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94)
395화 진격의 거인 (2)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다시 돌이켜 보면 일본 정부의 선택은 조급했고 안일했으며 섣불렀다.
오사카에 미드얼 행성 게이트가 열리며 행성 단위의 침공군에 도시가 점령당하자 두려움에 떨었을지도 모른다.
조속한 대책이 필요했고, 다급한 정부는 가장 강력한 수단을 써버렸다.
누군가는 긴급이라 재촉했겠지만, 그것은 속단이었다.
이미 점령당해버린 오사카 시민을 배제한 공격 명령.
오사카 인근 도시들의 방위사령부와 육군 포병부대, 가장 강력한 해군함대에서 보유한 모든 미사일들이 일제히 오사카를 타격점으로 해 쏘아졌다.
그리고 그것이 오크 대주술사 은낙의 주술에 의해 쏘아진 곳으로 그대로 유턴.
모든 것이 박살나 버렸다.
오사카 인근 도시들도, 도쿄 인근의 가장 강력한 육군 본부도, 바다에 떠있던 수많은 해군 함정들도…….
그리고 되돌아온 핵탄두 두 발이 일으킨 폭발과 해일로 인해, 동부 해안은 초토화되었다.
방사능 낙진에 대한 걱정을 할 겨를도 주체도 없었다.
일본 정부의 비밀 벙커는 도쿄가 아닌 육군 본부 지하에 위치해 있었으니까.
되돌아온 미사일 세례에 본부가 궤멸하며 일본 정부의 수뇌부가 모조리 요절해버렸다.
지도부를 잃어버린 도쿄는 얼마 가지 않아 레드 드래곤의 난입으로 인해 잿더미로 화했다.
완전한 침몰.
일본 정부는 끝났다.
오사카 집중포화에 동참하지 않은 몇몇 도시들은 아직 건재했지만 위태로운 상태다.
다른 나라들이 지극히 당연한 수순으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자치정부를 표방하며 발전할 때도 일본은 그러하지 않았다.
대격변으로 세상이 어수선한 틈을 타 평화헌법을 개정하며 자위대가 군대로 탈바꿈했다.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중앙통치를 강화했으며, 세계 랭커 이성우를 필두로 한 각성자 전력에서도 세계적인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가장 강력한 세력이던 중국과 미국, 러시아가 그 넓은 영토가 약점이 되어 분열의 수순으로 가던 것을 생각하면 정반대의 행보였다.
고분고분한 일본인들의 특성과 ‘다시 한번 대일본제국의 비상’이라는 정부의 슬로건이 먹혔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일본은 대격변 이후 눈부신 발전을 했으나, 박수호의 등장으로 인해 모든 게 어그러졌다.
세계 랭커 이성우의 추락과 더불어 무언가 엇나간 것처럼 차원산업을 선도하던 일본이 뒤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수호 길드의 등장과 함께 격변하는 한반도를 보며, 일본은 좀 더 내실을 다졌어야 했다.
7성 던전의 등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많은 소도시들이 사라졌고, 인구과밀의 대도시는 정부만 바라봤다.
애초에 일본은 도시 각자의 자치력보다는 중앙정부의 지침을 따르는 데 더 최적화되어 있었다.
군사력과 각성자 전력.
차원산업시대에…….
아니, 차원전쟁 시대에 가장 필요한 두 전력을 정부가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대도시에 인근의 필드에서 문제가 생기면 군대가 처리했고, 도시 안에 생기는 던전은 국가에서 육성한 초능부대가 맡아 처리했다.
유일하게 민간 용병시장보다 국가에서 통제하는 각성자부대의 능력이 월등한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 망명을 결심한 회귀자 이성우가 민간용병으로서 활동하기를 포기하고 일본 정부 산하의 초능부대에 들어간 것도 그 이유다.
어쨌든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증발해버린 일본 정부를 대체할 수단은 없었으며, 미약한 힘만을 가진 도시 자치부의 관료들은 허둥지둥했다.
오사카에 미드얼 행성 게이트가 생긴 지 불과 며칠도 지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기에 나라가 망하고, 강력한 중앙정부의 보호를 받던 도시들은 부모 잃은 아이가 되었다.
“망할…….”
나고야 시장 고로가 한반도 연방에 도움을 구한 것도 별다른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쓰고 있던 우산이 사라졌는데, 일단 비를 피하기 위해서는 누구 우산이든 빌려야 할 것이 아닌가?
문제는 그 빌려 쓴 우산이 비를 막아줄진 몰라도 우박까지 막아주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진정 방법이 없겠소이까?”
고로는 앞에 앉은 별 두 개를 단 한국군을 향해 물었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보시지요.”
“으음.”
고로는 눈앞에 별 두 개짜리 사단장을 영 못 미더운 눈빛으로 보았다.
한동진 소장은 1만의 보병사단을 이끌고 이동포탈을 넘어왔다. 개인화기로 무장한 보병사단의 지원에 나고야 시장으로서는 영 마뜩찮을 수밖에 없었다.
“추가적인 지원은 없는 것이오?”
“사단병력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 성 밖에 집결한 오크가 수천을 넘소. 계속해서 쌓이다 보면 수만이 될지 어찌 아시오?”
고작 1만 명의 보병으로 지켜내기엔 밖에 결집중인 오크 대군의 규모가 심상찮다.
거기에 더해 지금 진군해오고 있는 거인의 목적지가 나고야 시티로 의심되는 상황이니,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겠소. 우리가 원하는 건 병력의 규모가 아니라 최첨단 무기요!”
일본의 공군, 육군, 해군이 동시에 궤멸했다. 무차별적으로 쏘아보낸 미사일들이 유턴하며 기지가 박살이 나서다.
살아남은 이들도 있겠지만 다시 국방력을 복구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그 주체가 되는 정부부터 사라진 상황이니까.
“일본 정부의 전철을 밟자는 말씀이십니까?”
“그…….”
고로는 대꾸할 말이 사라졌다.
아직 지구인들은 주술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은낙이 펼친 고위주술은 쉽게 해내는 것도, 다시 펼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오사카에서 보여준 것이 있기에 섣불리 나서기 두려웠다.
괜히 미사일을 쏘아보냈다가 유턴해 돌아오면 막을 수단이 없다.
“공군! 공군이라면 타격이 가능하지 않소?”
미사일의 유턴이 걱정이면 전투기를 타고 하늘에서 쏘면 되지 않나.
“어이구, 아쉽게도 작전반경이 나오지 않는군요. 대한민국은 항공모함도 보유하지 않고 있으니…….”
고로는 한동진 소장의 미온적 태도에 속으로 이를 갈았다.
‘한국에 도움을 청한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차라리 훗카이도의 지원을 받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그치들은 말도 마시오.”
고로는 치를 떨며 말을 받았다.
그나마 훗카이도는 이번 오사카 사태에서 단 한 점의 피해도 받지 않았다.
훗카이도에 기반을 둔 해군력과 공군, 육군 부대도 모두 온전하며 각성자 부대 또한 끄떡없다.
온전히 전력을 보존하고 있음에도 본토의 많은 일본인들이 곤경에 처해있는데 외면한 그들이다.
지금 그들은 삿포로 시티를 중심으로 남은 이들을 수습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수습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멸망을 비껴간 훗카이도의 세력들이 힘을 모아야 함은 모두가 알지만, 시티의 시장들과 각 주둔군의 장성들까지 모두가 그 머리에 앉으려 이전투구 중이다.
그들에게 본토의 도시들은 이미 옆집이 되어버렸다.
옆집에 불이 나든 말든…….
“한 소장! 우리 나고야 시민들이 믿을 건 오직 한반도 연방뿐이오.”
한동진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고로를 달랬다.
“덩치 큰 무기들이야 애초에 이동포탈을 이용해 수송하기 어려우니, 보병사단의 파견이 가장 최선입니다.”
나고야 방위사령부의 병력은 고작 3천.
애초에 전투를 위한 병력이 아니다.
도시 외곽을 두르는 성벽과 수십 개 성문을 보호하고 출입을 관리하기 위한 병력이다.
일본의 진정한 몬스터 대응 부대는 중앙 병력뿐이다.
나고야 경찰청의 병력까지 동원한다면 그 수가 많겠지만, 몬스터들을 상대로 그들이 활약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나고야 시장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일단 급한 불은 대한민국의 힘을 빌려 끄고, 최대한 빠르게 나고야 시민들 중에 추려 병력을 뽑아 기르는 거다.
경찰 소속의 각성자들을 주축으로 시민들 중에 각성자 전력을 뽑아 빠르게 부대에 배치시키고 있었다.
“거인이 정녕 나고야를 향해 오면 방도가 있겠소? 듣기로 수호 길드에서는 수월하게 사냥을 한다던데.”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님께서 협조 요청을 보내놨습니다.”
“으음, 연방 의장이 대통령님인 것으로 아는데…….”
고로 시장의 말에 한동진이 미소 띠며 말했다.
“하하, 한반도 연방은 말 그대로 연합국가지,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서요.”
“그렇소이까.”
고로는 애가 타면서도 더 재촉할 수 없었다.
겨우 도움의 손길을 내민 한국 정부마저 잃으면 더 이상 나고야의 미래는 없다.
“너무 걱정 마시지요.”
그때 한국군 장교가 다가와 두 사람의 회담에 끼어들었다.
“수호 길드에서 거인 제거 부대를 투입했답니다.”
그 말에 고로 시장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일단 급한 불은 끈 거나 다름없다.
시간을 벌었으니 하루라도 빨리 나고야를 중심으로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일본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
비록 외세의 힘을 빌렸지만, 고로는 일단 다른 이들보다 한발 앞서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적어도 본토 내에 아직 건재한 도시들 사이에서는 말이다.
*지이잉.
포탈을 통과한 이숙자와 명진, 제임스를 한동진 소장이 환대했다.
“어서 오십시오.”
한동진 소장이 깍듯이 인사하자 이숙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고, 장군님이네그려.”
“아, 아닙니다. 복지부장님.”
수호 길드의 대부분 간부들이 요주의 인물.
복지부장 이숙자는 이미 한반도 연방은 물론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프로필보다 더 젊어졌군.’
시간이 지날수록 회춘하는 이숙자의 얼굴이지만, 속에 든 것이 할머니라 그런지 그 사고방식이나 말투의 변화는 더디기 그지없었다.
“하이고 시상에. 내가 살아생전에 이래 높은 장군도 보고.”
“하하하, 아닙니다. 편히 대해 주십시오.”
“이잉, 그라믄 쓰나. 여는 우리 명진 스님. 여는 자임스. 미국 살다가 왔는 양키.”
“나무관세음보살.”
“마이 네임 이즈 제임스.”
명진은 그저 고개를 꾸벅 숙이며 합장했고, 제임스는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용병 출신인 그는 자신의 위치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일단 가시면서 이야기하시죠.”
“이잉, 그랍시다.”
수호 길드 용병팀은 현지 조달한 차량을 타고 나고야 서쪽 방벽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제임스는 조금 이해되지 않는 듯 물었다.
“한쿡은 왜 구지 일본을 헬프 해주는 겁니꽈?”
“한국어에 능하시군요. 저야 군인이니 그저 명령에 따를 뿐이지요.”
“흐음. 이해되지 않아효. 일본 한국 사이 나쁘다. 근데 왜 헬프?”
한동진이 그저 미소 지었다.
군인인 그로서는 해줄 말이 없었다.
나고야 시장과 대한민국 대통령 사이에 맺은 협약이 무엇인지 까발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 협약이 이뤄지려면 나고야가 온전해야 하고 말이다.
“저는 그저 명령을 받아 나고야를 지킬 뿐이지요.”
“흐음, 오케이.”
과연 솔저다운 언행이다.
제임스는 납득하고는 즉시 화제를 전환했다.
“자이언트 보여줍시다. 타겟 파악 먼저.”
“여깄습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장교가 태블릿을 전달했다.
항공 사진과 근거리 정찰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 몇 개와 정보가 연달아 떴다.
“흐음.”
제임스는 제법 진중한 얼굴로 그것을 보곤 이숙자에게 내밀었다.
“그랜마. 어때효?”
“낸들 보먼 아나.”
“자신감? 할 수 이써요?”
“아, 거 뭐 어렵다고 그카노.”
이숙자가 대충 영상 속 거인을 보곤 태블릿을 돌려줬다.
“뭐 우예 되겠지.”
발효시켜 보고 안 되면 뭐 그녀라고 뾰족한 수가 있던가?
제임스와 명진도 한가락하는 G급 용병이니 어찌 방법이야 있을 듯싶었다.
“우리끼리 힘 모아가 작살내는 기지.”
“오케이. 그레이트 플랜!”
“나무관세음보살.”
수호 길드의 심플한 전략회의에, 조수석에 타고 있던 장교가 그만 웃음을 흘렸다.
“풉.”
한동진은 그런 장교를 힐끗 보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속으로 겨우 웃음을 삼켰다.
“파견 나왔다고 군기가 영 빠졌구만.”
“죄, 죄송합니다!”
“쯧.”
작전 장교는 알까?
허술해 보이는 전략도 누가 하냐에 따라서 파괴력이 달라진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