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91)
292화 이슈 (2)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녜요?”
동수는 배달된 도시락을 여섯 개째 까먹은 뒤 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조금 더 기다려 보시지요.”
“벌써 이틀이나 지났어요.”
“깨달음의 순간이 길수록 얻는 것도 많은 법이지요.”
“허, 그냥 주무시는 거 같은데.”
동수도 운기조식 정도야 안다.
실제로 무공을 익히고 있으니까.
그런 동수가 보기에는, 길게 호흡하며 눈감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수호의 모습은 운기조식보다는 자는 것에 가까워보였다.
“깨웁시다.”
“아니 될 말입니다.”
“백퍼 자는 겁니다.”
장순필이 말렸고 한동수가 한 발 수호를 향해 걸었다.
“으르르.”
언제 튀어나왔는지 늑대들이 나타나 이빨을 드러냈다. 거리에서 보면 그렇게나 순한 짐승들이건만, 세계수 앞에서는 이리도 사나웠다.
“거 보십시오. 야수들이 호법을 서고 있잖습니까? 주군께서는 지금 중요한 순간입니다.”
“알았어요.”
동수가 한 발 물러나 장순필의 옆에 앉았다.
“근데 뭐 쓰세여?”
어제부터 노트 하나를 새로 펴 뭔가를 적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아, 보고서입니다. 내용을 간추리고 있지요.”
굳이 실험과정까지 기입할 필요는 없다.
결과와 꼭 알려야 할 사실만 적어서 보고한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내용을 정리해 두고 갈 참이다.
그에 동수가 손가락을 튕겼다.
“와 그러면 되겠다.”
애초에 동수가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가?
“어?”
동수는 엊그제를 떠올리곤 잠깐 멍해졌다.
“왜 왔지?”
그러다 손에 든 태블릿을 보곤 생각을 떠올렸다.
“으음.”
생각해 보면 크게 대단치도 않은 일이다.
그냥 소식을 빠르게 알리고 싶어 왔다가, 이틀이나 기다려버렸다.
“쳇, 괜히 기다렸나.”
동수는 막대로 땅에 글을 쓰려다가 힐끗 장순필을 보고 물었다.
“저 하나만 대신 써 주실래요?”
“뭐라 씁니까?”
장순필이 노트 가장 마지막 장으로 넘겨 동수의 말을 받아 적었다.
“뉴욕에서 신급 군주 사냥당함. 정체불명의 각성자 출현.”
글을 옮겨 적은 장순필이 깜짝 놀랐다.
“신급 군주가 사냥당해요?”
“모르셨어요?”
“이틀 내내 여기 있었습니다만.”
“아, 그러네요. 이거 한번 보실래요?”
동수가 태블릿의 동영상 하나를 재생해 주었다.
던전브레이크로 나타난 거대한 레드드래곤과, 그에 맞서 용감히 싸우는 한 존재의 싸움.
“끝까지 모자이크입니까?”
“네.”
“정체를 숨겼군요.”
“그렇죠.”
“미국 정부 채널이군요.”
“맞아요.”
“왜 숨겼을까요?”
“예?”
“모자이크를 하지 않았습니까. 정체를 밝히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인데, 왜 그럴까요?”
“생각 안 해 봤는데요.”
“…….”
장순필과 한동수는 말없이 서로를 보다가 각자를 이해했다.
“조작인가?”
“그보다는 숨겨야 하는 이유가 있겠지요.”
“아, 그런가?”
어차피 할 일도 없기에 고민해 보던 동수는, 문득 근원적인 의문에 눈을 떴다.
“근데 그게 중요해요?”
“음.”
장순필의 시선이 수호에게 닿았다가 다시 태블릿을 보았다.
“그리 중요치 않을 수도 있겠군요.”
신급 군주에 대항할 방법이 박수호가 유일했다. 주군의 유일무이함이 사라지는 것이지만, 인류에겐 좋은 일이 아닌가?
하나보단 둘이 낫고, 둘보단 여럿이 낫다.
신급 군주에 대한 대응만 제대로 된다면 이제 더 이상 도시를 위협할 재앙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
“왜 그러십니까?”
“이것 좀 보세요.”
“으음.”
실시간 차트를 점령한 핫이슈에 속보기사들이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모자이크 없이 찍힌 사진은 이족보행하는 덩치 큰 호랑이 인간 그 자체.
“와, 어제만 해도 아무런 소식도 없던데.”
정보가 풀린 지 두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그간 미국에서 언론들을 통제하고 있다가 시민들에 의해 목격된 호랑이 인간의 모습이 SNS로 공유되자 결국 엠바고를 해제한 모양이었다.
“와, 근데 이거 정말…… 닮지 않았어요?”
“으음.”
장순필은 고개를 들어 정좌중인 수호를 한번 봤다가, 기사의 사진을 봤다가 했다.
호랑이 인간은 수호가 호랑이와 변신중인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흡사한 모습이었다.
“와, 사람들은 두 번째 드루이드가 나왔다고 난리네요.”
“사장님과 비슷한 속성의 각성자일 수도 있겠군요.”
“참, 신기하네. 갑자기 이런 사람이 나오고.”
동수가 가장 최근 기사를 하나 더 살펴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하와이 지나쳐서 쭉 헤엄쳐 오네요?”
“갑자기 바다수영 중이라니……. 목표가 어딜까요?”
“안 그래도 일직선으로 오고 있는데, 경로가…….”
동수는 예상 지도를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한반도가 걸치는데요?”
“으음.”
그저 우연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저 호랑이 인간의 목표가 수호시티라면?
“…….”
수호는 여전히 말없이 정좌해 있었다.
*“쿠로!”
촥, 촥 촥!
호랑이 인간의 근육질 팔이 움직일 때마다 바닷물을 한 움쿰 움켜쥐고 뒤로 밀어냈다.
파파파파파!
쉴 새 없이 휘둘러지는 뒷발은 모터보트 부럽지 않은 포말을 일으키며 추진력을 제공했다.
제트보트보다 더 빠르게 물을 가로질렀다.
파파파팟!
“쿠로?”
그때 심해에서부터 접근하는 불길한 기분과 함께 바닷물이 검어졌다.
그리고 머지않아 바닷물이 솟구치며 몸이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거대하고 긴 주둥이를 가진 해상 군주.
놈은 수룡을 닮아 있었다.
“쿠로!”
쾅!
넓적한 앞발로 휘둘러 싸대기를 날렸다.
거대한 주둥이가 휘청하는가 싶더니, 호랑이 발톱 자국을 따라 상처가 나며 피를 흘렸다.
콰직!
뒤이어 코를 물어버린 쿠로는 목을 젖혀 그대로 뜯어 버렸다.
“끼에에에에!”
돌고래 같은 소리를 내는 해상군주는 호랑이 인간에 의해 처참히 뜯기고 상처입은 채 바다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쿠로.”
여긴 뭐 이리 신수들이 많지?
쿠로는 질겅질겅 씹던 신수의 고깃조각을 퉤 뱉고는 다시 헤엄쳤다.
아니, 달렸다.
찰방, 찰방.
헤엄치는 것보다 물 위를 달리는 게 더 빠르겠구나.
파파파파!
호랑이인간이 바다 위를 달렸다.
인간이 있는 곳.
아니, 인간이 어디에든 있는 세상이지.
그 인간이 있는 곳.
한국을 향해.
*수호가 눈떴다.
“혀, 형님!”
“주군!”
꼬박 나흘 만이다.
꾀죄죄한 모습의 둘을 보며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의 뒤로 작은 텐트와 모닥불이 보인다.
“누가 여기서 밥해먹으랬냐?”
“배달이 질려서……. 아니, 것보다 조금 어때요?”
“주군, 성취가 있으십니까?”
“무슨 성취?”
“……!?”
장순필은 당황했고, 한동수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형님 잤죠?”
“잠깐 졸았지.”
“아니! 무슨 잠깐이 나흘이에요.”
“음?”
수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한 몇 분 멍때리고 일어난 것 같은데?
“4일이 지났다고?”
“네. 아주 그냥 딥슬립 하시던데요. 허리 안 아프세요?”
“괜찮은데.”
수호는 허리를 폈다.
두두둑.
다리를 폈고.
두둑.
양손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두두두둑!
“와, 무슨 발골하세요?”
동수가 감탄했고, 수호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어우, 시원하다. 근데 둘 다 뭐했냐?”
“주군께 보고드릴 것이 있어 기다렸습니다.”
“전 어쩌다 보니까 그냥 여기 있었어요.”
수호가 턱짓했다.
“뭔 보고?”
“던전 포탈의 비밀을 알아냈습니다. 아니, 차원의 비밀일지도 모르겠군요.”
“알아.”
“균열은 사실 시공간 균열로 타 차원이 아닌……. 예?”
장순필이 당황했고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시간이잖아.”
“그, 그렇지요.”
장순필은 맥이 빠졌다.
어렵사리 문제를 풀어왔는데 이미 정답을 다 알고 있는 게 아닌가.
“더 알아낸 거 없어?”
“제가 듣는 게 빠르겠습니다.”
장순필은 낙담하지 않고 박수호에게 말했다.
자신의 공을 자랑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토론해서 서로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문제에 대한 해답에 더 접근하면 된다.
“원시지구가 있어. 모든 지구의 원형이지. 공룡들이 살던. 아무튼 이게 조각난 게 8성 던전이야.”
“아!”
가장 최근에 열린 8성 던전의 비밀이 맥없이 풀렸다.
“허면 그 아래 던전들의 기원은 어떻게 됩니까?”
“지구1에서 지구7.”
“지구가 7개 있었다고요?”
“아니, 지구는 하나지.”
“예?”
수호는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바닥에 집을 그렸다.
“첫 번째로 살던 놈이 있고, 뒤에 살던 놈이 있고, 또 그 뒤에도 있고…….”
“아! 집주인이 바뀐다?”
“그렇지. 8성 던전이 터지면 이 지구는 다시 원시로 돌아가겠지.”
“고, 공룡시대가 된다는 말씀입니까?”
“모르지.”
몬스터 시대라고 불러야 할지, 공룡시대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종래에는 또 하나의 종이 이 지구를 사용할 것이다.
고블린부터 인간 중에 하나일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종에 의한 지구8의 시작일지.
“저, 말씀 중에 고졸이 물어서 죄송한데요.”
끼어든 한동수의 말에 수호가 고개를 돌렸다.
“말해봐.”
“과거랑 겹치는 게 좀 말 안 되지 않아요?”
“왜?”
“아니, 과거가 바뀌면 미래가 바뀌는 거 아녜요? 그럼 엄청 복잡할 것 같은데.”
“역사는 기록되지.”
수호는 이제 아루카 행성과 구천 행성에 대해 알고 있다.
그 행성은 지구와 동떨어진 외계행성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함께해 온 행성이다.
“과거의 조각난 기록이 겹쳐질 뿐이야.”
“아, 어려운데요.”
“어려우면 말고.”
수호는 선생님이 아니고, 동수는 굳이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헤헤, 뭐 형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장순필은 생각을 정리하더니 물었다.
“허면 9성 던전은 무엇입니까? 의문의 검은 던전 말입니다.”
“그게 의문이야. 내가 살던 세상의 기록 같긴 한데…….”
검은 인영만 존재하는 검은 세상.
이미 그 세상은 망해버려 그런 걸까?
오직 죽음의 냄새만 풍기는 그곳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빴다.
“뭐, 천천히 알아보지 뭐.”
“형님, 복잡한 건 모르겠고. 그럼 이제 지구가 다시 평화로워질 수 있는 거예요?”
수호가 웃었다.
“지구가 언제 평화로웠지?”
“예?”
지구는 항상 시끄러웠다.
“아, 지구 말고 인류 평화요.”
“모르지.”
이 시공간 균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어떻게 멈추어야 할지 해답을 얻지 못했다.
검은 포탈 안의 세상에 그 답이 있을까?
얼추 이야기가 끝나자 장순필은 심기일전해 다시 연구해 보기로 했고, 한동수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호랑이 인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거 좀 보세요.”
“……!”
“얘 지금 헤엄쳐서 이쪽으로 쭉 오고 있거든요? 아마도 목적지가 한국 같아요.”
“그렇겠지.”
“어? 형님 아는 사람이에요? 한국인 같다던데.”
SNS 상에서 이미 많은 정보가 돌았다.
호랑이인간이 유창한 한국말을 하는 것을 보고 한국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잘 알지.”
“와, 얘 누구에요?”
“친구.”
“와, 역시!”
동수는 수호의 인맥에 감탄했다.
“형님 만나러 오는 거네요.”
“맞아.”
“와, 엄청 보고 싶었나 봐요. 수영해서 오고.”
수호가 웃었다.
그의 시선은 사진에서 떨어지질 못했다.
“마중 가야겠어.”
“예? 손님 안 맞고요?”
“손님?”
수호는 픽 웃었다.
“얘가 왜 날 찾아온다고 생각해?”
“음, 보고 싶어서?”
“죽이고 싶어서.”
“예?”
“…….”
그게 친굽니까?
“간다. 집 잘 지키고 있어라.”
파팟!
수호가 매로 변해 하늘을 날았다.
싸움의 여파가 어마어마할 것이니, 자신의 보금자리를 초토화 시킬 수는 없다.
친구를 마중하기 위해 동쪽으로 향했다.
마침 싸우기 좋은 넓은 섬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