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79)
380화 종족 드래곤 (2)
미드얼 행성에서 가장 높은 산.
올림푸스에 드래곤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후우우웅, 후우우우웅.
올림푸스를 선회하던 드래곤들이 저마다 자리를 찾아 봉우리에 앉았다.
미드얼의 성세가 전성기를 달릴 때엔 일족 회의 때마다 이 일대가 드래곤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지금은 수백 개의 뾰족 솟은 봉우리 군데군데가 비어 주인이 없었다.
드래곤 로드는 지금 막 도착한 레드 드래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라그낙.] [로드시여!] [오크 대왕이 없다지?] [그렇습니다.]라그낙은 날개를 펄럭이며 균형 잡고 봉우리에 몸을 제대로 고정하고는 고개를 조아렸다.
[잿빛 부족의 대주술사가 오크 부족을 아우르고 있습니다.]대주술사는 당대 최고의 주술사만이 가지는 칭호.
오크 대왕이 없는 지금, 오크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1인자라 칭할 만했다.
[몇 해 전부터 인간들을 사육해 왔사온데, 그중 하나가 드디어 게이트를 만들어 냈습니다.] [으음. 그럴 리가 없다.]좌표인간 따위가 미드얼 행성과 지구를 잇는 게이트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것은 오직 아루카의 권능이자, 신의 영역.
[인간이 수단이었으나 그것은 아마 인간들의 신 때문이겠지.]열쇠가 없는데 문이 열릴 리가 없다.
인간들의 신이 나타난 것과 인과가 없진 않을 터.
[로드시여. 무엇을 경계하시나이까?]라그낙의 물음에 드래곤 로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후우우웅.
올림푸스의 가장 높은 꼭대기를 밟고 있던 칠흑처럼 검은 드래곤이 활공했다.
레드 드래곤 라그낙을 향해 곧장 달려든 블랙 드래곤이 꼬리를 휘둘러 라그낙의 대가리를 날려버렸다.
콰직!
블랙 드래곤의 덩치가 두 배는 크다.
그 한 방에 나가떨어진 라그낙이 산둥성이에 추락하는데, 같이 뛰어내린 블랙 드래곤의 발이 레드 드래곤의 모가지를 밟아 버렸다.
쿠직!
블랙 드래곤의 아가리가 바닥에 처박힌 레드 드래곤을 향했다.
“쿠어어어어어!”
그 서슬퍼른 고함과 함께 침이 튀어 레드 드래곤의 머리를 적셨다.
[로, 로드시여.]하나 남은 블랙 일족.
신룡대전을 겪은 유일한 드래곤.
남은 드래곤들의 수좌.
[네놈이 감히 신들에 대해 아느냐?] […….]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놈.]점점 에너지를 잃어가는 망해 가는 행성에 깔고 앉아 오크들에게 신으로 추앙받으니, 온 세상을 발아래 둔 듯 행세하고 있다.
[…….]라그낙은 로드의 분노에 숨소리조차 죽이며 그저 가만히 있었다. 길고 긴 세월 동안 지금처럼 분노한 로드를 본적이 없다.
[기회 같더냐?]지구로 향하는 게이트가 열리고 기회를 잡은 듯싶었겠지.
[교묘한 함정에 빠졌구나, 라그낙이여.]게이트는 인간 따위로 열 수 없다.
같은 연결고리에 있는 신계, 지구, 아루카, 구천이라면 그것이 가능하겠지.
그것들은 본디부터 연결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미드얼은 다르다.
연결고리가 끊겨 홀로 존재하는 미드얼은 수명을 가져버린 행성.
종말을 기다리는 외톨이.
그 연결은 저쪽에서 ‘허락’하거나 최소한 ‘용인’해줘야 가능한 것이다.
[경계한다 하였느냐?]“크르르르르.”
의념을 전하면서도 블랙 드래곤의 입술은 동시에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신룡대전에서 그놈의 농간에 얼마나 큰 해를 입었는지 네놈은 모른다.]신의 농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딱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신계와 연결된 게이트는 달콤한 꿈이었다.
미드얼 행성의 드래곤과 거인들이 모든 전력을 쏟아부었는데, 그것이 한순간 없어질 줄은 몰랐다.
신은 제 목숨을 던져 게이트를 닫아버렸다.
[네놈은 신들이 얼마나 간악한지 몰라서 그렇다.]신계의 신은 죽지 않는다.
그 죽음은 구천이 받아주고, 신은 그저 새로이 시작할 뿐이다.
하지만 미드얼은 다르다.
홀로 존재하는 행성에 두 개의 달이 있었으나, 그것은 아루카도 구천도 아니었다.
신의 죽음을 받아내 줄 구천도.
행성의 연결을 맡아 줄 아루카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죽은 드래곤과 거인들의 목숨은 그것으로 끝이었고, 간신히 홀로 살아남은 블랙 드래곤은 그렇게 로드가 되었다.
[여기 모인 종족의 존망마저 위태로워진 지경인데, 경계함이 마땅하지 않더냐?] [……실수했습니다.]겨우 쥐어짜낸 라그낙의 의념에 블랙 드래곤이 발톱을 넣고 날아올랐다.
처박혔던 레드 드래곤 라그낙은 겨우 몸을 추슬렀으나 힐끗 눈치 보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라그낙도 오크들 앞에 가면 신이건만.
로드 앞에서는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리도 모질게 대하다니.’
라그낙은 모멸감과 분노에 치를 떨었지만 겉으로 표출할 수는 없었다.
드래곤 로드는 오래 산 것만큼이나 포악하고 성질 더럽기로 소문난 블랙 일족이니까.
후우우우우웅.
블랙 드래곤은 올림푸스 주위를 한번 선회하고는 가장 높은 봉우리에 다시 착지했다.
[내가 동면에 든 이유를 아느냐?] [기회를 기다리기 위함이 아닙니까?]그리고 그때가 되어 이렇게 눈을 뜬 것이 아닌가?
[아니다.]드래곤 로드는 일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처음으로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 터전을 되살릴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서다.]방법이 없다.
행성은 메마르고 황폐화되어 죽어가고 있었다.
다시금 신계를 넘볼 정도의 전력도 없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전에도 되지 않았는데, 겨우 72개체가 남은 드래곤족이 무엇을 어찌 하겠는가?
신계에 발을 들인들, 신수들과 전쟁 중에 하나둘 날개가 꺾일 것이다.
그 빌어먹을 인간신 외에도 야만신과 요정왕이 있으니까.
그놈들도 드래곤에게는 원수나 다름없다.
[나는 이 행성을 살릴 수만 있다면 비참하게 고개를 숙일 수도 있다.]신계가 다시 미드얼을 받아준다면.
그렇게 해서 메말라가던 행성의 조화력이 다시 차오른다면 어떤 수모도 감수할 수 있었다.
구걸이라 해도 좋았다.
하지만 구걸을 받아줄 대상이 없다.
창조신은 오래 전부터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래, 역사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단 한 번.
미드얼의 행성의 추방과 그것을 대신하기 위한 지구의 창조가 마지막 행보였다.
그 뒤로 지구는 두 번의 문명을 겪었다.
야만신을 낳은 지구6,
인간신을 낳은 지구7.
신계엔 태초부터 존재해온 요정왕 외에 두 신이 전부다.
그 이전의 모든 신들은 타락했거나, 격하당했다.
진정 신으로 불릴 이는 단둘.
인간신과 야만신.
그중 하나가 연결고리가 되어 미드얼 행성에 다시 유혹의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전쟁은 신중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락샤샤가 죽었다.] [어허, 어찌.] [저런.] [그것이 정말입니까?]같은 레드 일족인 라그낙의 처박혀 있던 고개가 홱 들렸다.
[누구에게…….] [인간신에게 당했다.] […….]신룡대전의 발단을 제공했던 놈과는 다른 놈이다. 그놈은 분명 죽음으로써 게이트를 닫아버렸으니까.
허나 새롭게 시작해 세월을 보냈다고 한들, 그 베이스가 되는 놈은 똑같다.
어떻게 성장했을지 모르지만 간악한 그놈의 본성이야 어딜 가겠는가?
그놈은 분명 미드얼 행성의 멸망을 바라는 것이 틀림없다.
[당장…….]라그낙은 가까스로 의념을 차단했다.
당장 가서 복수하기에는 그 인간신에 대한 로드의 경계가 상당하다.
이것은 마치…….
겁을 집어먹은 것 같지 않은가?
‘미드얼 행성의 지배자,. 로드께서 어찌…….’
존경하고 두려워마지않던 저 포악한 블랙 드래곤이 겁을 먹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책임감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 겨우 명맥만 남은 종족이 몰살될지도 모른다는 무거운 책임감.
신중하기로는 어디 가서 지지않는 블루 일족의 룬페페가 동요하는 드래곤들 사이에서 목소리를 냈다.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 주저하지 마시옵소서.] […….]블랙 드래곤의 사나운 눈길이 자신을 향했으나 룬페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블랙 드래곤이 사납게 노려보기만 하는 건 그의 속마음이 들켜서다.
[무엇이 되었든 목숨 걸고 따르겠나이다.]이미 일은 벌어졌다.
지구로 향하는 게이트가 열렸고, 그것이 함정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
오크들은 이미 대대적으로 행성 정벌에 나섰고, 인간신인지 뭔지 하는 그놈도 나타나 버린 모양이다.
락샤샤는 이미 그에게 죽음을 당했고, 놈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드래곤들에겐 큰 위기인 것이 틀림없다.
이대로 모여 의논만 해 봐야 위기는 이미 코앞까지 다가왔고, 이 위기를 넘긴다 한들 행성 멸망을 막을 수는 없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이 위기를 기회삼아 행성 부흥을 꿈꾸는 것이다.
[모두가 느낄 것이다.]드래곤 로드는 급히 일족을 모두 소집한 연유를 끄집어냈다.
[행성의 조화력이 차오르고 있다.]아주 느린 변화지만 감소에서 증가로 돌아섰다.
마이너스와 플러스는 차이가 크다.
적어도 이 자리에 모인 드래곤 중에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할 이는 없다.
[누구 영문을 아는 이가 있느냐?] [게이트의 생성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지구의 조화력이 넘어오는 거라면 이치가 맞습니다.] [하지만 게이트는 벌써 수일 전에 생겼는데 이제 와서?] [조화력은 얼마 전에 차올랐다.]지금도 서서히 증가 중이다.
모인 드래곤 중에 그 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밝혀내야 한다. 그것이 이 행성의 미래이자 종족의 부흥을 이끄는 길이 될 것이다.]미드얼 행성의 독립 이후 단 한 번도 스스로 차오른 적 없던 조화력이 증가하고 있다.
그 이유를 밝혀내야 한다.
드래곤 로드는 문득 드래곤들을 둘러보다가 한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카르케.] [예, 로드.] [네 영역이 올림푸스와 가장 멀지 않더냐?] [그렇습니다.]가장 멀리 있는 녀석도 왔다.
하지만 둘러봐도 69마리뿐이다.
72개체 중 락샤샤가 죽었으니 71개체가 모여야 하거늘.
[누가 오지 않았느냐?] [로메르가 보이지 않나이다.]갈색 일족의 마지막 남은 녀석이다.
땅굴을 파고 레어 꾸미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집돌이 자식인데…….
[감히 일족의 부름에……. 나머지 한 녀석은 누구냐?] […….]로드의 질타에 드래곤들이 고개를 돌려보며 영문을 몰라했다.
성질 포악한 블랙 드래곤은 분노하려다가 아차 싶었다.
‘나구나.’
나 빼고 세었구나.
영문을 몰라하는 드래곤들을 보며 근엄하게 자신의 산수 실수를 포장했다.
[락샤샤의 죽음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구나.] [슬퍼 마십시오. 로드시여.]그때 한 줄기 마력의 빛이 날아와 로드 앞에서 터졌다.
파팟.
블랙 드래곤은 눈을 감았다.
아주 짧은 영상.
갈색 드래곤 로메르의 시점을 담은 영상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제 레어인 듯싶은데, 난데없이 쳐들어온 하얀 용이 다짜고짜 싸움을 걸어왔다.
‘신수가 왜?’
정체는 자세히 모른다.
하지만 저렇게 생긴 용은 신계에 많다.
백화룡이라 불러야 할까? 빙염룡이라 불러야 할까?
사방을 얼리고, 불을 뿜기도 했다.
싸움은 길지 않았고, 갈색 드래곤의 시야가 암전되며 영상이 끝났다.
“크르르르, 쿠오오오오오!”
블랙 드래곤이 육성으로 포효했다.
그 드래곤 피어에 영문도 모른 채 모든 드래곤들이 놀라 날개를 퍼득거리면서도 기다렸다.
[로메르가 죽었다.]그것도 용에게 죽었다.
[제가 가 보겠습니다.]라그낙이 나섰다.
성급했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인 듯 적극적이었다.
로드는 고개를 저었다. 비록 로메르가 어린 드래곤이긴 하나, 그가 당했는데 라그낙 혼자만 보낼 수는 없다.
[룬페페와 함께 가라.] [네, 로드.]레드 드래곤과 블루 드래곤이 사이좋게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