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69)
370화 거인 레이드 (4)
“순필아, 누나 왔드아!”
이숙자의 사자후에 당진철이 얼얼한 귀를 어루만졌다.
‘역시 재능 있어.’
복지부 이모들하고 노래방 가서 고음 올리기 좋다고 꾀어 가르쳐준 사자후가 어느새 대성한 것이다.
저 좋은 재능을 두고도 왜 무공에 매진하지 않는지, 당진철로서는 불가해한 일이었다.
이숙자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보다, 가르칠 이유를 만들어내는 게 더 어려울 지경이었다.
“할머니, 다 왔어요?”
와이번 비룡의 등갑에 달린 해치를 열고 박건우와 장취아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이잉, 바람 차가분게 들어가있으.”
이숙자가 한없이 사랑스런 눈빛을 보냈다.
건우와 취아를 보고 있으면 손주를 보는 듯 예쁘기만 했다.
물론 당진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화경에 이른 놈들인데도 여전히 애들 취급이군.’
저 정도 나이면 무림인들은 혼인도 할 나이다.
어엿이 무인으로서 활약해도 될 나이건만…….
“헤헤, 구경만 할게요.”
“그려. 쥐등급인지 지랄인지 뭐시기도 안 혔는데 위험혀. 거기 딱 붙들고 있응게.”
이숙자와 당진철이 G등급 각성을 해버렸다.
당진철이 최수영과 같은 바람의 힘을 다루는 조화마법을 축복받았는데, 이숙자는 조금 그 궤가 달랐다.
조화마법이긴 한데…….
“워따, 뭔 놈이 저마이 크다냐?”
“으음.”
당진철은 거인을 보았다.
구천에서도 보지 못한 크기의 괴수다.
거의 산이 움직이는 것 같지 않은가?
‘아깝긴 하지만.’
저 정도 사냥감이면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아닌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호승심을 애써 눌렀다.
‘여긴 지구니까.’
어떤 활약을 한다 하더라도 역사에 이름이 남겨질 리는 없다. 아니, 사실 어찌 되는지도 잘 모른다.
지구에서 활약했다는 무림인들이 역사에 기록되었다는 그 어떤 자료도 없으니까.
“지독한 맛을 보여주마.”
물론 내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가.
아까운 사냥감이지만 어머니께 양보했다.
세계는 알아야 한다.
이숙자의 강함을.
강력함을!
그리고 그 지독한 조화마법을!
세계로 퍼져나갈 명성의 첫 제물로 적당한 괴수가 아닌가?
덩치가 크다는 건 어머니 앞에서 그저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다.
“위험헌께 여서 꼭 붙들어 매고 있으. 아라찌?”
“네, 할머니.”
“이잉. 할미 갔다올겨.”
어딜 보나 30대 초반 정도의 미모다.
이제 할머니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외모가 되어버렸지만, 이숙자에게 반로환동 따위는 조금 더 삶이 편해진 정도일 뿐이었다.
휘익.
와이번에서 훌쩍 뛰어내린 이숙자가 거인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아따, 젊은 게 좋긴 좋다잉.’
이리 격하게 움직이는데 몸 성한 게 얼마나 축복인가? 관절도 무리 없고 말이다.
‘이도 싹 새로 나부르고.’
틀니는 진즉에 내다버렸다.
격하게 운동 한판 하고 뜯어먹는 고기가 또 제맛이다.
[어디서 이것들이…….]거인은 새롭게 나타난 신격을 두고 어이가 없었다.
‘영 헛소리였구만.’
듣기로 지구는 미드얼과 구성이 다르다 하였으나, 지금 보니 매한가지였다.
이렇게 우후죽순 신격들이 난립하게 만들어놓고 또 한 놈만 신계에 발을 들이겠지.
신계와 연결되어있었던 요람으로서의 지난날 미드얼의 역사가 그래왔듯이 말이다.
촤아아악.
명진을 잡고 있는 반대 손으로 이숙자를 움켜쥐려 했다.
그저 그런 시도였다.
분명 이놈들은 재빨라, 이 정도 움직임은 피할 테니까.
턱.
거인은 손아귀에 쏙 들어오듯 잡히는 이숙자를 보고 어리둥절해했다.
이놈은 뭐가 이리 쉽지?
“어우, 어머니 사뿐사뿐 해야지!”
당진철은 이숙자에게 분명 사뿐사뿐 걸을 수 있다고 허공답보를 가르쳐 줬건만, 실전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는 그녀였다.
꾸욱.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압력에 거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새롭게 잡은 녀석의 힘이 제법이다.
“허야아아아!”
기합성과 함께 거인의 손아귀가 조금씩 벌어졌다.
[어딜.]원숭이 인간도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한낱 인간 따위가?
당진철은 거인의 머리 위에서 선회하는 비룡의 등에 탄 채로 응원과 감탄을 동시에 쏟아냈다.
“그렇취! 금강불괴가 딱이지.”
어디 길가다 넘어지면 멍 든다고, 조심하라고 겨우 어르고 달래 가르쳐준 금강불괴가 효력을 발휘한다.
거인은 더욱 힘을 줬으나, 단단한 바위를 움켜쥔 듯 꿈쩍하지 않았다.
오른손에 힘을 주다 보니 반대 손에 잡아두었던 원숭이 인간에게 소홀했던 모양.
“히요오오!”
원숭이가 인간으로 변신하며 덩치가 작아진 그 잠깐의 빈틈으로 빠져나왔다.
“소승은 지금 화를 참을 길이 없소!”
거인의 주먹 위에 훌쩍 뛰어 선 명진이 거인의 팔을 타고 달렸다.
후우우우웅.
기다란 창이 거추장스럽지만, 이 정도 길이는 되어야 놈의 두개골을 뚫어내지 않을까?
[노옴!]인간을 양손에 잡고 있다 생각했더니 외려 그것이 족쇄가 되었다.
쐐애애액.
한 손에 쥐고 있던 인간을 바닥에 패대기쳐버리곤 자유로워진 손으로 스님을 잡으려 했다.
놈들이 L등급 수준의 각성자였다면 진즉에 모두 피떡이 되어 납작한 쥐포로 만들었겠건만, G등급이 되며 신의 격을 갖춘 이후라 전투가 성가시게 흘렀다.
놈들은 피조물의 탈을 벗어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까.
개미는 죽이기 쉬워도 재빠른 파리는 잡기 힘든 것과 같다. 더군다나 이놈들은 독침 하나씩은 숨기고 있는 벌 수준은 되는지라, 거인도 마냥 방심할 수는 없다.
‘어디냐?’
급소만 보호하면 된다.
대머리 중이 노릴 부위는 어차피 많지 않다.
예상과 다르지 않게 저 기다란 꼬챙이를 꽂으려 점프했다.
미리 예상하고 휘두른 손바닥에 대머리가 점프한 상태에서 걸려들었다.
쫘아아악.
한 대 맞아 저만치 허공으로 날아가는 녀석을, 와이번이 기다란 발톱으로 낚아챘다.
“으으, 내 움직임이 읽히다니…….”
“아니, 스님. 너무 원 패턴이잖아요.”
“음, 놈의 지능이 상당한 것 같소.”
“아니, 그 정도는 고블린만 돼도 알겠는데…….”
“내가 너무 얕잡아 봤소.”
“아니, 어딜 봐도 얕잡아 볼 데가 없는데…….”
“시주, 아니 소리 좀 그만하고 올려주시오.”
와이번으로 변해있던 동수가 명진을 나무라며 발을 툭 차올려 등에 태워 주었다.
“이모 괜찮나?”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작고 둥근 분화구가 만들어져 있었다.
얼마나 세게 패대기쳤으면 저 정도로 땅이 파인단 말인가.
“이눔자슥!”
다행히 먼지구름 사이를 뚫고 나타난 이숙자가 거인을 향해 달려갔다.
“이 우라질놈의 자슥. 애들 그만 안 괴롭히냐!”
그새 발바닥에 불붙이고 있는 장순필을 위협하던 거인이, 오싹한 기분에 질주해오는 이숙자를 보았다.
장순필처럼 불덩이도 아니고, 명진처럼 긴 창도 아니다.
그녀의 손에는 분홍빛 고무장갑과 그것에 휩싸인 김치가 이파리를 나풀대며 고춧가루를 흩날리고 있었다.
“너 거 가만있어. 이눔 자슥.”
그녀는 허공을 달렸다.
거인이 얼마나 크든, 허공을 밟고 오르는 그녀에겐 의미 없는 키였다.
거인의 머리 위를 선회하는 와이번은 둘이었는데, 그 위에 탄 사람들의 반응이 상반되었다.
“김치는 왜…….”
명진과 동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김치로 싸대기라도 때리려는 것일까.
허공답보는 더없이 미려하고 깔끔하다.
명진이 눈을 반짝이며 배우고 싶을 정도로.
왜 진즉 저 스킬을 배우지 아니했을까?
수호가 구천 행성을 싹 긁다시피 해서 가져온 무림 서적이 수천 권인데, 그중 허공답보 스킬북 하나 없었을까?
‘안일하구나, 명진아.’
저것이야말로 자신에게 필요한 무공이 아닌가?
악귀가 되어서라도 부처님의 뜻을 따르고자 원숭이로 변했다.
창을 다루는 데 있어 긴 발가락을 가진 발은 손과 다를 바 없었고, 긴 꼬리 또한 도움이 되었다.
변신을 통해 향상되는 신체 능력 또한 무한 자신감을 주었지만, 늘 아쉬웠던 것이 바로 서민수나 동수가 가진 날개였다.
‘저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배우겠다.’
허공답보.
명진이 다짐하며 스승이 되어줄지도 모를 당진철을 보았다.
비룡의 등에 탄 그는 연신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하고 있었다.
“그렇지! 필살기 하면 김치지!”
“…….”
저게 무슨 말일까.
묻지도 않았는데 대꾸는 저 아래에서 들려왔다.
“히야압.”
허공을 격해 날듯이 뛰어오른 이숙자가 김치를 든 채로 스매싱을 날렸다.
퍼억.
김치는 아주 작았고, 거인의 덩치는 어마어마했다. 볼에 묻은 김치 조각을 손가락으로 슥 닦으며, 거인이 허공에 떠 있는 이숙자를 보았다.
[무슨 장난인지 모르겠군.]“니, 김치 모르나?”
[…….]“내 여 새로 담은 김치가 2천 포기여.”
이숙자가 자랑스럽게 반지를 내밀었다.
그녀의 아공간엔 복지부 이모들의 도움으로 급하게 담은 김치가 한가득이다.
그녀의 자랑스런 선언과는 다르게, 거인은 이게 무슨 장난인가 싶었다.
[더는 불쾌해서 못 봐주겠군.]거인이 이제 이 날파리 같은 녀석들과의 싸움을 끝내야 함을 각오했다.
‘거인의 함성’을 다시 한번 써도 될 만큼 시간이 흐른 탓이다.
자신감이 가득 차오른 거인의 눈빛과는 상반되게 이숙자의 눈망울은 측은해져만 갔다.
“썩어 문드러질 자슥.”
[…….]거인은 순간 간지러운 느낌에 볼을 다시 긁었다.
[……!]볼이 움푹 파였다.
손가락엔 피가 묻어난다.
그제야 심상찮음을 느끼고 이숙자를 쥐려 했으나, 그녀는 요리조리 피하며 김치를 꺼내 여기저기 던지기 시작했다.
조준하고 던질 것도 없다.
거인의 커다란 몸은 온통 표적지가 되어줄 테니까.
애초에 급소를 노리고 던질 필요도 없다.
퍼퍽.
김치에 맞은 거인의 몸이 검게 물들며 썩어가기 시작했다.
[크아아, 아아아!]몸부림치는 거인을 보며 명진이 입을 딱 벌렸다.
“그러취!”
환호하는 당진철을 보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보, 보살님의 능력이 뭐길래 저러오?”
“후후, 우리 어머니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얻으셨지. 미래 독왕의 별호에 아주 어울리는 능력이지.”
“독, 독이요?”
“아니.”
본디 조화마법이라는 것은 바라고 바란 능력의 발현으로 이어진다. 바람을 다루고자 한 자신에겐 바람의 힘이.
이숙자가 바란 건 다른 게 아니다.
“그럼……?”
“발효다.”
“…….”
실시간으로 부패중인 거인을 보며 명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태백산
모든 것이 멈춰있다.
놀라 도망치던 노루도, 나무를 오르던 다람쥐도, 심지어 퍼드득 날아가던 새도…….
물리적 법칙 따위는 무시한 상태로 마치 사진처럼 모든 것이 멈춰져 있다.
츠츠츳.
유일하게 움직이는 건 빛 덩어리뿐.
그 빛의 중앙에 희끗한 사람의 형상이 보인다.
두둥, 츠츠츳.
크기를 줄였다 늘렸다 하는 빛 덩어리가 마치 박동하는 심장을 닮아 있었다.
모든 게 멈춰진 시간 속에 빛 덩어리만 홀로 박동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후드드득.
새가 날아갔고, 노루가 뛰었다.
다람쥐도 나무 틈으로 숨었고, 빛이 사라졌다.
철퍽.
빛에 휩싸였던 인영이 웅덩이에 떨어지며 물을 튀겼다.
“아오.”
웅덩이는 얕다.
겨우 발목과 엉덩이만 젖을 정도.
구부정하게 주저앉은 그 자세 그대로 머리를 털었다.
“하, 이건 또 뭐냐.”
수호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상태창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