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15)
316화 고대 야수
부산에서 눈뜬 이성우는 절규했다.
“시발, 이게 뭐야!”
회귀 전으로 돌아왔다.
젊어진 몸.
각성하지 않은 신체.
모든 게 다 10년 전 그대로다.
나 혼자만.
“뭐, 뭐야? 누구야!”
밖에서 들려오는 여자 소리에 화들짝 놀란 이성우가 문을 걸어잠갔다.
익숙한 듯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이 방은 분명 자신이 살던 빌라다.
문제가 있다면.
‘왜 날짜가…….’
회귀한다는 건 과거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과거의 몸, 과거의 시간.
오로지 혼자만이 미래를 알고 있는 미래인이 된 기분.
“이게 뭔…….”
하지만 지금은 혼자만 젊어졌다.
10년 전 과거의 자신이 10년 뒤 미래에 덩그러니 놓인 기분.
아니, 그 10년의 공백을 모르는 건 아니니, 그저 몸만 10년 전으로 젊어졌다.
문제는 SS등급까지 쌓아 올렸던 각성자의 몸도 비각성자가 되어버렸다는 것.
“여보세요? 경찰이죠? 지금 저희 집에 누가…….”
문 밖에서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에, 이성우는 빠르게 상황 판단을 해야 했다.
쾅.
“엄마야!”
갑자기 문이 열리자 여자는 부리나케 도망가 화장실로 숨었다.
슬쩍 거실 풍경을 보니, 전에 그가 살던 빌라와 구조가 같지만 완전히 다른 인테리어다.
급히 빠져 나가려던 이성우는 식탁 위의 지갑을 보고 지폐를 빼내 밖으로 나왔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달리고 달렸다.
“시발, 시발!”
이게 어찌된 일인가.
회귀는 성공했으나 세상은 그대로다.
그야말로 나 홀로 회귀했다.
과거의 몸으로.
좋아진 것이 있다면 10년 젊어진 신체뿐.
사라진 각성등급을 생각하면 이점도 아니다.
각성자의 신체 나이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니까.
“하아,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걷다 보니 해운대다.
익숙한 곳, 익숙한 소리.
검은 파도가 치는 벤치에 앉아 생각을 거듭했다.
‘관리자가 거부했어.’
분명 시스템 창을 봤다.
관리자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50번이 넘는 회귀에서 증명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생겼다?
“관리자…….”
관리자가 회귀를 승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계가 롤백하는 대신, 자신만 롤백했다. 마치 네게 주어진 권한은 이것이 전부라는 것처럼.
“관리자라.”
과거의 회귀와 지금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
관리자의 존재 유무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가?
과거와 현재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지난 50번의 회귀 동안 이번만 다른 건 무엇…….
“시발.”
그놈이다.
그놈이 관리자다.
“하하, 하아…….”
헛웃음이 나온다.
시발 어쩐지 개쩐다고 생각했다.
지형지물을 주무르고, 자연재해를 일으키며, 온갖 영물들을 길들인다.
거기에 더해 온갖 동물로 변신까지 할 수 있다.
신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째 능력이 신적이라 생각했더니, 정말 신이었나?
이 세상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신이 아니면 무엇인가?
애초에 이건 경쟁 상대가 아니지 않나?
“시발. 시발.”
그렇다고 욕이 안 나올 수도 없다.
그동안 내버려뒀다가 왜 이제 와서 이 지랄인가?
지난 50번의 회귀 동안 자신의 한 일은 무엇인가?
그 반복이, 그 고생이 전부 개고생이었나?
의미도 없고 부질없는 몸부림에 불과했나?
어차피 신이 있어 다 정리할 것인데, 고작 인간 나부랭이가 세상을 구한답시고 설쳤단 말인가?
깊은 회환과 허탈함이 그를 현자타임으로 이끌었다.
꼬르르.
벤치에 늘어져 파도만 보고 있던 그를 깨운 건 배고픔이다.
“후우.”
이 상황에 배가 고프다니.
나도 참 별수 없군.
“시발.”
자신이 생각해도 초라하고 초라하다.
더 살아 무엇하겠냐 싶을 정도로 깊은 절망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죽음을 떠올릴 순 없었다.
무서우니까.
“밥이나 먹자.”
이성우는 편의점으로 향했고, 배를 채우고 나니 마음이 더 허해졌다.
“시발, 이제 뭐 하지?”
이 좆같은 세상. 다시는 내가 세상을 구하니 마니 노력하나 봐라.
“아, 그러고 보니…….”
두꺼비 군주는 어떻게 됐지?
그를 50번이나 회귀하게 만든 장벽.
넘을 수 없는 최악의 몬스터.
이성우는 피시방으로 향했고, 기사들을 보다가 손을 떨었다.
‘이, 이렇게 쉽게…….’
두꺼비 군주가 죽었다.
언론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적어도 한반도는 축복을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수호시티가 자리잡고 있으니까.
박수호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야수들이 두꺼비 군주를 사냥해냈다.
수호시티 옆에만 붙어 있어도 거대 육상군주의 위협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된다.
수호시티가 괜히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1위로 꼽힌 게 아니다.
2위는 옆 도시 서울이다.
“맞아. 그것도 있었지.”
던전 발생 억제기를 개발했는지 어쨌는지, 수호시티 내부와 근처 필드에는 더 이상 던전이 생겨나지 않았다.
“하, 시발. 진짜 다 착착 돌아가고 있네.”
이성우는 괜히 허탈함에 중얼거렸다.
구멍 난 댐의 보수 공사가 이미 계획되어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혼자서 고군분투한 개미가 된 기분이다.
나 없어도 잘 돌아갔을 세상.
그 수없는 회귀를 반복하며 뻘짓했구나.
박수호.
아니, 신은 왜 이제 나타나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
한창 기사를 훑던 이성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볼 기사들이 없는 게 아니라, 피시방 이용 요금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 안을 더 뒤져서 돈 될 만한 걸 찾아올걸.
“9000원입니다.”
“여기요.”
돈을 지불하고 나오니 빈털터리다.
길을 걸으며 이성우는 속에서 차오르는 화를 가라앉히느라 애를 썼다.
이 세상에 나 혼자 패배자가 된 기분이다.
“망해라. 차라리 망했으면.”
내가 주인공이 아닌 세상.
차라리 망했으면…….
아니, 이제 세상이 어쩌고 할 게 아니라, 당장 잘 곳도 없는 노숙자가 되어버렸다.
“돈을 벌면…….”
당장 용병 일이 떠올랐으나, 각성도 하지 못한 신세다.
당장 각성은 또 어떻게 하고, 그 동안 지내는 건 또 어디서 한단 말인가?
세상의 구원은 그의 머릿속에서 멀어져갔고, 당장 시급한 생계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평양에서부터 시작된 피난민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목표는 개성.
지난번 7성 던전 발생 이후 버려져 현재는 마적 떼나 유랑민들의 근거지로 쓰였지만, 평양에서 출발한 인민군들에 의해 다 정리가 되었다.
개성은 버려진 도시 그 자체였다.
여기저기 보수되지 못한 도로에 무너진 건물들도 다수다. 길거리엔 썩어가는 몬스터 사체가 즐비했고,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백골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피난 온 사람들은 제발 평양이 무사하길 빌었다.
평양마저 이리 변하면 자신들은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수령 동지가 죽고 새로 평양시장이 된 리중만은 능력 있는 사람이다.
초능부대의 총사령관을 맡을 정도로 개인 전투력도 월등하지만, 처세술도 능하다.
일찌감치 수호 길드와 접촉해 그들의 비호를 받아낸 것은 수십만 인민의 목숨을 구한 위대한 결정이었다.
“종칠이 아부지!”
“아빠아아.”
“으어어어엉.”
피난 오면서 여기저기 가족과 떨어진 이들이 내는 비명 같은 아우성이 개성을 가득 채웠다.
슈아아아아앙!
하늘 위로 날아 북으로 가는 남한 전투기들 소리도 아이들의 울음을 그치게 하지는 못했다.
앞서 출발한 사람들이 개성에 옹기종기 모여 저마다 천막을 펴고 바람을 피해 몸 누일 곳을 마련하는 시간에도, 저쪽 북으로는 끝없는 행렬이 이어져 있었다.
모든 피난민들이 도착하려면 내일 저녁은 되어야 하리라.
“으아아!”
투두두두두두!
무장한 인민군들이 피난민들을 지키고 있다곤 하지만, 평양에서 개성까지의 길은 길다.
그냥 도로도 아니고 이미 몬스터들이 점령해버린 필드인지라, 인민군들의 보호가 허술한 곳은 몇몇 몬스터들이 습격을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잡혀갔고 주변은 금방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뒤늦게 인민군들이 도착해 몬스터를 향해 총질을 해댔으나, 이미 잡혀간 이들은 별수 없었다.
한없이 모자란 인력으로 그 적은 인원을 구하고자 호랑이굴이나 다름없는 필드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필드는 몬스터들의 영역.
“쿠룩, 쿠룩!”
“으아아앙!”
오크들에게 잡혀가는 이들은 대부분 아이들이었다.
“쿠루루. 쿠룩.”
저마다 하나둘씩 들쳐 업고 뛰는 오크들은 지치는지 뜨거운 콧바람을 내면서도 신나 보였다.
어린 인간들은 맛있다.
체구는 고블린만 한데, 질긴 고블린과는 비할 바 없이 맛있다.
신이 나 달리던 오크들은 앞에서 들려온 늑대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아우우우우우!”
오크들은 늑대를 잘 안다.
늑대를 길들여 타고 다니는 것은 오크 전사의 훈장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이건 필시 늑대들이 집단 사냥을 할 때 내는 소리다.
“쿠룩, 쿠룩!”
욕심을 부린 몇몇 오크들이 총질에 죽었지만, 살아남아 여기 모인 이들만 사십.
“쿠루!”
오크 대장이 급히 명령을 내렸다.
여기서 솥을 걸어 인간들을 먹는다.
오크 열 두가 남았고, 삼십 두가 주변을 정찰했다.
목표는 늑대.
그리고 늑대들이 사냥중인 목표물.
둘 모두를 얻는다.
이거야말로 일거양득.
“쿠룩, 쿠룩!”
나무로 우거진 산등성이에서 늑대들 움직임을 발견한 이후 오크들이 몰려들었다.
늑대도 잡고, 늑대들이 쫓고 있던 사냥감도 얻는다.
“아우우우.”
“크허어엉!”
오크들이 모르는 거라면 단 하나.
“크헝!”
“쿠룩?”
늑대들이 쫓고 있던 사냥감이 오크들 무리였다는 것.
“쿠어!”
사납고 덩치 큰 늑대 수십이 순식간에 오크들을 물어뜯었다.
덩치는 이미 늑대 그 이상.
황소보다 큰 덩치의 늑대가 달려들어 휘두른 앞발은 오크의 가슴을 함몰시킬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
늑대들은 순식간에 오크들을 처치하곤 인간들을 구해냈다.
“컹, 컹!”
“엄마야.”
“으어어엉.”
늑대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몰자 아이들에 한데 모였다. 그 주변을 둥글게 둘러싼 늑대들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오크나 늑대나 아이들에게 두렵긴 마찬가지.
아이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한데 몬 늑대들은, 이후 아이들의 옷을 물어 하나씩 태웠다.
“컹, 컹!”
“으어엉.”
울면서도 늑대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달린 아이들은 곧 숲을 질주해야 했다.
아이를 매달고 달려간 늑대들이 향한 곳은 피난민 행렬.
“워매, 이게 무슨 일이라냐!”
“늑대가 사람을 구했다!”
오크에게 잡혀갔던 아이들이 늑대 등을 타고 돌아왔다. 인민군들이 몬스터인 줄 알고 달려왔으나 총구를 겨누지 못했다.
“크르르.”
늑대들은 야생의 몬스터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질서가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인간들을 향해 어떠한 적개심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만 내려놓고 다시 북쪽으로 향하는 늑대들을 보며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 그분이여!”
북한이, 평양이 정보 통제로 인민을 통치하던 시절은 이미 오래 전이다.
리중만은 적극적으로 정보를 대중에 개방했고, 세계챔피언 박수호를 모르는 사람이 적었다.
수호시티에 대해 선전할수록 그 수호시티의 비호에 놓인 평양시의 선택이 옳았음을 대중에 알릴 수 있으니까.
“그분이 아이들을 구하셨다!”
“박수호 동지 만세!”
누군가 외친 만세가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콰직!
수호는 힐끔힐끔 계속 상태창을 주시하며 싸움을 이어나갔다.
검은 쿠로는 지치지도 않는지 여전히 3:1의 싸움도 호각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됐다!”
빠르게 차오르는 숭배 스탯에, 얼른 업적상점을 열어 고대야수 변신을 배웠다.
“와라!”
수호는 호기로운 외침에, 소환된 고대야수 두치가 연기로 화해 수호의 몸에 들러붙었다.
늑대의 옷을 입듯 완전히 합쳐진 둘은 꽤 신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크르르.”
아주 털이 긴 늑대 인간.
새하얀 빛의 털은 마치 유령처럼 보일정도로 맑았다.
“3차전이다.”
고대야수인간이 검은 쿠로를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