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68)
369화 거인 레이드 (3)
“어? 거인 떴다네요.”
태블릿을 들고 있던 동수의 말에, 명진과 진세연의 고개가 돌아갔다.
“으음, 첫 출몰이군.”
수호는 신탁으로 말했었다.
오크와 거인족, 드래곤을 조심하라고.
직접 언급한 종들이 모두 출현했다.
오크 주술사들로 인해 오크족의 전력도 아직 파악되지 않은 마당이고, 드래곤은 교전 보류 판정마저 내릴 정도로 저세상 강함이다.
“갑시다.”
“시주, 아직 명령 전이지 않소?”
컨트롤 타워에서 구난조에 대한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동수가 헤프게 웃었다.
“가다 보면 떨어지겠죠. 헤헤.”
“으음, 확실히 일리가 있소.”
“가 보죠.”
막 출발하려는 그때, 그들의 워치에서 동시에 소리가 났다.
[거인 출몰. 구난조 지원 요청입니다.]동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거봐요.”
“갑시다.”
“뛰자.”
진세연이 먼저 뛰어버렸고, 뒤따라 동수와 명진도 달렸다.
G등급에 올라버린 셋의 속도는 일반인은 물론 같은 각성자가 보기에도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내가 과거로 돌아가면 형님 취급 정도 받겠지?’
동수는 괜한 상상에 히죽히죽 웃으며 달렸다.
같은 수송기를 타고 왔다지만 구난조는 내린 지점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장순필과 3개 팀은 오사카 방면으로 꽤 전진해 있었기에 먼 거리를 달려야 했다.
“어?”
동수는 달리는 와중에 저 멀리서 느껴지는 기척에 눈을 크게 떴다.
“와, 존나 크다.”
작은 산을 몇 걸음 만에 훌쩍 올랐다.
산에 올라가 있으니 안 그래도 큰 키가 더 크게 보였다. 조금 과장하면 한쪽 하늘을 다 가리고 서 있는 듯했다.
거인은 점점 더 커졌는데, 당연하게도 그가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어서다.
쿠우우웅, 쿠우우웅!
“저기, 연구소장님이에요!”
거인의 앞도적인 존재감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진세연이 알아보고 소리쳤다.
장순필과 용병들이다.
화르르륵.
장순필이 간간히 거인을 향해서 덤비며 조금씩 시간을 늦추지 않았다면 용병들은 벌써 따라잡혔을 것이다.
용병들은 전력을 다해 달리는데도 거인의 속도가 그것보다 더 빨랐다.
단순히 속도라기보다는 물리적 거리가 짧았다.
수십 미터를 한 걸음에 내달리니…….
“나부터 가겠소. 누님은 부상자들을 돌보시오.”
파파팟.
명진이 다리에 힘을 집중해 더욱 빠르게 달렸다.
장순필이 불길을 뿜으며 거인의 다리에 쏘아 보내고 있는 참이다.
“내가 왔소!”
명진의 아공간 팔찌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기다란 봉이 튀어나왔다.
창술은 이미 경지에 오른 그다.
G등급에 오르며 그는 야수의 축복을 받았다.
장순필과 최수영처럼 불과 바람을 다루는 조화의 축복이 아닌, 야수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
휘리릭.
갈색 연기가 휘몰아쳐 그의 주변을 에워쌌다.
연기는 그대로 털이 되어 그의 몸 곳곳에 달라붙었고, 아무것도 없던 엉덩이 위엔 긴 갈색의 꼬리가 삐져나왔다.
착.
변신하기도 전부터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창을 잡은 것은 기다란 꼬리.
“효오오오!”
갈색의 남만 원숭이와 흡사하지만 조금 더 사람 같은 길쭉한 반인반숭이가 거인의 몸을 타고 올랐다.
[어째서!]그 모습에 거인이 화들짝 놀랐다.
사람이 원숭이가 되어서 놀란 것이 아니다.
[네놈도 신이더냐?]처음 발을 디딘 지구다.
미드얼의 복사판.
열화판.
가짜 지구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미드얼은 본디 신계를 본떠 만들어졌다.
신의 요람이 되어준 미드얼을 내치고 새롭게 생겨난 것이 지구.
이 가짜 지구의 역사는 깊지 않은데, 어찌하여 벌써 이토록 많은 신격이 존재한단 말인가?
파파팟.
원숭이의 봉술이 대단한지라 더 생각을 잇기는 힘들었다.
퍼퍼퍽!
현란하게 휘둘러지는 봉술이 마치 재주넘는 원숭이를 보는 듯했다. 길어진 발가락은 손이나 다를 바 없어, 손발에 꼬리 할 것 없이 자유롭게 봉을 다뤘다.
쫘아악!
파리 쫓듯 손을 휘저었으나 남는 건 제 살 때리기뿐이다.
이놈은 불을 쓰던 인간보다 더 재빠르고 한 방 한 방이 더 파괴적이다.
수호의 사제나 기사로 임명되면 대체적으로 신체적 능력이 월등하게 오르나, 역시 조화마법 계열을 다루는 사제보다 야수의 힘을 다루는 기사들 쪽이 더 상승폭이 컸다.
다리를 타고 오른 원숭이는 재빠르게 손을 피해 등으로 기어올라 목 뒤에까지 당도해버렸다.
“촤아아아!”
요란한 기합과 함께 봉을 쥔 손에 힘을 줬다.
모든 힘을 봉에 담았다.
츠츠츳.
날이 없는 봉에 투명한 무형의 기운이 어렸다.
명진의 본신 힘은 원숭이 변신이 전부가 아니다.
‘기.’
구천 행성에 건너왔을 스킬북 신룡질주를 시작으로 입문한 무공이 그간 수십 개.
창술과 봉술에 관한 무공 스킬은 죄다 배워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다.
이미 그의 창술은 화경의 경지에 닿아 있었다.
‘강.’
파팟!
봉은 투명한 날을 단 창이 되었다.
기다란 원숭이 손에 들린 창이 그대로 거인의 목 뒤를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콰직!
너무 쉽게 쑥 들어가버린 봉이지만 명진의 얼굴은 덜컥 굳었다.
‘얕다.’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얼마나 목이 굵은지.
그나마 치명상을 입을 만하면서도 가장 가죽이 얇을 것이라 생각된 목 뒤가 이 모양이다.
[구오오오!]얕다 하여 거인에게 타격이 가지 않은 것은 아닌 바, 겨우 절명하는 것은 면했지만 상당한 데미지를 입은 거인이 포효하며 손을 휘둘렀다.
잡히면 분질러 주리라.
휘이익.
원숭이는 미련 없이 점프해 손을 피해냈고, 거인은 몸을 홱 돌려 떨어지는 원숭이를 낚아채려 했다.
화아아악!
‘잡았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난데없이 나타난 용 한 마리가 원숭이를 등에 태워 날아가버리기 전엔 말이다.
“적절한 타이밍이었소. 시주.”
“헤헤, 뭘요.”
원숭이와 와이번이 말을 주고받았다.
거인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 보니 목 뒤에 이쑤시개를 박아 넣은 듯 초라하기 그지없다.
파팟.
원숭이로 화한 명진이 아공간 팔찌에서 다른 창 하나를 더 끄집어냈다.
아예 날붙이마저 붙어있고, 길이는 아까보다 훨씬 더 긴 창이다.
기병들이 쓰는 기마창을 쥔 원숭이가 거인의 머리를 가리켰다.
“시주, 갑시다.”
“옛썰.”
자신의 변신 모델을 와이번으로 정한 동수가 제법 익숙해진 몸놀림으로 선회해 거인의 머리 위로 날았다.
‘존나 멋있어.’
동수는 스스로의 비행에 매우 흡족해했다.
처음엔 인간으로서 없던 기관인 날개의 존재가 어색했고, 와이번의 큰 덩치로 인해 비행도 쉽지 않았지만 이젠 꽤 익숙해진 상태다.
서민수의 독수리처럼 날쌔지는 않지만, 보다 우아하고 묵직하게 비행할 수 있다.
‘민첩하자고 대머리가 될 수는 없지.’
와이번의 등에 탄 원숭이는 신중히 자세를 잡았다.
‘정수리.’
이번엔 그곳을 노린다.
아예 뇌를 뚫어주마.
‘이목을 끌어주면 좋으련만.’
거인은 목 뒤에 박힌 봉 때문에 화가 많이 났는지, 와이번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를 갈고 있었다.
굵은 손으로 목에 박힌 봉을 빼내려 했으나 손이 워낙에 크고, 튀어나온 봉의 길이가 짧아 아예 잡히질 않았다.
작은 가시가 박혀 빼려고 안간힘 쓰는 모습을 보는듯했다.
“여기다, 괴물놈아!”
그간 거인의 추격을 늦추느라 화염 공격을 날린 장순필인데, 이미 거인의 다리털은 죄다 타버려 맨들맨들해진 상태.
불을 붙이려고 해도 어디 탈 만한 매개가 있어야 하는 법.
‘저기다.’
거인의 이목이 와이번에게 쏠린 사이, 장순필은 조화력을 모았다.
모으고 모아 터트렸다.
화르르륵!
불.
알을 깨고 나온 불사조가 이러할까?
이것에 스킬명을 붙이자면 그것이 딱 어울리지 않을까?
‘파이어 에그.’
화르르륵.
덥수룩한 검은 털들이 타오르며 배를 타고 올랐다. 멋들어진 하체 수염에 가려졌던 두 개의 알이 맹렬히 구워지고 있었다.
[감히!]건인이 황급히 손바닥으로 알을 비비며 장순필을 찾았다.
찢어 죽일 놈.
잘근 잘근 씹어 먹어주마.
그러고 보니 신격을 지닌 존재들이 이리도 많으니, 신계로 나아가기 이전에 한 끼 식사로 적당하지 않은가?
이놈들을 잡아먹어 잃어버린 신격을 되찾겠다.
신의 냄새가 나는 놈이 셋이나 있지만 상관없다.
이 정도까진 어찌 해볼 만하다.
타고난 축복을 받은 자신의 신체는 신격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빛나는 피지컬을 자랑한다.
셋 정도야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 어떻게든…….
“우어어어!”
괴성과 함께 소가 달려오고 있었다.
시작은 용병들 무리에서였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소 하나가 맹렬히 돌진해오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예사롭지 않았다.
길고 긴 뿔은 날카롭게 벼려진 창과 같았는데, 머리에 그런 뿔이 무려 셋이나 달려 있었다.
보통의 삼각뿔소보다 두 배는 더 큰 덩치의 소가 달렸다.
파파파파팟.
우람하고 육정하다는 말이 절로 어울리는 질주였으나, 그 대상이 거인이 되고 보니 바위에 내려쳐지는 계란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보통의 계란이 아니다.
[이놈도?]신격이 느껴진다.
어째서 신의 요람에 이토록 많은 신격의 존재들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마지막 초기화를 위한 신수도 아니고, 태초의 종이 인간이 말이다.
발을 들어 피했으나 뿔소는 집요했다.
“무어!”
팟!
힘껏 지면을 박찬 뿔소가 수직으로 날아올랐고, 거인의 발바닥을 파고 들었다.
콰직!
[구어!]끔찍한 고통에 거인이 결국 바닥에 발을 디뎠으나 뿔소가 더욱 깊게 파고들 뿐이었다.
이 인간놈들의 가시 같은 공격이 참으로 성가시게 하는구나.
일단 발치에 깔린 소부터 정리한 뒤에…….
“차아아압!”
모든 기를 끌어모아 강으로 바꿔 창에 덧씌운 명진이 뛰어내렸다.
긴 창을 들고 뛰어내리는 용맹한 원숭이의 시도는 좋았다.
콰직!
거인이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정수리를 노리고 찔러가던 창은 거인의 손바닥을 찔렀고 그대로 관통했다.
원숭이는 손아귀에 사로잡혔고, 거인이 웃었다.
[가소로운 것.]수없이 많은 전장을 헤쳐 온 전사다.
기껏 생채기 따위에 고통에 겨워 싸움에 질까?
연기 좀 해줬더니 놈들이 신이 나서 걸려들었다.
[네놈은 조금 위험한 짓을 하는구나.]물론 목 뒤를 노린 가시나, 방금 정수리를 노린 이놈의 노림수는 제법 위험했지만 말이다.
고통을 참았을 뿐이지 아픔이 없는 건 아니다.
여전히 뒷목에 박혀있는 가시 때문에 영 움직임이 불편했다.
“끄으으으.”
거인의 우악스런 손바닥에 붙잡혀버린 명진이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나마 G등급이 되면서, 그리고 변신하면서 상승한 신체능력이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터져버렸을 것이다.
그 정도로 거인의 악력은 대단했고, 신체능력에서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채울 수 없는 갭이 존재했다.
‘이 괴물을 어떻게…….’
괴랄한 덩치가 이토록 큰 장애물이 될 줄은 몰랐다. 무슨 짓을 해도 사람 앞의 파리만큼이나 무력해지는 기분.
부우웅, 부우우웅!
그때 와이번이 접근해왔다.
“으?”
명진이 고개를 돌려보니 와이번이 근처에 있다.
동수는 여기 있는데, 저 멀리서 오고 있는 와이번은 대체 뭐란 말인가?
“순필아아아! 누나 왔드아!”
와이번 비룡의 등에 탄 복지부장 이숙자가 사자후를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