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93)
394화 진격의 거인 (1)
쐐애애액.
수호의 신형이 무서운 속도로 하늘을 날았다.
지구로 통하는 게이트가 가까워질수록 오크들의 수가 많아졌다.
슈우우욱.
하늘을 날아가는 수호의 모습을 보고, 오크들이 급히 가던 길을 멈추고 올려다봤다.
미드얼 행성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 작은 새거나 드래곤이거나 둘 중 하나다.
[저건 뭐지?] [거인인가?] [거인치곤 작은데.] [소거인 정도 되겠군.]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거인족은 크든 작든 날지 못한다.]수군거리는 오크들을 쓱 훑어보던 수호의 시선이 붉은 포탈에 닿았다.
그곳을 중심으로 사방팔방에서 오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많기도 하네.”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바닥에 떨어진 사탕에 꼬이는 개미 떼가 떠올랐다.
“늬들이 무슨 죄냐.”
오크들도 살자고 하는 짓 아닌가?
미드얼 행성은 침몰하는 배다.
생명에너지가 희박해, 황무지에 핀 잡풀도 귀한 행성이다.
지구가 탐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미드얼 행성은 조화력의 감소로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그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신계에서 찾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게이트를 통해 지구를 발판삼아 신계로 나아가려는 오크들의 행동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쓸데없지.”
수호는 괜히 머리를 흔들었다.
쓸데없는 측은지심이 든 것은, 상상해버려서다.
블랙 드래곤을 처지할까 말까 고민했을 때 끝내 녀석을 놔둔 것은, 이러한 번뇌를 짊어지기 싫어서다.
수호가 신경 쓰고 지키고자 하는 존재는 오로지 ‘인간’, 그리고 그들의 터전인 ‘지구’ 하나면 족하다.
오크족이나 그들의 행성인 미드얼까지 책임지고 괴로워하고 싶지 않았다.
“불쌍한 건 불쌍한 거고.”
저들이 나름의 절박한 사정을 가지고 지구로 향하는 것과는 별개로,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저 침략자일 뿐이다.
내 것을 탐하는 이와 친구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이 내 목숨, 내 땅이라면 마땅히 대화보다는 칼을 들어야 한다.
‘알아서 침략이야 멈추겠지만.’
잔뜩 겁먹은 블랙 드래곤에게 오크들의 철수를 이야기해 뒀다.
그렇지만 여전히 불나방처럼 포탈을 향해 뛰어드는 오크들의 지구 러시는 현재진행형이다.
‘막아버려?’
수호가 마음먹으면 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을까?
포탈 앞에 땅을 일으켜 오크들의 접근을 막아버릴지, 나무를 자라게 해 돔을 만들어버릴지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지구로 먼저 건너가 있는 녀석들도 수십만이다.
괜히 씨몰살할 게 아니면, 퇴로 정도는 열어 둬야 했다.
쐐애액.
수호의 신형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포탈 앞에 착지했다.
쿠우웅.
흙먼지를 잔뜩 일으켰으나, 그의 주변을 맴돌던 구름의 물기가 금새 먼지를 잠재웠다.
[개죽음 말고 돌아가라.]수호의 입에서 유창한 오크 말이 튀어나왔다.
그때 가까이 있던 오크 부족장 하나가 나섰다. 다른 오크 전사들에 비해 반배는 더 우람한 덩치에 탄탄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흥, 죽음 따위를 두려워하는 오크 전사는 없다.]피잉.
수호의 손짓에 구름덩이에서 물 몇 방울이 떨어져 나갔다.
아주 미약한 바람소리와 함께 날아간 그것은 오크 부족장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어 버렸다.
쿠웅.
너무나 갑작스럽고, 황당한 죽음이었다.
[목숨을 내던질 성전도, 찬란한 미래도 저 너머엔 없다.]수호가 붉은 포탈을 가리켰다.
[오지 마라.]내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지구의 관리자이자, 인간들의 신이 말이다.
수호가 가볍게 손짓했다.
파아앙.
수호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회오리 바람이 사방을 휩쓸었다.
쏴아아아아아!
세찬 바람이 돌개치며 오크들을 뒤로 밀어냈다.
갑작스러운 바람에 오크들이 수십 미터를 날아가 고꾸라졌다.
운 없는 몇은 좋지 못한 자세로 지면과 충돌해 그대로 절명하기도 했다.
콰콰콰!
바람은 흙먼지를 빨아들이며 더 거세졌고, 더 거칠어졌다. 눈뜨고 견디기 힘든 바람에 오크들이 사력을 다해 버텨봤으나 점점 밀려났다.
[으으.]거칠게 세상을 집어삼킬 듯 불어재끼던 바람이 잦아들었을 땐, 이미 포탈에서 수 킬로미터 밀려난 뒤였다.
푸스스스.
모래먼지가 비처럼 내리는 뿌연 시야 사이로, 붉은 포탈을 중심으로 밀려나 이리저리 뒤엉킨 오크들이 보였다.
붉은 포탈 주변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기이하게 생긴 두 개의 뿔을 가진 소거인도 사라졌다.
*호주에서 검은 포탈을 마무리 짓고 서울로 복귀한 김미소는 한동수의 보고를 받았다.
[우물에 검은 슬라임이 들어가 있네요. 바로 처리했고, 영상 보냈어요.]서민수가 호주로 향했을 때 러시아로 간 한동수였다.
다행히 우물 속 검은 것의 정체는 포탈이나 블랙맨이 아니라 슬라임 덩어리.
보내온 영상을 봐도 블랙맨과는 괴리가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파리로 가주세요. 정확한 좌표는 보내놨어요.”
[옛썰.]블랙맨, 블랙 포탈에 대한 조금의 단서나 의심이 있으면 일단 가서 확인해봐야 한다.
한동수와 서민수가 그 첨병 역할을 맡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서민수는 김미소를 따라 서울로 복귀하지 않고 곧장 미국으로 떠났다.
그곳에 또 다른 의심 정황이 있어서다.
블랙 포탈에 관련된 모니터링 팀과는 별도로, 기존의 컨트롤 타워는 일본의 오크족 토벌에 온힘을 쏟고 있었다.
“문제없죠?”
“네, 가끔 거인족들이 출몰하곤 있는데, 잘 대처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거인족의 등장에 당황한 것도 처음뿐이다.
녀석들은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빨랐으나, G등급 용병 서넛만 모여도 충분히 피해 입지 않고 타격을 줄 정도가 되었다.
물론 가장 강력한 딜링을 구사하는 이는 다름아닌 이숙자.
신의 사제로 임명되며 개화한 그녀의 능력 ‘발효’가 그 무엇보다 강력한 생화학 병기가 되기에 거인들에겐 특효약이다.
“하따, 애들 걱정돼서 안 되겠구마잉. 내 가먼 안 되겠나?”
이숙자와 명진, 제임스가 서울에 머무르는 건 블랙맨이 등장할 때 즉시 출동해 처리하기 위해서다.
여전히 전장에 남아있는 건우와 취아가 걱정되는 모양이지만, 어리다고 걱정하기엔 둘의 성취가 이미 아득히 높다.
지구의 등급 측정으로 이미 L등급이고, 건우와 취아 모두 수련한 무공도 상당한 수준이다.
“이모, 걱정 마세요. 당진철 씨가 있잖아요.”
“하이고, 그 입만 싼 놈이 무슨 힘이 있다고.”
사천당문 37대 제자 당진철도 그저 이숙자의 눈엔 입만 싼 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하, 이모, 당진철 씨도 현경 고수예요.”
무림인들로 랭킹을 매기면 한손에 꼽히는 이가 당진철이다.
물론 무림인들로만 랭킹을 매긴다면 말이다.
G등급 용병들이 끼는 순간, 상위권은 모조리 신의 임명을 받은 그들이 차지할 테니까.
이숙자 또한 신의 사제로 임명되며 당진철은 한손으로 제압할 정도로 격차가 벌어진 상태다.
전지적 할머니 시점으로 보기엔 당진철이나 건우, 취아나 매한가지로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았다.
특히 건우는 신의 사자로 G등급인데도 할머니 걱정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모, 거기보다 여기가 더 급해요.”
당장이야 사무실 소파에 앉아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이숙자, 명진, 제임스는 5분대기조다.
서민수와 한동수가 현장을 살피다가 블랙 포탈이나 블랙맨을 발견하면 즉시 출동해 처리해야 한다.
“하이고, 언제까지 이래야 되노?”
“음, 사장님이 돌아오실 때까지요?”
“내 물이라도 한 사발 떠놓고 빌어야 겠네.”
이숙자는 샤머니즘 감수성을 발휘하며 사무실 한쪽에 물 사발을 떠 놓더니, 진짜 눈감고 기도했다.
속으로 뭘 외치는지는 모르겠지만 김미소는 상관하지 않았다.
‘빨리 오세요.’
수호의 귀환은 김미소도 바라마지 않는 일이니까.
“부사장님.”
“왜요?”
비서실장 이소진이 자뭇 심각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연방 의장님입니다.”
한반도 연방의장이면 현 대한민국 대통령 류담이다.
“흐음. 또 무슨 일이려나.”
수호 길드가 오크 사냥에 집중하고 있다면, 대한민국은 궤멸되어버린 일본 정부를 대신해 일본 시민들을 구출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나고야를 중심으로 방어전선을 구축하고 생존자들을 구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하였다.
오사카 중심으로 터져버린 오크웨이브를 수호 길드가 북쪽에서 누르고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동서로 퍼져나가는 세력이 많았다.
동쪽으로 진군한 오크 전사들과 나고야를 지키기 위한 군 병력 간에 전선이 형성되었다고 보고받긴 했는데…….
“전화 바꿨습니다.”
[도와주게나.]“갑자기요?”
꽤 급박한 듯 인사치레도 생략한 대통령이 상황을 간략하게 전달했다.
[거인의 진격을 막을 수가 없네. 나고야가 위험해.]나고야에 수백만의 시민들이 있다.
궤멸되어버린 도쿄와 인근 도시에서 생존자들이 몰려들고 있으니, 그 수는 늘었으면 늘었지 더 줄지 않을 터다.
[거인에 대항할 수단이 없네.]“…….”
김미소는 조용히 머리를 굴렸다.
‘누굴 또 빼나.’
지금 일본에서 사냥중인 예비대 성격의 구난팀은 데미지 딜링이 약하다.
구난팀의 G등급은 진세연과 박건우.
둘에게 거인 처치를 의지하기엔 위험부담이 컸다.
어차피 구난팀이 활용중인 비룡의 기동력이 필요하니, 거기에 G급 용병 둘 정도를 더 합쳐서…….
“내 가따 오꾸마.”
“네?”
“거 일본에 아그들 날아가는 거보다 여서 포탈 타고 댕기오는 게 더 안 빠르나.”
“아!”
나고야에 이동포탈이 있다.
이동포탈은 포탈허브에 연결되어 있고 말이다. 일본 내에서 이동보다 여기서 이동이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뭐, 급한 일 있으먼 거서 출발하나 여서 출발하나 거기서 거기 아이가.”
지금 탐색 나가있는 서민수와 한동수를 지원 가기 위한 5분대기조다.
이동포탈 근처에만 있다면 어디서 대기하든 상관없다.
“좋습니다.”
김미소가 허락하자 이숙자가 씩 웃었다.
이제 그녀의 외모는 90 넘은 할머니라고 하기엔 너무 큰 괴리가 느껴졌다.
무공을 배우고 레벨을 올릴 때만 하더라도 점점 젊어지는 정도였는데, 신의 사자가 되고부터는 반로환동 그 자체였다.
꾸미지 않아도 30대 초반, 혹은 20대 후반으로까지 보일 정도의 외형이었다.
“양코 양반, 퍼뜩 가보자.”
“옛썰, 레이디.”
제임스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고, 명진이 뒤따랐다.
포탈허브까지만 가면 나고야는 순식간이다.
*“칙쇼!”
나고야 방위사령관 타케시는 절망했다.
입에서 나오는 건 욕뿐이다.
저 빌어먹게도 커다란 괴물은 무려 포탄을 견뎌내는 피부를 가졌다.
미사일이라고 다를까…….
지금 나고야 방위사령부에서 가진 화력무기로는 도무지 거인의 진군을 멈출수가 없었다.
괴이하게 큰 덩치와 인간과 그리 다르지 않은 생김새가 더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나체의 거인이 이 나고야 방벽에 다가오는 순간 모든 게 끝이다.
성벽 밖에 빼곡히 진을 치고 있는 짐승같은 오크 전사들이, 방벽이 무너지는 순간 득달같이 달려들어 인간들을 사냥하고 말 것이다.
투두두두, 타당!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기관총 소리와 총성만이 방벽 위를 시끄럽게 울렸다.
영악한 오크 녀석들은 딱 사거리 밖에서 진을 치고 대기중이었다.
우우우웅, 구우우우웅.
묘하게 떨리는 방벽에 사령관 휘화 병사들은 떨고 있었다.
“젠장, 다 죽을 거야.”
“흑흑, 어머니.”
절망과 패배감이 방벽 위에서 수비중인 군대를 퍼져나가고 있을 때, 누군가 소리쳤다.
“왔다!”
망원경도 필요없다.
지평선 너머에 우뚝 솟은 머리부터 시작해 거인의 거대한 덩치가 나고야를 향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