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06)
206화 진세연
성당을 나선 진세연은 명진의 말을 전하기 위해 서울로 곧장 가지 않았다.
그런건 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조선시대에서나 떠올릴 법한 아주 단순한 방법이다.
현대는 전화라는 아주 편리한 수단이 있다.
문제는 너무 유명해져버린 수호 길드가 어지간한 전화나 메일 따위는 묻혀버리기 일쑤라는 점이다.
직접 가서 전하는 게 아니라면 연락할 방법은 두 가지다.
영향력 있는 누군가의 힘을 빌려 연락하든가, 그쪽에서 연락이 오게 만들든가.
‘공개할까?’
진세연은 자신의 ‘각성초능’이면 그들이 충분히 연락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의 능력은 세계적으로 귀한 스킬이니까.
수호 길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자신의 각성초능을 공개하고 인턴 모집에 응하면 된다.
그럼 연락이 올 것이다.
그러나 언제가 될지도 모를 연락을 기다릴 만큼 진세연의 성격이 수동적이지 않았다.
“평리로 가자.”
대구를 대표하는 두 개의 길드.
‘평리’와 ‘사자’ 길드.
사자 길드가 근거지를 부산으로 옮겼기에 지금 남은 것은 평리뿐.
적어도 레벨 6 길드 직통 전화로 전화하면 수호 길드에서 받아주지 않을까?
진세연이 평리 길드 본사로 향했다.
*
부산의 자치구 독립을 대구와 포항이 지지했다.
부산을 주도로 대구, 포항이 호응하며 자연스레 새로운 연합이 만들어졌다.
레벨 6 길드가 보호하는 곳만 부산 10구역, 대구 2구역, 포항 1구역, 총 13개 구역이다.
이들의 각성자 전력만 놓고 보면 서울과 엇비슷한 수준.
남부사령부가 호응해 후방 주둔중이던 군부대가 대거 이탈하며 힘을 보태면서, 둘로 나뉜 것이나 다름없는 국방부의 한 세력도 흡수했다.
그 와중에 터진 무림인 테러 사건은 충격을 넘어 도시 자체를 혼란에 빠트렸다.
머리만 노린다는 전략으로 고위 공직자들이 모조리 암살당해버리고, 도시 기반시설이 파괴되고, 맞서던 상위 각성자들이 대거 죽었다.
대구 주둔 국방부대는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고, 시민들은 두려움과 혼란에 이리저리 피난 갔다.
오죽 했으면 인구 절반이 부산이나 포항으로 떠났고, 영남연합 자체를 불신하는 사람들은 안동으로 향했다.
1구역으로 이뤄진 안동은 여전히 대한민국 소속이기도 했고, 손진우의 77특공대가 주둔중인 도시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영남연합의 부산보다 더 안전할 수도 있는 소도시.
“어휴.”
평리 길드의 유일한 S급 각성자 김동완은 한숨을 쉬었다.
대구를 양분하던 대 길드 중 하나인 사자 길드는 진즉 거점을 부산으로 옮겼다.
대구에 남은 레벨 6 규모의 대길드는 평리가 유일한 상황.
그들이 남은 이유는 별다른 게 없었다.
‘떠날 수가 있어야지.’
애국 때문도, 도시 사랑 때문도 아니다.
무림인 테러 사건 때 가장 많은 출동을 한 게 평리 길드고,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것도 평리 길드다.
전력의 8할 이상이 증발할 정도로 고위 각성자들이 죽었다.
거의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대구시의 행정 공백이 아니었다면 진즉 레벨 6 자격을 박탈당하고 레벨 4 정도로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평리 길드에 남은 용병은 다 끌어모아도 20인 공격대 3개 수준.
그것도 전체적으로 수준이 낮다.
상징적인 S급 각성자 김동완이 아니었다면 평리 길드는 지금쯤 해체 수순을 밟았을지도 모른다.
김동완은 사장실 소파에 앉아 몸을 파묻고 무료하게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자신들이 담당하는 구역에 6성 던전 이상의 던전이 리젠되지 않았다는 것일까.
“저, 사장님.”
“나, 사장 아니다.”
사장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장이 지난번 사건 때 죽어서다.
실질적 길드 내 서열 1위이지만 여전히 그 자리가 부담스러운 김동완이다.
“팀장님.”
“왜?”
“누가 찾아왔는데요.”
“누구.”
“대웅 성당의 수녀님이랍니다.”
“기부할 돈 없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일단 만나 보세요.”
그때 문을 열고 수녀복의 미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김동완 사장님?”
“사장 아닙……. 후, 뭐 됐습니다. 앉으시죠.”
이건 절대 상대가 예뻐서 자리를 권한 게 아니다.
“대웅성당에서 오셨다고요?”
무교인 김동완은 그 성당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네.”
“보시다시피 길드 꼴이 말이 아닙니다. 용건부터 물어도 될까요?”
“성당일 때문에 온 게 아닙니다. 제 개인적인 일이죠.”
“개인적?”
일개 수녀의 사적인 일로 길드 사장실까지 내어줄 정도로 평리 길드가 망가졌던가?
‘이것들이.’
용병들의 이탈만큼이나 그들을 지원해야 하는 스텝들의 이탈도 많았다.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으니 외부인이 이리 쉽게 사장실까지 들어오지.
“뭐, 일단 들어보죠.”
이건 정말 저 수녀님이 예뻐서 그런 게 아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일단 말이나 들어보자는 심정이었다.
“전 명진 스님의 누나예요.”
“예?”
스님의 누나?
이건 뭐지?
“그 명진 스님이 제가 알고, 대구 사람도 알고, 온 국민이 아는 그 사람이요?”
“네.”
이건 또 무슨 신종 보이스피싱이지?
너무 허술하고 안 믿겨서 외려 진실 같지 않은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사장님 설득하려고 온 게 아니에요. 부탁하러 온 거죠.”
이 파워 당당함은 뭐지?
“무, 무슨 부탁이요?”
“수호 길드에 전화 한번 해주세요.”
“직접 하면 되잖아요.”
“제 전화는 안 받거든요.”
“…….”
뭐지? 이런 당돌한 미친년은?
당장 나가라고 하고 싶지만, 김동완은 참았다. 그건 이 여자가 예뻐서가 아니다.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웃긴데요.”
“웃기다면 실례했어요. 저는 중요한 일이라서요.”
“좋아요. 길드 이름을 빌리고 싶다 이거죠?”
“네.”
“거절합니다.”
“왜죠?”
“아니, 다짜고짜 스님 누나라는 수녀가 찾아와서 길드 이름 빌려달라고 하면 빌려줍니까?”
말하다 보니 열이 뻗쳤다.
그러고 보니 내 말이 맞잖아!
“평리가 망해 가니까 우습습니까?”
괜히 수상쩍은 사람 말에 휘둘려 전화 거는 것도 웃긴다. 이 예쁜 여자 말이 거짓이라면 평리 길드의 평판은 더없이 나빠질 터였다.
“…….”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큰 눈망울을 보며 김동완은 움찔했다.
“저, 적어도 증거라도 주셔야죠.”
진세연이 사진 하나를 꺼냈다.
아주 어린 남매의 사진.
헤어지기 전 둘이 함께 나온 사진은 이것이 전부다. 진세연은 어릴 때부터 예뻤는지 지금 모습 그대로지만, 소년은 달랐다.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남자는 머리빨.
머리숱이 무성한 소년과 다 자라 민머리가 되어버린 명진 스님을 매치해 보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이거 조작된 거 아니죠?”
말해 놓고 너무 구차하여 아차 싶었다.
“주세요.”
“네?”
“안 믿으실 거잖아요.”
믿음은 증거로 사는 게 아니다.
믿기에 증거가 필요치 않은 것이고,
불신하기에 증거를 대도 의심한다.
애초에 처음부터 무리한 부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럴 거면 적어도 신부님을 통해 자신의 신분이라도 보증해 달라고 할걸 그랬나?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능력을 미끼삼아 수호 길드에서 연락 오게 만들어야 할 성싶었다.
탁.
진세연이 사진을 들고 바로 일어섰다.
“실례했어요. 무리한 요구였어요.”
처음 보는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긴 어렵다. 쉽게 가려 생각했는데 괜히 머리를 쓴다는 게 되레 돌아가는 길이 되고 말았다.
정 안되면 수호 길드에 슈퍼챗이라도 쏘지 뭐.
자본주의 사회답게 돈 들여 보내는 메시지는 한 번이라도 더 봐주니까.
아무튼 진세연이 사장실을 나서자 되레 아쉬운 건 김동완이었다.
‘뭐지? 이 당한 느낌은?’
묘한 여자다.
종교인이라 그런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느낌도 들고, 말에 묘하게 믿음이 있다.
그녀는 진실을 말했는데 괜히 의심한 내가 쓰레기가 된 기분.
씁쓸한 기분에 침을 꼴깍 삼키는데, 직원이 빠르게 튀어 들어왔다.
“팀장님!”
“뭐? 왜?”
“큰일 났어요! 섹터 12에 7성 던전!”
“뭐?”
섹터 12면 아직 떠나지 않은 대구의 중심지다. 아직 떠나지 않은 시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주거지.
“좆됐다.”
레벨 6 길드가, 그것도 전력 이탈이 심한 평리 길드가 어찌 7성 던전을 감당해내겠는가.
섹터 12는 자신들의 영역이지만, 7성 던전은 감당할 만한 던전이 아니다.
‘대구는 끝났어.’
그때 나간 줄 알았던 진세연이 들어왔다.
“도움 요청해 보세요.”
“영남에 7성 던전 공략이 가능한 공격대가 어딨습니까?”
굳이 영남연합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수호 길드요.”
“…….”
들어줄까?
“연락하는 김에 제 이야기도 하세요.”
하, 이 심각한 상황에 명진 스님 누나가 나타났다고?
“신성력을 쓰는 각성자가 있다고 하세요.”
“음, 예?”
“신성력이요.”
“예에?”
김동완이 깜짝 놀랐고, 진세연은 그저 무심한 얼굴이었다.
*
대한민국에 리젠되는 모든 7성 던전은 수호 길드에 보고된다. 아울러 일본, 만주 등의 인접국에 생성되는 것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직접 가서 조사하는 게 아니라면 해당 국가가 직접 정보를 고시하는 수밖에 없는데…….
“아직 공식 요청 온 것 없지?”
“네, 평리 길드에서 온 게 전부예요.”
한반도에 또 7성 던전이 생겼다.
이 좁은 땅에 고레벨 던전이 뭐 이리 자주 생기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또 생겼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공격대를 가진 길드라면 단연 수호 길드다.
박수호 사장을 제외해도 7성 던전을 선발 공략 가능한 공격대를 둘이나 보유하고 있다.
홍세희의 2공격대.
서민수의 3공격대.
공대장들이 전부 U급의 각성자고, 공대원들도 죄다 SS급에 몇몇 신입뻘 용병만 S급의 화려한 구성이다.
당장 가서 던전 조사도 해보고 선발대 투입도 하고 싶지만, 영남연합에서 공식적인 요청이 오지 않고 있었다.
길드의 요구만 있다고 함부로 공격대를 투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옆집 꼬마가 부른다고, 부모님 허락도 없이 냉큼 들어가는 꼴이다.
“일단 2, 3 공격대 다 스탠바이 시켜요.”
“네, 부사장님.”
다른 길드에겐 7성 던전이 재앙, 혹은 골칫거리일 것이다.
하지만 수호 길드에 있어 7성 던전은 꿀이 흐르는 사냥터다.
지금 대거 뽑아놓은 인턴십 용병들의 등급을 빠르게 올려줄지도 모를 좋은 사냥터일 뿐이다.
물론 그러려면 박수호 사장이 돌아와야겠지만 말이다.
“어? 익산에서 연락 왔어요. 사장님 오셨대요.”
때마침 이리도 반가운 소식이.
김미소가 미소 지었다.
“왔구나, 나의 조커.”
외교적 마찰? 분쟁? 불만?
모든 것을 무마시켜버리는 절대 카드가 도착했다.
“연락해. 대구에서 보자고.”
“그렇게만 전하면 돼요?”
“거기 지원부 애들 보고 직접 모시라 그래.”
“네, 부사장님.”
익산 게이트는 구천 행성과 통하는 길목이다. 수호 길드에서도 익산에 상주하는 지점이 따로 있다.
아미파 고수들의 이동과 행정처리, 통역을 돕기도 하고, 관계를 개선한 무림인들과 본격적인 교류를 위한 교두보로 삼기 위해서기도 하다.
“우리도 준비하자.”
“네, 부사장님.”
김미소는 7성 던전의 확인과 더불어 재야에 묻힌 인재의 검증을 위해 옆 도시로의 이동을 준비했다.
‘신성력이라.’
그 말이 맞다면 더 없는 로또 각성자다.
명진의 누나라면 더 좋다.
혈연 타고 등용문을 두드려주는 인재만큼 좋은 게 또 어딨겠나.
이 맛에 길드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