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29)
230화 요정
“아, 나무요? 저야 모르죠.”
“…….”
“근데 왜 저한테 물으세요?”
“그야…….”
엘프 공주는 말을 멈추었다.
신탁의 내용을 굳이 말해줘야 할까?
“아니에요. 실례했어요.”
공주가 곧장 마차로 가버리자 동수가 황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아니, 붙잡으려 했다.
“워어, 거기까지.”
엘프기사가 동수의 앞을 막아섰다.
그사이 엘프 공주는 마차에 쏙 타버렸다.
“이름이 뭐예요?”
아쉬운 동수가 외쳤으나 그녀는 답이 없었다.
동수의 표정이 너무 아련하고 안타까웠을까? 기사가 픽 웃으며 말하곤 등을 보였다.
“공주님은 그냥 공주님일세.”
기사 둘이 호종하는 마차가 멀어질 때까지, 동수는 더 붙잡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와, 목소리 쩔었어.”
동수의 얼굴이 발그레졌다.
강제적으로 지구에서 손에 꼽히는 각성자가 되어버렸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저 20대 초반의 흔한 F급 유튜버일 뿐이었다.
스쳐 볼 때도 예뻤는데, 마주 보니 그 미모는 세상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수준이었다.
‘나 같은 게 무슨.’
언감생심 욕심도 생기지 않는다.
동수는 아이돌이 사라진 시대를 살았다.
이건 사랑이 아닌 경외다.
‘잘 가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다.
동수의 연정은 팬심으로 변해 갔다.
한결 가벼운 표정의 동수가 여관으로 돌아갔다.
그런 동수의 뒤를 엘프 기사 하나가 몰래 미행했다.
*
“별의 강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돌아온 기사의 보고에 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지켜보도록 해요.”
“하온데…… 오가는 지구인들이 많습니다만, 왜 그들인지…….”
“어머니가 그들을 가리켰어요.”
“아!”
어머니라 하면 신의 메시지다.
신탁이 그들을 가리켰음에야…….
“그들이 저를 뿌리 내릴 곳으로 데려다줄 거예요.”
“예, 성심껏 봉행하겠습니다.”
엘프 기사들이 부복했고, 공주는 조용히 신탁을 곱씹었다.
‘나의 숨이 머무른 곳, 스치는 바람에 뿌리 내릴지어다.’
어머니의 숨……. 신의 축복을 쓴 일은 그들에게 통역의 축복을 내린 것뿐이다.
스쳐 지나간 인연.
분명 그들뿐이다.
그들이 그녀를 운명의 장소로 안내할 것이다.
“일단 지켜보도록 하지요.”
“네, 공주님.”
공주 일행은 여관이 보이는 맞은편 건물에 사정을 얘기하고 며칠 머무르기로 하였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이엘프들을 모시는 것 자체가 영광.
엘프들이 기꺼이 집을 내어주었다.
*
“삼 일째군요.”
“네, 도무지 연유로 이 마을을 찾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
엘프 기사 둘이 꾸준히 감시했다.
정령의 힘까지 빌려 감시했기에 빈틈은 없다.
‘밥먹고 돌아다니고, 구경하고…….’
통상적인 관광객의 모습을 보이긴 했다.
딱 한 명만.
“이소진이라는 저 여자가 귀족인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호위들인 게지요.”
지구에서 유람 온 귀족임이 분명했다.
이소진이 밖으로 나오면 항상 호위가 한둘은 따라붙었고, 나머지는 여관에서 그냥 머물렀다.
대머리들은 서로 수련까지 하는 걸 보니 영락없는 호위들이다.
특이한 게 있다면 첫 만남부터 줄곳 엎어져 자고 있는 인물이 하나 있다는 것.
“저들이 신탁의 사람들이 맞습니까?”
“…….”
공주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도 해석이 틀렸나 고심하는 중이니까.
‘어머니의 숨결이 혹, 축복을 뜻하는 게 아닌 건가?’
무언가 특별해 보이긴커녕, 통상적인 귀족 관광객의 모습 전형이었다.
“혹여 쓰러진 남자를 깨울 약을 찾는건 아닐까요?”
“으음, 그렇다고 하기엔 일행들의 분위기가 너무 밝습니다.”
“저 또한 그저 관광객으로만 보입니다. 오가는 곳도 시장이 전부입니다.”
특이한 게 있다면,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유명한 폭포나 자연 경관을 구경하길 즐기는데, 이들은 오로지 엘프들의 생활상만 엿본다는 것이다.
이따금 아티팩트나 스킬북 따위를 사기도 했지만, 별 대수로운 것은 아니었다.
“일단 좀 더 지켜보도록 하지요.”
“예, 공주님.”
*
엘프 기사 알리어드가 창가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흡사 낮잠을 즐기는 모양새지만, 맡은바 임무인 감시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으음?”
자신을 깨우는 바람의 정령 소리에 눈을 떴다.
창 너머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어? 저자가 어찌…….”
다른 게 있었다.
알리어드가 눈을 비볐다.
꼬박 열흘째 누워만 있던 사내가 깨어났다. 일행과 말을 주고 받고 있더니 여관을 나왔다.
“공주님!”
“일리어드 경.”
“쓰러져 있던 사내가 깨어났습니다.”
“그래요?”
엘프 공주가 관심을 보였다.
“네, 일행이 한 번에 밖으로 나오는 걸 봤습니다.”
“어디 보죠.”
엘프 공주가 창가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말 지구인 일행이 전부 나와 있었다.
아공간 주머니가 보편화된 세상에 봇짐을 매고 다니는 여행객은 없다.그렇기에 단출한 모습들이지만, 꼭 마을을 떠나려는 모양새였다.
‘운명의 장소로의 인도인가?’
신탁이 틀린 적은 없다.
저들이 어머니의 숨이 머문 자들이라면, 그 목적지 끝에 자신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우리도 서둘러 채비하죠.”
“네, 공주님.”
엘프 기사 둘이 마차를 준비하고 자신들의 말을 끌어왔다.
“음? 저쪽으로 가네요.”
“멀찍이 떨어져 가죠.”
공주의 말에 마을 길을 걷는 그들을 멀찍이 뒤따랐다. 꼭 미행하는 모양새가 되자 엘프 기사가 물었다.
“꼭 이렇게 가야 합니까?”
“저들은 지구인. 제 어머니의 뜻을 강제할 수는 없어요.”
엘프가 아닌 바에야 신의 뜻을 어찌 강요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저들은 세계수가 뭔지도 모르는 자들이다.
“혹, 귀족 여인은 뭔가를 알 수도 있지 않습니까?”
확실히 이런 미행은 공주도, 명예로운 하이템플러들도 할 일이 못되었다.
“좋아요. 마을을 나서는 즉시 제가 한번 물어보겠어요.”
“예, 공주님.”
엘프 기사들이 어두운 안색을 걷어냈다.
그들은 당대의 공주를 호위하는 하이템플러이지, 미행자 따위가 아니니까.
“어엇?”
하지만 마을을 나서는 순간 그들의 계획은 깨지고 말았다.
휘리리릭.
어디선가 나타난 드래곤이 그들을 태우고 훌쩍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에 엘프 기사들은 당황했고, 공주는 충격 받은 듯 몸에 힘이 쭉 풀렸다.
‘용이 돌아오는 날…… 분열된 세상이 다시 하나로 돌아가리라.’
오래된 용의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지금은 아루카 행성에서 사라진 드래곤을 이리 보게 될 줄이야.
“실프, 쫓아가!”
휘리릭.
알리어드가 재빨리 정령을 붙였으나, 사람을 태운 드래곤은 벌써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
닭 쫓던 개가 되어버린 일행이 망연자실해했다.
*
어둡다.
‘어디지?’
손발의 감각이 없다.
움직일 수 없다.
윙윙.
물에 잠긴 듯한 먹먹한 소음이 점점 또렷해졌다.
“주군, 정신이 드십니까?”
누군가 했더니 장순필이군.
“…….”
대답을 하려 했더니 입술이 아주 느릿하게 움직인다.
손을 들려 했으나 손가락이 꿈틀거리는 정도에서 그쳤다.
“가만히 계십시오. 곧 회복되실 것이옵니다.”
용케도 자신의 의식이 돌아온 걸 알았ꠕ군.
구천 행성에서 이미 겪어 봤기에, 수호는 마음 편히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눈꺼풀에 힘이 들어와 눈을 떴다.
‘나무.’
나무 천장이 보인다.
슬쩍 눈알을 굴려 보니, 걱정스런 얼굴의 장순필이 보인다. 그 너머로 땀 범벅이 된 명진과 인자한 웃음의 태사신니도 보이고.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자 동수가 보였다.
“와, 형님 일어나셨어요?”
“아직.”
한마디 했다고 매운 것을 먹은 듯 입 안이 얼얼하다. 손을 들어 봤으나 부자연스럽다.
‘그때도 오래 걸렸지.’
구천 행성에 비하면 아루카 행성은 천국이나 다름없다.
그땐 감옥에 갇혀 쇠사슬에 묶인 채 고깃덩이처럼 매달려 있었으니까.
조금 더 있으니 밖으로 나갔던 박용필과 이소진이 돌아왔다.
“교역은?”
전보다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직이에요. 사장님이 깨시면 움직이려고 대기하고 있었어요.”
스윽.
몸의 감각이 전과 같지 않았지만 움직일 만했다.
수호가 침대에 걸터 앉아 말했다.
“일 안 했네.”
“아니, 할 수가 없었어요. 사장님을 지키려면 인원을 나눌 수가 없었어요.”
수호가 피식 웃었다.
김미소와 다르게 이소진은 놀리는 맛이 없다.
“어디로 갈 건데?”
“오룬 부족과 아수르 부족이 가장 가까워요. 이미 다른 도시와 교역을 맺었는지는 확인된 바 없구요.”
“어디가 당겨?”
“오룬이요.”
“거기부터 가자.”
어차피 교역로는 뚫어야 한다.
그 와중에 아루카 행성과 지구의 관계를 알면 좋고, 이 행성의 시스템이 어떤지도 알면 금상첨화다.
아무런 단서도 없으면 그때 탐험해 보면 된다.
아직 움직이기엔 몸의 감각이 100%가 아니다. 하지만 행동에 큰 제약은 없다.
“바로 가자.”
“괜찮으시겠습니까?”
“비룡이 타고 가면 돼.”
“예, 그럼.”
일행이 떠날 채비를 갖췄고, 그사이 수호는 차이를 불렀다.
휘리릭.
검은 연기와 함께 코트 입은 흑발의 뱀파이어가 무릎 꿇었다.
“부르셨습니까?”
“길드에 별일 없지?”
“예에.”
“미소 옆에 있다가 뭔 일 있으면 알려.”
“그리하고 있나이다.”
“그래, 가봐.”
“명대로.”
휘리릭.
차이를 돌려보낸 수호는 이미 짐을 다 싸고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순필을 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무엇이 말이옵니까?”
“왜 야수 소환은 차원을 가리지 않지?”
“으음.”
장순필은 조금 고민해 보더니 답을 내놓았다.
“꼭 야수 소환뿐만 아니라 스킬이란것이 행성에서 제약이 없습니다.”
스킬은 어디에서 얻는가?
지구인들의 각성을 통해 얻는다.
아루카, 구천, 지구는 명확한 상하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물건은 지구가 하위에 있고, 스킬은 지구가 상위에 있다.
지구의 물건은 어디에도 들고 갈 수 없지만, 그 스킬은 어디에서든 자유로이 쓸 수 있다.
“지구의 것이 아니지.”
“아!”
장순필이 무릎을 쳤다.
언제부터 지구에 초능력자들이 있었다고 지구의 것이라고 하는가.
“던전이군요.”
“그럴지도.”
던전이 생기면서 각성자가 생겼다.
몬스터를 사냥해서 그 힘을 취한 것이니까.
던전은 어디에서 왔는가?
“으음, 주군이 계시던 곳의 세상이…….”
장순필은 말을 하다가 말았다.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다만 수호가 머물던 세계가 파편화되어 던전에 그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가 보자고. 이 행성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예, 주군.”
일행이 준비를 마쳤고, 남은 숙박비를 계산함으로써 마을에서의 일은 마무리 지었다.
길을 따라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비룡을 소환해 타고 날았다.
슈아아아아.
“음?”
수호는 뭔가 이질적인 기운에 뒤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저건?”
나무정령도 아닌 것이 뭔가 오묘한 기운을풍기는 녀석이다.
“요정인가?”
수호의 얼굴이 아련해졌다.
요정을 본 적이 있었다.
놈들에게 문명인의 교류 같은 걸 기대한 적도 있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요정은 자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본질에 가까운 존재.
뒤따르는 바람의 요정도 바람 자체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까르르.
슈슈슈슉, 슈슉.
수호의 곁을 맴도는 살랑 바람에 피식 웃었다.
“따라갈래?”
슈슉.
수호가 손바닥을 펼치자 그 위에 바람이 뭉치더니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조화 스탯이 그래서 생겨났군.’
각성하면서 ‘야성’과 ‘조화’ 두 가지 스탯이 생겨났다. 둘 다 수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기운.
파팟.
요정이 수호에게 흡수되었다가 다시 나타나 주변을 맴돌며 까르르 웃었다.
*
다그닥, 다그닥.
“좀 더 서둘러야 하지 않나요?”
말이 아무리 빨라 봐야 날개 달린 짐승만 할까? 공주는 애가 탔지만, 알리어드는 천하태평이었다.
“공주님. 걱정 마십시오. 실프는 자유로워 어디든 못 가는 곳이…….”
알리어드가 말을 하다 말고 심각한 얼굴로 멈춰섰다.
‘느껴지지 않아.’
그는 신전에 속한 하이템플러이자 정령기사.
그의 실프와는 정신적으로 연결되어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느껴지지 않는 녀석의 기운에, 알리어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