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38)
239화 위기
인적 없는 길을 따라 걷던 일행이 멈춘 곳은 두 명의 드워프가 지키고 선 문 앞이었다.
“다 왔소. 잠깐 기다려 보시오.”
융이 일행을 멈추게 하고는 종종 걸음으로 먼저 다가가 드워프 경비병들을 일별했다.
“별일 없지?”
“별일이 뭐가 있나. 그나저나 여긴 위험…….”
“쉬쉬쉬.”
융이 급히 그 말을 막아서고는 말했다.
“저 친구들이 마을을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말이야.”
“응?”
마을이라면 한참 더 올라가야 하지 않나? 여기는 출입이 통제된 구역이다.
이 이상 다가가면 정체불명의 ‘그것’때문에 위험한데.
“길 좀 터 주시게.”
“하지만 여긴…….”
“어허, 다 알지. 내 술 한잔 사줌세.”
“으흠,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만 조심하게.”
“알겠어, 알겠어.”
융이 돌아와 수호 일행을 이끌었다.
“자 들어갑시다.”
“아까 뭐가 위험하다고 하던데?”
융이 카쿤을 흘겨봤다.
귀 큰 엘프놈이 귀도 밝군.
“지금 마을 분위기가 뒤숭숭해 외부인 들이는 게 어렵다는 걸 겨우 설득한 참이오.”
“으음. 굳이 그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수호에게 감정이 좋지 못할 게 뻔한 융이다. 그런데 외지인을 굳이 무리해서 마을로 들이려는 이유가…….
“뭘 따지고 있어. 주인이 초대해주는데.”
“하하하, 맞소. 들어갑시다.”
융이 신나서 수호를 이끌었고, 뒤를 일행들이 뒤따랐다.
꾸궁.
문이 닫히고 어둠이 찾아왔다.
“여긴 불도 안 켜놨네.”
동굴 벽에 일정 간격마다 붙어있던 횃불도 없다.
“아, 걱정 마십시오.”
화르륵.
융의 어깨 위에 불꽃이 피어올라 주변을 밝혔다.
화르륵.
융의 어깨 위에서 발화한 불꽃은 머리에 올랐다가 다시 그의 몸 주변을 이리저리 움직였는데, 점점 형체를 갖춘 그 모습이 도마뱀을 닮아 있었다.
화르륵.
“불의 정령인가 보네.”
“살리만다라고 하지요. 후후. 자, 따라오십시오.”
마음씨가 좋은 드워프인가.
당한 게 있을 텐데도 친절하게 길 안내를 했다.
하지만 그 친절은 10분을 넘지 않았다.
파팟.
갑자기 살리만다가 사라지며 주변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유일한 광원인 살리만다를 따르던 일행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멈췄다.
타타탓.
아직 적응하지 못한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누군가 뛰어가는 소리만 들려왔다.
“쟤 달려가네.”
오직 수호만이 어렴풋이 멀어지는 융을 보았다.
“앗! 잡아야 하는 거 아녜요?”
“왜?”
“아까부터 수상하더라니, 딱 봐도 우리가 함정에 빠진 거잖아요.”
“함정이야?”
수호는 주변을 둘러봤다.
빛 한 점 없는 캄캄한 동굴이라, 시야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파, 팟!
평소 노숙용품을 가지고 다니는 장순필이 아공간주머니에서 횃불 하나와 부싯돌을 꺼내 능숙하게 불을 붙였다.
화르륵.
“와, 튀었네.”
망연자실해하는 동수를 보며 수호가 의아해 물었다.
“뭘 그리 끙끙거리냐, 그냥 왔던 길 되돌아가면 되는 거지.”
“아니, 형님 그 길 다 기억하세요? 우린 지금 미로 한가운데 빠진 거나 다름없어요.”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드워프는 수호의 윽박지름에 굴복당한 모양새도 아니었는데 순순히 길 안내를 자청한 게 충분히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그저 수호가 함께하기에 걱정하지 않았을 뿐.
“왜 되돌아가냐. 아까 걔 앞으로 가던데.”
수호는 업적 상점에서 횃불 하나를 살까 하다가 관두었다.
화르르륵.
동굴 저편에서 불도마뱀 하나가 부리나케 뛰어오고 있었다.
화륵.
수호의 발치에 머리를 비비는 것이 퍽이나 우스웠다.
“그놈 스트레스 좀 받겠네.”
하이템플러들이 보였던 반응을 생각하면, 정령을 뺏긴 드워프가 어떻게 나올지는 너무 뻔했다.
파팟.
살리만더와 계약하자 녀석과 의식의 끈 한쪽이 연결되는 느낌이 든다.
야수들과 조금 다른 느낌.
벌써 셋이다.
화르륵, 화륵.
융에게 그랬던 것처럼 살리만더는 수호의 몸을 기어올라와 어깨에 자리잡았다.
불로 이뤄진 정령인데 하나도 뜨겁지가 않았다.
“가자.”
“그쪽으로요?”
수호가 돌아가지 않고 앞으로 걷자 동수가 기겁하고 물었다.
사람은 본디 가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상황에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
아니, 사람이 아니라 모든 동물들의 본능이리라.
“도망친 길잡이 잡아와야지.”
수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미로처럼 얼기설기 연결된 동굴이 사방팔방으로 뚫려있어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다.
“어떻게 찾으시게요?”
“새 친구들에게 부탁해보지.”
수호의 앞에 실프가 나타나 작은 날개를 팔랑였고, 동굴 벽에서 불쑥 돋아난 노움이 흙을 털며 꾸벅 인사했다.
“드워프 하나 찾아줄래?”
휘리릭.
수호의 부탁에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웃기게도 불의 정령 살리만다였다.
“가자.”
“넵.”
일행이 천천히 살리만다를 따라가니, 동굴의 한쪽에 서서 당황한 얼굴의 드워프가 보였다.
“살리만다! 어찌 나를 버릴 수가 있느냐!”
화르륵.
“으허어엉, 돌아와. 살리만다.”
불의 정령을 다룬다는 것은 드워프 장인에게 큰 명예다.
살리만다와 함께함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했던 융은, 무참히 계약을 해지하고 가버린 녀석을 보며 애걸했다.
타타탁.
얼마나 심취했는지 수호 일행이 근처로 다가와도 신경 쓰지 않아 보였다.
“으허어엉, 살리만다.”
수호가 그 모습을 보곤 고개를 저었다.
엘프보다 드워프들이 더 호전적이라고 하더니, 어째 하이템플러들이 더 했었던듯하다.
“이봐.”
“으헝, 내게 돌아와 살리만다!”
“넋을 놨네.”
수호가 손짓하자 살리만다가 수호의 다리를 타고 잽싸게 올라 어깨에 자리잡았다.
그 모습에 드워프 융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이제 보니 살리만다가 자신을 떠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저 인간과 새롭게 계약을 맺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날 버리고 갈 수가 있어!”
화르륵.
입이 없는 도마뱀은 말이 없었고, 원망의 눈초리는 수호를 향했다.
“당신은 무슨 억하심정으로 내 머리털에 이어 정령마저 뺏어간단 말이오!”
그의 역정에 수호가 웃었다.
슈아악, 퍽!
“끄어.”
꾸웅.
“컥!”
주먹 두 대로 제압한 드워프의 멱살을 쥐고 올렸다.
“두 가지 묻지.”
바로 코앞에서 마주친 수호의 눈빛은 장난이 아니었다.
‘보통의 인간이 아니구나.’
뭘 믿고 담력이 이리 세나 했더니, 제 실력이 그 비밀이었다.
도무지 눈을 마주치고 있기가 어렵다.
융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 포악하다는 드래곤의 눈빛이 저랬을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굴욕감과 패배감,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부들부들 떨었다.
“끄으…….”
“마을 지나쳤지?”
“그, 그렇소.”
“여긴 어디지?”
“지하 광산이오.”
“여길 왜 데려왔지?”
“……질문 두 개 끝났소.”
용기를 낸 드워프가 마지막 자존심을 발휘했으나 돌아오는 건 수호의 주먹이었다.
퍼억, 퍽!
“끄으으. 쿨럭, 컥!”
한참 피거품을 게워낸 드워프 융이 사실대로 실토했다.
“며칠 전부터 나타난 ‘그것’ 때문에 광산이 폐쇄되었소.”
“그것? 그게 뭐지?”
“모, 모르오.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지, 제대로 그것을 본 사람이 없소.”
“으음.”
수호가 턱을 쓰다듬었다.
대충 광산에 몬스터 비슷한 게 나타난 모양인데, 드워프들은 아직 그것에 대해 실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여기로 안내한 이유는?”
“으으, 그것에게 던져주려고 했소.”
“와, 너 엄청 나쁜 놈이구나.”
“그대는 악마 같소.”
다시 슬금슬금 기가 살아나는 드워프를 보며 수호가 씩 웃었다.
재밌는 종족이다.
수호는 드워프의 멱살을 놓아주고는 일행들을 둘러봤다.
“자 어떻게 할래?”
수호의 물음에 가장 먼저 답한 건 엘프기사단장 카쿤이었다.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하오.”
“저는 어디든 조회수 많이 나오는 쪽이요.”
“사장님. 애초 목표대로 드워프 마을로 가시지요.”
“무엇이든 주군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궁금하니까 광산의 손님을 잡고 간다.”
수호가 추측하기로 이것은 몬스터다.
아루카 행성에 기존에 존재하지 않아 정의 내릴 수 없을 정도로 처음 보는 개체라면 분명 몬스터다.
‘경험치가 들어오려나.’
아루카 행성에서 사냥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었다.
“자, 그것인지 그놈인지 잡으러 간다.”
“오예!”
“으음.”
“주군의 뜻대로.”
“이건 위험하오. 드워프 전사들도 속수무책이라고 하지 않소?”
부정적인 카쿤을 돌아보며 말했다.
“돌아가도 돼.”
부하도 아닌데 사냥에 참가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으음.”
“그럼 우린 간다.”
수호는 슬쩍 내빼려는 드워프 융의 뒷목을 잡고 동굴 깊숙한 곳으로 내려갔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있던 엘프 카쿤이 울상이 되었다.
“젠장.”
길을 몰라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당장 멀어지는 저 불빛을 잃으면 어둠속에 헤맬 판이다.
“기, 기다려주시오.”
서둘러 일행에게 따라붙으며, 카쿤은 인간 일행들이 무모함만큼이나 대단한 힘을 가졌기를 빌고 빌었다.
‘신이시여.’
그의 신께.
*던전 규모 – 레벨 8 (8300)
남은 횟수 – 10 (83000)
브레이크 – 18. 23 : 20 : 41
최초의 8성 던전의 출현.
고작 10번의 던전 회차는 던전 소멸에 긍정적인 요소지만, 겨우 20일의 브레이크 타임은 촉박하기만 했다.
그것도 아무런 선발대 진입 없이 이틀이 지나버렸다.
정부 비상회의실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서울에서 비교적 먼 강릉 필드에 생긴 던전 취급하기엔, 브레이크 이후 그 후폭풍이 무섭다.
7성 던전이 터지며 군주가 나오면 주변일대 몬스터들이 죄다 그의 부하가 되며 군대를 이루는 게 문제다.
하지만 이건 국방부의 힘으로 견제, 토벌이 가능한 수준이다.
문제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8성.
그리고 어디에 처박혀 있을지 모르는 회귀자 이성우의 예언 비슷한 예고.
해상에 퍼진 거대한 덩치의 군주들이 육상에까지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
진정한 문제는.
끔직한 일이다.
차라리 이성우의 말이 거짓이길 바랄 정도로.
그 말의 팩트 여부를 체크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최선은 저 던전이 터지기 전에 처리하는 것.
그리고 8성 던전의 선발대로 진입하기에 적절한 인물이라면 역시 그밖에 없다.
회의실에 모인 모두가 한 인물을 떠올렸다.
그리고 겨우 초청한 인물.
“김미소 부사장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 하시게.”
속된말로 미국 대통령보다 더 콧대가 높다는 김미소 부사장이 청와대의 요청에 의해 회의실에 모습을 보였다.
의례적인 인사가 끝나고 성격 급한 장관 하나가 물었다.
“지금 대한민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상황인데, 박수호 사장은 어디서 무얼 하는 겁니까?”
“다들 아시다시피 부재중이십니다.”
“당장 돌아와 저 던전을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니오?”
“강릉 필드는 저희 길드의 영역 밖입니다.”
“아니,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김미소가 물끄러미 그 장관을 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뭐죠?”
“흠, 내 흥분했소.”
목소리를 가다듬은 장관이 말했다.
“위대한 힘은 위대한 일에 쓰여야 맞소. 대한민국이 위기인데 당연히 박수호 사장이 나서서 이 문제를 막아야 하지 않겠소?”
“맞습니다. 육상 거대군주가 서울로 향하는 날이면 대한민국은 끝입니다.”
“…….”
김미소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장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이 끝나면 수호시라고 멀쩡하겠습니까?”
이 위기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너희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서 대책을 내놓으라.
“재밌군요.”
김미소가 미소지었다.
그 미소에 회의실에 모인 모두가 긴장하며, 미소의 붉은 입술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