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407)
408화 수호시의 엘프들 (1)
파파팟.
엘프 전사 카쿤이 부리나케 뛰었다.
콰콰콰!
그 뒤를 드워프 융이 짧은 다리로 열심히 쫓았다.
숲길을 달리는 그들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루카 행성에서 온 엘프와 드워프들에게 있어 드래곤은 두려움이자 신화 속 악당 그 자체였다.
선조에 선조부터 들어온 이야기만으로도 두려운 존재인 드래곤을 물리친 족장님의 부름이다.
가이아 부족의 일원이 되기로 마음먹은 그때부터 믿고 따르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지금의 마음가짐은 그때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충성심을 넘어 경외심이 가득했다.
그런 족장님의 부름에 어찌 한달음에 달려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으허허.”
“난쟁이, 뭐가 웃기냐?”
“즐겁지 아니한가? 신화를 쓰고 있지 않은가?”
“신화라…….”
엘프 전사 카쿤이 조용히 읇조렸다.
긴 기록의 시간인 역사의 시대의 끝자락에 다다라 신화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신과 함께하는 이 시대의 주역이 되기 위해 기꺼이 고향인 아루카 행성을 떠나 지구로 이주한 그들이다.
“역시 선조들의 땅에 온 것은 옳은 선택이었어!”
“그렇군.”
카쿤은 융의 말에 동의했다.
엘프와 드워프의 기원은 이곳 지구다.
언제부터 아루카로 이주했는지 모르지만, 그 또한 신의 뜻이었으리라.
엘프와 드워프의 명맥이 끊긴 이곳 지구에, 가이아라는 세계수가 뿌리내리며 다시금 엘프족과 드워프족의 명맥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이 자신들이라는 것에 끝 모를 자부심이 차올랐다.
신화시대를 함께 여는 중이다.
“어서 가세.”
“그러지.”
파파팟.
카쿤과 융이 숲길을 빠르게 달려 어머니 나무 세계수에 닿았다.
그 앞에 시체처럼 누워있는 장재식과, 그 너머에서 세계수의 커다란 기둥에 손을 대고 있는 수호가 있었다.
“어, 왔어?”
수호의 말에 엘프와 드워프가 고개를 숙였다.
“족장님을 뵙습니다.”
“족장님을 뵙습니다.”
“너는 왜 왔냐?”
“그냥 옆에 있다가 같이 왔습니다.”
수호의 눈길을 받은 드워프 융이 짧게 답했다.
“그래?”
수호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카쿤을 보았다.
애초에 목적은 엘프와의 대화였다.
“재식이 알지?”
수호의 말에 카쿤의 시선이 장재식에게로 향했다.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모습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종종 검을 나누던 사이다.
장재식은 열성적인 검사다.
엘프 검술, 드워프 검술 가리지 않고 자신이 배울 것이 있다면 고개 숙여 가르침을 청하는 멋진 녀석이었다.
하지만 수호가 물어보는 의도는 그것이리라.
“죽음의 저주 말이십니까?”
“그래. 그건 어디서 들은 거야?”
“선조들로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지요.”
“어디 기록된 건 없어?”
“아루카 행성은 역사의 시대를 살지 않습니다.”
“…….”
수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세계수에서 손을 뗐다.
한 발 물러나 장재식의 옆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일단 앉아봐.”
“예에.”
카쿤이 수호의 곁에 앉자, 융은 멀뚱히 둘을 보고만 있었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자신을 보고만 있는 드워프를 보며 수호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너도 앉아.”
“허허허, 감사합니다.”
죽음의 저주를 어디서 들었는지 궁금하여 엘프를 찾았는데, 생각해 보니 드워프도 함께 온 게 잘되었다 여겼다.
어차피 아루카 행성의 주민이었던 둘이다.
드워프족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기록이 없다는 건 뭐야?”
“말 그대로입니다.”
“그럼 어디서 보고 안 거야?”
“본 게 아니지요. 선조로부터 후대를 이어 구전으로 전해져오는 이야기지요.”
수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말이 전해지지 않으면 어쩌려고?”
“기록도 훼손되면 마찬가지 아닙니까?”
오, 그럴듯한데?
“아니 그래도 수명이…….”
수호는 새삼 엘프들이 인간보다 수배는 더 산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정도로 충분한 시간을 살며, 바로 다음 세대가 아닌 몇 세대나 아래까지 살아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다.
“아니, 그래도 남기는 게 낫지 않아? 모든 걸 기억할 수는 없잖아?”
“모든 것을 기록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허…….”
수호는 엘프 카쿤의 의아한 얼굴을 보곤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정말 따지려고 되묻는 게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읇는 것처럼 보여서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습니까?”
이들이 모두 어머니 나무라며 떠받들며 신성시하는 세계수를 생각하자 수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에게 있어 세계수는 행성을 관리하기 위한 OS, 툴에 불과했고 아루카 행성은 그저 그 툴이 여러 개일 뿐이다.
행성 전체를 뒤덮을 만큼.
“뭐, 좋아. 말로 남기든 글로 남기든 후대에 전해진다는 게 중하지.”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전혀 그 말이 아닌 것 같지만, 수긍하는 카쿤을 보며 넘어가기로 하였다.
“죽음의 저주는 그럼 선조로부터 들었다 치고, 어떤 원리인지는 아나?”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옮는 저주입니다.”
“죽음의 그림자?”
“가이아의 일원이 되고 이곳에 자리잡으며 눈과 귀를 열고 세상을 배우려 노력해보니, 아루카 행성에서와 같은 것들이 많은데 다르게 불리는…….”
수호가 카쿤의 말을 끊었다.
“짧게 말해.”
“지구에서는 블랙맨이라 부르더군요.”
수호의 눈에 이채가 띄었다.
‘침식이다.’
돌이켜보면 융을 만났을 때 그의 마을 지하 광산에서 블랙비스트와 조우했지 않나?
수호가 고개를 돌리자 융과 시선이 마주쳤다.
“확실히 그 검은 짐승을 지구에서는 그리 부르더이다.”
“드워프에는 전승되는 이야기가 없나?”
“그것에 이름이 어딨겠습니까? 다만 그 검은 짐승은 종종 광산에 모습을 드러내지요.”
그때도 지하광산에서 조우했었다.
“마석 때문에?”
“예, 그것들은 죽음의 돌을 지나치게 탐하지요.”
드워프 융은 오래전 들은 이야기 하나를 끄집어냈다.
“그것은 불가항력적인 재앙이라, 드워프 전사들도 마주치면 속수무책입니다. 정령들도 그것을 두려워해 가까이 가기를 꺼려하지요.”
당연한 말이다.
죽어 검은 형체만 남았지만, 그것의 기원은 신이니까. 정령들이 두려워할 만하다.
“드워프들은 죽음의 저주 걸린 적 없어?”
“으음.”
융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생존자가 없군요.”
검은 짐승과 마주쳐 살아남은 드워프 전사는 없다.
수호는 의문을 담아 카쿤을 보았다.
“어지간한 엘프 기사도 검은 그림자를 당해낼 수 없습니다.”
“그럼 누가 처리하지?”
“신의 가호를 받는 하이엘프만이 그것에 대항할 수 있지요.”
수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신의 가호라.’
확실히 블랙맨이나 블랙비스트는 실체가 없다.
그것에 대항이라도 해보려면 신의 힘을 지녀야 하는데, 수호가 임명한 사제와 기사들은 반신이라 부를 정도의 힘을 갖추고 있다.
실체없는 블랙맨에게 대항할 정도로 말이다.
“간혹 불온한 사고로 몸져눕는 하이엘프들이 있사온데, 그것을 죽음의 저주라 불렀습니다.”
카쿤의 시선이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장재식에게 닿았다.
“들어온 이야기론 장재식의 경우와 같았습니다.”
수호는 곰곰히 생각하다 물었다.
“엘프들은 야누스를 신으로 받들지?”
“그렇습니다.”
하이엘프들은 야누스가 임명한 사제들인 모양이다.
“드워프는 신이 없나?”
“저희도 야누스의 가호를 받습니다.”
“그래?”
드워프 융이 가슴을 탕탕 쳤다.
“다만, 우리가 모시는 신은 아닙지요. 장인은 누구나가 신의 무기를 만들기 위해 애씁니다. 그 무기를 쥔 자가 신이 되겠지요.”
드워프는 단일신을 모시지 않는 모양이다.
장인마다 자신이 만든 작품을 들어주는 자가 그의 신이 된다.
신도 없는데 신의 무기를 먼저 만드는 게 장인이다.
신을 모시기 위함인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드워프가 되어보지 못했는데 그들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다.
다만, 자신을 쳐다보는 융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꽤 부담스럽다.
“저 귀물은 어찌 되었는지…….”
융의 말에, 문득 드워프 마을을 떠나기 전 받았던 선물이 생각났다.
융의 아버지인 드워프 촌장이 준 선물이다.
“이거?”
파팟.
수호가 아공간에서 꺼내보니 귀물은 여전히 돌멩이 같은 형태였다.
“아아.”
실망한 듯한 융의 모습에 수호는 피식 웃었다.
“어쨌든 드워프는 마석을 죽음의 돌이라 부르고, 엘프는 블랙맨을 죽음의 그림자라 부른단 말이지?”
기록은 없지만 그들 사이에 내려오는 이야기다.
하나는 블랙맨에 관심이 있고, 하나는 마석에 관심이 있다.
본디 옛 선조들은 모두 알았을지 모르나, 종족마다 관심사가 달라 구전으로 내려오다 누락되었나?
‘기록이나 하지. 아니, 같았으려나.’
덜 중요하다 생각되었으면 기록도 안하지 않았을까?
모를 일이다.
역사에 그리도 목매는 구천 행성인들이 보면, 아루카 행성의 엘프와 드워프들의 개념이 기행으로 보이리라.
“그래서 죽음의 저주 푸는 방법은?”
“으음. 어머니께서 거둬주시지요.”
“……?”
설마 카쿤은 삭제를 말하는 건가?
“죽이는 방법 말고 살리는 방법 말이야.”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
엘프들이 침식을 알고는 있지만 그 해법은 모른다. 수호는 이마를 짚었다.
아루카의 역사가 짧지 않을 텐데, 그 긴 기간 동안 한 번도 치료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건가.
“삭제뿐인가…….”
아루카 행성의 엘프들이 저주라고 이름 붙인 걸 보면 이 침식은 전염된다. 아마 장재식의 외로운 사투가 끝나는 시점이 아닐까.
엘프들은 저주가 더 퍼지기 전에 세계수의 힘을 빌려 저주에 걸린 하이엘프를 소멸시켜온 것 같다.
“후우.”
수호의 깊은 한숨에 엘프 카쿤과 드워프 융의 얼굴이 덩달아 어두워졌다.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 됐다.”
수호는 문득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사실이 하나 떠올랐다.
“죽음의 그림자가 활동하는데 아루카 행성은 어째서 침식이 일어나질 않지?”
“어머니 나무께서 가호하시니까요.”
“…….”
아루카 행성의 세계수가 107그루라 했다.
세계수가 많다 보니 그 영향력의 범위가 행성 전체를 아우르는 것일까?
“하긴.”
세계수 가이아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침식된 땅은 복구시킬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어쩌면 침식이 일어났더라도 세계수의 힘으로 모두 복구되었을지도 모른다.
‘치료보다 면역인가?’
침식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이미 일어난 일인지라 치료 방법이 시급했다.
이대로 장재식이 죽을 때까지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전체 인류를 생각하면 고작 한 개의 목숨이라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수호는 이것이 ‘포기’의 시작이 될까 두려웠다.
하나 둘 놓아버리다 보면 결국 자신은 멸망의 길을 걷는 인류를 버려두고 신계로 가버리지 않을까?
“후!”
짧게 숨을 뱉곤 기운을 차렸다.
언제나 그렇듯 할 수 있는 일부터 먼저 하면 된다.
세계수의 영향력을 키우는 방법은 숲지기인 엘프들의 몫이다.
혈석에서 추출한 마력을 세계수에 전달하던 의식은 중요하다.
“걔들은 어디갔지?”
본디 공주를 모시는 신전기사였으나, 가이아가 뿌리내리고 가이아 부족의 엘프 마법사로 전직한 이들.
“알리어드와 로매드 말씀이십니까?”
“그래.”
“서울로 간 이후로 소식이 끊겼사온데…….”
그들이 수호시를 떠난 지는 한참이나 되었다.
“찾아보겠습니다.”
“됐어.”
사람 찾는 건 카쿤보다 뱀파이어 차이에게 맡겨두는 게 더 빠르리라.
“다른 숲지기는?”
“휴식 중에 있습니다.”
숲지기의 주요 임무가 세계수를 가꾸고 그 영향력을 확대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은 엘프족 중에서도 오직 마법사만이 가능한 일이다.
카쿤과 융의 설득에 넘어가 지구로 함께 넘어온 엘프 마법사들이 여럿인데,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숲지기 일이 생각외로 고된지라…….”
“전력을 다해 세계수의 힘을 키우라 전해.”
“예에.”
엘프 카쿤이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
마법을 배우지 않고 검술을 수련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