대한 괴생명체가 날아왔다.
“음?”
내공을 일으켜 안력을 키워보니 거대한 문어가 축 늘어져 무언가에 잡혀오고 있었다.
팔다리가 붙었음에도 그 뒤에 날개가 붙은 것이 마몬비족과 그 생김새가 흡사했다.
다만 그것보다 더 덩치가 크고 날개가 월등히 컸으며 뿔이 두 개나 되었다.
“마귀가 있다면 딱 저렇겠구나.”
지구는 저런 놈들이 돌아다니는 행성이었구나.
“괴이하구나, 괴이해.”
그 모습이 심히 위협적인 마몬족과는 또 달라, 그 특징들을 제외하면 생김새는 잘생긴 미남자 그대로인지라 더 괴이했다.
“아마 저 마귀가 우리를 혈교로 인도해줄 듯하구나.”
“저렇게 이상하게 생긴 괴물은 처음 봐요.”
아버지는 저런 괴물들 틈에 있단 말인가?
“꽉 잡아라. 저놈을 쫓아가 보자꾸나.”
“네, 사숙.”
두 발로 달려 날개 달린 짐승을 어찌 쫓겠냐만은, 워낙 덩치 큰 녀석을 들고 가는지라 속도가 느린 데다 눈에도 잘 띄어 멀찍이 가도 이정표 역할 정도는 충분히 했다.
*비행은 가끔 나를 사색에 잠기게 한다.
매로 변해 하늘을 가를 때도 좋지만, 용인으로 변해 무거운 짐을 나르는 것도 꽤 사람의 긴장을 풀게 만들었다.
아니, 이것은 자아의 많은 지분을 확보한 비룡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난 누구, 여긴 어디.’
수호의 특수 스탯은 둘.
‘야성’과 ‘조화’
이것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개성이자 새로운 시대의 정의법이다.
신체능력을 나타내는 근력이나 체력, 회복력 따위의 기본 스탯 외에 새롭게 눈뜬 초능력과 연관 있다고 해야 할까?
특수 스탯은 각성한 인류를 더욱 개성화해 나타내 주었다.
차원산업시대.
대격변의 시대.
사람의 개성이나 재능, 상상력, 혹은 트라우마까지도 수치로 나타내어 주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스스로 진화했다고 여겼지만 그것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의 공통된 현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만 늙지 않아.’
다른 이들과 자신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삶의 방식이 비슷한 사람들은 비슷한 특수 스탯을, 험난하고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가장 강렬한 기억이나 행동이 영향을 미쳐 발현된다.
수호가 각성한 지는 천 년도 넘었다.
그 긴 시간이 삶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야생동물들과 어울린 삶이었고, 대자연과 하나된 삶이었다.
긴 세월을 보낸…….
그 익숙함을 벗어나 태초로 돌아왔다.
수호가 태어난 행성, 지구.
우습게도 돌아오고 나서야 정식으로 각성했다.
‘등록이라고 해야 하나.’
그전까진 스탯만 오르다가 지구로 와 처음으로 레벨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스킬이 생겼다.
옛날엔 자신의 이 각성이 불노불사의 원인이 아닐까 싶었지만, 모든 지구인이 마음만 먹으면 각성자가 되고 여전히 늙어가는 것에 비해 자신은 전혀 체감되는 것이 없었다.
‘조금도.’
세월, 정확히 시간이 비껴간 듯 변함이 없다.
변하는 게 있다면 레벨과 스탯 스킬추가 정도?
“키아.”
입으로 감탄성을 뱉었는데 괴상한 소리가 나왔다.
말이 좋아 용인이지, 거의 인간의 탈을 쓴 비룡 수준이다.
‘아, 설마?’
사람은 태어난 이후 세월을 먹고 나이를 먹으며 죽음이란 종착지를 향해 다가간다.
세월이 비껴간 나의 삶은 설마 레벨의 끝이 아닐까?
’99? 아니면 100?’
지금 수호의 레벨이 59다.
60이면 S등급이 되며 일류고수.
90이 되면 지구는 아직 명명법조차 없는, 구천 행성으로 따지면 화경의 고수.
‘현경이 끝일까?’
100이 되어 현경의 고수가 삶의 종착지일까?
현경의 고수는 구천 행성에서 오직 한 명에게만 허락된 자리라 하였다.
지구인인 수호가 의도치 않게 심검부터 얻었으나 아직 레벨이 되지 않아 봉인된 상태.
후우우웅, 후우우웅.
이런 저런 생각하다 보니 벌써 수호시티가 코앞이다. 미리 도착한 수송 드론에서 김미소와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내리세요!”
내성으로 가려던 방향을 틀어 외성 공터에 거대한 문어를 내렸다.
“와! 정말 크다.”
“이게 대한해협에 있었다고?”
“허허, 엄청 나구만.”
길드 사람들이 몰려나와 대형문어의 엄청난 크기를 감탄하며 구경했다. 외성은 던전 공략 때문에 외부의 사람들에게도 공개되어 있기에, 몰려온 기자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모두가 문어를 주목할 때 동수는 수호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와, 형님. 무슨 서큐버스가 따로 없네요.”
그 옆에 있던 명진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시주, 서큐버스가 아니라 인큐버스라 하오.”
“음? 아, 그렇네. 남자니까.”
동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명진을 보았다.
“스님이 그런 것도 아세요?”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귀 잡는데 동서양이 어딨겠습니까.”
스님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던 동수가 흠칫 놀랐다. 수호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싸우자. 나랑 싸우자.”
“혀, 형님?”
“아, 아니야. 그냥 패고 싶어서 그런 거야. 꼭 싸우려는 건 아니고.”
“예?”
“한 대만 때려 보……. 으읍.”
수호는 큰 날개를 퍼덕이다가 검은 연기로 화해 와이번과 인간이 분리되었다.
수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비룡을 노려봤다.
“와, 이거 순둥이처럼 생겨서 호전적이네.”
동수와 명진이 움찔했다.
어느 포인트가 순둥이처럼 생긴 걸까?
“레벨 업 전에 다신 변신 안 한다. 절루 가.”
“키아악.”
비룡이 슬퍼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수호가 축 늘어진 문어 시체를 보다가, 마침 근처에 구경 온 음식점 사장들에게 말했다.
“이거 요리해요. 아주 지지고 볶고 다 먹을 테니까.”
“헉, 먹으시게요?”
“식용으로 먹는 몬스터도 있긴 하지만…….”
“처음 보는 종인데 검사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먹어 보면 알겠지. 회부터 하나 떠 줘 봐요. 난 좀 쉴 테니까.”
수호는 매로 변해 휙 날아가버렸다.
그가 도착한 곳은 본사 꼭대기의 사장실이 아닌, 야수 쉼터의 한가운데.
다른 나무들보다 두 배는 더 큰 대장나무가 있는 곳이다.
팟, 파팟.
그 나무에만 유독 나무 정령들이 많이 들러붙어 저절로 호흡하고 있었다.
“너도 여기 있었냐?”
“크르륵.”
삐진 비룡이 고개를 돌리자 수호가 피식했다.
“내가 곧 레벨 올려서 변신해 줄게.”
“크르?”
“그래. 기분 풀고, 문어도 먹고 와.”
“크르르, 크륵!”
비룡이 한달음에 날아갔고 수호가 웃었다.
“저 단순한 놈.”
서로 자아를 공유해 보니 좀 더 비룡을 알게 됐다. 녀석은 덩치에 비해 뇌가 작다. 생각보다 더 단순하고 호전적이며 욕구에 충실한 녀석이다.
그 단순함이 수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해 조금의 자아성찰 시간을 보냈다.
“너도 정체가 뭐냐?”
수호는 대장나무의 커다란 나무 몸통에 손을 대고 눈을 감았다.
청량한 기운이 몸을 훑고 가는 기분.
마치, 증명의 비석처럼…….
“하아.”
손을 뗀 수호가 나무 아래 만들어 둔 평상에 털썩 쓰러져 팔베개하고 누웠다.
여기만 오면 마음이 편하고 좋다.
그래서일까, 잠도 여기서 잔다.
수호의 영향인지, 대장나무의 신묘한 효과 때문인지 야수들도 여기만은 각별히 지킨다.
때때로 몰려들어 쉬기도 하고.
수호는 눈 감고 조용히 휴식했다.
*태사신니는 훠이 둘러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과연 혈교의 본산이로구나. 틈이 없다.”
키 큰 나무들이 빼곡히 자란 자연의 조화도 놀라운데, 그 위에 사는 원숭이들이 사납기 그지없다.
그녀의 신법으로 드넓은 해자를 뛰어 넘자면 못할 것도 없건만, 성벽처럼 세워진 나무 위의 원숭이들이 돌을 던져대니 몰래 접근하긴 글렀다.
“우리도 저기로 들어가요.”
“네가 지구의 말을 하는 게 이토록 도움이 되는구나.”
“뭘요.”
태사신니와 정심은 사람들이 길게 줄서 있는 사람들 뒤로 가 섰다.
수호시티 남문엔 때 아닌 외부 관광객으로 들끓었는데, 그 사이에는 외국인들도 드문드문 모습을 보였다.
“마공의 기운은 느껴지지 아니한데……. 이 사람들은 무슨 영문으로 혈교를 찾은 게냐?”
“제가 한번 물어볼까요?”
“그래 주련?”
7살 아미파 제자 정심이 앞에 줄을 선 정장의 남자를 툭툭 쳤다.
“안녕하세요.”
“Oh, what happen?”
“…….”
하필.
정심의 이마에 땀이 한 방울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