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67)
268화 개박살 (1)
쿠웅, 쿠웅.
거대한 동체가 움직일 때마다 대지가 진동했다.
쿠드득.
녀석은 덩치만큼이나 느렸으나 한 걸음 한 걸음이 파괴적이었다.
앞에 걸리적거리는 것은 나무고 바위고 모조리 파괴되었다.
“저거,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건가요?”
진세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일행이 은연중에 홍세희를 쳐다봤다. 수호 길드 2공격대를 이끌고 있기도 하고, 다들 암묵적으로 그녀를 리더로 따르곤 했다.
“일단 원거리 관찰을 더 해보죠.”
대상의 덩치가 워낙에 크다.
멀리서 봐도 보일 정도로 큰 덩치인데, 꼭 산이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대형 거북이라니…….”
군주몬스터는 확실한데 덩치가 남다르니, 혹 저것이 얼마 전 회귀자가 언론에 흘린 대형 육상군주가 아닌가 싶었다.
“정말 저 정도 크기면 지나가기만 해도 도시가 파괴되겠네요.”
“사장님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까요?”
진세연의 말에 홍세희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의지만 할 수는 없다.’
인정받고 싶다.
아니, 인정 받아야 한다.
힘들 때마다, 벽을 마주했을 때마다 그를 찾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적어도 벽에는 부딪혀 보고, 넘어보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아직 단 한 번의 교전도 해 보지 않고, 놈의 특성도 파악해 보지 않고 쪼르르 달려가는 건 멍청한 짓이다.
‘그분의 곁에 서려면…….’
홍세희는 의지를 다졌다.
“관찰 후, 조금씩 공략법을 찾아볼 겁니다.”
한반도에서 먼 아프리카 대륙이지만 엄연히 지구 땅이다.
던전처럼 도망갈 수도 없는 홈그라운드. 죽든 살든 언젠가는 제거해야 할 몬스터.
“우리가 잡습니다. 불만 있는 사람?”
홍세희의 물음에 서민수가 씩 웃었다.
“해 봐야죠.”
박준호도 동의했다.
“다 커서 형만 찾을 수는 없지.”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형을 찾는 게 어딜 봐서 성인인가.
“세연 씨는?”
“저야 따를 뿐이죠.”
“좋습니다.”
군주 레이드가 결정되었다.
명진이 은근슬쩍 진세연에게 물었다.
“누님, 언제 개종하셨소?”
“뭔 소리야.”
“이제 신보다 우리 대장을 더 찾는 것 같소.”
“…….”
그 말에 진세연의 표정이 굳자 명진이 툭 쳤다.
“농이요. 농.”
“…….”
농담이라고 해도 진세연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내가?’
종교인이 신을 찾는 게 무엇이 잘못되었겠냐만은…….
최근 들어 위기상황 때마다 하느님을 떠올리기보단 확실히 수호를 생각한 그녀다.
“누, 누님?”
“아니다. 가자.”
명진이 당황하는데, 진세연이 표정을 풀었다.
대격변에 남매는 고아가 되어, 둘 다 종교인이 되었지만 가는 길은 다르다.
하나는 스님, 하나는 수녀.
그리고 길을 돌아 만난 남매는 한 사내를 따르고 있었다.
*김미소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누가 왔다고요?”
“이성우요.”
“…….”
정말 상상도 못한 사람의 방문.
한때 세계 챔피언으로 군림했던 사내다. 인류 최강이라고 불린 사내의 등장.
하필 사장님이 자리를 비운 이때 그의 방문 목적을 알 수 없으니 곤란했다.
“태사신니와 아키코를 불러주세요.”
“네.”
그가 불손한 의도로 접근했다면 김미소 본인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 태사신니 정도면 이성우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그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아키코를 불렀다.
“부르셨나요?”
“아키코.”
언제나 마이페이스인 김미소의 표정이 심상찮아, 아키코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성우가 왔어요.”
“으음.”
한참을 가만히 있던 아키코가 물었다.
“그가 왜 접근했는지 궁금하신 거군요.”
“아무렇지 않나요?”
“이미 끝난 인연에 미련 가질 멍청이는 아니라서요.”
아키코의 다부진 얼굴을 보며 기밈소가 안심했다.
이성우와 연인 관계였던 그녀다.
가장 측근으로서 그를 곁에서 지켜본 그녀가 옛 연인의 등장에 마음이 흔들리면 곤란했다.
“좋아요. 내가 궁금한 건 그가 왜 방문했느냐예요.”
아키코가 반문했다.
“궁금해하실 필요가 있나요?”
“……?”
“물어보시면 되잖아요.”
“아.”
“김 부사장님은 충분히 그럴 위치와 자격이 있어요.”
아키코의 말에 김미소의 표정이 흐트러졌다가 곧 본래의 얼굴로 돌아왔다.
“사장님이 부재중이라 잠깐 흔들렸군요.”
김미소는 순순히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이성우.
이미 밀려버린 이름이지만 여전히 그의 이름이 지닌 무게는 상당했다.
박수호의 등장 이전까지 세계랭커 1위이자 챔피언으로 군림한 사내니까.
그의 등장에 김미소가 그답지 않게 긴장한 모양이었다.
“좋아요. 만나 보죠.”
그의 의도가 무엇이건, 사장님이 안 계시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부르셨소?”
태사신니가 도착하자 김미소가 비서실에 연락을 넣었다.
“그를 데려와요.”
“넵.”
*올리버는 감탄을 연발했다.
“정말 놀라운 도시입니다!”
“와, 길거리에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다니.”
“오우 쉣! 저것 보세요. 저 나무의 원숭이는 거의 고릴라만 하군요.”
연신 재잘거리던 올리버는 포커페이스의 이성우에게 넌지시 물었다.
“미스터 리는 전혀 놀라지 않는군요?”
“놀랄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긴, 미스터 리는 이미 겪으셨을 테니.”
그가 회귀자임을 염두에 둔 말이다.
‘겪기는 개뿔.’
올리버의 짐작이 어떻든간에 이성우는 지금 속으로 굉장히 놀라고 있었다.
‘이게 말이 돼?’
개인의 무력이 단체를 따라갈 수 있을까?
이성우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를 상대할 수 있을까?
‘못하지.’
그런 상식을 파괴하는 인간이 박수호였다.
단체를 압도하는 개인.
나라 눈치도 안 보는 개인.
그런 개인이 가진 세력이 이렇다.
‘테이머 개사기네.’
야수 길들이기라는 미친 능력으로 이룩한 야수 공화국을 보라.
나무 위를 점령한 고릴라 같은 원숭이들이 죄다 SS등급이다.
거기에 어슬렁거리는 늑대는 무려 U급.
저 호랑이는 무려 L급이다.
‘시발.’
너무 놀라서 욕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삼켰다.
‘회귀하면 무조건 테이머다.’
이 모든 걸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여기 이 자리에 발을 들였다.
목숨 걸고.
‘그래, 이건 인류를 위해…….’
빈약한 핑계임을 알지만 이성우는 스스로 자위했다.
자신만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다.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
악인의 손에 들어가 세계를 망치느니, 내가 뺏어 세계를 구원하는 게 낫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선 일단 악인의 발이라도 핥아 주마.
어차피 이 세상은 사라지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거니까.
“이성우 씨?”
성내를 구경하라 해놓고 아까부터 감시 겸 따라다니던 비서실 직원이 불렀다.
“부사장님 호출입니다.”
“네, 가죠.”
김미소.
그녀가 이렇게 유능할지는 몰랐다.
회귀하면 최측근으로 써 주마.
직원을 따라 길드원들에게만 허락된 공간.
내성으로 향했다.
내성은 보다 많은 야수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길고양이처럼 익숙한 야수들이며 일상인 광경.
함께 온 올리버는 연신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성우는 속으로만 놀라고 있었다.
“와, 정말 대단합니다. 박수호 그는 대체……. 아, 미스터 리는 다 알고 있는 거라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다 알기는 개뿔.
박수호란 존재는 회귀 인생 처음이다.
갑툭튀나 다름없는 인물이었고, 그간 이룩한 모든 걸 깨부술 정도로 파괴적인 사람이었다.
아주 탐나는 능력을 가진 사람.
그 능력의 기반이 무엇일까?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악연으로 시작해버렸지만, 잘 수습해 최대한 옆에서 보고 듣고 훔쳐야 한다.
‘정 안 되면 회귀하고.’
회귀해서 처음부터 박수호와 친분을 터도 상관없다. 본격적인 건 그 다음번 회귀에서 하고 말이다.
이성우는 부사장실로 들어갔고, 화사한 미소의 김미소와 대면했다.
“이성우입니다.”
“알아요. 구면이죠?”
“좋은 기억은 아니군요.”
구천 행성 마몬족 진영의 귀환자 이성우다.
대격변 초기 대한민국의 귀환자 관리는 야만적이었고, 그때도 김미소는 귀환자 관리팀 소속이었다.
팀장은 아니었지만, 외려 실무자였기에 이성우와 얼굴을 마주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한국 정부와요?”
이성우의 경멸어린 시선에 김미소는 어깨를 으쓱했다.
“괜한 말을 했네요.”
이성우가 난리를 피우고 정부수용시설을 탈출한 덕에 귀환자 관리팀의 정책이 바뀌었다.
그때 팀장으로 오른 게 김미소이고 말이다.
괜히 그때 당시의 불편한 이야기를 더 끄집어내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그런데 옆엣분은?”
“아! 서부미국에서 외교부를 맡고 있는 올리버입니다.”
“수호 길드 부사장 김미소예요.”
“오우, 압니다. 유명한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김미소는 자리에 앉아 커피가 나오는 시간 동안 둘을 보았다.
‘이건 뭐하자는 시추에이션일까?’
서부미국의 외교부 장관과 이성우가 함께 등장했다.
서부미국과 이성우의 결속이 이 정도였나?
“방문 목적을 알 수 있을까요?”
“제가 말씀드리지요. 요청해 주신 도시 간 이동 포탈 설치의 세부 조율을 위해 직접 왔습니다.”
올리버의 말을 흘려들으며 김미소가 이성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방문 목적을 알 수 있을까요?”
“하하하, 말씀드렸다시피 지난번 요청해주신…….”
이성우가 올리버의 옆구리를 치며 말을 끊었다.
김미소의 시선은 여전히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 정도 여자였나?’
김미소.
생각보다 더 유능하고 배포도 있는 여자다. 확실히 이 정도 되는 인물이니 박수호가 안살림을 죄다 맡겼겠지.
“좋습니다.”
이성우가 포기하고 속내를 드러냈다.
“관계 개선을 하고 싶습니다.”
“서부미국을 등에 업고요?”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이성우가 순순히 시인했다.
솔직히 복잡하게 얽혀버린 이번 생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그저 수호시티에 조금 더 머무르고, 기왕이면 박수호의 곁에서 지내며 그가 가진 힘의 비밀에 대해 좀 더 캐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복잡하게 얽힌 관계야 회귀 한 번이면 해결되니까.
“어떤 관계 개선이죠?”
“수호 길드와 저는 적대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많이 뻔뻔하시군요.”
“…….”
이성우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뭐 이리 뻗대지?’
박수호가 아프리카에 갔음을 안다.
야수들을 믿고 이러시나?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군요.”
한발 빼는 김미소를 보며 이성우가 속으로 웃었다.
“공통의 적을 앞에 두고 반목할 필요가 있습니까? 제가 큰 도움이 될 겁니다.”
“…….”
모든 걸 잃고 잠적해버린 전 챔피언.
회귀자임이 전 세계에 까발려져 욕을 먹고 있는 그가 서부미국과 손을 잡고 협력의 뜻을 전해오고 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공교롭긴 한데.’
사장님이 떠나기 전 이성우를 찾으라 하였다.
서부미국에 있음을 알기에 겸사겸사 찔러보았는데,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한달음에 직접 달려올 줄은 몰랐다.
어쨌든 그녀는 주군의 의중을 모르니, 이성우에 대한 처분을 스스로 내릴 수 없었다.
“사장님께 연락해 보죠. 며칠 걸릴 수도 있습니다.”
“기다리죠.”
어차피 이동 포탈 설치 때문에 하루이틀 머무를 생각이다.
이성우와 올리버가 나가자 벽장 뒤에 숨어있던 태사신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니 님께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말하세요.”
“저자를 감시해 주세요. 그리고 절대 세계수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시고요.”
“그러죠.”
갑자기 나타난 회귀자 이성우.
뭘 알고 온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