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96)
297화 승천
“탈피를 이룬 놈이 무슨 미련이냐?”
“……?”
수호의 모습을 본 쿠로가 쯧 혀를 찼다.
“이래서 햇병아리란.”
“좀 오래 살았다고 너무 콧대 높구나.”
“쿠로로로.”
쿠로가 특유의 웃음소리로 웃었다.
“침식이 뭐야?”
“쿠로로로!”
쿠로가 대놓고 웃었고, 수호는 기분 나쁜 얼굴로 쏘아붙였다.
“흥. 너 이기면 가르쳐 주나?”
“신입의 아주 훌륭한 자세로군.”
호랑이 인간이 자세를 잡고 손을 까닥했다.
“치사한 놈. 난 말도 가르쳐 줬는데.”
“말은 아주 하급의 의견 교환 수단이지.”
“쳇, 말은 잘해요.”
수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놈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이길 수 있다.’
그곳에서도 쿠로와는 엎치락뒤치락했었다.
잃어버린 본래의 힘 일부는 아직 회복하질 못했다. 그런데도 자신있는 것은, 지구로 오면서 새롭게 배운 스킬들 덕이다.
야성과 조화.
두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다.
“크화아아앙!”
“흥, 곰 따위론 이길 수 없지.”
수호가 다시 일곰을 소환해 변신하자 쿠로가 코웃음쳤다.
“크르르. 끝이 아니지.”
곰인간으로 변한 수호의 곁에 하얀 여우가 소환되었다가 연기로 화해 흡수되었다.
거기에 황색의 대호가 소환되었다가 연기로 화해 흡수되었고, 거대한 검은 비늘의 비룡이 소환되었다가 다시 합쳐졌다.
“크으으으으.”
수호의 몸이 몇 차례나 바뀌며 꿈틀거렸다.
거대해졌다가 다시 압축되듯 줄어들었다가, 다시 거대해졌다가…….
야수들이 하나둘 합쳐질 때마다 변하던 외형은, 종래에는 쿠로와 닮아있었다.
흰색 베이스에 색색이 난 줄무늬만 아니라면 누가 봐도 쿠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더 야수를 불러 합체했다간 아예 자신의 존재마저 잊을 것 같아, 한 가지만 남겨둔 채 한계까지 야수들의 힘을 합쳤다.
여러 야수들의 자아로 뒤섞인 수호가 울부짖었다.
“크르르르르.”
“쿠로.”
“너구나.”
“무슨 말이냐?”
“크르르르.”
수호는 뒤섞인 자아 속에서도 한 가지는 잊지 않았다.
‘이기고 싶다.’
눈앞의 라이벌을 이긴다.
이기고 답을 얻는다.
“쿠허어엉!”
“쿠로오오오.”
콰아앙, 콰앙!
두 야수의 싸움이 다시 일어났다.
발길질에 땅이 떨고, 포효에 하늘이 울었다.
*서민수는 막 공략을 끝내고 나와 황당한 소식을 들었다.
“던전마다 브레이크 타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뭐? 왜?”
“모르죠. 일단 철수하라는 지시입니다. 저희도 다 철수하고 저희만 남았어요.”
그러고 보니 던전 주변에 늘어놓았던 장비도 다 철수하고 없었다.
남은 건 수송 드론 3기.
“좋아. 일단 가자.”
드론이 떠오르고 난 뒤 팀원이 이상한 걸 발견했다.
“어어? 대장, 저기요.”
“뭐야?”
바다가 커지고 있었다.
“해일이다!”
거대한 파도의 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와, 우리 좆될 뻔했네.”
“조금만 더 늦게 나왔으면 어쩔 뻔했어.”
던전이야 해일에 사라지겠냐만은, 사람들은 공략 후 나왔다가 영문도 모르고 파도에 휩쓸릴 뻔하였다.
드론이 빠르게 서쪽으로 향했고, 그 와중에 아래에서 차량을 보았다.
“엇? 대장, 저기!”
“철수 차량 같은데.”
“어엇? 대장님!”
서민수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드론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기기기기긱!
필드의 도로 사정은 본래 좋지 못했는데, 필드 포기 선언 이후 몬스터들의 토벌이 아예 이뤄지지 않으면서 더욱 나빠졌다.
기기기기긱.
바퀴 큰 픽업트럭이 험한 지형을 만나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어디서 오는 길이에요?”
서민수의 물음에 기사가 깜짝 놀랐다.
“아이고, 깜짝이야. 갑자기 어디서…….”
서민수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고, 창밖으로 고개를 빼내 수송 드론을 본 운전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릉에서 철수 중이었습니다.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차에서 내리세요.”
“차는 어쩌고…….”
“아, 동해에 지금 해일이 일었어요. 조금 있으면 덮칩니다.”
“…….”
남자는 서민수가 농담을 하는지 알았다.
지나치게 담담히 말해, 전혀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그러다 서민수가 손가락을 가리킨 곳을 보곤 남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맙소사!”
여기서 저 높은 파도가 보일 정도면 동해 전부가 물에 잠긴다고 봐야 했다. 어쩌면 이곳까지 해일이 밀어닥칠 수도 있는 일.
“살고 싶으면 일단 피하죠.”
“그, 그럽시다.”
피난 행렬의 사람들이 짐을 버리고 모두 차에서 내리자 총 21명이었다.
‘간당할 것 같긴 한데.’
수송 드론이 3대.
나눠 타면 어찌 탈 수는 있을 수준이다.
괜히 눈에 띄는 불쌍한 사람들이 더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며 사람들을 태웠다.
서민수가 가장 마지막에 올랐다.
북적북적한 수송 드론에 다들 서 있는데, 표정이 한결같았다.
“왜 다들 그러고 있어?”
“저, 저기…….”
“응?”
서민수가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을 보았다. 그새 해일이 더 가까워졌나?
해일은 꾸준히 진격해 오고 있었고, 다른 게 있다면 그 위에 날고 있는 푸른 드래곤의 모습이다.
“와, 크다.”
크기로 미뤄 보면 거의 신급 군주.
이 해일도 저 드래곤의 소행인가?
하나는 확실했다.
“전속력으로 튄다.”
베테랑 용병의 소양 중 가장 중요한 게, 싸우고 물러나야 할 때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자신감 과잉으로 싸워 패배하면 죽음이고, 과한 의기소침으로 싸우지 못하면 겁쟁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민수는 베테랑이다.
‘신급 군주. 최소로 잡아도 날아다니는 군주.’
현재 전력으로는 절대 사냥 불가하다.
드론이 전속력으로 날았다.
해일은 동해안을 초토화시키겠지만, 높은 산맥들이 방벽 역할을 해 내륙은 영향이 적을 것이다.
“와, 근데 저걸 어찌 잡지.”
“사장님이 해결해 주시겠죠.”
다행히 푸른 드래곤은 당장 이쪽으로 진격해오고 있진 않았지만, 동해 상공을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제발 오지 마라.”
사장님이 나서 줄 때까지는.
던전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민수 팀은 현재 세계의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곧장 수호시티로 날아가는 드론의 위로 그리핀 하나가 날아갔다.
지구에서 그리핀을 길들여 타고 다니는 건 오직 수호시티가 유일.
“와, 사장님인가 봐.”
“한 이사가 타고 있어.”
“촬영 가는 모양이네.”
“드래곤 레이드 가시네.”
드론에 탄 팀원들과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뜻밖의 환송을 받은 한동수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아는 사람들인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날아가다 보니 스침은 순간이었고, 이미 저만치 멀어져버렸다.
[동체시력이 형편없군. 길드 사람들이다.]“아, 복귀 중인 서 대장 팀인가 보네요.”
동수가 자신의 목에 목걸이처럼 둘러진 백사를 힐끗 보며 물었다.
“자신 있죠?”
신급 군주 사냥은 처음이다.
[흥, 내 마지막 모습이나 잘 봐둬라.]“에? 마지막이요?”
[…….]승천을 향한 한 해를 남기고 드루이드이게 잡혀버린 이무기.
모든 한을 내려놓고 승천해주지.
신룡을 잡고.
*대격변 이후 울릉도는 가장 마지막에 버려진 섬이다.
이제 필드가 되지 않고 남은 섬은 제주도가 유일.
한반도에 딸린 수천의 섬들이 모두 필드가 되었다.
던전이 생겨도 공략이 이뤄지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면 브레이크가 일어나 몬스터들이 나타난다.
파팟!
울릉도의 던전이 터진 뒤, 인간 대신 자리 잡은 것은 몬스터들.
어느 때는 고블린이, 어느 때는 오크가, 또 어느 때는 리자드맨이 섬의 지배권을 가져왔다.
언제 어떤 던전이 터지느냐에 따라 이 작은 섬의 생태계는 바뀌어왔다.
“크롸!”
울릉도에 자리잡은 가장 강력한 오크부족.
벌써 2년째 섬의 패권을 놓친 적 없는 이 종족은, 새로운 던전이 터질 때마다 타 종족을 노예로 삼거나 식량으로 삼았다.
새로운 던전이 계속해서 터지니 자급자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약육강식이 자리잡은 섬에 평화가 온 것은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크오오오오!”
8성 던전 하나가 터지며 블루 드래곤이 출현했다.
울릉도의 모든 몬스터들이 고개를 처박고 떨었다.
오크들이 열광했다.
그들이 신으로 모시던 드래곤이다.
오크전사들은 단번에 오우거를 뛰어넘는 힘을 얻었고, 더욱 흉포해졌다.
블루드래곤이 하늘로 날아올라 자신의 존재감을 피력했다.
파아아아앙.
거대한 해일이 일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한껏 힘을 발산한 이후에 성인봉에 내려앉았다.
“크오오오.”
마음에 드는 섬이다.
자신의 영역과 비슷한 크기.
이미 노예종도 자리잡고 있는 섬.
“크오오오오오!”
크게 울었다.
노예들이 고개를 처박고 떨었다.
사방을 휩쓸었던 해일 뒤로 물이 몰려오면 이 섬은 더 아름다워지겠지.
노예들이 한바탕 쓸려 나가겠구만.
고개를 쳐들고 포효하는 드래곤의 시야에 그리핀 하나가 들어왔다.
[빼에에엠!]뒤이어 하얀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크오오오!”
드래곤은 아가리를 벌리고 물대포를 쏘았다.
촤아아아악.
전혀 위력이 죽지 않은 하얀 화살이 물대포를 뚫으며 날아왔다.
아주 가까워져서야 그것이 화살이 아니라 뱀이라는 것을 알았다.
[신룡을 먹고 신이 되어 주지!]츠츠츠츠츳.
하얀 뱀이 덩치를 불렸다.
거대하고 거대해진 뱀이 블루드래곤의 몸체를 휘감으며 똬리를 틀었다.
“크오오오오!”
블루드래곤과 하얀 이무기가 얽혀 서로 이빨을 박으며 치고받았다.
쿠아아앙.
성인봉이 떨며 바위들이 무너져 내렸다.
그 거대한 개체의 싸움을, 그리핀을 타고 하늘에 떠있는 동수가 두 눈에 가득 담았다.
*콰앙, 쾅!
두 호랑이 인간이 치고받았다.
쿠로는 접전을 벌이면서도 연신 뒤로 물러나기 바빴다.
“괴상한 놈이로고.”
자신의 모습을 닮아버린 저 야수를 어찌해야 할까?
이미 절대적인 힘은 자신과 대등 혹은 그 이상이다.
시뻘게진 두 눈은 정상이 아닌 듯 보이기도 했다.
“크르르.”
침을 흘리며 다가온다.
콰앙, 쾅!
쿠로는 한 번 더 치고받고서 뒤로 물러났다.
언제나 그 방향은 서쪽.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이 행성의 중심으로다.
아마 거기가 저 인간의 영역이겠지.
‘인간으로 불러야 하나.’
거의 동족을 보는 듯 닮아 있는 모습이다.
아무튼 물러남이 많아짐에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는 속도가 빨랐다.
거의 둘이서 국토종주를 하면서 치고받는 모양새.
일본의 본토 도시 다섯 개가 초토화되었고, 이제는 해안가까지 와버렸다.
바다만 넘으면 한반도에 닿을 지경.
벌게진 눈으로 연신 몰아붙이는 저 존재와의 싸움을 계속 이어가야 하나?
‘이미 인간이 아니구나.’
자아마저 상실하기 직전이군.
멍청한 인간.
쿠로는 아꼈던 힘을 끌어냈다.
“쿠로!”
쿠로의 몸에 은은한 빛이 나며 야성이 폭발했다.
호랑이 기운이 솟구친다!
“쿠로!”
꽈앙, 꽝!
두툼한 호랑이 주먹 한 방에 개가 나가떨어졌고, 두 방에 곰이 떨어져 나갔다.
세 방에 와이번이, 네 방에 삼각뿔소가, 다섯 방에 여우가…….
쾅, 쾅, 콰아앙!
야성에 맞아 야수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며 인간만 남았다.
“으으으으.”
머리도 어지럽고 몸도 아프다.
“시발, 존나 아프네.”
쿠로는 두툼한 발톱으로 멱살을 쥐고 주먹에 힘을 줬다.
“내가 이겼다, 인간.”
“아직이야.”
“입만 살았구나.”
쿠로는 수호를 한 대 더 때리는 대신 멱살을 놓았다.
털썩 쓰러졌던 수호는 조화력을 끌어올려 생명에너지를 취했다.
파파파파파팟!
무너졌던 몸의 밸런스와 체력이 돌아온다.
“확실히 요정의 힘은 성가시군.”
“계속해 보자고.”
수호가 주먹을 들어 보였고, 쿠로는 고개를 저었다.
“의미 없다.”
그때 포효 소리와 함께 북쪽에서부터 인 해일이 덮쳐오는 광경이 보였다.
“파란 도마뱀이군.”
“우리가 아는 걔?”
쿠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 세상의 침식은 막을 수 없다.”
“막는다.”
“네가?”
“그래.”
“쿠로로로로.”
쿠로는 웃었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나도 막지 못한다. 그런데 네가?”
“…….”
쿠로는 하늘을 봤다.
“먼저 돌아가 있지. 좌절하고 성장해 돌아와라.”
“돌아간다고? 거기로?”
원시 지구 이전의 지구.
“태초의 지구에?”
“쿠쿠쿠쿠, 너는 그리 부르나 보군.”
“그럼 넌 뭐라 부르지?”
“신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