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18)
319화 가이아 부족 (2)
“우와, 뜨고 있어.”
“맙소사. 이건 무슨 마법 원리지?”
“마법이 저 프로펠러를 돌리고 있어. 풍로와 같은 원리군.”
“이건 마법의 힘이 아니야. 기계의 힘이지.”
“모르는 소리군. 혈석 엔진은 혈석에서 뽑아낸 마력을 동력으로 변환시킨다네. 이건 마법이야.”
“확실히 그렇군. 마력으로 동력을 발생시키는 장치이니 아티팩트라 불러야겠군.”
“지구에서는 아이템이라고도 부른다던데?”
“그건 포탈을 통과할 수 있는 모든 물체를 정의하는 걸세. 마법적 힘이 담긴 게 진정한 아티팩트지.”
“자네 말이 정석이긴 하지. 하지만 지구에서는 그냥 다 아이템이라고 불러.”
“모르는 소리군. 난 지구인들을 많이 봐왔어. 아, 물론 융보다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은 두 단어를 혼용해서 써.”
드워프 융은 쉴 새 없이 떠드는 엘프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현재 엘프들과 드워프들은 서귀포에 상시로 파견나와 있는 수호 길드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수송 드론을 타고 날아가는 중이다.
곧장 수호시티로 통하는 이동포탈을 사용하지 않고 굳이 공중을 날아가는 것은 지구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카쿤을 따라나선 엘프들도 그렇고, 융을 따라온 드워프들도 마찬가지로 지구에 대한 호기심으로 길을 나섰다.
새로운 행성에 대한 호기심. 탐구욕.
그리고 신화를 쓰는 과정에 동참하는 영광까지.
무려 현생에 신의 탄생을 직접 눈으로 목도한 것을 넘어, 함께 뜻을 펼칠 수 있지 않겠나?
이들이 흔쾌히 고향을 떠나 가이아부족이 되기 위해 지구를 찾은 이유다.
어쨌든 이 비행은 관광을 위한 것이다.
유희의 의미보다는 각오를 새기자는 의미이자, 지구를 소개해 주려는 의도다.
성향상 연구소나 대장간에 처박히게 될 드워프들과, 숲에서 두문불출하며 세계수 곁에서 맴돌 것이 뻔한 엘프들이다.
그 전에 지구를 보이고 싶었다.
“오, 여기도 아루카와 다르지 않군.”
어느 드워프의 감상평에 엘프 하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 아래 나무들의 비명이 느껴지지 않나요? 여긴 오염되었어요.”
“오염?”
“저기 저걸 보세요.”
“오크군.”
“맞아요. 드래곤의 앞잡이들이 활개치고 있다고요.”
오크들에 대한 적개심은 드워프들보다 엘프들이 더 심했다.
“드래곤? 빌어먹을 드래곤이 있어?”
물론 드래곤에 대한 적의는 드워프들이 훨씬 심했다.
엘프들이 드래곤을 무서워하고 경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드워프들은 드래곤을 증오하고 혐호한다.
두려움을 이겨낸 호전성만이 그들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아주 먼 선조들은 드래곤의 노예가 되어 부림당했다고 했다.
저 오크들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말이다.
“우어, 진정들 하게. 브로. 여기는 오크들이 있지만 드래곤은 없다네.”
“흥, 드래곤이 없으면 오크 따위는 들짐승이나 다름없지.”
그 정도로 형편없지는 않지만, 드워프들은 실컷 오크들 흉을 봤다.
“확실히 혼란하군.”
아루카 행성의 엘프들과 드워프들이라고 하여 지구의 문화나 사정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활발히 무역 활동을 하고 있는 두 행성이다 보니 소식도 많이 교류된다.
개중에 지구에 특히 관심 많은 엘프와 드워프는 존재했고, 그들은 지구의 사정을 연구하기도 했다.
지구와 게이트가 연결된 건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들은 훨씬 이전부터 지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선조의 선조, 또 그 위의 까마득한 선조들은 지구를 겪어봤고, 또 후손들에게 알려왔다.
‘선조들의 고향.’
다름 아닌 드워프와 엘프들의 고향이 되는 곳.
지구.
“놀랍군. 여기가 선조들의 행성이었다니.”
“놀랄 것도 없지. 우리도 저들 중 하나였을 뿐이야.”
여러 종족이 살아간다.
아무것도 없는 행성 아루카로 드워프와 엘프들이 이주하기 이전엔, 그들도 저 수많은 종족 중 하나였다.
그저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러 종들 중 하나 말이다.
“그 전설은 조금 과장이 심해.”
“허, 선조를 욕보이는 거냐?”
“워어, 진정해.”
드워프들이 멱살을 잡고 서로 의견교환을 화끈하게 나눌 때, 엘프들은 그저 보고 듣고 숨 쉬고 느낄 뿐이었다.
지구의 녹음이 낯설지 않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군.”
“맞아. 이건 분명 정령의 힘이야.”
“으음, 확실히 요람이야.”
“맞아. 지구는 모든 에너지가 넘쳐나지.”
카쿤은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엘프들을 향해 말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신을 마주하면 절대 정령을 소환하지 마.”
“음? 왜 그렇지?”
“신이 정령을 싫어하시나?”
“이해할 수 없군. 이건 야누스 님의 축복이야. 그분이 싫어하실 리가 없어.”
“오, 가니언. 지구의 신은 야누스 님이 아니야. 그, 그, 슈…….”
“수호.”
“맞아. 수호신이야.”
엘프들은 또 저들끼리 한창 야누스 님과 수호에 대해 떠들었고 카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신이 정령을 싫어한다고?
정령이 신을 지나치게 좋아할 뿐이다.
수송 드론은 계속해서 날았고, 서울 상공을 지나쳤다.
미리 신고해 두었기에 대공사격 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지구가 처음인 엘프와 드워프들은 상공에서 메가시티를 구경할 수 있었다.
“오, 맙소사. 도시가 끝이 없어.”
“뭐야? 저 성벽은 어떻게 만든 거지?”
“저기봐. 성을 마치 피자처럼 나눠놨어.”
“맞다. 지구의 피자 꼭 먹어봐.”
혼란스런 대화가 이어졌고, 수송기는 마침내 수호시티 내의 착륙장에 내려섰다.
“저건 뭐야? 늑대인가?”
“무슨 늑대가 저렇게 커?”
착륙장에 어슬렁거리던 늑대 하나가 외부인들을 그저 물끄러미 보았다.
마치 새로 온 손님들이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하듯이.
“저게 늑대야?”
“아니라는 데 내 팔찌를 걸지.”
“아니야. 분명 늑대와 같아.”
아루카 행성에서는 큰 짐승이 없다. 오죽했으면 가장 큰 짐승이 소일까.
아루카 행성의 소는 지구의 황소 정도의 크기다.
이들이 지금은 출장 나간 남만코끼리가 돌아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카쿤과 융은 자신을 따라온 고향 동족들의 놀라워하고 신비로워하는 반응에 기분이 좋았다.
먼저 가이아 부족원이 되어 미리 지구를 맛본 자들의 여유와 선행자의 기쁨이랄까.
“우리와 같아. 신을 섬기는 늑대지.”
“뭐? 늑대라고?”
“오, 갓! 신을 섬기면 저렇게 커진다니.”
“그분을 섬기면 다 커지는 거야?”
“아까 본 오우거만 해질지도 모르겠군.”
“이봐, 수다쟁이 친구들. 일단 가이아를 뵈러 가자고.”
엘프와 드워프들이 외성에서 내성으로 통하는 정문을 향했다.
정문인 남문을 지나 야수 쉼터로 가려면 필수적으로 서문을 지나야 한다.
내성 서문은 마치 에펠탑처럼 중간이 뚫린 빌딩 형태를 하고 있었다.
수호 길드 본사 건물.
길드와 이 드넓은 시티의 컨트롤 타워를 지나며 자연스럽게 이 무리의 부대장에게 인사했다.
“환영합니다.”
김미소의 미소에 어리둥절한 고향 친구들에게, 융이 소개했다.
“이분은 신을 모시는 인간이다.”
“오, 이분도 부족원인가?”
“조금 달라.”
“오, 달라?”
어느 엘프 하나가 아는 체를 했다.
“알겠군. 사제인가? 숲지기도 아니고, 난쟁이도 아니면 필시 사제겠지.”
신을 모시는 이들이 어찌 역할이 모두 같겠는가.
신전기사도 있고, 사제도 있고, 허듯렛일을 맡아 하는 종도 있기 마련이다.
가이아 부족을 세계수 가이아만을 지키는 숲지기 부족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가이아가 궁극적으로 연결된 신은 신화를 쓰고 있는 수호신이니까.
“좋아. 이제 가이아를 뵙고 싶군.”
“좋아, 가자고.”
엘프와 드워프들이 우루루 세계수를 향해 몰려갔다.
“오, 조금 덩치가 작군.”
“뿌리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연하겠지.”
“공주님의 수명이 가이아셨군.”
야누스 신의 신전에서 태어난 공주는 뿌리내리기 이전에는 이름이 없다.
지구에 와서야 가이아가 되었다.
“지구에 뿌리내린 첫 세계수라.”
“의미 깊은 일이지. 내가 지구까지 따라온 이유기도 하고.”
엘프들이 저마다 세계수를 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그에 반해 드워프들은 조금 심드렁했다.
“이제 그 연구실이란 곳에 가 보자고.”
“맞아. 구천에서 온 인간이 대장이라지?”
“기술을 견줘 봐야겠군.”
“지구의 기술뿐만 아니라 구천의 기술도 견식할 수 있겠어.”
저마다 기대에 차 있던 드워프들은, 웅웅거리는 주변 공기에 깜짝 놀랐다.
드워프들만 느낀 게 아니다.
카쿤과 융은 직접 겪어 보지 못했지만, 알리어드와 로매드에게 들어서 이 현상을 알고 있다.
“맙소사.”
카쿤과 융이 서둘러 세계수를 보며 무릎 꿇었다.
“으음?”
새롭게 합류한 엘프와 드워프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세계수를 보았다.
“허억!”
무슨 소리인지 모르지만 그 힘을 느꼈다.
엘프와 드워프들이 서둘러 무릎 꿇었다.
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다니.
신전 소속도 아니고, 세계수와 가장 가까운 숲지기나 촌장도 아닌데 말이다.
“카쿤, 어서 가게.”
“내가?”
“그럼 우리가 가리?”
엘프들의 독촉에 카쿤이 떨리는 몸을 일으켜 세계수에 다가가 손을 짚었다.
“……!”
카쿤이 깜짝 놀라 손을 떼었다.
공기를 무겁게 하던 존재감도 사라졌다.
그분이 떠났음을 알고 엘프들 사이에서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
“휘유, 대단한 존재감이었어.”
“신화. 내가 신화를 목도하게 되다니.”
신의 탄생과 더불의 신의 시대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또 그 일원이 된다는 것이 엘프나 드워프들로서는 굉장히 영광스러웠다.
“뭐라던가?”
“신탁을 들었는가?”
“어서 말해보게.”
수다쟁이 엘프들의 재촉에, 카쿤이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들은 대로 말해주었다.
“두, 두 가지 전언이 계셨네.”
“오오!”
카쿤이 기대에 찬 눈동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존나 환영한다.”
“…….”
엘프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존나’가 뭐지?”
“지구의 말인가 보군.”
“환영한다는 말은 알겠는데, ‘존나’가 뭔가? 그건 왜 아루카 말로 하지 않나?”
“대체할 말이 없네. 아무튼 격하게 환영한다는 말일세.”
카쿤의 부연설명에 엘프들이 저마다 환호했다.
“예아, 신께서 우리를 반겨주시는군.”
“지구로 오길 참 잘했어.”
“허허허, 신화의 시대를 살게 됐구려.”
“먼 미래에 후손들이 우릴 칭송하겠군.”
엘프들이 자축하는 사이 드워프들은 호기심을 해결하는 쪽을 택했다.
“두 번째는 무언가?”
“으음…….”
“어허, 어서 말해보게.”
융의 재촉에 카쿤이 말했다.
“왔으면 일하라시네.”
정확히는 ‘왔으면 이제 일해’였다.
“시, 신의 위업에 보탬이 되세나.”
“오오! 그렇지.”
“맞아. 신화를 쓰는 데 한손 거들어야지.”
엘프와 드워프들이 의기투합해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기 시작했다.
드워프들이 융을 재촉해 연구소로 우르르 가버렸고, 엘프들은 즉시 숲을 구경했다.
아니, 조사했다.
듬성듬성 모습을 보이는 야수들은 엘프를 온전히 인정하는지 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자, 어서 날 따라오세나.”
“어딜 가시려고?”
“마나석 창고에 가야지.”
카쿤이 초빙해 온 엘프들 중에는 전문적인 마법사도 있었다.
가니언이 그중 하나.
그는 본래 몸담고 있던 부족에서도 세계수에 마력을 공급하는 중책을 맞고 있었다.
수호 길드와 마나석인 혈석 공급 계약을 맺으며 마법사들의 착취가 덜해졌고, 여유가 있어 지구에까지 올수 있었다.
“오오, 마나석이 많았으면 좋겠군.”
마력 공급을 마나석이 대신해 주니 마법사들의 노고가 덜하다.
그들 스스로가 생체 공급원에서 그저 컨트롤 타워 역할만 해주면 된다.
카쿤이 씩 웃으며 가니언을 이끌었다.
“마나석이라면 산처럼 쌓여있다네.”
“껄걸, 듣기만 해도 좋은 농담이군그래.”
카쿤이 픽 웃었다.
이건 직접 안 보면 모르지.
커다란 수호 길드 혈석창고 문이 열리고, 가니언의 쫑긋하던 귀가 접혀버렸다.
“이, 이게 대체!”
본디 의정부에 주둔하던 3사단의 격납고로 쓰다가 개조된 창고엔, 혈석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그것도 머리가 셋인 눈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