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24)
225화 아루카 (1)
아미파 지구 분타.
“합!”
“하압!”
분타 연무장에서 비구니들이 무공 단련에 한창이었다. 연무장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야트막한 언덕에 태사신니의 암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암자 앞엔 나무가 하나 심어져 있었는데, 꼬챙이 같은 모습이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그 나무 곁에 평상에 놓여 있었다.
평상엔 늙은 여승과 청년이 앉아 있었다.
“이렇게 좁은 데서 살아?”
“몸 누일 공간만 있으면 충분하지요.”
“그건 그래.”
청년 수호가 꼬챙이 같은 나무를 보며 물었다.
“그늘이라도 생기려면 한참 걸리겠어. 내가 키워줘?”
“호호, 세월 따라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도 운치 있지요.”
“으음.”
“기른 세월이 길수록 정도 더 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나무가 다 자라기 전에 먼저 죽을 것 같은데?”
“빈승의 앞날이야 어찌 알겠습니까? 혹 제가 먼저 가면 이 나무가 기억해 주겠지요.”
“으음.”
수호는 앙상한 나무와 태사신니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음, 모르겠다.”
한참을 그렇게 지켜보던 수호가 평상에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선인께서는 고민이 많아 보이십니다.”
어느새 혈마에서 선인으로 호칭이 변해 있었다.
“고민 많지.”
수호는 푸른 하늘을 보며 그저 구름 흘러가는 걸 구경했다.
“옛날엔 하릴없이 기다리고 느긋했는데, 요즘은 참 급해.”
“뭐가 그리 급하신지요.”
수호가 멀찍이 암자 마당에서 장난치듯 놀고 있는 건우와 취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무도 기다려 주질 않으니까.”
요즘 애들 참 빠르다.
어영부영하다가는 자신보다 건우가 먼저 후손을 보게 생겼다.
“여긴 지낼 만해?”
“무릉도원이 따로 없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태사신니는 정말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중원에서 떠나오니 온갖 번잡한 생각과 관계도 거기 다 두고 온 느낌이다.
“좋겠다.”
“선인께서 이 빈승에게 부러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넌 늙잖아. 곧 있으면 늙어 죽을 거 아냐? 와, 진짜 부럽다.”
“…….”
이건 주화입마를 부르는 격장지계인가?
“노승을 놀리면 재밌습니까?”
“놀려?”
“……진심이시군요.”
태사신니의 눈썹이 부드럽게 휘었다.
말의 모양이 무에 중요하겠나.
그 속에 품은 뜻이 중하지.
수호의 말은 추호의 거짓 없이 진심을 담고 있었다.
“늙어가는 것이 무에 부럽습니까?”
“다 늙어가잖아. 저 나무도 언젠가 다 자라 가지를 뻗겠지. 그러다 말라 죽을 테고.”
“…….”
“하물며 저 강도 영원치 않지. 물길도 바뀔 테고, 가물어 강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지. 저 산은 어떻고.”
“…….”
“모두가 변하는데 홀로 변하지 않는 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지.”
회한이 가득한 수호의 말 속에서 그의 비밀 한줄기를 엿본 느낌이다.
“빈승은 올해로 150해를 맞이했지요.”
“내 나이를 묻는 거야? 난 몰라. 세다가 잊었어. 적어도 너보다 10배는 더 살았겠지.”
“…….”
정녕 신선이었구나.
선계에 들어 수명에 초탈한 분이셨구나.
“선인께서는 어찌하여 인간 세상에 돌아오셨는지…….”
“아, 오고 싶어 왔지. 무슨 이유가 있겠어?”
문명이 얼마나 그리웠는데.
“……이유가 없다라…….”
태사신니는 그 말을 몇 번이나 곱씹더니 조용히 눈을 감고 정좌했다.
그 모습에 수호가 피식 웃었다.
말하기 싫으면 싫다고 하지, 별걸로 다 축객령이네.
“그래, 꺼져 준다.”
수호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어이 꼬맹이들. 밥 먹으러 가자.”
나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들끼리 투닥거리던 취아와 건우가 동시에 수호를 보았다.
“저 배 안 고픈데요?”
“저도 괜찮아요.”
“요것들 봐라.”
수호는 픽 웃고는 손을 흔들었다.
“눈치 빠른 삼촌이 빠져 줄게.”
“어, 맛있게 드세요.”
“잘 가세요.”
수호는 길을 걸으며 웃었다.
“빠르다, 빨라.”
매정한 녀석, 삼촌 가는데 한 번을 안 잡네.
뭘 그리 재밌게 노나 싶었더니,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번갈아가며 베고 있었다.
무공 수련 겸 놀이리라.
“쳇, 서러워서 빨리 번식이라도 해야지.”
“예? 번식이요?”
수호는 길목에 자리한 개울가 정자에 앉아있는 김미소를 보았다.
“넌 왜 거깄냐?”
“기다렸죠.”
“일은? 다 끝냈어?”
“안 그래도 그거 보고하러 왔죠.”
김미소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일단 자유롭게 왕래 가능하고요. 포탈은 제가 거절했어요.”
북한에서는 이동 포탈의 신설을 끈질기게 요구했지만 김미소가 거절했다.
평양과의 직접적인 연결은 아직 시기상조다.
“그래? 쓸데없이 싸움 안 해도 되겠네.”
“후후, 맞아요.”
어차피 수호는 협약이 됐든 안 됐든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거다.
이 협약은 수호를 염두에 둔 게 아니다.
수호의 정당방위 행위로 발생할지 모를 애꿎은 희생자를 미리 차단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그로 인한 분쟁까지.
진짜 혜택을 볼 이들은 수호 길드의 다른 용병 공격대다.
그들의 활동범위가 서울 인근의 필드를 넘어 북한 전역으로 확대된다.
거기에 더 나아가 만주벌판까지.
도시국가로 쪼개진 현대에 이르러 필드를 영토로 주장하는 건 어려운 일이 되었으니까.
도시 출입이야 별개의 문제라고 해도, 필드는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다.
“그래. 별거 없더라. 근데 포탈은 왜?”
“아직 직접적인 교류를 하긴 그렇죠.”
포탈을 뚫어 수호 길드가 얻을 게 없다.
지금은 필드를 사이에 두고 교류하며 서로 거리를 두는 게 낫다.
“아참, 교역은 시작하기로 했어요. 이건 제가 공격대 협조 얻어서 할 거니까, 따로 신경 쓰실 것 없으세요.”
수호 길드 공격대가 50개로 늘어난다.
모두가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그 수가 일단 많아지니 던전 공략 임무 외에도 무력이나 경호가 필요한 일에 차출할 여유가 생겼다.
“교역?”
“네, 중개무역이요. 아루카 행성에서 여러 가지 식량을 사다가 평양에 파는 거죠.”
그로 인해 대가로 받는 건 혈석과 몬스터 부산물이다.
각성자를 경계하고 억압하던 전 정부가 무너졌으니, 평양은 앞으로 각성자 전력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그들이 벌어들이는 혈석과 몬스터 부산물로 배고픔을 해소하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로 인해 수호 길드가 얻는 건 중개무역을 통한 이익이 전부는 아니다.
‘시간을 번다.’
김미소는 두 가지 시간을 필요로 했다.
평양 시민들이 자본주의에 익숙해질 시간.
그리고 수호 길드가 그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힐 시간.
그들은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호 길드의 배틀슈트, 수호 길드의 아티팩트들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생산시설들을 마련했고, 준비 중이다.
평양은 천천히 수호시티의 위성도시가 될 것이다.
아주 천천히…….
이동 포탈 설치는 그 방점일 뿐이다.
온전히 길들인 개에게 걸어주는 목줄과 같은 포상이다.
“식량? 밭 또 만들어 줘야 해?”
“아뇨, 사장님의 힘을 계속 쓸 순 없죠.”
“맞아. 이 힘은 제한적이야.”
수호의 조화력의 기반은 식물이다.
그들의 생명 에너지를 빌려 조화마법을 일으킨다.
수호시티처럼 조화력이 충만한 숲에서 그 힘을 조금씩 끌어쓴다면 문제없지만, 생명력이 약한 곳에서 무리하게 마법을 사용하다간 그 지역이 황폐해질 뿐이다.
평양에서 고속성장으로 벼를 키운 것은 그 주변 일대의 잡초와 나무들의 생명력과 바꾼 대가다.
나무정령을 통해 조화력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수호가 쓸 수 있는 조화마법은 본인의 조화 스탯.
딱 그 수치만큼의 위력뿐이다.
“어머, 그건 몰랐네요.”
“모든 건 무에서 창조되지 않아. 변하는 거지.”
이 에너지가 저 에너지로 변한다.
삶과 죽음이 그러하듯, 모든 건 변한다.
‘스킬도 이럴진대…….’
수호는 말하고 나서 괜히 씁쓸해졌다.
“인턴 중에 쓸 만한 애들 있어?”
“많죠. 왜요?”
“키워 놓아야지.”
“어머, 왜 그리 적극적이세요?”
“빨리 아루카에 다녀와 봐야겠어.”
김미소도 수호와 장순필이 매일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는 주제에 대해 알고 있다.
“지금 다녀오셔도 돼요.”
“지금?”
“네.”
“…….”
수호는 김미소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보세요?”
“나 없이 되겠어?”
“아루카 행성이잖아요.”
“음?”
“구천 행성에도 다녀오신 분이 뭐 그리 걱정이세요.”
“걱정? 내가? 하하.”
수호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너희들이 걱정되는 거지.”
“그때보다 더 말이 통하는 전령도 있잖아요.”
“내가 달려오는 사이 뭔가 사건이라도 터지면?”
“사장님 빼고 세계 각성등급 2위부터 쭉 저희 길드 소속이에요.”
등급을 초월한 박수호는 제쳐두더라도, U급 각성자 자체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호 길드에만 존재한다.
세계적으로 꼽아도 SS등급이 200명도 안 되는데, 수호 길드에만 30명이 넘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서울의 12개 대기업을 다 합쳐 봐야 SS등급 각성자가 겨우 3명이다.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으음.”
수호는 신음했다.
괜히 먼 산을 봤다.
이것 봐.
조금만 보살펴 주면 금방 쑥쑥 자라 독립해 버린다니까?
바람 앞의 촛불 같던 수호 길드는 이미 산불이 되었다. 어지간해선 꺼지지 않고, 누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몸집을 불려 나갈 정도다.
이미 시스템이 자리잡은 수호 길드는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수호의 도움 없이도 세계 1위 랭크의 길드 지위를 이어 나갈 것이다.
이쯤 되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걱정의 이유는 길드가 아닌 자신에게 있었나 보다.
“좋아. 걱정 없이 다녀오지.”
당장이라도 떠나려는 그를 김미소가 급히 말렸다.
“관광 간다 생각하고 다녀오세요. 다음 무역 행렬에 끼어 가는 게 어때요?”
“관광? 설마…….”
김미소가 퍽이나 잘도 그러겠다.
“후후, 가셔서 무역협상단 일 좀 도와주셔도 좋고요.”
아루카 행성으로 통하는 무역로는 두 곳.
부산 게이트와 제주도 게이트다.
두 곳 모두 아루카 행성과 연결되어 있지만, 한국과 호주 정도의 거리 차이가 있는 곳이다.
“두 곳은 각기 다른 나라 다른 영지로 연결돼요.”
“영지?”
“네. 아루카 행성의 엘프와 드워프들은 부족마다 영토를 두고 있어요.”
“호오.”
나라별로 뭉쳐 사회를 구성하는 지구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제주도 게이트는 나리아 부족, 부산 게이트는 아로아 부족의 영토로 통하죠.”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나리아와 아로아 모두 엘프 부족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땅은 비옥하고 작물의 성장이 굉장히 빨라요. 그리고 혈석의 수요가 꾸준하죠.”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혈석을 제공하고 식량을 제공받는다.
“평화로운 땅이라며? 뭐가 문제야?”
김미소가 살풋 웃었다.
“부족들은 웬만해선 두 곳과 거래하려 들지 않아요.”
나리아 부족은 현재 대한민국 정부와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거기에 아로아 부족은 영남연합과 거래하고 있다.
“저는 수호 길드만의 새로운 무역로를 원해요.”
“뺏자는 거야?”
“에이, 설마요.”
서울과 부산은 이미 우호도시다.
7성 던전도 버거운 현재 상황인데, 이후 8성 던전의 위협을 생각하면 절대 관계를 해칠 수 없다.
던전 공략에 한해서는 거의 종속된 것이나 다름없는 도시들을 굳이 적으로 돌릴 이유가 무엇이 있겠나.
“그들은 신뢰의 증표를 지닌 자들과만 대량 거래를 해요.”
관광객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살 수는 있지만, 도시를 감당할 정도의 대규모 곡물 구매는 할 수 없다.
그건 시장이 아니라 부족장을 통해야 하니까.
“그럼 신뢰의 증표를 받자는 거야?”
이것 때문에 자신을 데려가려는 건가?
“완전히 새로운 무역로를 원해요.”
김미소의 말에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