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43)
343화 파괴신
“야누스!”
[인간.]수호는 정신체가 보내는 의사표현에 인상을 찌푸렸다.
신계에서 말이 통하는 건 야누스와 쿠로 정도.
쿠로도 처음엔 그 이상한 “쿠로로” 수준의 으르렁거림 빼곤 전부 저렇게 의사소통했다.
너무 심심해 쿠로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버려서 대화의 즐거움을 찾았지.
“야누스, 넌 알고 있지?”
[뭘 말이냐.]“신룡전쟁.”
[…….]야누스의 침묵에서 수호는 해답을 얻었다.
“알려줘.”
[알려준다고 무엇이 달라지나?]답을 알아도 문제를 바꿀 수는 없다.
매번 다른 답을 찾아도 문제는 여전하다.
야누스의 의지에는 깊은 실망이 느껴졌다.
“그건 모르지.”
[무의미하다.]“지금 난 심각해.”
“들어도 의미 없고 듣지 않아도 의미 없으면 일단 듣는 게 낫지. 판단은 내가 하지.”
[심각하다 해도 바뀌는 것은 없지.] [무엇 때문에 내가 그리해야 하나?]“내 의지를 말하는 거야. 난 과거사를 알아야겠어. 널 이겨서라도.”
아, 거 과거사 좀 읊어주는 걸로 너무 야박하게 구네.
휘리리리릭.
야누스의 주변에서 바람이 일었다. 폭풍 같은 바람에도 수호와 야누스는 꿈쩍 앉고 서로를 보고 있었다.
미친 듯이 휘날리는 건 수호의 머리털뿐이다.
[넌 날 이길 수도, 해할 수도 없다.]싸워 봤자 무의미.
수호는 히죽 웃었다.
“누가 너랑 싸운대?”
[…….]“모든 엘프들을 죽여버릴 거야.”
[…….]야누스를 신으로 모시는 엘프.
그들을 멸하노라.
야누스의 주변 바람이 잠잠해졌다. 미풍 하나 없는 고요.
그것이 야누스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바람이, 구름이, 풀이 야누스의 분노에 숨죽였다.
[네놈의 악행에 지구인들은 멀쩡할 듯싶으냐?]“너도 나 이길 자신은 없나봐?”
그러니 수호 대신 지구인들에게 화풀이할 생각이나 하고 있지.
[…….]수호의 말에 야누스가 허를 찔린 듯 침묵했다.
“쿠로우. 알고 있다면 알려주게나. 나도 궁금하다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쿠로까지 끼어들자 야누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어딘가로 훌쩍 날아가 버렸다.
그 모습에 수호가 한마디 하려는데, 쿠로가 어깨에 손을 짚으며 웃었다.
“따라가 보지. 마음이 풀린 듯해 보이네.”
수호보다 야누스와 더 오랜 시간 함께 가까이한 쿠로다.
야누스의 기색만으로도 그의 심정을 읽어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쳇, 요정왕은 너무 잘 삐져.”
“컬컬, 따라가 보세.”
수호와 쿠로가 달려갔다.
요정왕 야누스가 도착한 곳은 바다였다.
“와, 여길 또 와보네.”
사람 하나 찾아보겠다고 이 망망대해를 몇 달 수영했던 기억이 있는 수호다.
잠깐 추억에 잠겨있던 수호가 인상을 팍 썼다.
“늬들은 근데 여기에 문명 따위 없다는 거 알았을 거 아냐? 왜 안 알려줬지?”
수호의 말에 쿠로가 고개를 저었다.
“쿠로로, 모든 곳을 다 가 본 적이 없다 했을 뿐.”
[인간, 지독히도 남의 말을 듣지 않는군. 부질없는 짓이라 이야기하였다.]“아니, 그걸 그렇게 이야기하면…….”
수호는 따지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설명을 들었다 해도 자신은 돌아다녔을 것이다.
들어서 납득하는 성격이 아니니까.
직접 봐야 한다.
신룡대전에 대해 직접 야누스에게 들어야 하는 것처럼.
“여긴 왜 온 거야?”
[기다려 보아라. 인간.]슈슈슈슈슉.
야누스가 손짓하자 바다가 갈라졌다.
“수중도 잠수해서 돌아봤는데.”
[모든 곳을 보았느냐?]“…….”
그건 아니라서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인류나, 문명을 찾는다는 것은 그저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해진 인간이, 생존 이후의 다음 목표를 그것으로 정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삶의 이유를 찾고 싶었을지도.
촤아아아아!
갈라진 바닷길이 꼬불꼬불 열렸다.
물이 사라지며 질척한 바닷길을 내려갔다.
바닷속도 산과 같아, 여기저기 뾰족한 암초가 높은 산과 같았고 깊은 골도 있었다.
파파파팟!
신계 최정상급의 셋이 모인지라, 움직이는 속도는 눈으로 쫓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빠르게 달림에도 꽤 먼 길을 가야할 정도로 깊은 바닷속에 목표가 자리하고 있었다.
[저곳이다.]파파파팟!
심해였을 골짜기.
그 아래 분화구처럼 솟아오른 분지에 물이 고여 있다.
야누스의 손짓에 그 물이 사라지고 드러난 것은 거대한 뼈.
거대했을 생명체의 무덤.
“저게 뭐야?”
[드래곤이다.]“드래곤이 왜?”
신계에 드래곤이 사는 게 이상할 리 없다.
[신은 죽으면 구천에 묻힌다. 죽음은 기록되고, 삶은 분기되어 영생을 이어간다.]“그래서?”
[멍청한 인간.]수호는 순간적으로 욱해서 야누스를 노려봤으나 할 수 있는 건 없다.
실체없는 그를 때릴 수도 없고.
[시체가 남았다는 것은 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수호는 그게 어때서 하는 표정이었지만, 쿠로는 조금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쿠로오, 과연. 그래서 드래곤이 없었군.”
“뭔 소리야? 신계에 용 있잖아.”
[용은 다르다.]“용이 용이지,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흥, 원숭이와 인간이 같다는 소리까지 나오겠군.]“와, 너 진짜.”
오늘따라 왜 이리 긁을까?
엘프들 몰살하겠다는 협박을 듣고 화가 많이 나셨나?
“다르면 뭐?”
[역사를 보여줘도 듣지도 생각하지도 못하니 한탄스럽군.]야누스는 거대한 드래곤의 뼈를 가리켰다.
[본디 신계엔 드래곤들이 살았지. 수많은 신수들이 살듯이.]다소곳이 죽은 드래곤은 얼마나 거대했을까?
분화구를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하다. 갈비뼈 하나하나가 거대 구조물로 보일 정도로 크다.
[에이션트. 오크들의 신.]“얘가?”
[그렇다.]고블린의 숭배를 받은 두꺼비 군주가 그러했듯이, 리자드맨의 숭배를 받은 거북이 군주가 그러했듯이.
수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데?”
[뭐가 이상하단 말이냐?]“지구에 드래곤이 나타났다.”
[그러했지.]“근데 신계엔 지금 드래곤이 없다.”
[그렇다.]“아마 미드얼에서 왔겠지.”
수호의 추측은 정확했다.
[맞다.]야누스의 확신에 수호는 불안하던 실체를 명확히 했다.
신계에서 지내던 자신이 지구로 귀환하며 게이트가 열렸다.
신계와 지구가 자신이라는 매개로 이어졌으나, 미드얼 행성까지 한데 이어져 버렸다.
“막아야지.”
[어째서?]“지구가 쑥대밭이 되니까.”
[신룡대전이 지구에서 벌어지는 것은 축복이다.]“…….”
이 새끼, 입을 찢어 버릴까?
아니면 엘프들을 잡아와서 혼내 줄까?
[신룡 대전 이후의 신계는 큰 깨달음을 얻어 중간계를 두었다.]“……그게 지구라는 말이냐?”
[그렇다.]수호는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앞 마당이 파헤쳐지는 걸 막기 위해 남의 집에 문을 달아 놓았다.
미드얼의 드래곤들이 신계를 탐하기 위해선 일단 지구를 넘어와야 하니까.
지구는 일종의 완충제.
그리고 모든 차원들이 실체화하는 실험의 장.
[지구는 본디 신의 요람이었다.]야누스는 담담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태초의 지구를 본떠 세상을 빚으니 원시지구가 탄생했다.]태초의 땅은 신계, 그리고 그것을 본떠 만든 것이 지구다.
[원시의 지구는 드래곤, 그리고 용의 세상이었다.]태초의 지구에 심심찮게 보이는 것이 신수 드래곤.
몇몇은 지능이 아주 처참했으나, 몇몇은 신에 버금갈 정도로 고등했다.
[긴 용의 시대를 벗어나 각 종족이 번성하니, 신의 성장이다.]지구의 생존 경쟁을 이겨낸 종족.
그 첫 번째 종, 고블린.
오래토록 숭배 받아온 독두꺼비가 신이 되었다.
[지구가 다시 원시로 돌아가니 두 번째 생존의 장이 열렸다.]“어떻게?”
짐작이 되었으나 물었다.
[용이 강림했다.]지금의 지구와 같다.
드래곤들이 포탈을 찢고 나오고, 공룡들이 판쳤다.
번성했던 고블린은 그저 먹잇감에 불과했고, 머지않아 용의 시대가 재림했다.
지구2.
다시 원시로 돌아가 지구가 역사를 반복하니 리자드맨이 끝내 살아남았다.
장수한 거북이가 신으로 추앙받으니, 두 번째 신의 탄생이었다.
역사는 반복돼, 다섯 번째의 원시지구를 맞이하자 오크가 번성했다.
지구5의 생존 종족은 오크였고, 그들은 원시지구에서 사라진 드래곤을 추앙했다.
지구5의 원시화를 위해 강림한 여럿 드래곤과 공룡들이 오크들을 갸륵하게 여겨 지구를 파괴하지 않았다.
오크들은 계속해서 번성했고, 지구는 더 이상 신의 요람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에, 신계는 다섯 번째 지구를 버렸다.]“그게 미드얼이란 말이냐?”
[그러하다.]“아예 부숴버리지, 왜 냅뒀냐?”
[야만적이군.]“…….”
이 새끼, 아까부터 자꾸 맥이는데?
수호는 그냥 잠자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구5는 분리되었고, 신계와 다른 시간을 보내었다.]시간의 분리.
결합되었던 세계의 완전한 분리이자 독립선언.
“그래서?”
[드래곤들은 분노했지.]“왜? 그냥 지들끼리 오크하고 알콩달콩 살면 돼지.”
[미드얼은 구천과 아루카가 없다.]신계에 달로 떠 있는 구천과 아루카 위성.
[원시 지구를 만들매, 구천과 아루카를 함께 만들어 냈다.]그런데 지구만 동떨어져 멀리 보내 버렸다.
구천과 아루카는 새 친구 지구를 들였다.
[구천에 기록된 과거를 불러 이룩한 것이 지구6. 수인족이 번성하여 마침내 그들의 족장이 신이 되었지.]“…….”
가만히 잠자코 듣고 있던 쿠로가 눈을 감았다.
조금 전에 자신의 짧은 죽음을 마석으로 흡수해 옛 기억이 생생해져버린 쿠로다.
망가져 가는 지구에서 홀로 살아남은 쿠로다.
신의 탄생?
최후의 생존이라 부르는 게 맞겠지.
“나는 일족들을 구하지 못했다.”
[그랬겠지. 지구의 원시화는 이제 과거의 중첩에서 비롯되니…….]본디 그 역할을 해줬던 것이 드래곤과 용이다.
용은 내쫓겨 났고, 한 종족만이 번성해버린 지구를 원시화하기 위해 구천에 저장된 과거의 기록이 쓰였다.
조각난 과거의 데이터들이 지구에 겹쳐졌고, 과거의 지구에 번성했던 여러 종들이 지구에 발을 디뎠다.
1성 던전의 고블린부터, 2성 던전에서 첫 출몰하던 리자드맨. 거기에 종래에 신수들의 출몰까지.
지구는 드래곤의 부재를 과거의 종들의 침공과 신계의 다른 신수들의 강림으로 대체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려울 것 없다. 인간.]“난 뭐지? 난 신도 아닌데 왜 신계에 있지?”
야누스는 슬쩍 쿠로를 보았다.
[어떤 미련하고 야만적인 신수들의 왕이 그것마저 막아내며, 아주 곤란하게 되었지.]“…….”
쿠로는 묵묵부답이었다.
[정점의 순간 신의 탄생을 보는 대신, 신계는 신을 키워냈다.]“…….”
[미리 선택받은 인간.]“그게 나란 거냐?”
[그렇다. 신이 될 인간이여.]“…….”
[원시지구7이 여러 종족의 생존의 장이 되는 사이, 그대 또한 신계에서 존재해왔다.]주라기 시대의 지구에 인류 문명이 자리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를까?
“이게 말이 돼?”
주라기 시대에 있지도 않은 나를 미리 불러냈다고?
[시간의 흐름이 다른데 아니될 것이 무엇이냐?]“…….”
야누스는 몸을 돌려 수호를 정면에서 보았다.
[그대의 할 일은 하나뿐이다.]“…….”
[지구7의 최후를 지켜보며 신으로 존재하는 것.]미리 키워진 지구7의 신.
[요람을 여덟 번째 신에게 비워주는 일.]“…….”
수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지구 멸망을 그냥 지켜보라는 거냐?”
[걱정이 과하군.]야누스는 수호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지구는 안심해라. 멸망하는 건 인류뿐이다.]지구는 또 다른 이들의 터전이 되어줄 테니까.
“그러니까. 내가 신계에 존재하는 이유가…….”
[지구에 침식을 일으키기 위해서지.]“…….”
내가 신이 된다면 수호신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