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98)
299화 대면
2차 대격변.
던전 브레이크의 가속화가 멈췄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계가 신음하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이미 풀려버린 엄청난 수의 몬스터.
그리고 군주급 몬스터.
한때 지구를 지배했던 인간보다 더 많은 수는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몬스터들이 증가했다.
대도시를 깔아뭉개고 완전히 점령해버린 세력도 있었지만, 몬스터는 그들 종끼리도 전쟁을 벌였다.
7성 던전이나 8성 던전이 터져 군주급 몬스터가 출현한 곳은 조금 더 사정이 좋았다.
몬스터 종끼리의 전쟁을 할 것도 없이 그들 모두가 군주의 부하가 되어 세력화되었다.
물론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후자가 더 최악의 상황.
이들 세력은 장벽으로 잘 정비된 도시를 탐해 침공해 오기도 한다.
도시 내 던전 브레이크를 잘 막아내고도 외부 몬스터 세력에 의한 공성전을 벌이는 시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평양 또한 그중 하나.
“크허어어엉!”
거대한 백호는 백두산 천지에 몸담고 수영했다.
백호의 휘하에 모인 군주만 해도 셋.
그들 또한 휘하에 구름처럼 모인 몬스터 군단을 이끌며 주변을 휩쓸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산이다.
이 산을 영역으로 선포한다.
“크허어어엉!”
백두산에서 울려퍼진 거대한 백호의 울음에 수호가 화답했다.
“안녕?”
“크헝?”
수호는 백두산에 올라 백호를 보았다.
“어디보자…….”
거대한 대가리는 자동차만 했고, 몸통은 건물이 누운 듯 커다랗다.
길게 뻗은 네 다리는 우람했고, 꼬리도 굵고 기다란 게 거목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너 나 알지?”
“크허어어엉.”
여전히 위협적으로 포효했지만 백호는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어디서 봤더라…….”
세상이 좁다 하고 문명을 찾아 다닌적이 있었다. 누구든 좋으니 지성체를 찾아 다닌 그 세월 동안 만난 동물들이 어디 한둘일까.
그때는 그저 큰 동물들인 줄 알았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모두 신수였다.
신수들이 신급 군주가 되어 이 지구에는 무슨 볼일일까?
‘이게 침식인가?’
명확한 해답 없이 가버린 쿠로가 원망스럽지만, 그거야 돌아가면 해결하면 될 일이다.
아주 피떡이 되게 패 주마.
“너 왜 왔냐?”
“크허어어엉!”
“백사도 말하는데, 너도 할 줄 알잖아?”
“크, 크헝.”
“맞고 대화를 나눠 볼까?”
백호가 훌쩍 뒤로 물러나며 의지를 전했다.
[인간! 네놈이 왜 여기 있지?]“알 거 없고 침식이 뭐야?”
[그게 뭔가?]“몰라?”
쿠로는 알고 이들은 모른다.
쿠로가 신이면 이들은 신수다.
“정말 몰라?”
[모른다.]“그럼 여기 왜 왔냐?”
[너는 왜 왔냐?]“내가 먼저 물었잖아.”
수호가 인상쓰며 한 발 다가갔고, 백호가 마찬가지로 인상쓰며 한 발 물러났다.
[신계의 망나니다운 놈이군.]“뭐?”
[쳇, 멸망 전에 신들이 강림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그게 왜 당연해?”
[모든 시작은 원시지구에서부터 시작된다.]“알아.”
[알면서 왜 자꾸 묻나?]“네가 왜 왔냐니까?”
[왜냐니.]백호가 크게 울부짖었다.
“크허어어엉!”
[모든 것을 원시로 돌리는 것이 신계의 역할이 아니던가!]백호가 훌쩍 뛰어, 작은 인간을 향해 내달렸다.
콰아아앙!
두툼한 발이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쐐애애애액, 쾅!
백호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이리저리 피하는 수호를 끈덕지게 따라붙으며 앞발을 휘둘렀다.
이 세상을 파괴하고 짓뭉개 원시로 돌린다.
온갖 종들의 생존 각축장이 된다.
살아남은 종이 다시 번영을 누리겠지.
콰드드득.
피하기만 하던 수호가 앞발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꺾어 바닥에 패대기쳤다.
개미가 강아지를 잡아 던지는 것만큼이나 언밸런스한 모습이지만, 수호는 그것을 해냈다.
퍼어억!
뻐어억!
“크허어엉!”
바닥에 깔린 호랑이는 계속해서 맞았다.
[흥! 네놈이 이런다고 이 세계의 원시화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내가 그걸 왜 막아?”
[…….]세상이 그리 돌아간다는데 어찌 막겠나.
[인간이지 않은가?]“요즘 좀 헷갈려.”
“크허으으.”
호랑이가 신음했고, 수호는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생명에너지가 거의 꺼져갈 때 쯤, 수호가 물었다.
“너 죽으면 어떻게 되냐?”
[죽음? 그딴 게 어디 있나.]“뭐?”
[신계에서 눈을 뜨겠지.]“…….”
수호는 마지막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후우.”
축 늘어진 호랑이 시체를 보며 길게 한숨 쉬었다.
“죽어도 신계라…….”
쿠로가 말한 ‘신계를 벗어난 신’이란 무슨 말일까?
쿠로도 막아내지 못한 침식이란 게 무엇일까?
“나도 죽으면 신계로 가나?”
쿠로는 그냥 하늘로 손짓해서 날아가던데.
수호는 똑같은 포즈로 하늘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
청명한 하늘에서 별빛은 개뿔,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수가 따라와서 지금 모습을 안 찍은 게 다행이군.
“레벨업이나 해야겠군.”
100레벨.
찍고 나면 뭐가 달라도 달라지겠지.
수호가 훌쩍 뛰어 매로 변해 날아올랐다.
*시티 이스탄불.
도시 내의 7개 구역을 폐쇄하여 던전 브레이크를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도시의 절반이 복구불능의 피해를 입었지만, 지켜냈다는 것이 어딘가?
도시 재생보다는 살아남은 사람들과 온전한 구역의 재정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 와중에 도시 외부에서부터 들이닥친 몬스터 군단의 위협은 큰 골칫거리였다.
투두두두두두.
“망할! 쏴. 다 죽을 때까지 퍼부어.”
빗발치는 총알에 무수히 많은 몬스터 군단이 쓰러지는데도, 저들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이따금씩 오우거 같은 대형 몬스터들이 던지는 바위가 장벽에 부딪혀 피해를 입혔다.
쐐애애애애액!
하늘 위로 날아간 전투기 소리가 들려온 것도 잠시, 몬스터 군단의 진영 여기저기서 폭발음이 들린다.
“좋아! 힘을 내!”
말 소리를 전하기도 힘든 공성전 상황.
장벽 위를 지키는 군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진격해 오는 몬스터 군단에 피로감이 더해갔다.
그럼에도 벌써 이틀째 공성전을 훌륭히 수행해 내며 도시를 지켜내고 있었다.
안타까운 게 있다면, 현대화기가 통용되는 건 군주급 이하의 몬스터뿐이라는 사실이다.
군주급 몬스터도 유령 계열의 무실체를 가진 몬스터만 아니라면 충분히 잡아낼 수 있지만, 그 윗급의 존재는 말이 달랐다.
신급 군주.
그들은 현대화기의 정점이라는 핵도 견딘다.
꾸우우우우웅!
수천 발의 총알과 수십발의 미사일들이 어느 순간 몬스터 군단에 닿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모든 종류의 공격을 차단하기 시작했을 때 서서히 총소리가 줄었다.
효과 없이 총알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맙소사!”
군인들도, 지휘관들도 몬스터 군단의 위로 떠오른 거대한 말의 등장에 넋을 놓았다.
신급 군주.
핵무기도 견딘다는 저주받을 몬스터의 출현에 장벽 위의 군인들이 절망했다.
모든 화기를 방어막으로 막아버린 거대한 말은 고개를 한 번 털며 투레질했다.
“히이이잉.”
귀를 찢는 포효 소리와 함께 마른 하늘에서 낙뢰가 내리꽂혔다.
꽈앙, 콰아아앙!
장벽 위에 내리꽂힌 낙뢰에 절명하는 이들도 있었고, 운 없이 비축한 탄약고에 떨어져 폭발이 일어나기도 했다.
꾸아아아아앙!
한순간에 초토화되어버린 장벽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그 틈을 타고 다시 몬스터 대군이 진격해왔다.
“오, 신이시여.”
절망적인 상황에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저 신을 찾거나, 죽음을 기다리거나.
아니 모두 헛되었을지도 모른다.
신급 군주 자체가 신이 내리는 징벌이 아닐까.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거대한 일각수의 모습이 더없이 공포스럽다.
저 큰 눈망울로 자신들을 단죄하러 온 죽음의 사자 같았다.
쐐애애애액.
콰아앙.
하늘에서 떨어진 매가 곰으로 변해 말의 싸대기를 날린 것은 순식간이었다.
콰앙, 쾅!
말이 머리를 털며 뿔을 휘저었다.
마른하늘에 생성된 번개가 주변 대지를 사정없이 내리꽂았는데, 얼마 가지 않아 모든 번개가 한데로 모였다.
파지지지지지직.
땅에 두 발을 딛고 선 인간.
수호가 하늘로 뻗은 주먹에 모든 번개가 끌리듯 뭉쳐졌다.
콰아아앙!
그리고 그 번개주먹 한 방에 일각수가 절명했다.
금방 100레벨이 되겠구나.
수호가 주변에 가득한 몬스터들을 보곤 발을 굴렀다.
콰과아아아아앙.
지면이 흔들리며 뒤집히고 갈라졌다.
지진과 함께 피어오른 용암에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나갔다.
“맙소사! 신께서!”
누군가는 자신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 외쳤고.
“챔피언이야! 그가 우릴 구원하러 왔어!”
누군가는 수호의 얼굴을 알았다.
도시의 사람들이 환호했고, 몬스터들은 절망했다.
쐐애애액.
챔피언이 매로 변해 날아가버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일각수의 시체가 사라졌다.
파파팟.
그리고 검은 포탈이 그 자리에 생겨났다.
*수호의 사냥에 세계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챔피언이 구원했다.’
‘그는 이미 신이다.’
‘신에게 기도했고, 신이 챔피언을 내려주셨다.’
수호는 신급 군주만 골라 사냥했는데, 지금의 인류에게 처치 불가능한 존재인 신급 군주를 해결해준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다른 몬스터들의 처리야 어찌어찌 도시의 전력을 집중하면 막을 정도는 되었다.
그럼에도 지난 2차 대격변의 피해는 컸다.
세계의 도시 절반이 날아가 버릴 정도로…….
사라져버린 도시의 생존자들은 인근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터를 잡고 싶어 하는 도시.
수호시티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줄을 서시오!”
왕일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외쳤으나, 몰려든 사람들은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았다.
수호 길드의 직원들이 나와서 진정시키려 해도 난민들은 막무가내였다.
수호시티와 연결된 세계의 도시들이 여럿 되기에,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이동 포탈의 사용에 드는 혈석은 결코 적지 않다.
거리가 멀수록 소모되는 양도 많았기에, 유럽 정도 되면 수중에 돈이 좀 있는 부자들만 방문하기 마련.
“돈은 얼마든지 있소! 내게 시민권을 파시오!”
“웃돈을 주지. 호텔에 묵겠소!”
세계각국의 말과 비명이 난무하니 시장통보다 더 시끄러워 통제가 되지 않았다.
포탈 존은 그야말로 인세의 지옥을 보는 듯했다.
이 존만 나가서 수호시티에 정착하면…….
평화다.
평화의 땅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수호시티에 정착하길 바랐다.
이 통제되지 않는 현장에 김미소가 거대한 곰과 함께 나타났다.
“크허어어어엉!”
오우거 피어보다 더 영향력이 커져버린 일곰의 포효에 사람들이 얼어붙었고, 조용해진 상황에 만족하며 김미소가 말을 전했다.
통역 아이템을 지니고 있어 모든 사람에게 뜻이 전달되었다.
“지금부터 한마디라도 하면 추방입니다. 모두 질서있게 줄 서 주세요.”
어차피 수호시티는 던전이 생성되지않는 안전지대.
세계수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져, 이제는 시티 전체를 아우르고 나서도 주변 필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성 밖에 새로운 장벽을 치고 거주민을 받아도 될 정도.
‘이 정도 혼란이야.’
자신이 처리해야 한다.
사장님은 보다 큰 일을 하시고 계시니까.
*
100이다.
드디어 상태창을 채운 100이란 숫자와, 신계에서 벗어나기 전과 똑같아진 자신의 몸 상태에 수호는 부르르 떨었다.
지금이라면 쿠로와 다시 붙어도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잠깐 머뭇거리며 이것저것 업적상점을 열어 해금된 스킬을 구경하는 사이, 사냥한 신급 군주의 시체가 사라졌다.
파팟.
그리고 생성된 검은 포탈.
“쳇.”
저 기분 나쁜 포탈을 또 보는군.
들어가 볼까?
들어가서 뭐해.
수호가 머뭇거리며 고민하는 게 무색하게, 검은 포탈이 찰흙처럼 변했다.
뭉글뭉글 하던 검은 포탈이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모든 게 검은.
오직 두 눈이 존재할 위치에 붉은 안광만이 섬뜩하게 빛났다.
[안녕?]“…….”
검은 인간의 말에 수호가 침묵했다.
[드디어 보네.]“날 알아?”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번에 검은 포탈에서 처치한 놈인가?
[잘 알지.]“잘 알아?”
검은 인간이 밧줄 자국처럼 우둘투둘해진 목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큭, 날 죽인 인간.]“…….”
[난 너다.]스스로를 죽인 대가를 치러야 할 때다.
[복수하러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