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80)
281화 고전적
“오, 갓!”
빅토르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살았다.
벌어진 두꺼비 입에서 사람이 모습을 보이자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안도감이다.
극도의 공포심이 해소된 이후에 그를 덮친 건 죄책감, 상실감.
“크흐.”
머리가 녹아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은 동료를 두고 자신이 떠올린 생각은 끔찍했다.
‘그만 발버둥쳐. 부식액이 튀잖아!’
이런 쓰레기 같은 나는 살고, 동료는 죽었다.
아니야, 누구나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리면 이기적으로 변하는 거야.
하지만 동료가 죽어가는데 나는…….
죄책감과 자기합리화.
요동치는 감정이 빅토르를 지배했다.
초점 없는 동공의 흔들림은 몸이 둥실 떠오르고 나서야 멈췄다.
“어?”
까르르.
어디서 장난기 많은 아이의 웃음을 듣는 것 같았다. 둥실 떠오른 몸이 날아, 역광에 형체만 보이던 남자의 곁으로 갔다.
“다, 당신은!”
“살아있으면 나오지, 뭘 멍 때리고 있는 거야?”
실프가 수호를 지나쳐서 날았다.
두꺼비 군주의 입 속에서 빠져나온 빅토르는 입을 쩍 벌렸다.
“맙소사.”
두꺼비 군주가 잘려 있었다.
핵공격에도 티끌 하나 상처입지 않는 녀석이 두 동강 나 있었다.
두꺼비 군주를 절단한 무기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박수호가 손에 쥔 장검.
전대 무림맹주의 애장품이라는 히스토리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한눈에 봐도 예사 무기는 아니었다.
어떤 것인들 저 손에 들리고도 위협적이지 않을 무기가 어딨겠나.
“맙소사!”
딱히 다른 말이 나오질 않는다.
군대도 하지 못한 일을, 일개 개인이 해냈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두꺼비 군주의 발걸음이 도시를 겨우 5km 남겨두고 멈췄다.
슈슈슉.
빅토르의 몸이 바닥에 내려섰다.
하늘에서 볼 때도 엄청난 위압감을 풍겼는데, 땅을 딛고 바라보니 거대한 산 같은 두꺼비 군주의 사체가 더 커보였다.
“오, 무사했군.”
“구사일생했군. 먹히고도 살다니.”
생존자는 빅토르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추락해 연기를 날리고 있는 헬기들을 보니, 사망자도 그의 동료만 있는 건 아닌 듯했다.
대부분이 군용 헬기이다 보니 살아남은 군인들이 전우의 시체를 수습하고 있었다.
“여, 빅토르. 살았군.”
“안드레이.”
경쟁사 기자도 살았다.
“난 자네 헬기가 빨려들어갈 때 죄다 죽을 줄 알았다고.”
“다 죽었어. 나만 살았지.”
“운이 좋군 그래.”
“…….”
좋기만 할까, 모두가 죽었는데.
툭.
안드레이가 안색이 어두운 빅토르의 어깨를 쳤다.
“이봐, 감사하라구. 그냥 감사해.”
“그래 맞아.”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기 이전에 살았음에 감사해야 할 때다.
“대단하지 않아? 저 거대한 게 칼질 한 번에 잘려나갔어.”
“…….”
“아, 자넨 못 봤겠군.”
입속에 빨려 들어갔는데 봤을 리가.
안드레이는 마치 본인이 그러한 것처럼 신나서 떠들어댔고, 빅토르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엇?”
그때 거대한 두꺼비 군주의 사체가 먼지처럼 흩어지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맙소사!”
처음 있는 일.
모든 생명은 죽으면 시체를 남긴다.
몬스터 또한 마찬가지.
죽어서 남겨진 사체가 저렇게 분해되어 사라지는 건 처음 보는 장면이다.
두 기자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챔피언이?’
그가 시체를 사라지게 했을까?
“가 보자.”
“가, 가 보자니?”
“저기 있잖아.”
안드레이가 박수호를 가리켰다.
한동수라는 남자와 그리핀 두 마리가 옆에 서 있다.
“해치려 들면 어쩌려 그래?”
“무슨 말이야? 챔피언 덕분에 몇이나 목숨을 구했는데.”
멀리 볼 것도 없다.
당장 두꺼비 군주의 진격을 멈추지 못했으면 저 아래 도시는 전부 파괴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당장 떨어지는 헬기에서 구출된 인원만 몇인가.
“그는 메시아야!”
안드레이는 완전히 푹 빠진 얼굴이었다.
당장 그의 말에 수긍하기에는 그간의 진실들이 꺼림칙했다.
‘그는 결코 대가 없이 사람을 구하지 않아.’
사람의 인성을 논할 때 과거 행적은 그 지표가 되어준다.
“분명 모종의 협약 같은 게 있었을 거야.”
“무슨 상관이야.”
안드레이는 빅토르의 삐딱한 말에 화를 냈다.
“넌 염치가 없어. 누가 협약했든, 거기에 너를 구하는 게 포함되었겠어?”
“…….”
할 말이 없다.
베테랑 기자이지만 자신의 목숨 값이 그리 높지 않음을 알고 있다.
빅토르가 말이 없자 안드레이가 냉소했다.
“그만 뻔뻔하게 굴어. 그리고 고집 따윈 버려. 그는 구원자야.”
안드레이가 그 말을 마치고 수호를 향해 냅다 달려갔다.
‘폭력적이고 계산적이야. 대가 없이 힘을 쓰지 않아.’
그간 그가 가졌던 챔피언에 대한 평가가 어그러졌다.
“젠장.”
그를 가까이서 보고 싶다.
빅토르가 뛰었다.
*
두꺼비 군주의 숨이 완전히 멈추고, 그가 품고 있던 거대한 차원에너지가 흡수되었다.
92레벨이 되었다.
8성 던전에서 한계까지 끌어올려 90으로 만든 레벨이 거북신 잡고 하나, 두꺼비 신 잡고 또 하나 올랐다.
“휘유, 이번엔 한 번에 잡으셨네요.”
동수가 다가와 휘파람을 불었다.
“뜸들일 필요 없지.”
지난번처럼 숙련도를 연마할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수호가 두꺼비 입속에 살아남은 사람의 존재를 느끼고 실프를 시켜 그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기다렸다.
“사라질까요?”
“모르지. 기다려 보면 알겠지.”
몬스터 시체가 사라지는 일은 없다.
신이라서 다른 건가?
“아, 사라지는 게 하나 있긴 하네.”
“네? 뭐가요?”
“던전 말이야. 그건 죄다 클리어하면 사라지잖아.”
던전 포탈은 전부 공략 완료하면 소멸한다.
동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왜요?”
“신급 군주와 비슷…… 아니다, 됐다.”
순필이도 아니고, 얘랑 무슨 말을 하겠나.
그냥 계속 혼자 고민해 보는 게 낫지.
푸스스스스.
두꺼비가 흩어진다.
“어? 우와.”
동수가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
그의 눈에 담겨 기록되어 세계에 전해질 귀한 자료다.
“사라지네.”
하나는 확실해졌다.
거북이 군주 시체도 누가 가져간 게 아니라 자연 소멸했다.
걸어다니는 던전쯤 되나.
아니면 가진 차원에너지가 일정 이상이면 이렇게 되나?
수호는 고민하며 사라진 두꺼비 시체자리를 보았다.
이제 검은 포탈이 생겨나는지만 보면 된다.
다다다.
달려온 남자를 보며 수호가 힐끗 봤다.
“뭐?”
“예?”
“용건이 뭐냐고.”
“아! 사,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 그래.”
수호가 손을 내저었다.
누가 봐도 축객령이지만 안드레이는 직업정신을 발휘했다.
“군주의 사체가 사라진 건 챔피언이 행하신 일입니까?”
“아니.”
수호의 성의 없는 대답에도 안드레이는 크게 감명받았다.
‘거봐. 보기보다 무섭지 않다고.’
챔피언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도 아닌 마당에, 뭐 그리 경계할 게 있단 말인가?
대가 없는 선의?
그거야말로 선을 넘는 행위다.
신에게 빌 때도 돈을 내는 게 사람이다.
같은 인간의 용력을 빌려 쓰는데, 그것도 국가가 해결하지도 못할 전투력을 내는데 무보수로 일한다?
어불성설이다.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
그게 안드레이 생각이다. 그렇기에 챔피언 박수호가 나빠 보이지 않았다.
“고블린 무리를 해치우신 것도 챔피언이시지요?”
“응, 맞아.”
“정말 감사합니다.”
수호가 슬쩍 돌아봤다.
어차피 기다리는 동안 지루할 텐데, 잘됐지 뭐.
“중국사람 아닌 거 같은데.”
저 아래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던 도시는 만주국 소속의 대도시다.
“하하, 저는 러시아 사람입니다. 안드레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직업은 기자이지요.”
“좋아. 안드레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지, 지금 제게 인터뷰를 허락하시는 겁니까?”
“마침 기다리기 적적하니까. 이야기나 해보지.”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격한 안드레이가 그때 막 도착해 숨을 헐떡이는 이를 가리켰다.
“이 친구는 빅토르입니다. 저와 동향사람이죠.”
“경황이 없어 제대로 인사도 못했습니다. 감사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빅토르의 궁색한 말에 수호가 웃었다.
“그쪽도 기자야?”
“예에.”
“좋아. 이야기해 봐.”
수호가 사람 좋게 웃고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안드레이와 빅토르가 따라 않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사냥은 끝나신 듯한데, 뭘 기다리시는지요?”
“검은 포탈.”
“예?”
“아프리카에서 거북이 신이 죽은 자리에 검은 포탈이 나왔거든. 이번에도 나오는지 보려고.”
“거북이 군주 말입니까? 신이라니요.”
“리자드맨들이 숭배하던 신이지.”
두 기자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수호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이든, 냉소적이든 상관없다.
이건 특종이다.
“그럼 방금 사라진 그것도 신입니까?”
“어, 맞아. 고블린들이 숭배하던 독두꺼비지.”
“허어.”
너무 놀랍다.
‘팩트…….’
빅토르는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았다.
괜히 그의 심기를 거슬러 입을 다물게 할 필요는 없다.
많은 것을 들을 기회를 날릴 필요는 없다.
“검은 포탈은 왜 기다리십니까?”
“모르니까.”
“몰라요?”
“응, 던전인지, 어딘가로 향하는 게이트인지 모르지. 그것도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지.”
수호가 검은 포탈을 조사하는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찝찝하잖아.”
“두꺼비 군주의 발생 초기에 사냥하지 않고 기다리신 이유라도 있습니까?”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은 빅토르의 질문에 안드레이가 긴장했고, 그 긴장이 무색하게 수호는 쉽게 대답해 주었다.
“그냥.”
“예?”
“뭐 이유가 있나, 그냥 냅둔 거지.”
“그럼 지금은 왜 나서신 겁니까?”
“도와달라더라고.”
역시 뭔가 대가가 있어야 움직인…….
빅토르는 고전적인 물음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신과 같은 힘을 냅니다. 어떤 이는 신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몇몇 국가에서 수호를 그리 부르기도 한다.
번개를 다루고 바람을 다룬다고 호들갑 떨기도 한다.
“그래서?”
“본인의 힘과 능력을 좀 더 대국적으로 쓰셔야 하지 않습니까?”
“러시아의 국익을 위해?”
“무, 무슨.”
빅토르가 당황했고, 수호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누구나 힘은 있어.”
“인류 전체를 위한 일에 쓰여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의 변명에 전혀 동의하질 못하겠다.
“좋아. 너는 왜 힘을 보태지 않지?”
“저 같은 일반인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수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동수가 나섰다.
“거 가만히 듣자니, 기자양반들 목소리가 아주 개소리요.”
“무슨!”
“아니, 시발. 환경보호 위해 쓰레기라도 주울 수 있잖아? 해? 너 해?”
“…….”
“…….”
빅토르와 안드레이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인류를 위하긴 개뿔. 너네 대통령한테 가서 똑같이 씨부려 보지 그래.”
“…….”
독재자에게 맞설 용기는 없는 놈들이 잘도 떠들었군.
“죽을까 봐 못하지?”
“…….”
스릉.
동수가 한손검을 빼들었다.
“그런데 그 생각은 왜 못하셨을까?”
한동수가 검을 빼든 채 한 걸음 다가오자 기자 둘이 한 걸음 물러섰다.
분위기가 흉흉하다.
“우리 형님 심기 건드렸다가 뒈질 수도 있단 생각은 못해 보셨나?”
“이, 이게 무슨 짓이오?”
“무슨 짓이긴, 인류 수호 중이시다.”
동수의 생각은 그렇다.
인류평화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인류 생존을 위해서는 박수호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수호를 지키고 보필하는 게 자신의 역할.
“꺼져, 시발놈들아.”
“…….”
후회할 거요, 따위의 고전적인 대사는 뱉지도 못하고 부리나케 도망쳤다.
한마디만 더 했다간 정말 동수가 칼을 휘두를 것 같았다.
“왜 애들 괴롭히고 그러냐.”
“아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잖아요.”
“심심하니까 대화한 거지.”
“아니, 그래도…….”
즈아아앙.
수호가 눈을 빛냈다.
“나왔다.”
검은 포탈이 생겨났다.
하나 더 확인되었다.
신급 군주의 시체가 사라지고 나서 검은 포탈이 생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