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98)
198화 독왕 되다
끼리리리릭.
수호함은 본래 일본에서 운용하던 이즈모급 항모다. 용도는 감옥선.
폭탄이 줄줄이 달린 작은 잠수정을 바다에 가라앉혀 탈옥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왔다.
용도에 맞게 개조되어 쇠사슬을 끌어 올릴 때 쓰는 리프트가 백 대가 넘었는데, 이는 지금 바다에 가라앉은 몬스터 잔해를 끌어올리는 훌륭한 견인장치가 되어주었다.
쿠웅.
거대한 갑각과 다르게 안에는 흐물거리는 살들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음, 먹지는 못하겠군.”
사색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살들을 유리병에 담았다.
먹고 말고, 다른 아이템의 연구 재료가 되고 말고는 연구소에서 분석을 한 이후에 결론이 내려진다.
자신은 맡은 바 소임만 다 하면 된다.
격납고에 두려니 냄새가 너무 지독해, 견인하는 족족 갑판 위로 올렸다.
운용하는 함재기라고 해봐야 기껏 수송드론이나 비룡의 착륙지 정도라 공간은 차고 넘쳤다.
“함장님. 이리 주십시오. 저희가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나로서는 모범을 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색휘는 자신과 함께 귀화해 남은 전 해군하사 테구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대구로 씨나 나나 같은 수호함 선원일 뿐입니다.”
전 일본해군 중위와 하사는 더 이상 그들의 신분이 아니다.
“어유, 그래도 함장님이신데요.”
사색휘가 함장을 맡은 건 맞지만 그들의 소속과 계급은 사실 같다.
김미소가 의도적으로 귀화 일본인들을 수호함에 모두 그대로 소속하게 했다.
직급은 모두 평사원.
아직은 인사 평가 기간일 뿐이다.
그렇다고 귀화 일본인만 있는 것은 아니고, 수호 길드 지원부서 직원들도 50명이나 있었다.
그들 모두 함선의 운용법을 배우는 등, 해상인력 확보와 귀화 일본인의 인사평가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사색휘가 함장이 된 것은 순전히 그가 함선의 모든 기능을 알고 있는 실무자여서다.
“아무튼 열심히 합시다.”
사색휘와 대구로가 의기투합해 거대 갑각 괴수의 살을 채취하고, 껍질이나 기타 표본을 분류했다.
위이이잉.
그때 갑판 위로 수송 드론 하나가 착륙했다.
“헙!”
내린 인물을 본 사색휘는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 경례를 붙였다.
“부사장님. 오셨습니까?”
“이제 군인 아니시잖아요. 편하게 하세요.”
“하잇!”
긴장 풀라는 말에도 여전히 기합이 잔뜩 들어간 사색휘에게 용무를 전했다.
“차원석은요?”
“한동수 이사께서 조금 전에 회수해서 놓고 가셨습니다.”
부랴부랴 지원들이 보관케이스를 들고 왔다.
딸깍.
케이스를 열어보니 몬스터 잔해들을 깨끗이 씻어낸 노란 광석 차원석이 모습을 보였다.
‘이걸로 한 개.’
김미소는 검지에 낀 반지를 쓰다듬다가 차원석을 짚었다.
파팟.
흔적도 없이 사라진 차원석은 반지형 아공간에 안전하게 보관되었다.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입니다.”
“후후, 계속 수고해 주세요. 전 조금 바빠서.”
“하잇!”
귀화 일본인들의 근무태도와 동향은 수호함에 파견된 지원부서 인력들에게서 꾸준히 보고받고 있었다.
지금은 대체 인력이 없어 모두 함에 머무르고 있지만, 곧 인수인계가 끝나면 수호시티로 근무지가 바뀔 것이다.
그때부터 육지근무와 해상근무를 번갈아가며 자연스럽게 수호 길드 일원으로 녹아들 터였다.
“그럼 다음에 뵙죠.”
김미소는 바쁜 몸답게 목표 물건만 회수하고 곧장 다시 드론을 타고 이동했다.
다음 목적지는 청와대.
‘아직 우리 건 필요 없어.’
이 차원석은 귀환석의 재료다.
귀환석은 아직 수호 길드에 필요치 않았다.
세계적으로 한 손에 꼽힐 U급 각성자가 수호 길드에만 무려 4명이다.
거기에 수호 길드 3개의 공격대.
박수호 그 자체의 1공격대를 제외한 2,3 공격대 수준만 해도 대한민국 1, 2위를 다툰다.
아니, 한국이 아닌 세계에서 수위를 다툴 수준이다.
박수호의 도움 없이 그들만으로 7성 던전 공략 경력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지금 공략중인 5, 6성 던전이야 크게 방심하지 않는 이상 전력 손실 없이 모두 처리 가능한 수준이다.
당장 귀환석이 급한 것도 아니고, 수호가 돌아오면 그가 가지고 있을 두 개의 차원석으로 만들면 된다.
이 차원석은 협상용으로 쓰일 것이다.
드론에 앉아 조용히 미소 짓는 김미소를 보며 비서실장 이소진이 물었다.
“그런데 진짜 군사위성을 넘길까요?”
“바로는 안 주겠지.”
“역시 어렵겠죠?”
“지금 가는 건 미끼 거는 거야.”
청와대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
지금 가는 건 어디까지나 밑밥을 까는 거다.
배고픈 고기들이 몰려오도록.
“12개 대기업들이 지금 기회를 놓치고 싶을까?”
“절대 안 놓치죠.”
아직 제대로 된 SS급 각성자도 없는 대기업들이다. 이미 수호 길드는 수십 명을 보유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게 다 엄청난 경험치 획득이 가능한 7성 던전의 공략 능력이 없어서다.
그들에겐 박수호 같은 엄청난 버스기사가 없으니까.
스스로 성장하면서도 리스크를 낮춰줄 아이템은 귀환석이 유일하다.
세계에서도 조달하기 힘든 이 귀환석을 살 수 있을까?
길드나 국가가 귀환석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타국에 팔려할까?
매물로 나올 수 있는 것은 지금 수호길드가 유일하다.
김미소는 청와대에 그저 제안을 하러 가는 길이다.
‘위성을 대가로 이것을 지불하겠다. 대한민국 각성자 전력 증대에 써 달라.’
목마른 12개 대기업들이 귀환석을 탐낼 것이고, 그들의 후원을 받는 정치인들이 날뛸 것이다.
김미소는 그저 기다리면 된다.
위성을 바치도록.
“하하, 저희 이제 하늘에도 눈 하나 생기겠네요.”
“아니지. 두 개 얻을 거야. 전화기도 돌려야지.”
“역시 부사장님은…….”
통신위성의 확보도 중요하다.
워낙에 보안이 철저해 아직까지 유튜브가 운영될 정도의 사회기반시설을 유지하고 있는 지구지만 언제 붕괴될지 알 수가 없다.
김미소는 세계가 망해도 자력으로 시스템을 갖춘 유일무이한 도시를 건설하고 싶었다.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쇼핑 목록에 불과했다.
*
청와대.
류담 대통령은 조금 전 청와대를 떠난 김미소를 떠올렸다.
아름다운 외모와 친절한 미소의 부드러운 사람이지만 속에는 능구렁이 백 마리쯤 도사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부사장 이름이 김미소라고 했던가?”
“예, 대통령님.”
“후우.”
수호 길드의 위상은 특별하다.
그리고 그 위세도 엄청나다.
이미 많은 부분 대한민국 방위 자체를 수호 길드에 기대고 있는 이상, 일정부분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위치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저들의 요구가 점점 대담해지고 있었다.
“거절하셔야 합니다.”
“거절했네.”
비서실장도 알고, 대통령도 알고 있다.
길지 않은 회담에서 대통령은 분명 거절했다.
“들어주시면 안 됩니다.”
“마음이야 그렇지.”
결국 내어 줄 것이다.
성장이 정체된 12개 대기업들은 서울을 이루는 근간이니까.
이미 그들은 대기업을 넘어선 지위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대에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을 12개로 분할통치하는 12명의 대영주나 다를 바 없다.
그들의 연합 수장인 대한민국 정부가 가진 힘은 국방부.
12개 대기업들도 감히 탐내지 않은 그 힘의 일부를 수호 길드가 요구하고 있었다.
대통령도 비서실장도 복잡한 얼굴로 정원수를 그저 멀뚱히 보고 있었다.
비서실 직원 하나가 급히 뛰어와 그들의 사색을 방해했다.
“이것 좀 보셔야겠습니다.”
비서실에서 전담으로 수호 길드와 수호시티의 동향을 체크하는 자다.
“음?”
수호 길드 채널에 다국어로 번역된 공지가 개재되었다.
차원석으로 통신위성 하나를 산다는 아주 짧은 공지.
“으음.”
이건 대놓고 자신을 압박하는 행위다.
“그 군주 사냥이라는 것, 우리 군의 힘으로도 어렵겠습니까?”
“대통령님, 송구하오나 핵잠으로도 어렵습니다.”
차라리 놈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면 쉬우련만, 하필 심해에 숨어있다.
해군 전력도 공군 전력도 놈들을 온전히 사냥해내기는 어렵다.
그렇게 사냥한다 해도 차원석이 나올 확률은 반반.
“후우.”
대통령의 한숨이 길어졌다.
*
우우우우웅.
태풍이 휘몰아친다.
이숙자는 분명 그리 느꼈다.
미친 듯한 태풍 속에 용암이 터진다.
그 들끓는 마그마가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것 같다.
비명을 지를 수도 없다.
꾹 닫혔던 그녀의 입이 열린 건, 화산이 폭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충격이 몸을 뒤흔들었을 때다.
“커흑!”
그녀의 입에서 붉은 피가 왈칵 게워져 나왔다.
“크으. 이 쌍노무새끼!”
이숙자는 당장 뒤로 홱 돌아보며 당진철을 보았다.
입술이 바짝 마르고 핏기 없는 얼굴의 그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으나 이숙자는 속지 않았다.
“이노무새끼. 늙은이 제삿날 잡으려고 아주 작정을 혔구만!”
휘이익.
평소와 같은 스매싱이었다.
또 저 밉살맞은 놈은 홱 피하겠지만, 화가 난 이숙자의 마음은 그래도 조금 풀리리라.
파팡!
그런데 그녀의 손바닥이 당진철의 등에 닿았다.
콰다탕!
놀라운 일이다.
그저 헛손질을 염두에 둔 휘두르기가 그에 등에 닿았을 때, 사람이 파리 날아가듯 해버렸다.
“으으.”
막사 한쪽에 처박혀 막사가 전부 무너져 버렸다.
“어이쿠.”
이숙자가 뒤엉킨 막사를 잡고 버둥거리자 손쉽게 찢어져 버렸다.
부우욱!
“워매, 무슨 천이 이리 약하다냐.”
사람 손으로도 찢어지는 싸구려로 막사를 만들다니.
외국놈들이 친절하기만 하지 순 도둑놈들이다.
“어매야. 우야노. 진철아!”
지금 막사 천이 중요한 게 아니다.
당진철을 급히 찾으니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자신의 손에 맞은 어깻죽지는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어깨뼈가 탈골되었는지 기이하게 꺾여 있는데도 그는 웃고 있었다.
“이 썩을 놈아! 와 안 피하고 맞아 쌌는겨!”
평소에는 미꾸라지처럼 잘만 피하던 놈이 왜.
“흐흐흐흐.”
“웃지 말어 이놈아! 아이구, 내가 사람 잡게 생겼네. 여 누구들 없소!”
다급한 이숙자의 음성이 사자후가 되어 대기를 진동했다.
번을 서던 무림맹 무사들이 황급히 다가오니 무너진 막사와 쓰러진 당진철을 안고 있는 이숙자가 보였다.
“헙!”
그들이 부랴부랴 다가오니 당진철이 손을 휘이 저었다.
“별일 아니다.”
“하, 하지만 대협의 상태가…….”
“집안일이다. 물러서라.”
“예에.”
무사들이 인사하면서 힐끗 이숙자를 보았다.
‘역시 엄청난 실력자다.’
당진철은 투쟁을 위해 그간 미친 듯이 싸워왔다. 그의 실력은 무림맹 무사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그런 고수를 저리 피떡으로 만들어 놓다니…….
“이눔새끼들 뭣들 혀! 여 사람이 죽어 가는데.”
“헙!”
이숙자의 호통에 무사들이 어쩔 줄 몰라 하자 당진철이 결국 제 발로 일어섰다.
진원진기를 반 이상 잃어 당장 쉬고 싶지만 상한 몸을 다스려야 한다.
“엄마. 최고다.”
“어서 병원에 가봐, 이눔아!”
병원보다는 역사의 증명이 필요한 때이다.
이깟 상처는 그간 마몬족들을 해치운 공적으로 단숨에 치료된다.
“후후, 자네들 나 좀 비석으로 데려 가게나.”
“네, 대협.”
얼마나 혹독하게 손을 썼으면 당진철이 제 발로 걷기도 힘든 것인가?
‘역시 혈교다.’
무슨 심기를 건드렸기에 같은 편을 이리 만드는지.
무사들이 당진철을 부축하고 나서자 이숙자가 걱정스런 눈으로 그를 보았다.
“하이구, 시상에.”
밉살스런 놈이지만 정이 든 놈이다.
별일 없어야 할 터인데.
하늘을 보니 별이 전보다 더 밝고 많다.
‘밤눈이 이렇게 밝았나.’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쾨쾨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하이쿠, 늙은이가 이 무슨 주책이여.’
늙으면 더 잘 씻어야 하는데, 몸에서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 게 영…….
이숙자는 목욕물부터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