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04)
204화 나혼자 대기중
뚜, 뚜, 뚜.
명진은 수화기를 든 채로 굳었고, 웨이중은 황망히 외쳤다.
“스, 스님!”
“허허허.”
명진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을 설명해주었다.
“출가하기 전 누이가 본디 왈가닥이라.”
“왈카탁?”
명진은 대화가 가능하지만 어려운 단어는 아직 모르는 이 대만인을 위해 영어로 설명해 주었다.
“쉬즈 와일드. 오케이?”
“아, 알겠습니다.”
“흠흠, 본디 우리 사이는 이렇지 않았소이다.”
뚜루루루.
그때 울리는 전화벨에 명진이 거 보란 듯이 대꾸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이것 보시오.”
딸칵.
[슈발새끼! 1년 만에 전화해서 한다는 말이 시주! 시주우?]“……누나, 그게 아니고.”
[뭐어, 시발 땡중아.]슬쩍 웨이중을 쳐다본 명진이 참담한 심정에 한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나무 관세음 보살.’
내 안의 마구니가 깨어나려 하는구나.
점잖아야 한다.
“아니, 누님은 수녀께서 어찌 그리 입이 험하십니까?”
[허, 잘 아는 새끼가 1년 동안 전화가 없으셨어요? 수녀한테 시주란 말을 해? 땡중 새끼가…….]“잠깐 들어보십시오.”
명진은 지나치게 흥분한 세연을 달래려 하였지만 그녀는 더욱 노했다.
[뭐 이 새끼야. 티비에 나오는 빡빡이가 내 동생인데 그런 놈 소식을 인터넷으로 봐야 하는 이유를 대봐.]“…….”
명진은 뒤늦게 자책했다.
아차, 이거 좆됐구나.
“세연 시주.”
[끊을까?]“누님, 많은 일이 있었소.”
[다 봤어, 이 새끼야. 너만 연 끊었지, 나한텐 아직 동생이니까.]“…….”
명진은 울 뻔했다.
지난 1년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봉림사가 불타고, 사부가 죽고, 또 그렇게 던져지듯 용병이 되고, 기껏 E급이던 자신이 이제는 U급의 세계에서 손꼽히는 각성자가 되었다.
“내 미안하오.”
[개새끼.]욕설 속에 물기가 묻어났다.
명진은 자신의 무심함에 새삼 돌아가신 사부의 말이 생각났다.
‘천륜이 끊자고 끊어지고, 잇자고 이어지더냐.’
스승님은 승도 천륜을 소중히 여기라 하였다.
출가한 승이 속세의 연을 소중히 하라 하니, 처음 스승님을 만났던 그때는 땡중인 줄 알았다.
‘땡중은 나였구나.’
누이 하나 돌보지 못하면서 무슨 세상을 구하니, 마귀를 멸하느니 떠들어 댔단 말인가.
“누님, 미안하오.”
[됐어. 시발놈아. 부탁이 뭔데?]“수호 길드에 찾아가 나 좀 데려가라 해 주시오.”
[네가 말하면 되잖아.]“내가 고립된 걸 세간에 알리지 않고, 길드에만 전할 방법이 없소.”
개인적으로 연락할 모든 수단이 막혔다.
대중에 공개된 수호 길드 채널이나 메일, 전화번호는 받아 주지도 않는다.
박수호 개인 전화번호는 무용지물이고, 다른 길드원들 전화번호는 기억나질 않는다.
아니, 애초에 외운 적이 없다.
‘돌아가면 김미소 부사장 번호는 꼭 외운다.’
[알았어.]“감사하오. 누이. 내 돌아가면 꼭 사죄하리다.”
[시끄럽고 몸이나 잘 챙겨. 왜 혼자 그 외국에 남아서 지랄이야.]뉴스 기사로 명진의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본 모양이다.
새삼 명진은 눈물이 나려는 걸 억지로 삼켰다.
이래서 가족이구나.
*
진세연.
그녀는 전화를 끊고 눈물을 닦아냈다.
“개새끼.”
원래 20대 초반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무심한 놈인데, 머리를 깎으며 조금 있던 연대감도 끊어버린 놈.
“아주 나쁜 개새끼.”
세 살 터울 동생이다.
유일하게 남은 가족.
대격변이 만들어놓은 고아들이 어디 한둘이겠냐만은, 그래도 남매는 사정이 나았다.
그때 진세연의 나이 열다섯.
마냥 철없는 나이는 아니었고, 혼란한 정국에 아이들을 후원하는 종교시설은 꽤 있었다.
문제는 고아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지만.
어찌하다 보니 자신은 성당에, 명진은 흘러흘러 절에 가더니 늦깎이 동자승이 되었다.
몇 해를 동생을 겨우 찾아 만났을 땐, 동생 대신 이미 철이 너무 많이 들어버린 명진 스님이 있었다.
그렇게 남매는 서로 안부만 묻는 상태가 되었다.
둘 다 성인이 되고, 다른 길을 걸으며, 각자의 삶을 살고 나서 무려 10년 만에 처음 하는 부탁.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넌 나 없으면 안 돼.”
어디 어른 흉내 내며 모든 업보 다 짊어진 척 살아가는 땡중이지만, 자신의 눈에는 여전히 코찔찔이 동생일 뿐이다.
“신부님, 잠시 서울에 다녀오겠습니다.”
세연이 대구의 어느 한 성당을 나섰다.
*
무림맹으로 비룡이 돌아왔다.
여전히 복구가 진행 중인 무림맹 본단은 떠나기 전보다 더 어수선해 보였다.
그것이 이제 막 뼈대가 서고 있는 무림맹 지부 건물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중언개는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와 수호의 앞에 넙죽 엎드렸다.
“죽을죄면 죽어야지.”
“헙.”
혈마다운 대답에 중언개는 뒷목이 쌔한 느낌이 들었다.
“죽기 싫으면 이유를 말해야지?”
수호가 외유한 시간은 길지 않다.
고작해야 나흘.
그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무림맹주가 저리도 저 자세일까?
“조카분께서 독, 커흑!”
중언개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수호가 한 걸음 나오며 밟은 진각에 몸이 저절로 떠올랐고, 뒤이어 목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제대로 잡혔음을 깨달았다.
그땐 이미 수호의 무저갱 같은 두 눈동자가 바로 코앞에 와 있었다.
“건우가 뭐?”
“커흡, 컵.”
무림맹주다.
구천 행성을 양분하는 무림맹주를 누가 있어 이리 대할까?
우스운 것은, 그것을 보고도 누구하나 나서는 맹의 무사들이 없다는 것.
이제 수호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인계 너머의…….
“그짝 잘못 없시야. 왔으면 얼른 들어오드라고.”
중언개를 살린 것은 이숙자였다.
그녀의 말에 수호가 중언개를 놓아두고 걸었다.
‘맹주가 독을 쓸 리가 없지.’
그럴 이유야 있지만, 그럴 정도로 멍청해 보이는 거지는 아니었다.
스륵.
막사를 헤치고 나아가니 건우가 정좌한 채 앉아있고, 이숙자가 그 앞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탄했다.
“다 내 탓이여, 내 탓.”
“말해봐.”
“난 그것이 대환단인가 뭔가인 줄 알았당께. 향도 똑같고, 맛도 같고…….”
대환단 비슷한 독을 먹고 중독이 되었다?
수호는 건우의 상태를 살폈다.
얼굴이 시뻘겋고 앉은 채로 눈을 감은 모습이지만 의식은 있어 보인다.
상태메시지는 그가 중독되었음을 알리고 있었지만, 필사적으로 독에 저항하는 중인지 몸이 펄펄 끓고 있었다.
펄럭.
그때 천막이 열리며 당진철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당가의 독이오!”
“뭐?”
“무림맹주가 당가의 독이라 했소. 하오문주가 가져온…….”
당진철은 수호의 기세가 심상찮아 말을 삼켰다.
“고칠 수 있지?”
“살펴봐야 하오.”
“고쳐.”
“고쳐 보겠소.”
“살려. 그럼 너를 정말 내 형제와 같이 대하지.”
장난 따위의 의형제 놀이가 아니다.
수호의 진심에 당진철은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겨우 삼켰다.
‘당……. 후우.’
적당히 타협해서 밀양 당씨 정도로 말장난했다간 목이 베일 것 같은 예리함이다
지금 수호의 기세가 딱 그랬다.
“목숨 걸고 살리겠소.”
화경에 이르렀다.
이게 다 수호 덕이다.
무공 한 줄 배운 게 없지만 수호는 의형이자 스승이나 다름없다.
자신을 화경의 경지에까지 인도했으니까.
당진철이 운기행공하며 중독을 최대한 늦추고 있는 어린 제자의 뒤에 앉아 명문혈에 장심을 대었다.
우우우우웅.
눈감고 조용히 함께 극독의 기운과 싸우기 시작했다.
수호는 그것을 한참 보다가 막사를 나섰다.
앞에는 중언개가 고개를 숙이고 대기하고 있었다.
‘굴욕은 견딜 수 있다.’
무림맹주가 된 지금, 무림은 살려야 한다.
“말해. 하오문이 뭐지?”
“음지에서 활동하는 정보 단체이옵니다.”
“내가 잡을까? 잡아올래?”
“대령하겠나이다.”
수호는 인벤토리에서 거두어드린 대족장과 마몬족 왕 게르마스의 수급을 꺼내 툭 던졌다.
“…….”
“약속을 지켰다.”
“은혜에 감읍하나이다.”
“약속을 지켜라.”
“전 무림의 힘을 동원해 색출하여 대령하겠습니다.”
“…….”
수호는 그것을 끝으로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휘리리릭.
수호의 부름에 후왕과 짭쿠로, 일곰이 소환되었다.
“크르르.”
“으르르.”
“우우우.”
수호는 한쪽에 그들을 내려두고 얌전히 대기 중이던 비룡까지 불러들였다.
“지켜. 접근하는 누구든 찢어 죽여라.”
“크아!”
짭쿠로가 아주 마음에 드는 명령인 듯 포효했다.
네 마리의 야수가 방위를 하나씩 잡고 막사를 지켰다.
수호는 그들을 두고 막사로 들어갔다.
당진철이 잘 아는 독이라고 하니 맡겨 두지만, 그가 실패하면 당장 조화력을 끌어올려 치료해 볼 것이다.
구음절맥도 치료했으니, 가능하리라.
아마도…….
*
철썩.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혀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스아아아아, 철썩.
빈 부둣가 의자에 앉아 그 광경을 그저 묵묵히 보았다.
쪼오오옥.
이제는 부자들이 아니면 사먹기도 힘든 커피를 쪽 빨아당기고 빈 통을 바다에 던졌다.
플라스틱 컵이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춤췄다.
대격변 이후 환경단체 따위야 진즉에 사라졌으니 뭐라 할 사람도 없다.
인류보호가 시급한 상황에 동물이나 환경 따위를 돌볼 여력 따위는 없었다.
그런 건 지구를 온전히 점령 사용하던 구인류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미스터 리.”
“오셨어요?”
진즉 다가온 줄은 알았지만 내버려 두었다.
끼익.
육중한 엉덩이가 벤치에 앉으며 소음을 냈다.
“자네는 바다를 참 좋아하는군.”
LA시장 하워드의 말에 이성우는 피식 웃었다.
“저기에 종말이 있으니까요.”
“종말이라…….”
하워드는 싱글 웃었다.
종말이 도래한 이 순간이 좋다.
위기만큼 사람을 보수적으로 바꾸는 게 없다. 외부의 적이 큰 만큼 인류는 뭉쳤고, 권력자들은 장기집권 중이다.
“아름다운 말이지.”
하워드의 진심에 이성우가 피식 웃었다.
종말을 피해서 달아난 지난 세월이 오백 년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하워드가 용건을 꺼냈다.
“리처드 박사가 회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더군.”
하워드는 무심한 척 이야기해 놓고 조마조마하며 이성우의 반응을 살폈다.
그는 전 챔피언이자 회귀자임이 들통나 도망치는 전 챔피언 이성우가 아니니까.
위장신분 이우성이니까.
적어도 하워드는 알아도 모른체해야 했다. 그가 원하고 있으니까.
지금은 리처드를 들먹이며 슬쩍 우회해서 떠보는 거다. 당신이 회귀자임을 인정하고 조금 더 도움을 요청해도 되겠는가?
“하라고 하세요.”
“…….”
이건 긍정인가 부정인가.
대꾸할 말이 마땅찮을 땐 침묵이 답이 될 수도 있다. 지금처럼 상대가 먼저 뒷말을 뱉도록 말이다.
“연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
이성우는 빈말이 아니라 정말 안중에도 없다는 듯 신경 쓰지 않았다.
’회귀의 돌은 아직 리젠 전이다.’
회귀의 돌만 선점하면 된다.
그전에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회귀하는 방법은 없다.
이건 20번이 넘는 프로 회귀자 본인이 입증한 바이다.
‘그전에 그놈을 어떻게 벗겨 먹어야 하는데.’
박수호의 힘의 원천을 찾아야 뺏어 올 수 있는데, 영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워낙 단순무식한 놈이라 괜히 어설프게 접근했다가 회귀도 못하고 죽으면 어찌하나.
이성우가 한국 근처에도 안가고 얌전히 미 서부에 머무르는 이유다.
‘뭐, 다음 생도 있으니까.’
인생 한 번이란 말은 적어도 이성우에게는 통하는 말이 아니다.
다음 생에선 박수호 비위나 맞추며 2인자 노릇하며 알맹이만 쏙 빼먹어야겠다.
진정한 삶은 그 뒤가 되리라!
놈의 모든 것을 뺏고 진정한 1인자가 되어 이 세상을 구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