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95)
396화 진격의 거인 (3)
“왔다!”
거인이 지평선 너머에서 머리를 들이밀 때 이숙자 일행이 성벽에 도착했다.
“하따, 크네.”
이숙자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감탄했다.
“아.”
“그랜마. 왓? 무슨 발견?”
“히야, 전에는 눈앞에 글씨도 안 뵈더만, 인자 저 멀리가 다 보이네.”
이숙자는 새삼 좋아진 자신의 시력에 감탄했다. 회춘이 좋긴 좋다.
“저번 놈하고 비슷하구만.”
“예스, 그랜마. 스몰한 놈 더 위험해. 차라리 다행쓰.”
거인족이라고 전부가 같은 덩치를 자랑하는 게 아니다.
거인족 중에서도 조금 작은 개체.
소거인이라 불리는 녀석들은 기존 거인족보다 더 위험하다.
중량과 피지컬에서 오는 파괴력은 덜하지만, 월등히 높은 민첩성과 스피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인족만 하더라도 피지컬에 비해 말도 안 되는 속도를 보여주는데, 소거인은 더 빠르니 상대하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거인이나 소거인이나 인간보다 크기는 매한가지인 데다, 소거인은 무시무시한 피지컬에 속도까지 더한 괴물이니까.
“호우, 쉣! 뽝. 오크들이 길을 비켜주고 있어.”
“하따, 고 양놈 말끝마다 욕이여.”
“오, 그랜마. 잉글리시 욕 알아?”
“빠큐 알지, 알어.”
“오! 베리 스마트. 역시 그랜마 똑똑해.”
제임스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며 다가오는 거인을 품평하는 사이, 명진은 가만히 오크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제임스의 말대로 오크들은 대열을 정비하며 거인이 지나갈 경로를 미리 예측하고 길을 터주는 모양새였다.
‘주술사.’
오크 전사들이야 그 수가 어떻든 간에 상대할 수 있다지만, 주술사는 달랐다.
신의 가호를 받는 G급 용병들이 상대적으로 주술에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것만 믿어서는 안 된다.
거인과 치열하게 상대하고 있는데 오크 주술사의 방해를 받는다고 생각해 보라.
긴박한 와중에 오크 주술사의 속박 주술이 100% 통하지 않아도 위험하다.
잠깐의 주춤거림에 거인의 손아귀에라도 잡히면 끝장이다.
G급 각성자들이 거인을 앞서는 지표는 어디까지나 스피드뿐이다.
거인은 그 덩치로 인한 압도적인 한 방이 있다.
“복지부장님.”
“예, 스님.”
“예아, 미스터 부따.”
명진이 제임스를 한번 흘겨보고는 말했다.
“소승은 거인이 더 가까이 오기 전에 먼저 오크 주술사들부터 처리해야 할 듯합니다.”
“오우, 예스 맨. 그렇취. 그 생곽을 몬해꾼.”
오크와 거인을 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저들은 한패다.
적들의 연계를 생각해야 한다.
그때 잠자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동진 소장이 끼어들었다.
“각개격파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시주.”
“으음.”
한동진은 새카맣게 몰려있는 오크들을 보며 잠깐 침묵했다.
가능했다면 거인이 오기 전에 미리 쓸어버렸을 것이다.
오크들도 무작정 나고야시티로 진격하지 않는 이유가 높은 성벽 때문이다.
몇 번의 주술 공격과 오크들의 공성 시도가 있었지만 산발적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듯, 오크들은 뒤로 물러나 진을 꾸리고 있었다.
점점 더 가세하는 오크들의 수가 많아져, 지금에 이르러서는 무려 3만을 넘어섰다.
새카맣게 몰려들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놈들이 기다리는 것이 거인의 합류인 이상, 앞으로의 미래는 뻔했다.
거인이 장벽을 허물어트리면, 대기하고 있던 오크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다.
총기에 의존도가 높은 현대 병력은 적아가 뒤섞이면 전투력이 급감한다.
적을 쏘아 죽이는 것보다 오발탄에 사상되는 아군이 더 많을 것이다.
옹기종기 밀집해 모여있는 오크들을 두고 한동진 소장이 괜히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게 아니다.
이동포탈의 이용에는 거리와 무게에 따른 혈석의 소비가 따른다.
혈석이야 꽤 많기에 상관없지만, 문제는 이동포탈의 크기.
수송 가능한 전략무기에 제한이 많았다.
수백 문의 기관총과 RPG로켓 따위의 유탄발사기 등이 성벽 위에 배치되었으나, 딱 오크들의 접근을 막아내는 정도였다.
불나방처럼 뛰어 들면 집중사격으로 쓸어버릴 수 있겠으나, 오크들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고 사정거리 밖에 진을 꾸리고 얌전히 거인을 기다리는 형국이었다.
나고야 보호 임무를 짊어지고 파견된 사령관 한동진 소장이 진지하게 물었다.
“방법이 있겠습니까?”
“선사께서 이르시길 일체유심조라 하였습니다.”
“으음.”
한동진이 명진의 말을 곱씹는데, 그는 이숙자를 향해 꾸벅 합장했다.
“소승 다녀오겠습니다.”
“예에, 스님. 조심하십시오.”
이숙자는 나이가 젊다 하여 명진을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었다. 꾸벅 마주 합장하니 명진이 신형을 성벽 아래로 훌쩍 던졌다.
“헛!”
한동진 소장이 깜짝 놀라 난간을 짚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휘리릭.
떨어져 내리는 명진의 주위로 노란 연기들이 휘감겼다. 연기는 털이 되어 붙었고, 바닥에 착지할 땐 황금 털을 가진 원숭이 하나가 있었다.
파파팟.
달린다는 표현을 쓰기엔 엄청난 속도다.
쏘아진 포탄처럼 나아간 원숭이 인간이 오크 무리가 반응하기도 전에 전선에 당도해 여기저기를 헤집었다.
“허, 맙소사.”
확실히 저 정도 무력이면 전략전술이고 뭐고 필요가 없었다.
원숭이 인간이 지나는 곳마다 오크들이 폭격이라도 맞은 듯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댓츠 쿠울! 부따 좀 하는뒈.”
명진의 활약을 보며 제임스는 자신도 활약하고 싶다는 원초적인 호승심을 느꼈다.
내 안에 내재된 이 힘을 쓰고 싶다.
그런 그들을 보며 한동진 소장은 허탈한 숨을 삼켰다.
“일체유심조라…….”
원효대사의 말이 아닌가?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확실히 개념 자체가 달랐다.
‘너무 차이가 나는군.’
보유 전력도 차이가 난다.
이끌고 온 보병부대에 각성자 전력이 있긴 했으나, 수호 길드에 비비면 초라한 수준이다.
기껏해야 S등급의 중령을 부대장으로, A~B등급의 대원들로 구성된 중대 정도다.
7성 던전의 등장 이후 고위 각성자들이 많아 졌다지만…….
사실상 민간이 아닌 군대에서 이 정도 수준의 각성자 부대를 보유한 것만 해도 엄청난 수준이다.
수호 길드의 각성자 전력이 비정상적인거다.
‘격차는…… 더 벌어지겠군.’
수호 길드의 성장 배경은 말도 되지 않는 수준의 던전 사냥 속도다.
그들은 작심한 듯 고위 각성자가 하위 각성자를 밀어주며 성장시킨다.
다른 길드가 이를 따라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소수의 인원으로 캐리 가능할 정도의 고위 각성자가 없어서다.
통상 던전 사냥의 단점은 명확하다.
제한된 입장인원과 클리어가 아니면 몰살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배수의 진.
누군가는 필드 사냥을 하면 되지 않냐고 말하지만, 필드에 나다니는 몬스터라고 해봐야 저랭크의 몬스터뿐이다.
경험치가 별 볼 일 없고, 고위 몬스터는 군주를 중심으로 뭉쳐져 있어 군대나 다름없기에 더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지금 일본에 터진 미드얼 게이트는 어쩌면…… 수호 길드 입장에서는 재앙이 아닌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있어 이 전장은 어쩌면 던전과 필드의 장점만을 합쳐놓은 완벽한 사냥터로 인식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입장 제한 없는, 고경험치를 드랍하는 몬스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사냥터.
다른 길드나 국가들이 일본에 일어난 미드얼 게이트 생성을 ‘재앙’이나 ‘천재지변’, ‘외계침공’ 등에 비유하며 토픽을 쏟아낼 때 오직 한 곳만 대응이 달랐다.
수호 길드는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사냥에 나섰고, 치열하게 사냥중이다.
수호 길드가 촉발한 각성자 등급 인플레이션은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
다른 국가나 길드에서 랭커 대접을 받는 L등급이 수호 길드에는 발에 차이는 수준이 될지도…….
한동진은 가슴이 답답해옴을 느꼈다.
한반도 연방에서 가입된 국가 중 대한민국이 가장 비중이 크지만, 위세는 수호시티 하나를 가진 수호 길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모든 주도권은 그들이 가지고 있다.
이제 그 차이는 더 벌어질 것이다.
‘잘못되었어.’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 영토를 탐내는 대신, 오크들을 말살하기 위한 각성자 부대를 파견했어야 했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때는 늦었고, 기회는 갔다.
콰쾅!
오크들의 저항도 만만찮은지 여기저기서 알 수 없는 주술이 터져 나오고 있었으나, 원숭이 인간의 재물이 될 뿐이었다.
한동진은 히어로 영화를 보는 듯한 비현실적인 광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미드얼 행성 침공이라는 재앙이 이벤트 수준으로 낮아진 결과물을 목도하고 있다.
외세 행성의 침략 전쟁이 사냥이 되었다.
“하이고, 벌써 저만치 왔네.”
“예쓰, 그랜마. 출동합니까?”
거인이 벌써 오크들이 진을 이룬 후방에 당도했다. 다리가 기니 한 걸음에 어마어마한 거리를 걷는다.
“더 가까이 오기 전에 가 보자.”
“예아!”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다가는 괜히 나고야 성만 무너진다. 싸우다 깔려죽어도 오크들이 죽는 게 낫지.
파팟!
이숙자는 난간을 밟고 뛰었다.
파파팟!
하늘에 발판이라도 있는 듯 그 높이에서 그대로 달렸다. 그녀의 허공답보에, 성벽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 한국군 할 것 없이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비행이라 부를 정도의 신기였으나 그녀는 분명 허공을 달리고 있었다.
“후아!”
슈아아, 쿠우웅!
반면 무식하게 뛰어내린 제임스는 그대로 달렸다.
쿵, 쿠웅!
명진이 사뿐히 걷는 느낌이라면 제임스는 온힘을 다해 대지를 부숴버릴 듯이 달렸다.
그리고 오크 무리에 당도했을 때 그의 신력이 발휘되었다.
파지지직!
제임스의 주먹에서 뻗어나간 전격이 주변을 휩쓸며 오크들을 쓸어버렸다.
신의 기사가 아닌 사제로 임명된 제임스.
기사가 야생의 능력을 받아 명진처럼 야수로 변신할 수 있다면, 사제는 조화력에 눈 뜬다.
최수영처럼 바람을 다루거나 박준호처럼 물을 다루듯이 말이다.
꾸르르릉!
하늘이 아닌 대지에서 터진 천둥소리가 주변을 떨어 울렸다.
“이럴 수가…….”
단 세 명.
그 셋의 출격으로 수만의 오크 병력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와, 엄청난데.”
“히어로들이 따로 없군.”
“한국은 진정 부럽군. 저런 히어로들이 있다니.”
“우리 일본도 있었지.”
“쳇, 그도 귀화하기 전엔 한국인이었어. 지금은 그저 도망자겠지만.”
일본인들은 G급 각성자 셋의 활약에 저마다 떠들어댔다.
한국군이 성벽 위에 주둔하고 고위 각성자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나고야가 구원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이 어이, 긴장 늦추지 마.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그래, 저 거인을 막지 못하면 모든 게 끝장이야.”
그때 거인과 제임스가 조우했다.
어차피 피지컬 싸움으로는 답도 없다.
파지지직!
제임스와 거인의 결투는 벌레를 쫓으려는 사람과 번개를 뿜는 모기의 싸움 같았다.
쿠우우웅.
제임스를 짓밟으려는 발바닥에는 오크들만 죽어나갔고, 허공을 휘젓는 손바닥의 풍압이 나고야 성까지 불어올 정도로 엄청났다.
거인이 제임스에 한눈이 팔린 사이 허공답보로 거인의 위에까지 당도한 이숙자는 아공간 반지에서 잘 익은 김치 장독을 꺼내 던졌다.
콰장!
정수리에 맞은 장독이 깨지며 김치가 묻었다.
“하이고, 극락왕생 하이소.”
이숙자는 거인의 명복을 빌어주고는 발효를 진행했다.
김치에서 시작된 세균이 미친 듯이 증식해 거인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랜마!”
그때 제임스의 다급한 외침에 고개를 돌린 이숙자는 깜짝 놀랐다.
키는 15미터 정도에 아담한 거인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소거인의 출현에, 얼추 오크 주술사를 소탕했다 여긴 명진이 마주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