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87)
288화 웰컴 투 시티 (3)
차앙.
맥주잔이 부딪히고 입술을 가져다댔다.
꿀꺽, 꿀꺽.
“캬아. 한국 맥주가 맛없다더니, 다 뜬소문이었구려.”
다비드가 만족스런 얼굴로 원샷했다.
“여기 맥주 하나 더!”
그 말을 듣고 있던 주인장이 껄껄 웃으며 맥주를 서빙해 왔다.
“이건 한국에선 맛볼 수 없습니다. 오직 수호시티에서만 마실 수 있지요.”
주인장의 얼굴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제가 이 맥주 하나 만드는 기술로 수호시티 시민증 딴 사람입니다.”
수호 길드엔 여러 직종이 있는데, 맥주집 사장처럼 각종 쉐프들도 그 대상이었다.
맛집 사장님들 위주로 스카웃되다가 요즘엔 한 번씩 공개채용에 응시해 길드에 입사하기도 한다.
“이 맥주가 가장 맛있는 맥주 1등한 그겁니다.”
용병이 아닌 길드 직원들은 각종 시험을 통해 들어오는데, 음식점들의 경우에는 거의 요리 시합처럼 토너먼트가 열리기도 했다.
주조사인 맥주집 사장도 그렇게 들어왔다.
“다른 것도 있어?”
“암요.”
주인이 내어주는 여러 잔의 수제 맥주를 맛보며 다비드가 음미했고, 수호는 픽 웃었다.
‘호사다, 호사.’
그 긴 외로운 시간을 견디고 나니 이런 호사를 누리는구나.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고, 수호는 그 긴 세월을 참 재미없게도 살았다.
수호의 눈에는 장인 하나하나가 귀하고 대단한 능력을 지닌 귀인이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걸 하고, 사회를 풍요롭게 하여 문명을 이루는 일원들이니까.
“그런데 왜 온 거야?”
수호의 물음에 다비드가 깜짝 놀랐다.
“이런! 즐기다 보니 완전히 잊고 있었군.”
다비드는 주변을 휘이 둘러보더니 낮게 말했다.
“기밀이라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이야기 했으면 하네.”
“조용한데?”
수호의 말에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사장이 나섰다.
“룸으로 모시겠습니다.”
진부한 대사와 함께 룸으로 들어온 수호는 다비드에게 물었다.
“뭔데?”
“……이자는 괜찮겠나?”
다비드가 따라 들어온 왕일을 힐끔 거렸다.
왕일이 일어서려고 엉덩이를 들썩이는데 수호가 답했다.
“괜찮아. 내 부하야.”
구천 행성에서 자신을 따라온 이다.
“주, 주군!”
수호의 말에 왕일이 적잖이 감동을 받은 얼굴을 했다.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숨소리마저 죽여 충성을 보여주리라.
왕일이 구석에 찌그러져있는 사이 다비드가 말했다.
“지금 유럽은 심각한 상황이라네.”
“심각해? 신급 군주라도 나왔나?”
“그랬다면 그리 심각하진 않았겠지.”
다비드의 눈엔 짙은 믿음이 있었다.
신급 군주가 나왔다면 여기 눈앞에 있는 수호가 출동해 사냥했겠지.
“각국에서 쉬쉬하고 있지만, 지금 유럽은 실체 없는 적을 쫓고 있다네.”
“실체 없는 적?”
다비드는 휴대폰을 들어 몇 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검은 놈이네.”
“그렇지. 놀라지 말게, 이놈은 실체가 없다네.”
“알아.”
“알아?”
“어.”
“어, 어떻게?”
“만나봤으니까.”
“으음.”
다비드는 신음했다.
“지금 유럽은 멍청한 짓을 하고 있군.”
“왜?”
“그들은 이 사태를 그들의 힘으로 해결하려 하네.”
“그게 왜?”
지극히 당연하다는 반응에 다비드가 되려 물었다.
“기분 나쁘지 않은가?”
“내가?”
“수호 길드에 알리지 않고, 자력으로 일단 해결하려 한다는 말일세.”
“그게 왜 기분이 나쁘지?”
내 영역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자신의 영역에 일어난 일을 자력으로 해결하려 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정말 의문이 가득한 수호의 얼굴에 다비드가 고개를 저었다.
“후, 과연 대인은 다르군.”
이 정도 배포는 있어야 세계의 정점에 설 자격이 있는 걸까?
외려 자신이 옹졸한 것 같아 실소가 새어나왔다.
다비드는 런던의 입장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가 등장하기 이전에 차원산업을 선도하는 건 미국과 영국이었네.”
그중에서도 롤랑 길드가 있었다.
차원에너지 측정기부터 각종 장비를 만들어온 그 기업은 용병회사도 꽤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롤랑 길드의 대표적인 용병이 바로 다비드 자신이고 말이다.
“자네는 생태계 파괴종이나 다름없지.”
파격적인 말에 왕일이 눈치를 살폈다.
허나 듣고 있는 수호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그저 다비드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하고 있지.”
수호 길드를 중심으로 세계의 힘을 하나로 모으려고 한다.
김미소가 그 일을 주도하고 있다.
“지금 유럽의 시티들은 별수 없이 그 뜻에 따르고 있지만, 그건 좋아서가 아니네.”
그야말로 별수 없이 따르고 있다.
세계적 흐름이 그러하고,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일 뿐이다.
“이 검은 몬스터는 뱀파이어를 닮아있네.”
현대화기가 통용되지 않는다.
“화염에 대해서도 면역을 가지고 있지.”
뱀파이어는 그래도 화염계 마법에 조금 타격을 입었지만, 이 녀석은 아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뱀파이어는 적극적으로 도시를 공략했으나 이놈은 필드를 배회하고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급하지 않았다.
유럽에서 이 사태를 심각하긴 하지만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수호 길드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처치할 방법을 얻는다면 큰 수확이 되겠지. 그래서 자력으로 해결하려 하는 걸세.”
말이 좋아 자력으로 해결하는 거지, 정보 공유를 꺼려하는 거다.
“너무 당연한 말을 빙빙 돌아 하는군.”
“후우.”
“그거 말하려고 온 거야?”
“그, 그렇다네.”
“알겠어.”
“알겠다고?”
자신의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한 게 아닐까?
다비드는 자신의 속뜻을 첨언했다.
“오해를 풀기 위해 직접 찾아온 거라네. 혹여 후일 듣게 되면 기분 나쁠까 봐 말일세.”
정확히는 수호 길드에서 후일 도움의 손길을 거절할까 봐 걱정되어서다.
“기분 나쁠 게 뭐가 있어?”
수호는 정말 기분 나쁘지 않았다.
다비드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혹여 이 검은 짐승이 도시를 공격하면 흔쾌히 도와주겠는가?”
“내가?”
“……?”
“내 영역도 아닌데?”
“…….”
말을 아예 잘못 들었군.
*다섯으로 쪼개졌던 미국이 다시 뭉쳤다.
지역에 따라서 서부, 동부 중부, 남부, 중남부로 부르기도 하고, 중심이 되는 주로 부르기도 했다.
217개로 분할된 도시들이 5개 연합으로 뭉쳐 권력을 나눴는데, 지금은 고작 117개의 대도시가 되어버렸다.
각 도시의 대표들의 만남 이전에 각 연합의 대표들이 모였다.
서부 아메리카, 캘리포니아 연합의 수장 하워드는 이 상황이 마뜩찮았다.
‘마음에 안 들어.’
본디 하나였을 최고 통수권자가 다섯이나 되었다.
원탁에 모인 다섯은 서로를 보며 불편한 마음을 숨기고 웃었다.
남부아메리카, 텍사스연합 대통령이 먼저 말했다.
“언제는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더니, 갑자기 화친을 제안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그의 날카로운 말은 동부아메리카, 워싱턴연합의 대표를 향하고 있었다.
한때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그는 오랜 정적인 텍사스 주지사 출신인 텍사스연합 대통령의 말에 웃어 넘겼다.
“맥스웰 대통령께서는 아직도 저에 대한 앙금이 크신가 봅니다.”
백악관을 차지하고 있으며, 각 연합의 분리독립 선언 이전까지 미국의 유일한 대통령이었던 그가 자신을 대통령으로 칭하자, 맥스웰은 얼굴이 붉어졌다.
‘여우같은 놈.’
언제나 한 수 아래로 깔보고 있던 동부 대통령이 자신들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에 묘한 감정이 들었다.
뿌듯하기도 하고, 우쭐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놈의 말을 듣고 싶지는 않고…….
“불편하실 줄은 압니다만, 이렇게 참석해주신 뜻은 저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집안싸움 이전에 집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구 최강대국 지위를 가졌던 미국이다.
언제부터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영웅 하나가 나타나더니, 세계를 주무르려 하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아니겠소?”
적어도 신급 군주에 대한 해답이 있기 이전엔 수호 길드와 독자노선을 걷는 건 도박수다.
“멍청한 러시아 놈들과 우린 다릅니다.”
워싱턴 연합 대통령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에서 모두가 느꼈다.
‘방법이 있구만.’
캘리포니아 연합 하워드가 물었다.
“방법이 있소?”
“워어, 그거야 우리 미국이 다시 하나로 뭉쳐야 공유 가능하지요.”
신급 군주를 처치할 수 있다.
다시 우리끼리 힘을 합치자.
위대한 미국을 위해 다시 하나로!
아시아의 아주 작은 도시를 맹주로 한 세계연합에 들어갈 것이 아니면, 그것이 맞다.
“좋소!”
“우리 텍사스연합은 동의하오.”
“나도 함께 하겠소.”
워싱턴연합 대통령이 서부미국의 하워드를 보았다.
“으음, 우리 캘리포니아연합도 함께 하겠소.”
“하하하. 미국이 다시 하나가 되었구려.”
다섯 연합이 각자 자치령을 가지지만 큰 틀에서는 다시 하나의 미국이 됨을 합의했다.
“연합의 각 도시에 잘 이야기해야 할 겁니다.”
현재 5개 연합에 속한 도시는 117곳.
117개의 도시국가가 북미에 난립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서로의 지배력이 약하다.
연합이라는 이름을 내건 이유는 그 때문이다.
“뜻이야 모으겠지만, 반발하는 도시가 있을 수도 있소.”
워싱턴 연합 대통령이 웃었다.
“좋은 본보기가 되겠구려.”
“…….”
인류평화조약.
세계 각국은 외계문명의 침략에 맞서 온전한 평화를 찾을 때까지 인류간 전쟁을 금한다.
‘조약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리는구만.’
하워드가 가장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워싱턴 대통령도 하나 입증해야 하오. 신급 군주에 대한 대비책이 무엇이오?”
“동양의 전략서에 그런 말이 있소.”
워싱턴 대통령이 하나씩 눈을 마주치더니 씩 웃었다.
“이이제이”
“이이줴이?”
워싱턴 대통령이 웃으며 회의실 한쪽에 있는 화면에 지도를 띄웠다.
“동부 해안에서 발견된 8성 던전이오.”
“으음.”
“우리는 이 던전을 공략 포기했소.”
던전이 터지면 동부는 초토화된다.
핵을 쓰기도 좋지 못하다.
주변에 대도시들이 너무 많다.
“바, 방법이 있구려.”
핵이 아닌 다른 방법이 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하워드는 계속해서 이이제이를 되뇌었다.
무슨 뜻이지?
해답은 곧 나왔다.
“이 던전이 터지면 동부는 회생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것이오. 하지만 나는 확신하오.”
자신의 심장부에 암이 자라고 있으나 제거를 의심치 않고 있었다.
“이 정도면 믿음이 되었습니까?”
“하나의 미국을 부르짖으며, 결국 전략은 공개하지 않겠다는 말이군.”
텍사스연합의 이죽거림에 워싱턴 대통령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럴 리가.”
화면이 바뀌었다.
“미국의 새 친구를 소개하겠소.”
화면엔 미군들에게 둘러싸인 거한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사람도 아니다.
온통 털북숭이에 거대한 머리.
부리부리한 눈.
“호랑이?”
“수인족?”
사람보다 두 배는 더 큰 호랑이 인간.
“우리와 혈맹을 맺은 외계인이오.”
“외계인?”
말이 좋아 외계인이지, 몬스터란 말이 아닌가?
“몬스터가 아니오?”
“쉬이, 말을 조심하시오.”
워싱턴 대통령은 귀신 이야기 전의 할아버지 같은 표정을 했다.
“그는 귀가 매우 밝소.”
“그게 무슨 상관이오?”
“이 자리에 와 있으니 하는 소리요.”
“…….”
회의실 문이 열리고 거대한 거구의 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쿵, 쿠웅.
신발도 신지 않았으나 신발보다 더 두툼하고 날카로운 발톱이 걸음마다 대리석 바닥을 금가게 했다.
한차례 사람들을 둘러본 그가 송곳니가 삐죽 솟은 입을 열었다.
“아임 쿠로.”
“…….”
“나이스 투 미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