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72)
173화 수호기사 (1)
확실히 포텐 있는 인재들이 모여서 그런지, 착실히 굴리니 알아서 자기들의 역할을 찾아 합을 맞춰 갔다.
개성 있는 각성자들은 종종 불화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곳에는 그런 이들도 없다.
아니, 홍세희를 중심으로 최수영이 감지 능력을 펼치고 직함이 가장 높은 박준호가 권위를 내려놓으니 팀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각성 초능의 특성상 몬스터 레이더나 다름없는 최수영이 전략을 수립하고 명령을 전달하는 빈도가 높았다.
“7시 방향 다섯 마리 도주.”
파파팟!
하나미가 질주했다.
그녀의 초능 유령걸음은 짧은 시간만은 구천 행성 무인들의 신법을 능가했다.
퍼퍽! 퍽!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이 정확히 소의 목줄을 베었다.
“무어어어.”
마지막 소의 비명을 끝으로 전장이 조용해졌다.
“이제 잘하네.”
수호가 박수치며 나타나 말하자 한동수가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형님이 죄다 막아 주니까 가능한 거죠.”
그들이 상대한 건 고작 300마리 규모의 소떼.
다른 방위에서 돌격해 오는 소떼는 수호가 이미 정리를 끝낸 상황이다.
“아키코.”
수호의 뒤에 시립해 있던 아키코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너도 합류해.”
“넵!”
S등급이다.
그토록 염원하던 각성자가 되었다.
“이야, 환영해요.”
한동수가 두 팔 벌려 환영했다.
팀에 미녀들이 많은 것도 좋고, 착실한 전력의 보강도 좋다.
“그럼 이제 슬슬 야수들이나 키워 볼까.”
요 며칠 바짝 사냥해 그간 A등급에 머물러 있던 용병들을 모조리 S등급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직 A급에 불과한 장순필이나 박건우, 장취아는 상관없다. 이들은 저들과 합류하지 않을 거다.
그저 스스로의 무력 향상을 위해 사냥에 나서서 경험치를 주워먹는 것뿐이다.
휘리리릭.
수호가 아직 레벨이 A급에 불과한 야수들과 그들의 사냥을 도울 SS급 야수들 몇을 소환해 사방에 풀어놓았다.
“크르르.”
야수들이 날뛰면 이 일대는 안전해진다.
“동수야 소나 한 마리 걸어라.”
“넵.”
양운기가 눈치 빠르게 달라붙어 소 한 마리를 해체했다. 초원에서 구하기 힘든 장작 대신 박용필이 화염마법을 일으켜 소고기를 구웠다.
이미 며칠이나 반복해 익숙한 소고기 파티가 벌어졌고, 일본에서 구출되어 합류한 인원들이 이제야 제대로 인사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한바탕 합을 맞춰 사냥을 한 후라 그런지 서로 마음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야, 형님 고생 엄청 많으셨겠네요.”
“말도 마. 일본은 엘리트 팀을 위해 서포트하는 팀들의 희생이 당연한 분위기라…….”
히로 팀의 정예 20인을 위해 사냥을 도우며 경험치를 양보하는 이들이 200명이 넘는다.
그 수많은 2진 공격대 중의 하나가 그들이 속해 있던 팀.
“일본놈들이 겉으론 안 그런 척해도 견제가 얼마나 심한지. 어휴.”
박용필을 필두로 저마다 히로 팀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조용하던 김군모가 나서 물었다.
“근데 여긴 원래 이렇게 사냥합니까?”
“에이, 형님 말 놓으세요. 평소엔 그냥 애들 멱만 따죠.”
“……?”
새싹반 일상이 평소 모습이라고?
“에이, 저희들이 뭐 용빼는 재주가 있어서 S급 찍었겠어요. 수호 형님이 다 도와주셨으니까 그렇지.”
동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기 고기에 후추 치는 스님하고 저하고 수호 형님하고, 몇 달 전만 해도 F등급이었어요.”
“…….”
이제는 언론 기사를 통해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지금 모습만 보면 기억 속에서 잊게 된다.
“그냥 성장부터 했고, 이제야 훈련하는 거죠. 이렇게 합 맞춘 지 얼마 안 됐어요.”
보통은 저레벨 던전부터 시작해 차츰 난이도를 높이지만 이들은 7성 던전에서 훈련을 하는 게 특이할 뿐이다.
“얼른 먹어 두세요. 또 움직여야 하니까.”
7성 던전의 넓이는 어마어마하다.
이 초원이 끝까지 이어질 것 같지만, 북쪽으로 쭉 가다 보면 큰 강이 나온다.
그 강 주변이 카우족의 진짜 영역.
소떼는 그저 그들이 기르는 가축일 뿐이다.
“카우족 영역이다. 다들 준비해.”
“넵.”
박용필이 조금 친해졌다고 한동수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제 본격적인 사냥이야?”
“에이, 형님도 참. 여기 7성 던전이에요. 카우족이 메인인데 저희가 어떻게 사냥해요. 얘들 존나 쎄요.”
“……?”
여태 한 건 뭐란 말인가?
“이제 훈련 끝이고, 본격적으로 경험치 먹는 거죠.”
지평선 너머에 카우족의 성체가 드문드문 보이자 다들 긴장하긴커녕 무기를 하나씩 바꿔들기 시작했다.
절반이 도끼, 절반이 긴 칼이다.
박용필은 6서클에 오른 화염마법을 연구하거나 연습할 시간도 없이 아공간에서 칼을 꺼내들었다.
“에이, 형님. 그건 짧아서 못 써요.”
동수는 자신의 여분 칼을 꺼내 주었다.
뭉툭한 칼 머리에 무게중심이 거의 대부분 가 있어, 누가 보더라도 찌르기보다는 베기에 특화된 검이다.
그것도 장작을 쪼갤 때나 유리할 것 같은 무게 배분이었으나, 칼날은 또 얼마나 관리했는지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다.
“어지간하면 도끼로 냅다 후드려 까는 게 좋은데, 칼 가는 게 좀 귀찮아서 그렇지 이게 힘도 덜 들이고 좋아요.”
그건 그렇다고 치고, 박용필은 묵직한 검을 받아들고 혀를 내둘렀다.
“이거 양손검이야?”
대검이라 하기에는 짧고, 한손검이라 하기에는 너무 무겁다.
“뭐, 쓰기 나름 아닙니까?”
동수가 말과 함께 턱짓으로 가리키자, 자신이 들고 있는 검과 같은 모양의 검을 쌍검처럼 들고 있는 서민수가 보였다.
주 무기도 쌍검이다 보니 ‘농사’ 지을 때도 단련할 겸 쌍검을 이용한다.
“서 팀장 복귀하더니 아주 괴물이라니까요.”
“카우족은 어떻게 생겼어?”
“애들이 말 그대로 소인데. 여태 잡은 게 흑우잖아요?”
뿔 달린 소들은 전부 검은 털을 지니고 있었다.
“얘들은 흰 반점 같은 게 막 있는데, 얼핏 보면 젖소같이 생겼어요. 팔다리도 길고 이족보행에 창을 씁니다.”
“이족보행?”
“도마뱀도 걸어다니는 시대에 너무 놀라시네. 어쨌든 놈들 창이 철로 만들어졌는데 이게 이 던전 주 소득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지구의 물건은 포탈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래서 던전에서 구해지는 모든 소재는 귀하다.
그중 철의 가치야 말해 무엇하랴.
“자, 다들 준비.”
“넵!”
수호의 말에 다들 잡담을 멈췄다.
묘한 분위기의 전장이다.
아까의 긴장감은 온데간데없고 소풍 가는 길 같은 설렘마저 느껴진다.
휘리릭.
수호의 조화력이 일시에 빠져나갔고,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전방으로 쏘아졌다.
후아아아앙.
회오리는 순식간에 덩치를 키우더니 카우족의 성체를 무너트렸고, 그 구성원들을 뽑아냈다.
“소 떨어진다.”
무어어어어.
하늘로 솟구친 카우족의 비명이 절정에 다다들 때 토네이도가 사라졌다.
“갑시다. 소 떨어집니다.”
“우오!”
퍼퍽, 퍽!
카우족들은 맷집도 좋고, 사지가 길어 이족보행하는 동물이다.
떨어질 때 최대한 충격을 줄여 죽음은 면했지만, 곧 저승사자들이 들이닥쳤다.
콰직!
“무어!”
“진짜 젖소같이 생겼네.”
카앙, 콰직!
몇몇 카우족들은 자신들의 쇠 창으로 막기도 했으나 부질없는 저항이었다.
“한 스무 바퀴 돌아야 하나.”
저들 모두 SS급이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삼촌, 저도 도끼 주시면 안 돼요?”
“어린놈이 꾀만 늘어서 못써. 넌 쓰던 거 써.”
“이걸론 가죽도 파고들기 어려워요.”
건우의 투정에 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자랄 날이 한창인 건우가 레벨부터 올려서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넌 무공으로 대성해야지. 무공 선생 마음에 안 들어? 믿음 안 가면 바꿔줘?”
“아녜요. 당 숙부는 믿어요.”
건우는 수호의 말에 얼른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당진철이었다면 어땠을까?
비뢰간지로 카우족을 상대할 수 없었을까?
건우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약한 소리를 했어요.”
손에 쥔 것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데 더 많은 걸 욕심냈다.
수호가 기특한 듯 건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약점을 찾아. 그리고 집요하게 노려.”
“네, 삼촌.”
파팟.
건우가 신법을 밟으며 요리조리 비도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간 레벨이 오르다 보니 A급이 되었다. 구천 행성으로 가면 이류 취급을 받을 수준.
하루 하루 성취를 더해가는 그의 비도술은 결코 하수들의 수준이 아니다.
“아들 잘 뒀어.”
“애가 삼촌을 잘 둔 거지.”
동생의 말에 수호가 피식 웃었다.
“그것도 맞고.”
슬쩍 동생의 등을 쳤다.
“애 고추 털도 안 났는데 아빠 따라잡을라.”
“칫, 걱정 마.”
거대한 참마도를 들고 달려가는 준호의 방향은 건우 곁이었다.
레벨업도 중하지만 그래도 아들이 걱정되는지 그 근처에서 사냥하는 중이었다.
“짜식.”
약하면 어떻고, 강하면 어떠하리.
약하다고 네 편, 강하면 내 편 하는 건 수호의 상식에 없다.
가족이기에 도와주고, 강한 무리를 위해 부하들을 수련시킬 뿐이다.
적어도 수호의 부재시에도 아무런 문제없이 수호시티가 지켜지도록 말이다.
구천 행성에서 싹쓸이해 온 야수 전력을 생각하면 외부의 적에 대한 위험은 어느 정도 벗어났다.
문제는 수호시 안에 던전이 발생할 경우.
이 던전은 수호의 개인 사역마인 야수들에게 기댈 수가 없다.
그렇기에 용병들을 키워야 했던 것이고, 때마침 중심이 되어 줄 홍세희의 등장이 반가운 차다.
“넌 왜 안 가?”
“저는 괜찮습니다.”
이미 SS급인 홍세희다.
기존의 길드원에게 경험치를 양보하는 그 모습에 수호가 피식 웃었다.
“너무 태평한데?”
“예?”
“너 6성에선 경험치도 못 얻잖아.”
6성 던전에서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건 60레벨대의 S등급까지뿐이다.
70레벨에 오르며 SS등급이 되면 6성 던전에서는 사냥을 하더라도 더 이상 몬스터의 차원에너지를 흡수하지 못한다.
“배려해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홍세희가 수줍게 웃었다.
수호가 어이없이 웃었다.
“뭔 소리야.”
아직도 홍세희의 레벨은 70.
한 단계도 오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길드 인간 한정으로 가장 레벨이 높다.
“SSS급이 나오면 그건 당연히 네가 돼야지.”
가장 높으니까 가장 빨리 올라야 한다.
“아.”
홍세희의 볼이 더욱 붉어졌다.
이런 배려라니.
이 무심한 듯 챙겨 주는 섬세함.
“기필코!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래.”
홍세희가 전장을 나서는 기사처럼 무릎을 꿇었다. 커다란 타워실드와 롱소드에 멋진 배틀슈트까지 어우러진 그녀의 모습은 정말 기사처럼 보였다.
파팟.
몸을 돌린 홍세희가 이내 돌진해 카우족 머리를 내리쳤다. 때마침 저 멀리서 등장한 거대한 소를 보며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희. 저놈 잡아 봐.”
“…….”
보통의 카우족보다 배는 더 큰 덩치. 거대한 핼버드.
그리고 머리에 쓴 진짜 왕관.
카우킹.
내가 잡을 수 있을까?
7성 보스몬스터를?
‘아니야!’
어지럽던 머리를 저으며 생각을 지웠다.
믿음에 대한 보답이 어찌 고민이 될 수 있으랴.
“가겠습니다.”
비장하게 달려가는 홍세희를 보며 수호가 조화력을 끌어모았다.
이번에 60레벨이 되며 해금된 드루이드 조화 스킬.
스으으으으.
조화력이 빠져 나간 만큼 하늘에 검은 기운이 몰려들었다.
파지지지지지직.
저들끼리 뭉친 에너지가 농축될 때쯤, 수호의 입이 열렸다.
“낙뢰.”
꾸구구궁!
하늘을 찢어발기는 소리와 함께 번개가 카우킹의 머리에 그대로 내리꽂혔다.
파지지직!
번개를 직격으로 맞은 카우킹은 무섭게 돌격하던 속도가 죽어 그대로 바닥에 섰다.
누렇게 변한 털과 삐죽 솟은 수염, 그리고 허옇게 떠버린 눈.
빈사상태나 다름없는 그놈의 앞에 당도한 홍세희는 울컥하는 마음을 추슬렀다.
‘날 위해 차려 주셨어.’
서컥!
그녀의 검이 카우킹의 수급을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