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79)
280화 국경 (2)
수호 길드를 중심으로 세계 주요도시를 잇는 이동포탈망을 구축한다.
김미소가 짠 원대한 계획이 각 주요도시 지도부의 반발로 진척이 더뎠다.
수호 길드 남문 인근 포탈 존.
축구장 크기의 세계지도 위에 여러 대도시 위치마다 작은 단을 쌓아 놓았지만 포탈이 생성된 곳은 몇 되지 않았다.
대구, 익산, 서귀포, 평양.
수호 길드가 영향을 미치는 위성도시 급이거나 아루카, 구천 행성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보유한 도시로 향하는 포탈들이다.
휑한 지도를 내려다보고 있는 김미소에게, 이소진이 방금 온 메일의 내용을 읊어 주었다.
“부사장님. 런던에서 온 회신입니다. 긍정적 검토 후에 최종 결정사항을 알려준답니다.”
“흐음.”
또 시간만 차일피일 미루겠다는 거다.
서부 미국이나 일본처럼 아예 거절의사를 표명한 국가는 많지 않다.
대부분이 런던처럼 시간을 끌고 있다.
“간을 보겠다는 거네.”
힘 좀 쓰는 대도시 모두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동포탈망이 수호 길드를 중심으로 아예 자리 잡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수호 길드를 중심으로 한 일방통행과 각 도시들이 상호 교류하는 거미줄 형태의 이동포탈망은 다르다.
후자를 택하자니 아직 각 도시들이 확보한 차원석의 양이 적어도 너무 적다.
공짜로 도로를 깔아준다고 해도 겁내고 만류한다.
흔쾌히 받아들여 현재 작업중인 도시는 겨우 일곱.
“중동이랑 동남아 도시 몇 개가 전부네요.”
“그러게.”
두바이를 필두로 중동에 3개 도시, 자카르타, 타이베이, 발리, 마닐라 4개 도시.
어차피 이동포탈망이 연결되더라도, 이동에 혈석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에 일반인들이 막 쓰기엔 무리가 있다.
비행기가 이동포탈로 바뀐 정도다.
어차피 이동을 위해서는 비싼 운임을 대가로 해야 한다.
일반 시민들의 이동보다는 아루카산 식량 무역 등의 물류이동에 더 많이 쓰이게 될 터.
차원석의 수급이 많지 않으니 모든 도시들을 각각 잇는 포탈망을 갖기는 무리다.
수호시가 나서서 공짜로 포탈망을 깔아 모든 도시를 수호시로 이으려고 한다.
이후에 이동하는 모든 사람들은 수호시티를 거쳐서 가야 하는 것.
이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권력 효과를 선점하고자 하는 게 김미소의 계획이다.
도시로 쪼개져 있지만 범세계적인 인류 연합이 발생하면 그 중심은 자연스레 수호시티가 될 터.
너무나 티 나는 야망에 각 도시들이 견제하며 시간을 끄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시간 끌기에는 이미 여력이 다한 나라들도 있었다.
“사장님 만주국에서 온 긴급 통신입니다.”
이소진이 전해주는 휴대폰을 들어 받았다.
“수호 길드 부사장 김미소예요.”
[치직, 다 들어주겠소! 귀사의 모든 제안을 수용하오! 제발 저 두꺼비만 치워 주시오!]“나중에 말 달라지시면 안 됩니다.”
[알겠소!]김미소는 전화를 내려놓고 당장 박수호를 찾았다.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차이, 사장님 어디 계셔?”
사냥에 참가할 때가 아니면 김미소를 졸졸 따라다니는 뱀파이어 차이다.
그녀는 김미소와 박수호를 잇는 전령이자 경호원.
“비무장지대 산책을 마치고 오고 계신다.”
또 강원도를 뒤져 야수 몇을 테이밍하러 가셨나 보다.
“마중 가자.”
외부인들이 사용하는 수호시티 남문과 길드의 용병들이 필드로 나갈 때 사용하는 북문이 있다.
김미소는 북문으로 향했다.
수호시티는 북쪽에 붙은 내성과 남쪽에 형성된 외성으로 이뤄져 있기에, 북문은 오롯이 내성에서만 출입이 가능했다.
북문의 수문장, 인면지주가 지키고 있는 곳에 당도했다.
여기저기 쳐진 거미줄에 오크 몇 마리가 꼬치 말듯이 말려 있다.
인면지주의 도시락이다.
“이쪽으로 오시는 거 맞지?”
“복귀하고 계신다.”
김미소의 거듭된 확인에 차이가 대꾸해 주었다. 워낙에 걸어다니는 것보다 날아다니는 걸 더 즐기는 수호였기에 확인해 본 것이다.
두두두두두.
삼각뿔소, 무소 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소떼 틈에 듬성듬성 사람이 타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
한참 달려온 소떼가 북문 앞에서 속도를 줄였다.
선두의 소 위에 타고 있던 수호가 훌쩍 뛰어내렸다.
김미소는 그런 박수호의 모습이 마치 기병대를 이끌고 온 장수같이 보였다.
삼각뿔소는 갑옷 입은 기마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왜 기다리고 있어?”
“아, 사장님.”
김미소가 그간 북쪽 사정을 알리지 않은 것은 만주국의 굴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세상엔 선뜻 도움을 주는 걸 호구로 여기는 자들이 많다.
위기 이전의 예방은 그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사장님이 나서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둘 수는 없다.’
위기 뒤의 구출이 더 큰 은혜로 여겨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위기에 닥친 만주국을 구하러 갈 시간이다. 겸사겸사 유리한 외교적 위치도 획득하고 말이다.
“두꺼비 군주를 잡으러 가실 시간이에요.”
“굳이?”
“예?”
대수롭지 않은 반응에 김미소가 당황했다.
“여기로 오고 있잖아. 기다리면 곧 올 텐데?”
“아…….”
분명 그렇게 말하긴 했다.
굳이 수호가 먼저 나서서 두꺼비 군주를 해치워 얻는 것은 없고, 은혜를 당연시 여길까 봐 그랬다.
‘나의 군주는 영웅이 되어야 한다.’
호구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치만 도시 하나가 곧 붕괴될 위기예요.”
“그래서?”
“네?”
나의 군주께서 이토록 냉혈한이었나?
김미소의 당황한 얼굴에 수호가 피식 웃었다.
“농담이야. 또 얼마나 뜯었냐?”
“아!”
김미소는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건 모두요.”
“잘했어.”
수호는 대수롭지 않게 김미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함께 소 탄 이들을 보았다.
“소 타는 건 다음에 또 가르쳐 줄게.”
“네, 삼촌.”
건우 말고도 몇몇이 더 있었는데, 다들 일반인들로 이번에 필드 사냥을 통해 각성한 이들이다.
수호시티에 거주하는 자들은 길드원과 그 가족들.
옛날에는 각성 브로커를 통해 큰 돈을 주고 며칠씩이나 걸린 게 각성 작업이지만, 지금은 다르다.
몬스터들이 워낙에 많기도 많고, 길드에서 수호시티 시민들을 대상으로 누구나 신청만 하면 각성을 도와준다.
수호시티 시민증 따는 것 자체가 어려워서 그렇지, 용기만 있으면 각성자가 되는 건 쉽다.
“그럼 지금 가서 짠 사냥하고 돌아오면 된다는 거지?”
“네.”
“갔다 올게.”
“한 이사 데려가세요. 불렀으니 곧 도착할 거예요.”
선행은 남들 모르게 해야한다는 건 개소리다.
이 위대한 업적은 기록을 남겨야 한다.
*슈아아아.
“저기네요.”
그리핀의 등에 타고 날아가는 동수가 멀리서도 보이는 두꺼비 군주의 덩치에 혀를 내둘렀다.
“거북이보다 조금 더 큰 거 같은데요?”
“비슷해 보이는데.”
“쟤는 고블린 버프 한다던데요. 막, 고블린이 오크급으로 괴력을 낸다던데.”
고블린은 개체수가 많다.
정말 필드를 나가면 발에 차인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흔하게 발견하는데, 지금 동북아시아 전역의 고블린들이 각성한 상태다.
미친 듯이 몰려든 고블린들의 개체 수는 오만을 넘을 정도.
그들 하나하나가 오크전사의 힘을 낸다니, 끔찍한 일이다.
어느 종교나 그렇듯, 그들이 숭배하는 두꺼비 신의 부름을 받아 성전을 펼치는 고블린들에게 두려움 따위는 거세되었다.
새까맣게 몰려든 고블린들은 두꺼비 군주의 선봉대처럼 앞서 진군했다.
엄청난 인해전술로 만주국 군부대 셋을 아작내고 대도시가 코앞.
“한 방 먹여 줘야지.”
그들이 제아무리 용기백배했다 해도, 독침이 닿지 않는 하늘에서 펼치는 수호의 조화마법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꾸르르릉.
동수는 주변에 몰려드는 먹구름에 몸을 떨었다.
가끔 보면 형님은 고대 설화에 나오는 구름을 다루고, 비를 다루고, 바람을 다룬다는 신과 같았다.
몰려든 먹구름에서 번개가 쳤다.
‘아니, 제우스일지도.’
먹구름은 곧 비를 만들어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는데, 놀랍게도 붉은 비였다.
화르르르르륵.
색만 붉은 것이 아니다.
불똥이 떨어져 내려 주변을 불태웠다.
“크와!”
고블린 머리를 태웠고, 옷을 태웠고, 그들의 가죽을 태웠다.
화르르르륵. 푸우웅.
고블린 주술사들이 나서서 방어막을 펼쳤으나 그것은 너무나 한정된 지역만을 커버했고, 수호가 내리는 불의 비는 고블린 군단 모두를 덮고도 남았다.
‘이걸 마법 공격이라고 해야 하나.’
한동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콰르르릉!
불의 비 사이로 이따금씩 낙뢰가 내려쳐 고블린 주술사를 단번에 즉사시켜버렸다.
그나마 있던 방어막들도 사라지며 고블린들이 우왕좌왕했다.
콰쾅쾅!
그들이 전리품이라 여기며 노획한 화력 무기들도 불의 비에 터져나가며 피해를 키웠다.
꾸우우우, 꾸우!
개구리울음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우렁찬 소음이 울려퍼졌다.
먼 거리임에도 두꺼비 군주의 분노가 느껴진다.
그리핀 둘이 그곳을 향해 날아갔다.
*두두두두두.
두꺼비 군주 주변으로 몇 대의 헬기들이 날고 있었다. 인근 블라디보스톡에서 온 정찰용 군헬기와 언론사의 헬기들, 그리고 만주국 수도 하얼빈에서 상황 파악을 위해 파견한 정찰헬기들이었다.
그중 언론사 헬기에 타고 있던 기자 둘은 놀라온 광경에 입을 쩍 벌렸다.
“미쳤어. 빅토르, 저것 좀 봐.”
남쪽 상공에 검은 먹구름이 뭉치더니 불의 비가 내렸다.
새까맣게 몰린 고블린들 진영이 지옥도로 변하는건 순식간이었다.
“처, 천벌이다.”
이건 지구가 내리는 몬스터에 대한 벌인가? 어찌 이리 신묘한….
“그게 아냐, 빅토르. 그가 온 거야.”
지구상에 이 정도 힘을 낼 수 있는 마법사라면 하나뿐이다.
“챔피언.”
“그래 그야!”
“쳇, 자국민만 아끼는 반쪽짜리 히어로가 용케도 출동했군.”
그 이전에 러시아에서 박수호의 출동 요청이 왜 없었겠나.
그간 묵묵부답이더니, 용케도 나섰다.
“특종이야. 카메라부터 돌려.”
“나도 알아.”
개인감정이야 어떻든 본연의 임무는 충실해야 하는 법.
헬기가 남측을 향해 선회하는 그때 뭔가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콰쾅!
헬기 몸체가 기우뚱하며 기울자 안전벨트 끈이 꽉 쪼여졌다.
“무, 무슨일이야!”
소리친 빅토르는 대답을 듣기 전에 보았다.
“잡혔어!”
두꺼비 군주의 벌어진 입.
그리고 채찍처럼 쭉 뻗어나온 혀가 헬기 몸체를 휘감아 버렸다.
슈아아악.
“끌려간다!”
죽음을 예감했다.
지난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쏙!
콰직.
두꺼비 입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쿠긍.
두꺼비 입이 닫혀버리자 짙은 어둠이 시야를 제한했다.
푸시시시.
섬뜩한 소리에 서둘러 라이트를 켜니 헬기 몸체가 녹고 있다.
“망할! 우린 다 죽었어!”
“맙소사!”
헬기는 아예 구동을 멈춰버렸고, 두꺼비 군주 입에서 나온 부식액의 끔찍한 냄새와 터져버린 연료통에서 흘러나온 기름 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차라리 죽기 전에 기절하는 게 나을지도.
푸시시시.
“맙소사. 오, 신이시여!”
헬기 꼬리가 마치 프라이팬에 던진 초콜릿처럼 녹고 있었다.
헬기의 몸체가 모두 녹아 자신의 몸이 저 끔찍한 부식액에 닿는 데 얼마나 걸릴까?
“신이시여 어찌 저를 버리시나이까.”
“흐흐, 빅토르. 다 끝났어. 제길!”
쿠쿵.
그때 헬기가 기우뚱 기울었다.
그리고 녹아버린 헬기 몸체 사이로 뚝 떨어져 내린 부식액이 옆에 앉은 동료 기자의 머리를 녹였다.
“크아아아악!”
미친듯이 발버둥치는 그를 보며 빅토르의 눈에 두려움이 가득해졌다.
“오, 신이시여!”
스컥!
섬뜩한 소리와 함께 굳게 다물려 있던 두꺼비 입이 벌어졌다.
아니, 베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