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37)
238화 드워프
슈아아악.
“이렇게 큰 동물이 날다니, 정말 신기합니다.”
“이 동네엔 이렇게 큰 동물은 없나봐?”
“없지요. 나는 건 고사하고, 걸어다니는 놈들도 이만한 덩치는 없습니다.”
“코끼리 같은 거 없어?”
“예? 처음 들어봅니다. 제일 큰 동물이 긴목사슴인데, 간혹 집채만 한 놈들도 있긴 합지요.”
긴목사슴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던 카쿤이 불쑥 말했다.
“카쿤입니다. 오룬부족 기사단장이죠.”
“난 박수호. 얘들 대장이야.”
수호의 빈약한 설명에 옆에 있던 장순필이 거들었다.
“부족장과 비슷한 위치십니다.”
“아! 어쩐지 아버지께서 극진히 모시라더군요.”
“극진히는 무슨.”
그저 계약 관계다.
혈석을 제공하고 식량을 얻는.
“드워프들은 지하에 도시를 세웠다지?”
“그렇지요.”
“어떻게 들어가?”
“음, 땅속에 사는 건 맞지만, 정확히 지하는 아니지요.”
“그럼?”
“그들은 산에 삽니다.”
“산?”
“우리 세계엔 그런 말이 있지요.”
카쿤은 슬쩍 웃고는 말을 이었다.
“엘프를 찾거든 숲으로 가고, 드워프를 찾거든 민둥산을 올라라.”
“거 직관적인 말이네.”
“하하하, 마침 저기 바위산이 보이는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길잡이도 필요 없었겠군.”
“설마요. 드워프 마을을 찾는 건 쉽지만, 그들을 만나는 건 또 다른 이야깁니다.”
엘프들이 성을 쌓고 숲을 보호하듯, 드워프들도 그들만의 방어책이 있다.
얼기설기 개미굴처럼 짠 동굴은 그 자체로 훌륭한 방어책이 되어준다. 중간중간 함정마저 존재하기에, 멋모르고 진입했다가는 죽기 딱 좋다.
“평화의 행성이라더니, 순전히 껍데기만 그렇군.”
“하하하, 평화를 사랑하는 만큼 대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수호는 그 말이 마음에 들어 씩 웃었다.
폭력이 싫어 피하는 건 초식동물들이나 할 법한 생각이다.
이빨을 날카롭게 하고, 발톱을 세워야 한다.
그 누구도 덤벼들지 못하게.
포식자가 마음먹지 않는 이상, 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진정한 평화로움이다.
“마음에 드는 행성이네.”
그런 의미로 아루카는 초식들의 땅이 아니다.
거대한 맹수 둘.
엘프와 드워프가 날카로운 발톱을 바짝 세운 맹수들의 세계다.
호적수가 없음에도 그 무장을 해제하지 않은 종족. 언제든 싸우기 위해 위협을 전설로 노래하는 자들.
“저기서 내리시면 됩니다.”
카쿤이 가리킨 곳은 산 정상이었다.
“정상이네.”
“네, 저기 보시면 수십 개 굴이 있지만, 아무나 들어가서는 길도 찾지 못합니다.”
“정상이 제대로 된 길이야?”
“아니죠. 정상에 항상 드워프 초병이 숨어있습니다. 그들의 안내를 받아야지요.”
수호 일행이야 비룡을 타고 단번에 정상에 오르지만, 모르는 자들이 가면 정상에 도달하기 이전에 아무 입구나 들어갔을 터였다.
후우우웅, 후우우웅.
천천히 활공한 비룡이 사뿐히 착지했다.
“수고했다.”
수호가 두어 번 두드려주곤 비룡을 역소환했다.
“정말 신기한 짐승이군요. 마치 정령처럼 실체화했다가, 사라질 수도 있고.”
“그건 스킬이야.”
“와우, 공간을 다룰 수 있는 고위 마법사셨군요.”
“뭐, 비슷해.”
수호는 굳이 정정해주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야수 사육장 스킬은 야수들을 이동시키는 공간이동 마법이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어디 보자.”
카쿤은 산 정상의 바위 여기저기를 두드렸다.
수호는 물론 장순필도 그 모습을 매우 흥미롭게 보았다.
“순서가 있는 겁니까?”
“아뇨. 그냥 두드리는 건데요.”
“…….”
카쿤이 이 바위 저 바위 두드리길 한참 만에 흙이 들썩이더니 위장한 판때기 하나가 들춰졌다.
“어떤 시부렁 놈들이여.”
“아, 나왔네요. 드워프는 엘프와 달리 더 호전적이니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엘프들도 그리 순종적이진 않은 것 같았지만, 어쨌든 판때기를 들추고 나타난 드워프는 걸걸했다.
“뭐야? 면전에 대놓고 개소리를 씨불이다니. 죽고 싶어?”
“아, 저는 오룬에서 온 기사단장 카쿤입니다.”
“기사단장이고 나발이고 당장 꺼져. 지금 우리 부족은 손님 받을 분위기 아니야.”
“워어, 거친 분이시군요. 여기는 지구에서 온 인간들로…….”
“아니, 시부렁 놈들이…… 당장 안 꺼져? 도끼 맛 좀 보고 싶어?”
좁은 입구 위로 머리만 내밀고 주둥이를 쉴 새 없이 놀리며 욕을 해댔다.
카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수호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이 부족은 좀 많이 호전적이군요. 다른 드워프 마을을 찾아가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괜찮아.”
수호가 카쿤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난, 이런 애들이 더 편해.”
카쿤을 뒤로하고 드워프를 향해 다가간 수호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시부렁 놈들이 뭐 주워먹을 게 있다고 인간 따위가 여까지 기어와서서서서, 아아아아아악!”
드워프는 머리가 뽑혀지는 충격에 비명을 질렀다.
“시방, 머리! 머리!”
“나 아직 약 먹기 전이라 네가 무슨 말 하는지 몰라.”
꼭 언어가 통해야 대화가 통하는 건 아니다.
뿌드득.
“아악, 시방, 안 놓냐? 놔라. 놔!”
발버둥쳐 봤으나 입구는 좁고, 머리는 풍성했다.
“시방, 나 나가면 넌 뒈지는 거여! 이거 안 놔?”
우두둑.
“아아아악! 시방놈아! 머리 다 뽑힌당게!”
“뭐라는지 모르지만 기다려봐.”
“아아아악!”
수호는 머리를 꽉 잡은 채로 차원상점을 열어 언어의 알약을 구입해 먹었다.
“아악, 놔! 놓으라고!”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놔줘?”
“놔!”
“놔 주세요. 해야지.”
“시방색히 너는 내가 나가면, 아아아아악!”
수호가 힘을 줘 더 잡아 당겼다.
“다 뽑아 버린다.”
“아아아악! 원하는 게 뭐냐?”
“너희 마을을 구경하고 싶다.”
“이따위로 시비를 걸어놓고 무사할 성싶으으으아아악! 놔, 놔!”
“안 해 줄 거야?”
드워프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고심했다.
대머리가 될 것이냐, 마을을…….
‘이 새끼들 두고 봐라.’
지금 마을은 큰 걱정거리가 있어, 외부의 손님을 받을 정도로 분위기가 유하지 않다.
모두 신경이 날카로운데…….
“좋다! 구경시켜 준다.”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 같던 드워프가 갑자기 태세전환을 하자, 수호가 의외라는 듯 눈을 빛냈다.
“오, 머리를 소중히 여기는군.”
“노, 놓기나 해라!”
“좋아.”
기만책이라도 상관없다.
영역을 구경하고 싶어 하는데 순순히 응하지 않아도 된다. 영역 침범이야 수호 주특기나 다름없으니까.
‘쿠로 영역 놀러 가면 항상 싸웠는데 말이야.’
드워프 머리를 놓아주고 잠깐 옛 추억에 잠긴 사이 바위 하나가 들썩이더니, 엉망인 머리카락에 얼굴이 시뻘건 드워프가 나타났다.
“흥! 따라와라.”
그리 말하곤 씩씩거리며 바위 사이의 입구로 사라져 버렸다.
“의외네.”
“함정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 나 혼자 갔다 오면 돼.”
“주군 가시는 길에 속하가 어찌 따르지 않겠습니까?”
“순필이 너무 유학파 흉내 내지 마.”
구천 행성에서 몇 년이나 굴렀다고 이러는지.
“아무튼 난 간다.”
수호가 먼저 동굴 입구로 들어가 버렸고, 그 뒤를 동수가 따랐다.
“와 이거 조회수 1억 각이다!”
한동수가 최초의 드워프 마을 탐사 영상이니, 드워프 속생활이니 중얼거리며 들어갔다.
그 뒤를 장순필이 순교자처럼 따랐고, 박용필이 긴장된 얼굴을 하고 뒤따랐다.
“지구인들은 다들 용감하군.”
마지막으로 카쿤이 동굴로 모습을 감췄다.
*본래 강원도에도 마을이 있었다.
도시라 칭할 정도로 규모 있지는 않지만, 몇몇 5레벨 길드들이 자리 잡은 마을들.
원주에 몇이 있었고, 강릉에 몇이 있었다.
7성 던전 발발과 대한민국 정부의 필드 내 던전 공략 포기 선언을 시작으로 모든 마을과 길드들이 이주했다.
그렇게 버려진 강릉의 마을 하나.
“숨은 놈들 모조리 죽여버려.”
타다다다당.
“저기 건물에 몬스터 에너지 반응 다섯.”
“3분대 투입!”
투두두두두.
여기저기서 산발적인 총소리와 고함소리가 뒤섞여 시끄러웠다.
인간들이 버린 마을을 근거지로 삼아 진지를 꾸린 오크 무리를 토벌하고, 몰아냈다.
놈들의 혈석을 채취하고 시체를 구덩이에 쌓아 태웠다.
버려진 강릉의 마을을 재건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이 마을이 새롭게 생겨난 던전과 가장 가까워서 베이스캠프로 쓰고자 함이다.
“후, 이게 뭔 난리냐.”
각성자관리국 포탈관리과에서 나온 공무원이 중얼거렸다.
“측정 어떻게 됐어?”
“간이 측정값 99% 8성이랍니다.”
“망할.”
이 나라는 어떻게 된 게, 세계적인 재앙이 생기면 매번 선빵을 맞는지 모르겠다.
간이 측정값이 그렇게 나왔으면 거의 그렇다고 봐도 좋다.
문제는 정확한 던전 규모와 횟수, 그리고 브레이크까지 남은 타임이다.
측정기계가 워낙 크다 보니 던전이 생성된 산 중턱까지 길을 내고 있다.
우두둑.
불도저보다 더 효율 좋은 괴력 각성자들이 나무를 뽑아 버리고 길을 텄다.
그 뒤로 염력 각성자들에 의해 둥실 떠오르다시피 한 차원에너지 측정 차량들이 등산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런 일을 대비해 대형 드론으로 측정기를 만들면 좀 좋단 말인가.
어차피 엔진의 에너지원이야 혈석인데, 연비 따위 따지는 것도 우스운 시대니까.
투두두두두.
우콰쾅쾅.
던전 규모 측정과 베이스캠프가 될 마을 건물 정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며 주변 일대가 시끄러웠다.
2개 대대가 투입되어 몬스터들 영역이 되어버린 일대를 청소하고 있었다.
고블린 같은 경우야 놀라 도망가기 일쑤지만, 오크 같은 놈들은 근거지를 지키기 위해 싸우느라 동서남북 어딜 가나 총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건 꼭 없애야 해. 투입해.”
마을 주변에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 소동이 불가피한 던전 3개가 있어, 공략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고작 2성 던전 하나와 3성 던전 둘이라 공략은 문제없다. 용병들을 대거 투입했으니까.
커다란 카메라가 달린 드론이 수십 대.
벌써부터 현장을 찍으며 여러 기자들과 방송사들이, 아직 7성 던전도 정복하지 못한 인류에게 가혹한 시련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까 지켜보고 있다.
오직 하나의 길드.
대한민국엔 7성 던전을 완전히 정복한 길드가 있으니까.
“그 사람은 왜 안 오는 거야?”
이런 중요한 때에 수호 길드는 왜 정예를 보내지 않고 있는지…….
여러 기사를 통해 듣기로 아루카 행성에 갔다던데, 언제 돌아올지.
“팀장님. 상세 측정값 나왔습니다.”
제발 던전 회차와 브레이크 타임이 넉넉하길 빌면서 측정결과를 보았다.
“시발, 이게 뭐야.”
대한민국에 최악의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어서 그를 불러야 할 것 같았다.
*드워프 전사 융은 화끈거리는 두피를 어루만지며 화를 삭였다.
‘흥, 나쁜 놈들 두고 봐라.’
마을에 닥친 큰 걱정거리.
정체불명의 ‘그것’에게 벌써 드워프 전사 수십이 당했다.
부족의 명예로운 전사들도 대책 없는 그것 앞에 저 지구인들이 살아 돌아올 것이란 기대는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다 자업자득이다.
‘꼴 좋다. 나쁜 놈.’
얼마나 세게 잡아당겼는지 정수리가 아직도 후끈거린다. 만질 때마다 머리칼이 뽑혀 나오는 게, 힘 잃은 모발이 얼마나 더 뽑힐지 알 수 없다.
‘이건 내 머리카락에 대한 복수다.’
지구인들이 체력은 나쁘지 않은지, 자신의 발걸음에 맞춰 잘도 줄지어 오고 있었다.
“아니, 대체 왜 아직 마을이 나오지 않는 거요?”
그래도 저 귀 큰 엘프 놈은 그래도 눈치란 게 있구나.
“우리 마을은 많이 깊은 곳에 있소.”
“아, 그렇군요.”
카쿤은 즉시 함께 걷는 한동수와 박용필에게 떠들어댔다.
“종종 깊은 곳에 굴을 판 드워프들이 있습죠.”
눈치가 빠르긴 개뿔.
그냥 지구인들 사이에서 아는 척하는 거구나.
융은 가파른 계단을 타고 끝없이 내려갔다.
‘이건 정당한 복수다.’
다른 길로 들어섰기에 마을은 진즉 지나쳤다.
후끈후끈한 것이 지면에서도 한참 내려온 참이다.
이제 곧 ‘그것’이 보일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