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05)
205화 어쩌다 보니
사천당가는 수십 가지 무공심법이 존재하지만, 크게는 두 가지 계열로 나뉜다.
독공과 기공.
둘은 동시에 익힐 수 없고 오직 하나만 익혀야 하는데, 당진철도 박건우도 이미 기공을 배웠다.
‘독공을 익혔다면 외려 영약이 되었을 것이거늘.’
건우가 처음 입문한 것이 독공이었다면 이번 일은 그저 영약 하나 먹고 크게 내공이 증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건우는 자신의 뒤를 이을 암기왕.
기공을 익혔기에, 중독이 서서히 진행 중이다.
그나마 필사적으로 운기행공하며 독기와 치열한 대치를 이루고 있는 형국이기에 아직 숨이 붙어 있다.
당진철은 자신의 내기를 주입해 독을 살폈다.
‘만독이군.’
만독은 세상 모든 독을 담았다고 하여 만독이다.
실제로 만 가지는 아니고, 712가지다.
‘그냥 태우긴 아깝지.’
건우의 내력에 힘을 보태 독기를 태워버리는 것은 가장 하급의 책이다.
만독은 사천당가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독을 섞었기에 누구에게나 극독으로 작용한다.
712가지나 되는 독에 모두 저항력을 가진 인간은 없으니까.
‘아예 없진 않지.’
만독불침.
중독을 피하거나, 중독 상태를 내력으로 몰아낼 필요도 없는 신체.
아예 중독되지 않는 몸.
독에 대한 연구가 깊은 사천당가는 그 대척점이라 할 의술에도 조예가 남달랐다.
독을 연구하며, 해독을 연구했고, 마침내 만독불침의 시술도 얻어냈다.
방법이 어렵진 않지만 준비가 까다롭다.
벌모세수가 가능한 화경의 고수, 그리고 만독.
‘모든 건 갖춰졌다.’
당진철은 이대로 독기를 몰아내기 아까워 전음했다.
[너는 사부만 믿고 내력운용을 따라 해 보거라.] […….]치열한 싸움을 하는 와중이라 되돌아오는 전음은 없었으나, 건우가 동의했다고 여겼다.
아니, 동의했을 것이다.
아니면 곧장 중독되어 숨이 다할 것이니까.
‘시도 해봄직 하다.’
형님이 계신다.
구음절맥도 낫게 한 걸어다니는 역사의 축복이 옆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어 망설이겠는가?
기회가 왔고, 멍석이 깔렸으니 놀아볼 뿐이다.
츠츠츠.
당진철이 아낌없이 내력을 주입해 건우의 몸을 훑기 시작했다.
*
남해 인근의 무인도.
“와, 겨우 잡았네.”
한동수는 젖은 머리를 털며 푸념했다.
[꼭 혼자 잡은 것 같군.]“하하, 백사 아녔음 제가 사냥당했겠죠.”
[님.]“백사님, 하하.”
[흥.]한동수는 백사를 보며 웃었다.
아슬아슬하게 살았다.
‘죽을 뻔했네.’
군주급 몬스터는 80레벨의 U급이다.
6성 던전이 터지면 70레벨대 보스몬스터가 출몰하고, 7성 던전이 터지면 80레벨대 군주 몬스터가 출몰한다.
여기서 합리적인 추측을 해 볼 수가 있다.
“8성 던전이 생기면 이런 군주급이 보스몹으로 출몰할 텐데…….”
연습이 필요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8성 던전이 생겨나기 전에 경험해 봐서 나쁠 것이 없다.
U급 군주 몬스터 사냥에, U급 전력 셋이면 되지 않을까?
동수는 방금까지 짭쿠로와 후왕과 합을 맞춰 뱀장어를 닮은 거대 괴수를 상대하고 있었다.
전격계 스킬을 난사하는 놈을 상대로 꽤 치열하지만 차근차근 데미지를 입히며 정석적으로 상대하고 있었다.
지형이 바다가 아니라 육지였다면 벌써 손쉽게 사냥했을 정도의 순조로운 사냥이었다.
갑자기 짭쿠로와 후왕이 사라져버려서 문제지.
“아니, 형님!”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은 수호가 소환했다는 것.
동수는 절규했고, 잠깐 당황했으며, 곧 대책을 내놓았다.
“백사 도와줘!”
[흥!]“용왕님!”
[더 간절하게 빌어라.]“용왕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목소리에 진심이 없다.]“아니, 제발!”
[이번만 도와주지.]드론에서 떨어져내린 백사의 도움으로 겨우 뱀장어를 해치웠다.
바다에 가라앉기 전에 인근 무인도로 끌고 와 해변에 늘어놓았다.
차원석도 주요 전리품 중의 하나지만, 군주급 괴수의 시체 또한 중요한 전리품이다.
“이번엔 꽝이네.”
서해에서 세 번째 군주 사냥이다.
두 번 연속으로 차원석을 획득했는데, 이번엔 꽝이다.
“이거 한참 기다려도 안 오는데 어쩌죠?”
[왜 내게 묻느냐.]“어음, 형님이 언제 보내 주실지…….”
야수들과의 합동 사냥에서의 유일한 리스크.
수호의 소환.
소환당한 짭쿠로와 후왕이 역소환 되더라도 야수 쉼터가 있는 수호성으로 돌아간다.
다시 사냥하려면 그들을 데려와야 하는데, 길드에 연락해 보니 아직 오지 않고 있단다.
3:1의 싸움을 하고 있다가, 1:1이 되어 죽을 뻔하고 보니 이 리스크는 꽤 컸다.
“돌아가서 다른 친구들이나 데려올까요?”
[흥, 나 하나면 족한 일.]이무기 백사는 조금 더 사냥하고 싶었다.
솔직히 수호성은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다.
좁은 우리에 과잉전력이 우글거리는 형국.
수호라는 강력한 지배자가 없었다면 벌써 영역 싸움이 일어났을 것이다.
지금의 외유를 조금 더 즐기고 싶다.
하지만 파트너가 너무 겁쟁이다.
“그러다가 백사님도 소환당하면 저 죽어요.”
다른 야수들이 없다.
못해도 지금 당장 돌아가 일곰이랑 팔미 정도를 데려오고 싶었다.
[흥, 겁쟁이 놈.]“그게 제 장수의 비결이죠.”
[하하하! 내 앞에서 장수를 논하다니.]재밌는 인간이다.
천 년을 코앞에 두고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앞에서 장수한 인간이라.
“저 오래 살 건데요.”
“아니, 조심해야 오래 살죠.”
[오래 죽어있을 뿐이다.]“아니, 무슨 궤변이에요.”
[깨달음을 얻기엔 네 살아온 세월이 너무나 짧구나.]“허, 저 스물넷입니다.”
[쯧쯧, 말을 말아야지.]“아니.”
[흥.]동수가 본격적으로 아니시에이팅과 함께 설전을 시작하려 했으나, 백사는 상대해주지 않고 날아갔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날았다.
슈슈슉.
저걸 날았다고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몸을 감았다가 쭉 뻗어 활처럼 쏘아져 공중에 뜬 수송 드론으로 쏙 들어갔다.
“쳇.”
동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무인도 해변에 올려놓은 거대 뱀장어 시체는 곧 수거팀에서 가져갈 것이다.
파팟!
동수가 점프해 수송 드론에 올라타자 그제야 해치가 닫혔다.
[겁쟁이]“누가 겁쟁입니까.”
[집으로 가겠지.]“아니거든요! 제주도 갑니다.”
인천을 시작으로 서해를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육지의 끝자락 남해까지 오면서 만난 해상 군주 몬스터가 셋.
제주도 인근에는 여전히 위협적인 군주 몬스터 넷이 살고 있다.
[오.]“쳇, 둘이서 해보자고요.”
[정확히는 나 혼자지.]U급 군주몬스터 따위야, 99레벨의 L급 백사 앞에서는 그저 따분한 일상을 잠재워 줄 장난감일 뿐이다.
살육을 잊은 999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이미 물 건너 가버린 승천을 포기한 이무기 백사는 포악함을 숨기지 않았다.
[가자! 사냥하러!]“쳇, 좋아요. 갑시다.”
사냥 도중에 수호 형님이 백사를 소환하지는 않겠지? 백사를 소환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으니까.
‘뭐 안 되면 도망치고.’
동수와 백사를 태운 수송 드론이 제주도를 향해 날았다.
*
익산에 위치한 구천 행성 게이트.
파팟.
일단의 무리들이 나오자 군인들이 바짝 긴장하며 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대구 사건 이후 무림인들에 대한 경계심이 최고조로 달한 분위기.
“엇? 박수호 사장님이다.”
수호를 알아본 장교의 외침에 경계를 풀었다.
마침 지금 경계근무에 배치된 분대는 수호가 구천 행성으로 넘어갈 때 배웅했던 그 분대다.
중위 계급장을 단 분대장이 다가와 알은체를 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뭐, 그럭저럭요.”
수호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여, 중위는 곧장 자신의 할일을 시작했다.
괜히 어설프게 친해지려다 척지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것이 없다.
“그럼 절차에 따라 간단한 검사가 있겠습니다.”
“하세요.”
관리국 공무원이 조심스럽게 차원에너지 측정기로 수호를 측정했다.
상태이상 감지 계열의 공무원이 자신의 능력을 쓰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없으십니다.”
“고생했어요.”
“아닙니다.”
유튜브 영상에서 보면 수호는 절대자 포스가 풀풀 풍긴다. 거기에 조금 거칠고 상대하기 부담스러운 면모가 있었다.
‘다 캐릭터인가.’
방송용 캐릭터인지, 현실에서 직접 마주한 박수호 사장은 친절하기만 했다.
수호 뒤로 따라온 건우를 검사하던 관리국 공무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삐삐.
의아함에 다시 검사해 봐도 수치가 이상하다.
“와. U급이시네요.”
공무원이 감탄했다.
고작 7살 꼬마다.
박건우 옆에 적힌 S등급(6720) 옆의 비고란에 U등급(8420)을 적어 넣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두 단계나 진보할 수 있지?
공무원들이 박건우의 검사를 마치고 뒤이어 나온 당진철을 찍어보곤 경악했다.
“에, 엘급이시네요.”
L등급.
무려 L등급이다.
S등급부터 시작해 SS, U, L 등급.
현존하는 지구인은 도달한 적 없는 등급이고, 지금 지구에 체류하는 구천 행성의 무림인 둘이 L등급에 올라 있다.
지금 측정한 당진철과 태사신니.
그러고 보니 둘 다 수호 길드에 소속되어있다.
‘진짜 대한민국 각성자 전력의 9할이란 게 우스갯소리가 아냐.’
서울 12 대길드도 옛말이다.
SS급도 없는 그들인데 수호 길드는 최하가 S급이고, 타 행성의 출신이지만 L급도 둘이나 보유했다.
대한민국 원탑이자, 세계 최정상의 길드다.
수호 길드야 워낙 등급업이 빠르니, 이제는 뒤이어 검사한 장순필과 장취아 등이 기존 등급 그대로인 게 외려 이상할 정도.
순조롭게 이어지던 검사가 이숙자에 이르러 혼란에 빠졌다.
차원에너지 담당 공무원이 아니라, 상태이상 담당공무원의 입에서 다급한 음성이 터져나왔다.
“주, 중독이야! 의사! 아니, 치료사!”
공무원은 직업의식이 투철했다.
“시발, 일단 다들 물러서!”
외계바이러스 중독이 왜 문제인가?
몰라서다.
전염성인지 비전염성인지.
전염이 된다면 호흡기로 전염되는지, 접촉해야 하는지.
그저 매뉴얼에 충실할 뿐.
파파파팟!
사명감 넘치지만 자기 목숨은 소중한 군인들이 재빨리 이숙자에게서 멀어졌고, 에너지 측정 공무원도 부리나케 멀어졌다.
상태이상 측정자는 비장한 얼굴로 후속조치를 했다.
‘난 틀렸어.’
이미 중독자를 만졌다.
전염성이 있다면 이미 전염되었겠지.
“치료사 불러!”
그들의 난리법석에 당사자 이숙자는 입술을 열었다.
“시벌, 멀쩡한 노친네 두고 아주 옘병을 한다.”
“예?”
“나 괜찮으니께 다 죽어가는 얼굴 하덜 말드라고.”
당진철이 다가가 상태이상 측정 공무원에게 추가로 말했다.
“우리 엄마 정상.”
“예?”
당진철이 무림인이 아니었던가?
“시부럴 놈이. 네놈 때문 아니여. 이 잡것아.”
이숙자는 정상이다.
아들이라고 들러붙는 놈이 비정상이어서 그렇지.
“다 늙어서 이게 뭔 염병이여.”
이숙자는 중독 상태다.
아니, 치명적인 독 그 자체.
다행인 것은 무림인들이 내력을 갈무리 하듯, 그녀도 독기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일까.
그녀가 마음먹으면 이 근방에 독무를 뿌릴 수도 있고, 눈앞의 공무원을 당장 중독 상태로 만들 수도 있었다.
‘어쩌다가 이 꼴인지.’
괴물이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한 이숙자가 자조 섞인 욕을 뱉었다.
“다 틀려먹은 거여. 시부럴.”
그리 말하는 이숙자의 외모는 아줌마 정도로 젊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