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51)
252화 누구나 계획은 있다 (2)
“후, 다했다.”
동수는 저장석에 기억을 옮겨담고는 땀을 닦았다.
스킬은 어떤 스탯이든 한 가지 이상을 꼭 요구했다.
동수 같은 경우에 지력과 기력.
영상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신력과 에너지의 소모가 심하다.
“다했어?”
“네, 영상 뜬 거 지금 전송중이에요.”
길드로 보내지는 영상은 전력분석실에서 알아서 편집해 채널에 업로드할 것이다.
‘출세했다, 한동수. 편집자들도 두고 말이야.’
동수는 소소한 뿌듯함을 느끼며 소파에 앉아 늘어졌다.
“후……. 형님, 바로 던전 다시 가실 거예요?”
“그래야지. 한 번 더 갔다오면 90이야.”
8성 던전에서의 성장 한계치는 90레벨.
수호는 할 수 있는 최대의 등급까지 올려놓을 작정이었다.
어그로꾼 명진이 없어도 알아서 사냥감이 모여드는 아주 좋은 사냥터가 생겼으니까.
아쉬운 것은, 그 사냥터의 수가 9개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두 곳은 현재 공략이 진행 중.
귀환석으로 탈출하면 다르겠지만, 보스를 잡고 정상적으로 공략하고 나오면 던전 횟수가 줄어든다.
“형님 말 들으면 묘하네요.”
“뭐가?”
“아니, 인류 평화 생각하면 던전 숫자 적은 게 천만다행한 일인데, 형님 말 듣고 있으면 또 아쉽기도 하고…….”
정복한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
“넌? 들어갈래?”
조금 지쳐 보이는 동수를 보고 물었다.
“무조건 가야죠.”
죽더라도 형님 따라다녀야지.
따라만 다녀도 콩고물이 가득이다.
“좋아. 너도 90 찍는다.”
“으헤헤.”
이로서 세계 두 번째 랭커 자리 확보인가?
“순필이 용필이도 이제 사냥 더 열심히 해.”
레벨업에 필요한 대강의 견적이 뽑혔다.
90레벨만 찍으면 더 얻지도 못하는 경험치, 그들에게 나눠줄 작정이다.
나눠 준다 해도 그저 그들 스스로 사냥할 기회를 주는 정도였지만, 수호와 함께 던전에 간다는 것 자체가 큰 메리트다.
몇 성 던전이건, 그와 함께 간다는 건 최소한의 목숨은 보장된다는 말이니까.
“밥 한 끼 먹고 가자.”
“넵, 형님.”
동수가 지원부서 스텝에게 식사 준비를 요청했고, 수호는 인벤토리에서 오랜만에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띠리리리리리리.
신호가 다시 연결됨에 따라 쉴 새 없이 울리는 부재중 메시지 알림과 전화벨에, 그것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이거 쓰지도 못하겠네. 미소한테 전화 걸어봐.”
“넵, 사장님.”
사무실에 동석하고 있던 비서실 직원이 재빨리 전화를 걸어 건넸다.
“미소.”
“소진이 왔어?”
[네, 무사히 도착했어요.]“먼저 출발해 놓고, 왜 늦게 왔대?”
[엘프들과 마찰이 조금 있었어요.]“응? 무슨 마찰?”
[엘프들 마을에 잠깐 갇혀 있다가…….]탁.
수호가 전화기를 내렸다.
“가자.”
“네? 밥 안 먹고 가요?”
“밥이 중한 게 아냐.”
“음?”
수호가 사무실을 나서자 동수와 순필, 용필은 영문도 모르고 따라나섰다.
휘리릭.
수호가 비룡을 소환하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타라.”
“아니, 형님. 어디 가시게요?”
비룡을 꺼내든 것을 보니 행성지가 던전은 아닌 모양.
“엘프 마을.”
“거길 또 가요?”
“가야지.”
겉과 속이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협상이 잘 마무리되고 그 많은 혈석을 받아먹고, 잔치도 열고, 웃으며 배웅까지 받았는데…….
떠나자마자 일행을 인질로 잡아 감금해 뒀다니.
“괘씸하군.”
비룡이 막 날갯짓을 하려는데, 비서실 직원이 다급히 소리쳤다.
“부사장님이 길드로 오시랍니다!”
“나 바빠.”
“엘프들 같이 왔답니다.”
“엘프가?”
얼마나 낯짝이 두꺼우면…….
“내 부하를 핍박해 놓고 감히 여길 와?”
수호가 비룡을 툭 쳤다.
후우웅, 후우우웅!
거대한 날개가 움직이며 몸체를 띄웠다.
그리고 기자들의 카메라가 바삐 움직였다.
*수송기가 점점 길드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수호시티는 꽤 색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콩나물처럼 빽빽이 자란 거대나무들이 두른 울타리, 그리고 그 바깥을 흐르는 거대한 강.
‘해자?’
엘프들의 성은 기본적으로 용에 대비해 쌓은 것들이라 해자는 없다. 해자를 파는 데 공력을 들일 바에야, 성벽을 더 높이 올리는 게 그들의 방식.
조금 더 가까워지자 엘프 기사 알리어드는 눈을 비볐다.
‘야생 동물이 왜 저리 많지?’
아루카 행성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대형 맹수들이 많다. 신기한 것은, 다양한 종들이 꽤 가까이 위치하는데도 영역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데 왜 성 안에…….’
보통은 반대가 되어야 한다.
성은 위협에서 보호받기 위한 시설.
저 성의 주인이 인간인지, 동물들인지 헷갈릴 정도로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다.
성 안에 인간들의 흔적이 없냐면 또 그건 아니었다. 공사 중인 건물들이 여럿 보이고, 거리를 오가는 인간들도 여럿 있다.
“지구의 인간들은 동물들과 친한가 보오.”
결국 참지 못한 알리어드가 말했고, 드워프 융이 말을 받아줬다.
“호오, 그런가 보오. 사람들은 동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구려.”
저공비행에 들어간 수송 드론으로 인해, 지면이 보다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으음? 저것 좀 보시오. 히야, 물에도 저렇게 큰 동물이 있다니.”
아루카 행성에서 가장 거대한 동물이라고 해 봐야 소 정도의 크기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이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수호 길드에 존재하는 야수들은 모두가 덩치가 큼직했기에 놀라기 바빴다.
물에 유영하고 있는 상어의 몸집은 그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아루카 행성의 엘프들이나 드워프의 상식으로, 물고기가 저렇게 큰 것은 분명 신기한 일이니까.
“저긴 뭐죠?”
공주가 내성 서쪽의 숲지대를 가리켰다.
그곳에 유독 우뚝 솟은 한 그루의 나무가 그녀의 시선에 강렬히 꽂혔다.
김미소는 그런 공주를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수호시티에 오신 걸 환영해요.”
수송 드론이 천천히 하강해 호텔 계류장에 착륙했다.
“내성을 제외한 모든 구역은 관광이 가능합니다. 호텔 내에 가이드가 있으니 가급적 동행하시길 바랍니다.”
김미소는 그들을 철저히 손님 취급했다.
애당초 그들의 목적이 수호시티를 구경하고 싶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럼 용무가 있으시면 호텔 프런트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미소의 연락을 받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호텔 직원들이 능숙하게 엘프들과 드워프들을 안내했다.
그들이 수호 길드의 귀빈으로 초대되었다면 당연히 호텔이 아닌 수호 길드 내성의 응접실로 향했겠지만…….
김미소는 그들이 호텔로 들어가자 이소진을 끌어당겨 물었다.
“자세히 이야기해 봐.”
“정말 아까 그게 전부예요.”
“드래곤?”
“네. 저 공주란 사람이 신탁을 받았대요. 사장님이 드래곤의 재앙을 끌어오진 않을까 의심했어요.”
“그럼 여기 왔다는 건…….”
김미소는 턱을 쓰다듬었다.
적지나 다름없는 이곳에 왜 왔을까? 그것도 엘프 사회에서 결코 지위가 낮아 보이지 않는, 공주라는 신분의 엘프가 말이다.
“드래곤의 재앙이라는 게 저들한테는 중요하다는 말이네.”
아루카 행성과 교류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들의 문화 역사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본격적으로 그것을 연구한 학자들이나 연구자들만이 알까?
“엘프 역사에 대해 연구한 박사들 찾아봐.”
“오자마자 일이에요?”
“쉴 거야? 필요하면 휴가 주고.”
김미소의 말에 이소진이 픽 웃었다.
“됐어요. 저도 열이 뻗쳤는데, 이유라도 알아야죠.”
이소진이 느끼기에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평화의 행성 아루카의 엘프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드래곤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했다.
“근데 저렇게 내버려둬도 되요?”
“그럼 똑같이 감금해줘?”
“에이.”
이소진이 웃었다.
뻔한 빈말이지만,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 해주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김미소가 자신을 얼마나 아끼는지도 알고 있다.
“그냥 궁금해서요.”
“나도야.”
“네?”
“목적이 있었으니 따라왔을 거 아냐. 내버려두면 알려주겠지.”
“아하.”
김미소는 당진철에게 다가가 말했다.
“감시도 특기랬죠?”
“이를 말이겠소.”
“맡아 주실 거죠?”
“내가 말이오?”
한발 빼는 당진철을 보며 절대 거부하지 못할 당근을 제시했다.
“사천당가에 불하할 땅을 두 배로 늘려주죠.”
“내 안 그래도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해 찝찝하던 차였소. 맡겨만 주시오.”
당진철은 곧장 건물 하나에 숨어 은신한 채 감시에 들어갔다.
김미소는 내성 집무실로 복귀했다.
*수호 호텔의 빈 객실은 몇 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손님 없는 예약이 차 있는 상태고, 몇몇 객실만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비워져 있었다.
아루카 행성에서 온 손님들에게 배정된 방은 2개.
“공주님이 여기를 쓰시지요.”
“맞습니다. 저희는 여길 쓰지요.”
일행은 공주에게 방을 하나 내어주고, 나머지 인원들이 죄다 한 방을 쓰기로 하였다.
“내가 먼저 번을 서지.”
“그러세, 곧 교대해 주겠네.”
신전기사 로매드가 공주의 방 앞을 굳게 지키고 서 있고, 나머지 일행들은 호텔 룸으로 들어갔다.
“오오! 이 침대 좀 보시오.”
알리어드는 푹신한 침대에 걸터앉아 이불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풀썩!
그 옆을 점프하다시피 해 누운 드워프 융이 팔다리를 휘적이며 이불을 만졌다.
“푹신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부드럽기까지 하오.”
“과연, 지구의 기물이오.”
지구의 물건은 포탈을 통과할 수 없다.
아루카 행성의 엘프나 드워프들이 이것을 보려면 지구로 와서 직접 보고 경험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구 초행이다.
여기저기 신기한 것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오, 여기 작은 우물도 있구려.”
엘프 기사 카쿤의 말에 알리어드와 융이 그곳으로 향했다.
“마침 목이 말랐는데, 잘되었소.”
엘프와 대머리 드워프가 작은 우물의 물을 탐하는 그때, 옆방의 공주는 심각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마침 창이 난 방향이 내성을 향한 북쪽이다.
‘저것은 분명…….’
공주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급히 떨쳤다.
‘이 외딴 행성에 그럴 리가…….’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생각과 의문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딸깍.
결국 그녀가 문을 열고 나가자 로매드의 넓은 등짝이 보였다.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잠시 걸을까 해요.”
“모시겠습니다.”
로매드의 호위를 받으며 길을 걷는 공주의 모습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와, 미모 미쳤다.”
“오빠, 어딜 봐?”
“와아…….”
“헉.”
지나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같이 놀라는 모습에, 로매드는 속으로 지난번 한동수의 반응이 이해되었다.
‘지구인들의 눈에 공주는 아주 아름다운 외모인가 보군.’
엘프들 사이에서도 물론 아름다운 외모이지만, 지구인들이 느끼는 것은 그보다 더 큰 듯했다.
턱이 빠진 듯 입 벌리는 남자 넷을 지나 공주가 다다른 곳은 내성 서쪽 성벽이다.
‘이 너머에…….’
그 나무가 있다.
입구는 내성을 통해 본사가 우뚝 선 성문을 통과하는 게 유일하지만, 이 성벽을 넘으면 금방이다.
“여길 살펴봐야겠어요.”
“공주님의 뜻에 무슨 걸림이 있겠습니까.”
로매드의 응원에 공주는 즉시 축복 마법을 실현했다.
파파파.
그녀의 몸이 빛에 쌓이는가 싶더니 둥실 떠올라 성벽을 넘었다.
“우끼?”
성벽에 거주하는 원숭이들이 웬일인지 공주를 적대시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관찰하던 당진철이 씩 웃었다.
“알았군.”
이번 임무는 싱겁게 끝이 났다.
당진철이 김미소의 집무실을 찾아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저들의 목적을 알았다.”
“벌써요?”
“훗, 난 이 방면에서 전문가요.”
당진철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이야기를 꺼냈다.
“저들의 목적은 야수쉼터. 그 숲으로 향했소.”
“…….”
김미소의 눈섭이 찌푸려졌다.
“안 막고 뭐했어?”
“지켜봤지.”
“…….”
당진철은 감시 임무에 충실했다.
김미소가 한숨을 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긴, 내버려 두어도 마찬가지인가?
수호를 제외한 수호 길드 그 누구도 접근을 불허하는 야수들이다.
공주라고 하여 다를까.
어차피 야수들이 굳게 지키고 있을 것인데.
띠리리.
그때 미소의 휴대폰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