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62)
263화 사파리 (2)
오크들이 지배하는 도시 한쪽에 불청객이 난입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들은 다름 아닌 인간.
“쿠루룩!”
한동안 인간으로 포식을 해 왔지만 이제 모두 먹어치워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껴먹거나, 몇 놈은 가두어 사육했을 것을…….
“쿠루루, 쿠룩!”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인간들이 수하들을 학살하는 모양이지만 어차피 인간.
인간의 체력은 형편없고, 오크들은 많다.
거기에 이 옆에 있는 정예 오크전사들이 출격하면 어떻게 될까?
“쿠루루.”
이 일대의 군주.
오크대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친위대를 이끌고 나섰다.
“꾸어어어!”
“쿼어어어어!”
오크대왕의 위엄서린 함성에 화답한 오크 친위대와 오크전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숙자는 흐뭇한 얼굴로 용병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용쓰는 양반들인데 먹는 거라도 잘 먹어야제.’
한바탕 괴물 잡느라 드잡이질 했는데, 먹는 거라도 잘 먹어야 하지 않겠나.
커다란 솥을 내걸고 삶아낸 국수를 양푼이 그릇에 수북이 담아 하나씩 돌렸다.
식재료야 보급반에서 엄청나게 챙겨주었기에 아낄 필요가 없다.
후루루루.
“와, 이모 정말 맛있어요.”
“오집니다. 진짜.”
“오지는 게 뭐냐?”
“아, 끝내준다고요.”
“이잉. 마이 묵어라.”
이숙자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몸도 젊어지니 정신도 젊어지는 기분이다.
‘젊은이들하고 어울려 다녀서 그러나.’
마치 마음도 청춘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요즘 애들 말도 배우고.
그때 이숙자의 눈에 깨작깨작 먹고 있는 덩치 큰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새로 온 총각. 맛이 별로여?”
“아, 복지부장님. 아닙니다.”
어색하게 웃는 강석호의 양푼이에는 국수가 거의 그대로 있었다.
“아따, 덩치가 아깝구마잉. 왜 먹는 게 그리 시원찮어?”
“아, 그게…….”
강석호는 그저 아리송한 미소만 지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게 이숙자 속을 긁었다.
“왜 말을 하다 말어?”
“근손실이…….”
“뭐시여? 금손?”
“아, 그게 아니고 탄수화물이 너무 많아서…….”
“…….”
이숙자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고기는 없습니까?”
이숙자의 표정이 좋지 못하자 강석호가 급히 말을 주워 담았다.
“아, 아닙니다. 저는 따로 챙겨온 게 있습니다. 그거 먹으면 됩니다.”
이숙자가 강석호의 양푼이를 뺏어 들었다.
“맛없다 소리를 거참 빙빙 돌려서 하는구만 그려.”
뺏어든 양푼이를 옆에 있는 당진철에게 주었다.
“너 두 그릇 먹어라 야.”
“후루룹, 엄마 감사.”
“저놈 저거 반찬 투정 안 할 때까지 밥 주지 말그라.”
“흥, 엄마의 손맛을 거부하다니.”
당진철은 검지와 중지를 펴 자신의 눈에 대었다가 강석호를 가리켰다.
내가 지켜보마.
우리 새어머니의 심기를 거스르다니.
“하하, 죄송합니다.”
수호가 나타나기 이전의 이야기지만, 강석호는 대한민국 10대 랭커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아공간 아티팩트 하나 없을 리 만무한 일.
허리춤에 매달린 아공간주머니에서 단백질 셰이크를 꺼내 능숙하게 타서 흔들었다.
그 모습에 한동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형님. 헬ㅊ…… 헬스 하세요?”
동수의 말에 강석호가 단백질 셰이크를 원샷하고는 말했다.
“용병 되기 전에 트레이너였지.”
“아하!”
어쩐지 피지컬이 장난 아니라고 했더니.
“이게 하도 습관이 되어 놔서…….”
식단 관리가 습관이 되다 보니, 제대로 챙겨먹지 않으면 너무 신경이 쓰인다.
그게 징크스가 되어 또 사냥에 영향을 끼치기에 식단과 정기적인 운동만은 꼭 지키는 강석호다.
“와, 형님 3대 몇 치세요?”
“3000은 치지.”
“와, 시발. 미쳤네.”
동수가 욕했으나 강석호는 기쁘게 웃었다.
“너도 헬스 좀 하는구나.”
“아뇨. 저야 깔짝하다 말았죠.”
1년치 회원권 끊어서 일주일 갔나? 아무튼 동수가 감탄하자 강석호는 신이 났다.
“용병에게 피지컬은 그 무엇보다 중요해.”
각성 등급이 오를수록 신체 한계가 늘어난다. 강석호는 그 한계점까지 몸을 단련하자는 주의의 피지컬파다.
“후루룹.”
국수를 먹으며 이야기를 듣던 동수가 국물까지 원샷하고는 슬쩍 이숙자의 눈치를 보곤 말했다.
“형님, 근데 괜찮겠어요?”
“뭐가?”
“아니, 이모님 고집 있으신데……. 진짜 밥 안 주실 텐데.”
반찬 투정을 극혐하는 복지부장 이숙자다.
복지식당도 메뉴판 없이 집밥처럼 그때그때 반찬이 다르게 나온다.
반찬 투정을 조금이라도 할라치면 나가서 사먹으라고 내쫓는 그녀다.
살면서 맛있는 것만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골고루 잘 먹어야 몸이 튼튼해진다는 생각의 이숙자다.
“단백질 셰이크랑 닭가슴살이 한 가득이야.”
“와…….”
사람이 그런 것만 먹고 살 수 있단 말인가?
“던전이라도 들어가면 어쩌려고요?”
“음, 던전용은 몇 없는데…….”
지구의 물건은 포탈을 통과할 수 없다. 아공간 주머니에 있는 동안에는 안전하지만, 꺼내는 순간 분해되어 사라질 뿐이다.
던전에서도 식용 가능한 전투식량은 전부 아루카 행성에서 수입한 식재료로 만든다.
당연하게도 가격이 비싸다.
‘아프리카 행이라서 싼 거 챙겨 온 건데.’
강석호는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다.
“음, 형님 그렇게 드시면 못 견디실 텐데…….”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되면 제대로 쉴 타이밍도 없을 텐데, 저렇게 먹어서 견디려나 모르겠다.
이숙자가 따라온다 했을 때 용병들이 괜히 박수친 게 아니다.
‘형님 버스가 만만찮지.’
탑승객도 쉴 새 없이 움직이게 하는 버스!
고생은 죽을 듯이 시키지만 확실히 키워드립니다!
L등급을 목전에 두고 있는 한동수의 눈앞에 지난 세월 잡아온 몬스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못해도 수십만은 되리라.
“으, 힘내세요.”
갑자기?
강석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훈훈하게 웃었다.
“하하, 고맙습니다.”
자신이 대한민국 탑랭커로 군림할 때 한동수는 신출내기였다.
용병 시험 동기인 박수호도, 저기 있는 승려 명진도 같다.
어느새 차이가 역전되어 이렇게 한식구가 되었지만, 그들에 대한 질투심이나 열등감 따위는 없다.
‘믿을 건 내 몸 하나.’
등급이 오르면 한계가 오른다.
그러면 다시 단련해 극한의 피지컬을 완성하리라.
“자, 모여 봐.”
수호가 식사를 마친 일행을 한데 모았다.
“난 안 도와줄 거야.”
수호의 시선이 명진과 수영에게 스쳤다.
레이더도 있고, 군집미끼도 있으니 사냥이야 알아서 잘 할 터였다.
“세희가 이끌어.”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홍세희가 발그레해진 볼을 감추려는 듯 늠름하게 대꾸했다.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야수 몇 붙여줄게. 그 정도면 되지?”
“충분합니다.”
방패기사 홍세희.
그녀의 말에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자신을 인정해준 듯하여 홍세희는 기뻤다.
‘조금 더.’
더 강해지리라.
그래서 목숨을 구함받은 은혜를 갚으리라. 그리고…….
“진철이 넌 베이스캠프 방어.”
“형님께서는 걱정하지 마시오.”
당진철이 함께하면 이숙자의 호위는 걱정 없다.
“동수 넌 알아서 해라.”
김미소에게 따로 지령을 받은 걸로 안다.
“헤헤, 전 그럼 내일부터 사냥하죠.”
“좋아. 알아서들 움직이다가 8성 던전 발견하면 보고해.”
군주의 최소 레벨은 80레벨.
7성 던전의 브레이크로 인해 나타나는 것을 제외하면, 8성 던전에 직접 들어가서 보스 몬스터로 마주치는 수밖에 없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7성 던전의 브레이크를 기다릴 필요 없이 8성 던전을 공략해서 차원석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지난번 강릉 던전을 10번 클리어해 차원석 4개를 얻었다.
일행이 이곳에 온 목적은 아프리카의 탈환도 아니고, 몬스터 청소도 아니다.
차원석과 레벨업을 위해서다.
그 목적에 가장 충실한 사냥터가 8성 던전.
발견하면 좋고, 발견 못해도 상관없다.
“쿠어어어!”
저 멀리서 괴성과 함께 일단의 오크 무리가 돌진해오고 있었다.
가장 선두에 선 오크는 덩치가 남들보다 두 배는 큰 것이, 척 보기에도 범상찮아 보였다.
“군주네.”
5성 던전에도 등장하는 오크대왕이다. 그 녀석과 군주 몬스터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크락투!”
화르르륵.
오크대왕의 손짓에 거대한 불덩이가 날아왔다.
마법을 선제공격으로 한 방 먹인 뒤 돌진해 쓸어버릴 작정인 모양이지만.
“하압!”
홍세희가 그녀의 대표무기인 타워실드를 들어 바닥에 찧었다.
우우우웅!
타워실드를 중심으로 거대한 기의 보호막이 세워졌다.
콰앙!
불덩이가 날아와 부딪혔으나 곧 위력을 잃고 주변에 불똥을 흘렸다.
“수가 조금 많네.”
부하들에게 처리하라고 그대로 두었다간 상처입을 판이다.
진세연이 있다지만 애초에 부상입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
부하들이 감당하기 힘든 것을 또 거들어주는 게 리더의 몫이 아니겠나.
“스으으읍.”
수호가 한껏 숨을 들이켰다.
폐허가 된 도시이지만 버려진 지 10년.
여기저기 자란 나무들과 잡풀들로 충만한 나무정령의 힘이 느껴진다.
후우우우웅.
그들이 수호의 부름에 이끌려 조화력으로 화했다.
엄청난 힘은 아니지만, 눈앞의 오크 오백여 마리 정도의 대열을 흐트러뜨리기에는 충분한 힘.
수호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발을 굴렀다.
쿠우웅.
별다를 것 없는 진각이지만 그것은 그저 시작을 알리는 행위에 불과했다.
‘대지강타.’
꾸우우우웅!
수호가 밟은 땅을 중심으로 도로가 갈라지고 땅이 솟았다.
꾸구구궁.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리는 것은 애교에 불과했고, 여기저기 갈라지며 오크들이 딛고 달려들 땅 자체가 벌어져 버렸다.
여기저기 갈라진 땅 자체가 함정이자 큰 위협.
달려들던 오크들이 이리저리 엉키며 바닥에 빠지고 벽에 부딪혔다.
“꾸어!”
순식간에 오크들의 비명성이 사방에 울려퍼졌다.
“노움.”
휘이이이.
소환된 노움이 갈라진 대지를 다졌다.
꾸구구구.
몸이 완전히 생매장 당한 오크들은 얼마 안 가 죽을 것이다. 반쯤 빠진 오크들은 다 자란 무처럼 목만 덩그러니 나왔다.
수호는 그 모습을 보며 부하들을 보았다.
“익숙하지? 따라.”
“넵.”
타타탓!
용병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뛰쳐나갔다. 전투조는 물론이고 얌전히 있던 진세연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렸는데, 그녀의 손에는 언제 빼들었는지 모를 커다란 도끼가 쥐어져 있었다.
‘힐러 아니셨나.’
강석호가 멍하니 있자 수호가 그의 등을 툭 쳤다.
“안 가?”
“아, 아닙니다.”
강석호는 한 발 떼다가 물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행동이 지나치게 익숙하다.
“원래 이렇게 사냥하십니까?”
“새끼들 키울 때만.”
어리고 약한 것들은 본디 보호받아야 하지 않겠나?
이건 실전에 앞서 행하는 연습 같은 거다.
“아니, 근데 제일 약한 놈이 뭐 이리 말이 많고 느리냐.”
“하하하…….”
강석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왕년에 대한민국 탑 10에 들어가던 랭커가 어쩌다가 가장 약한 막내 취급받게 되었는지.
“무기 없어서 그러냐?”
“저는 몸 자체가 무기입니다.”
“어우, 주먹으로 치면 한참 걸려.”
수호는 업적상점에서 강석호가 쓸 만한 검 하나를 사주었다.
송곳처럼 생긴 검인데 단검이라 하기에는 길고, 장검이라 하기에는 짧았다.
끝이 뾰족해 관통력이 상당해 보였지만, 날이 없는 원통형이라 베기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머리 구멍 내기 딱이야. 어서 가라. 80렙은 찍어야지.”
적어도 U급은 찍어야 저들 사이에서 비비지 않겠는가?
아직 SS급인 진세연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리나케 움직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하하.”
강석호가 송곳 같은 검을 들고 오크들을 향해 뛰어갔다.
이숙자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쯧쯧, 덩치가 아깝다. 아까버.”
허우대는 멀쩡한데 행동이 영 빠릿하지 못했다.
“저놈 저거 땀 쏙 빼놔라. 다시는 반찬 투정 못 허게.”
“알았어. 이모.”
수호가 씩 웃었다.
어쩌면 강석호가 가장 먼저 L등급을 찍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