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99)
300화 수호신
“네 면상을 보고 있으니 짜증이 치미는군.”
[자기비하가 심하군.]“흥, 네가 나라고?”
[맞아. 네가 죽인 나지.]“허튼소리!”
수호가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것만으로도 주변으로 에너지가 퍼지며 먼지가 일었다.
[하하하. 발악해 봤자지.]“넌 날 못 이겨.”
[그렇겠지.]검은 인간의 순수한 시인에 수호가 인상을 굳혔다.
“항복이 빠른데?”
[크크큭. 몇 번이나 될까?]“뭐?”
[네가 날 몇 번이나 더 죽여야 네가 죽을까?]“…….”
수호는 놈을 노려보았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이 적대감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본능, 그 이상의 격한 명령.
[머리가 막 복잡한가 봐?]“아니.”
[애써 부정하는군.]“됐어.”
수호는 생각을 날렸다.
“네놈을 죽이고 생각하지.”
[크크큭.]수호가 주먹을 내질렀다.
퍼어억!
놈은 반항 없이 맞았다.
퍼억, 퍼어억!
흠씬 두들겨 팬 수호가 놈의 멱살을 쥐고 노려봤다.
[크크크큭.]“…….”
이놈은 왜 반항하지 않지?
[뭘 망설이지?]“…….”
[죽여. 늘 그랬듯이.]“입만 산 놈이군.”
퍼억, 퍽!
놈의 에너지가 꺼져간다.
“후우. 시발.”
기분 나쁨이 온몸을 감싼다.
끈적한 기름에 몸을 담근 기분이다.
시원한 계곡물에 목욕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다.
당장 매로 변신해 날아오르려 했지만 그를 잡은 존재가 있었다.
슈슈슈슉.
멀리서부터 날아온 검은 존재는 수호의 앞에 나타나 으르렁댔다.
“크르르르.”
검은 짐승을 마주하며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쿠로도 실패했다고 했지.”
“크르르.”
쿠로를 닮은 검은 짐승을 보며 이제 이해했다.
“이제 침식이 뭔지 알겠어.”
지구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나였어.’
내가 위험한 거였구나.
쿠로도 실패한 것.
그가 신계를 아직 벗어나지 못한 이유.
죽어서도 벗어날수 없다.
신,
그리고 죽은 신.
침식.
‘나도 죽으면…….’
신계에서 눈을 뜨겠지.
불사의 비밀을 찾는다고?
지구에 있었구나.
“쿠로오오!”
검은 짐승이…… 아니, 죽음의 쿠로가 달려들었다.
두두둑.
수호가 일곰을 소환해 변신한 후에 제압했다.
100레벨이 되고 나니 더 이상 업적 포인트 따위는 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수호는 곧장 매로 변해 하늘을 날아올랐다.
쇄애애액.
그런데 왜 아무런 변화가 없지?
모든 힘을 되찾았는데.
쿠로처럼 승천하지는 못하는 건가?
쐐애애액.
매가 한반도를 향해 날았다.
*수호 길드 부사장실.
“후우.”
김미소는 새로운 도시정비계획을 완료하곤 긴 한숨을 쉬었다.
세계를 이으려고 시도한 포탈 존이 제2차 대격변과 겹치며, 난민들의 탈출로가 되어버렸다.
그들에게 있어 수호시티는 유토피아다.
몇몇은 아예 방주로까지 부르기도 했다.
세계가 멸망해도 수호시티에 있으면 살 수 있다.
그들에게 한반도는 기회의 땅이자, 생존의 최후 보루였다.
김미소는 그들을 선별하는 대신 외성 밖에 거주지를 정해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불만이 많았지만, 애초에 그들은 수호시티의 시민이 아니다.
투둑.
창문턱을 넘어 들어온 매를 보며 김미소의 표정이 유난히 밝아졌다.
“오셨어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파란을 일으킨 수호의 귀환이다.
휘리릭.
창문을 넘어온 매가 소파 위에서 사람으로 변해 털썩 앉았다.
“밖에 시끄럽더라?”
“세계에서 난민들이 몰려왔어요.”
“다 받지, 왜?”
“시티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죠.”
“뭐 알아서 하겠지.”
수호의 절대적 신뢰에 김미소가 미소지었다.
“신급 군주를 전부 처리하고 오신 것 같던데요.”
“보이는 것만.”
군주급 몬스터들은 가다가 보이면 사냥하고 아니면 말았다.
신급 군주는 거의 대부분 사냥했는데, 경험치를 가장 많이 줘서다.
처음에는 한 마리 잡을 때마다 레벨업하더니, 99레벨쯤 되니 서넛 잡아야 100을 만들 수 있었다.
“또 출현하면 가실 건가요?”
“가야지. 그보다, 내가 사냥한 신급 군주 시체는 다 사라졌지?”
“네.”
죽은 신수의 시체가 사라지며 남은 건 검은 포탈.
“검은 포탈 생겼지?”
“네, 맞아요.”
“다 검은 존재로 변했나?”
“두 종류예요.”
김미소는 안 그래도 보고하려 했던 사항이라 즉답해 줄 수 있었다.
태블릿을 들고와 사진을 보여주었다.
검은 인간과 검은 짐승.
“블랙맨과 블랙비스트로 불리고 있어요.”
죽은 나와 죽은 쿠로군.
“검은 포탈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도 있고, 이 두 존재로 변한 포탈도 있어요.”
“추적은?”
“사라졌어요.”
김미소는 영상 하나를 찾아 보여주었다.
“이건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예루살렘 앞에 생겨난 검은 포탈.
도시의 조사단이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영상은 검은 포탈을 담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블랙맨의 습격을 받아 군대가 궤멸했다.
용케 세워진 카메라에 뒷 내용이 담겼다.
파파팟.
검은 인간이 검은 포탈을 흡수했다.
한동안 그 자리에 맴돌던 블랙맨은 다른 곳으로 뛰어가 사라져 버렸다.
“포탈을 흡수하네.”
“네. 그렇게 보였어요.”
“…….”
수호는 턱을 쓰다듬었다.
마석도 흡수해 파워업하더니, 검은 포탈도 흡수하는군.
“이놈들, 어디 있는지 추적은 했어?”
“추적이 힘들어요. 물리적 공격은 아예 통하지 않는 유령계열 몬스터 같아요.”
김미소의 추측에 웃었다.
“유령 맞지.”
“예?”
“아니야.”
수호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사장님, 이건 결재해 주셔야 해요.”
떠나려는 수호를 김미소가 급히 잡았다.
“뭐야?”
“세계정부에 가입하려는 도시들과 그 승인 서류예요.”
수호가 목록을 쭉 훑어보았다.
대구, 평양, 하얼빈이 이미 속해 있었고, 예비 도시에 서울, 부산을 비롯해 런던, 두바이, 모로코 등을 비롯해 112개의 도시들이 기입되어 있었다.
이미 이동 포탈이 설치된 도시들도 있었고, 아직 포탈망이 갖춰지지 않은 도시도 있었다.
그들 모두 수호 길드가 주도하는 세계정부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사인하면 귀찮아지겠는데?”
“세계를 수호하는 일이죠.”
사인하는 순간 수호는 이 모든 도시를 지켜주게 되어 있다.
적어도 신급 군주 출몰시 반드시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귀찮은 일이군.”
“귀찮기만 한 일은 아니죠.”
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얻는 게 뭐야?”
“세계를 지배하는 거죠.”
수호는 픽 웃었다.
신이니 마니 하는 이때에 세계정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복자가 아녜요. 수호자죠.”
김미소는 재빨리 화면에 수호 길드 공식 SNS 계정을 띄웠다.
“뭐야?”
“세계가 감사하고 있어요. 이들은 지배받고 싶어 하는 게 아녜요.”
수호 길드를 응원하는 짧은 글귀부터, 이번에 수호의 사냥으로 구함받은 대도시들의 감사 영상까지 SNS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섬기고 싶어 하죠.”
수호는 픽 웃었다.
“진짜 신이 된 것 같군.”
“기꺼이요.”
김미소라도 그러고 싶다.
신이 우리를 보살펴 준다는 믿음은 없다.
하지만 수호가 자신과 시티를 지켜 주리란 믿음은 있다.
수호는 사인 없이 펜을 돌려주었다.
“부질없어.”
“……?”
믿음에 부응하는 게 아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신급 군주를 사냥한게 아니다.
“검은 포탈, 블랙맨, 블랙비스트. 정보 모두 모아. 특이한 게 있으면 가져와. 세계수에 있을 테니.”
“넵!”
김미소는 결제받지 못한 보고서를 쥐고 깍듯이 대답했다.
킹메이커로서의 역할은 끝났다.
‘신을 보필…….’
신격화 따위가 죄가 될까?
수호가 인류를 구원할 것인데 말이다.
*세계가 살아있는 신을 부르짖을 때, 수호는 세계수 앞에 있었다.
수호는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만지작거렸으나, 어느 것 하나 선택할 수가 없었다.
“100이긴 한데.”
관리자가 오랜 시간 부재라 하였다.
지구를 관리하는 관리자.
전지전능한 그를 신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무엇이 신이겠는가?
100레벨이 되어 온전한 관리자가 되었다.
수호는 입을 꾹 다물고 세계수를 노려보다가 한숨 쉬었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우라 이거지?”
천 년을 살았다 여겼다.
왜 늙지 않나 의아해했다.
왜 죽지 않나 의문이긴 했다.
죽지 않은 게 아니다.
“너무 많이 죽었어.”
태초의 지구.
그 이후 억겁의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생을 마감했을까?
문제는 그 많은 죽음들을 언제 다 회수하느냐다.
“이것도 봉인 해제되었고.”
모든 걸 벨 수 있는 마음의 검.
현경의 고수를 죽이고 얻은 스킬이다.
구천 행성의 관리자 전용 스킬인가?
그것이 진화했다.
수호는 세계수 앞에 앉아 고민했다.
던전을 지우고 지금의 지구를 구할 것인가, 모든 걸 원시지구로 돌려 새롭게 시작할 것인가.
“쿠로도 못했다고?”
수호는 고민을 끝냈다.
“난 한다.”
수호가 복구를 선택했다.
“…….”
이거군.
불사가 끝났다.
파파팟.
누군가 숲을 헤치고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보나마나.’
안 봐도 알 수 있다.
세계의 모든 던전들이 사라지며 차원산업시대의 종식을 알리리라.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한 파발인가?
“형니이이임!”
내로남불 당진철이 떨어져 내렸다.
“던전이 사라졌지?”
“어, 어떻게 아셨소?”
“내가 했으니까.”
“형님이 하셨소?”
당진철이 깜짝 놀랐다.
“왜! 왜 그러셨소!”
“……?”
참담한 표정의 당진철을 보며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다, 다 죽어가고 있소!”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수호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던전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사라진 던전을 중심으로 주변이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독버섯처럼 벗어난 죽음이 세상을 검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르신 거요!”
“…….”
내가 했다.
또 다른 내가.
*한 달이 지났다.
세계수.
딱 세계수가 영향을 미치는 그 공간을 제외한 모든 곳이 검어졌다.
오로지 세계수가 영향력을 펼치는 한 줌 크기의 땅만이, 살아서 숨 쉬는 생명의 마지막 땅이 되었다.
세계의 방주가 농담이 아니게 되었고, 살아남은 인류는 고작 소수.
세상이 죽었다.
몬스터가 죽고, 사람이 죽고, 나무가 죽고, 풀이 죽었다.
바스락.
죽은 세상을 걸었다.
“…….”
어떠한 생명 에너지도 느껴지지 않는 세상.
검은 길 가운데 검은 인간을 만났다.
[어때?]“…….”
죽은 신과 살아있는 신의 만남에 환호할 어떠한 생명도 없다.
검은 인간이 죽음의 칼을 빼들고 다가왔다.
나와 내가 싸워 내가 죽으면 그것은 자살인가, 살인인가.
검은 인간 뒤로 검은 인간이 하나 더 날아와 흡수되듯 합쳐졌다.
[하아.]또 파워업했나 보군.
죽음의 그림자가 더 짙어진 걸 보니.
[이제 죽음이다.]“하나 묻자.”
[…….]“한 달을 기다렸다.”
[그래서?]“다 모였냐?”
[크크, 그렇다.]블랙맨이 모두 모였다.
어마어마하게 파워업한 녀석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수호는 제왕검을 뽑아들었다.
파스스.
죽은 세상에 검이 바스라지며 재가 되어 흩어졌다.
“뭐, 필요없어.”
수호가 손을 털어 재를 날렸다.
“내가 드루이드를 1레벨부터 시작했다.”
[…….]놈이 파워업 해도 상관없다.
나도 파워업 한다.
“내가 어떻게 100을 찍었나. 첨 보는 야수 죄다 꼬시고.”
수호의 주변에 최초로 길들인 야수 백구가 소환되어 수호의 몸에 흡수되며 개인간이 되었다.
뒤이어 길들인 야수들이 하나둘 나타나 수호의 몸에 합체했다.
“개같이 포인트 벌어서 스킬 사고.”
100레벨이 해금된 야성 스킬.
자아의 상실 따위는 없다.
휘리리릭.
소환되는 야수들이 족족 연기로 변해 수호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게 수십 수백 종.
마지막에 소환된 백룡이 수호를 휘감았다.
마지막 야수까지 합쳐진 수호의 모습은 야수왕 그 자체.
[…….]“죽음?”
죽은 신을 향해 걸었다.
“또 죽여주지.”
이미 패한 놈의 입을 다물게 해주마.
슈아아악. 콰아앙!
억겁의 시간 동안 죽은 신들이 모였나?
그거 좋군.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 없어서.
콰콰쾅!
신이 죽음의 신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제발…….”
수호 길드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빌었다.
염원하고 또 기도했다.
신이여 당신을 믿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해 주소서.
세계수 그늘아래 모인 모든 생명이 빌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던 최수영이 무언가 다가오는 감각에 눈을 떴다.
“온다!”
아직 야수들은 하나도 역소환되지 않았다.
죽었거나, 아직 싸우거나.
사람들이 모두 남문으로 향했다.
천천히 걸어오는 존재 하나가 보인다.
“혀, 형님이다!”
“와아!”
야수왕이 걸어오고 있었다.
“이겼나?”
“그런데…….”
걸어오는 야수왕의 상태가 좋지 못했다.
절뚝이는 걸음걸이가 위태롭다.
축 늘어진 팔은 더 이상 힘쓰기 어려워 보였다.
몸 여기저기 난 털이 모두 검붉다.
툭 튀어나온 눈꺼풀은 너무 부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졌나?”
세상은 여전히 검었다.
진 건가? 블랙맨은?
모두가 숨죽인 채, 걸어오는 야수왕만을 보았다.
파파파파팟.
수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연기들이 야수가 되었다.
하나둘 떨어져 나간 야수들이 수백.
인간으로 돌아온 수호가 상처투성이 몸을 이끌고 걸어왔다.
죽은 세상은 어떠한 조화력도 없다.
세계수의 영향력이 미치는 풀밭과 죽은 지구의 경계선이 마치 불에 탄 자국같이 나 있었다.
그 경계의 끝에 다다른 수호가 엎어지듯 대자로 뻗었다.
“하아.”
이겼다.
쿠로, 넌 해내지 못했지만 난 해냈다.
파파파파팟.
하늘 위로 신계로 향하는 별무리가 보인다.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겠지?
다시 싸우길 고대하고 있겠지?
“안 간다. 빌어먹을 야만인아.”
신계를 벗어난 신.
신의 마지막 조화 스킬을 시전했다.
파파파팟.
수호가 등대고 누운 곳을 중심으로 풀이 돋아나고 나무가 자랐다.
검은 세상에 생명의 기운이 충만히 번지며 숲을 이루었다.
검은 행성이 다시 푸르러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