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413)
414화 누락 (2)
군주 몬스터의 출현 이후, 그들이 절반의 확률로 드랍하는 차원석의 등장에 세상은 또 한 번 큰 변혁을 맞이했다.
이전까지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발전한 속도도 놀라웠지만, 대격변 이후엔 발전속도가 더없이 가팔랐다.
문명시기에 인구 증가와 함께 발전해왔다면, 대격변 이후 차원산업시대는 그 반대였다.
몬스터들의 출몰로 위기를 겪으며 많은 문명들이 파괴되고, 인류가 점점 줄어들면서도 세계는 눈부신 과학 발전을 이뤄냈다.
혈석의 발견과 혈석 엔진의 개발이 에너지 변혁을 이끌었다면, 차원석 발견과 이동포탈의 양산화는 교통의 변혁을 이끌어냈다.
포탈을 통하면 시간적 물리적 거리가 단숨에 좁혀진다. 에너지원으로 혈석이 쓰인다지만, 그것은 몬스터만 사냥해도 나오는 흔한 에너지자원이 되었다.
물론 모든 것이 인류 과학의 발전이라고 하기엔 마법의 역할이 너무 지대했다.
이동포탈도, 혈석을 이용한 마나석으로의 활용도 엘프 마법사들의 지식이었으니까.
어쨌든 이동포탈의 등장 이후, 몇몇 거대 도시들은 그런 생각을 했다.
‘포탈을 쥐면 세계를 쥘 수 있다.’
세계 모든 도시들이 개별로 연결되는 것보다는 중간 기착지를 두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차원석은 유한한 자원이니까.
문제는 그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경유지를 어디로 설정하느냐인데, 의외로 다툼은 없었다.
세계 모든 도시를 이을 정도의 차원석을 보유한 단체도, 그것을 실행할 정도로 국제적 명성을 가진 것도 수호 길드가 유일했으니까.
수호 길드의 이동포탈망은 두 가지다.
내부 이동망인 포탈존.
세계를 모두 잇는 포탈허브.
포탈존은 수호 길드 외성 안에 위치해있으며, 거대한 돔 경기장처럼 생겼다.
연결된 도시는 대구, 평양, 서울, 서귀포 등을 비롯한 한반도연방의 우방도시와 우한, 타이베이 같은 개척마을과 연결되어 있었다.
포탈허브는 서울시와 수호시 중간 지역에 세워졌다.
도시간 이동을 위해서는 반드시 들러야 하는 기착지로서의 역할을 생각하면, 향후 포탈허브를 중심으로 신도시가 생겨날 것은 자연스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생성된 이동포탈만 백여 개가 넘어가며, 모든 대륙, 모든 도시들은 포탈허브로 통한다.
이로 인한 경제적 성장은 부수물에 불과했다.
진정한 가치는 세계를 손안에 틀어쥐는 영향력이다.
김미소의 계획은 성공했고, 지금 포탈허브는 대한민국 정부가 관리하고 있다.
공항 수준의 보안과 관리가 이뤄지고 있고, 지금도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포탈허브를 거쳐 각 도시를 오간다.
더 이상 관리가 불가능할 정도의 던전 리셋과 브레이크, 넘쳐나는 몬스터와 군주까지 자리잡은 필드를 물리적 방법으로 이동하는 것은 이제 구시대의 일이 되어버렸다.
파팟.
수호 길드 외성 안에 위치한 포탈존에 모습을 드러낸 박준호는 잠깐 머물다 사라진 어지럼증을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후, 오랜만이네.”
미드얼 행성의 오크 침공 이후 수호 길드는 거의 전시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애써 뚫어놓은 큐슈섬의 후쿠오카 개척마을은 폐쇄했고, 우한에 주둔하던 용병들은 모두 철수했다.
타이베이 개척마을과 우한 개척마을에 머물던 용병들도 거의 모두 차출되었고, 최소한의 용병만 마을 방어를 위해 주둔했다.
G급 용병은 모두 소집되었는데, 유일하게 소집되지 않은 이가 박준호였다.
타이베이 상공에 머무르며 비행하는 불사조의 동태를 감시하고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군주 몬스터의 출몰 이후, 거대 해상군주와 거대 육상군주의 출현이 잦아지더니, 이내 날개 달린 비행형 거대군주도 출몰하기 시작했다.
드래곤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는데, 불사조는 특이하게도 드래곤보다도 덩치가 서너 배 컸다.
거기에 더해 불사조는 다른 신급 군주들이 그러하듯 휘하에 여러 군주들을 부하로 부리지도 않고, 세력을 이루지도 않았다.
육지에 착륙한 적도 없었으며 그저 느릿한 날갯짓으로 하늘만 떠 다녔다.
‘불길한데.’
미드얼 행성 소집에 응하지 않은 것은 박준호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불사조를 남겨두고 개척마을을 떠나기가 께름칙했기에 자원해서 남았다.
적어도 신급 군주에 대항하려면 신의 힘을 다루는 반신의 경지인 G급 각성자는 되어야 가능하니까.
‘오래 비울 순 없지.’
박준호는 불사조를 처음 보고 알 수 없는 위화감과 불안감을 느꼈다.
요즘 불사조의 관측 빈도가 점점 뜸해지고 있었는데, 준호는 그것마저 불길한 징조처럼 보였다.
마치 폭풍이 몰아치기 전의 고요한 바다처럼.
“빨리 돌아가야지.”
마음이 급하다.
준호가 발걸음을 재촉해 입구로 향했다.
혹시 모를 외부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돔의 출입구는 한 곳뿐.
수호 길드 지원부서 소속의 직원들이 관리하고 있었다.
흡사 출입국 사무소 같은 그곳엔 몇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대구서 왔습니다.”
“아, 각성자 등록증 있으신가요?”
“네, 여기.”
삐이-
“평리 길드 사장님이시군요.”
평리 길드는 대구에 자리잡은 토종 길드다.
구천 행성에서 넘어온 무림인들이 한번 난장을 피울 때 꽤 큰 타격을 입은 평리 길드지만, 수호 길드와 동맹 관계를 맺으며 지금은 대구 대표 길드가 되었다.
“여기 임시 출입증입니다.”
“고맙소.”
“다시 포탈을 이용하실 때 반납하시면 됩니다.”
평리 길드장 김동완이 임시출입증을 목에 걸고 밖으로 나섰다.
그 뒤에 줄을 섰던 박준호가 따라 나가려다가 직원의 제지에 걸렸다.
“어어, 그냥 가시면 안 돼요.”
“나 여기 길드원이요.”
“아, 그거야 확인을 해봐야죠.”
“으음……. 알겠습니다.”
박준호는 처음 보는 직원 얼굴을 보곤 수긍했다.
수호 길드가 세를 확장하며 용병만 거의 천여 명을 넘게 뽑았는데, 지원부 스텝은 얼마나 더 뽑았겠는가.
수천 명이나 더 채용했을 텐데, 옛날처럼 모두 얼굴을 아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나 부사장인데…….’
내가 누군지 모르니를 시전하기에는, 박준호는 아직 높은 자리가 어색했다.
괜히 형님께 폐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저 묵묵히 지시를 따랐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타이베이 개척마을.”
“음? 그럼 우리 식구인데.”
“맞습니다.”
“여기 각성자 등록증 접촉해 주시겠어요?”
삐이-
준호가 품에서 등록증을 꺼내 슬쩍 가져다대자 모니터에 정보가 출력되었다.
등급 : G
직급 : 부사장
직위 : 3공격대장
“어!?”
직원은 깜짝 놀라 눈을 비볐다.
몇 번 깜빡이곤 다시 모니터를 봤는데도 그대로다.
“어엇!”
벌떡 일어선 직원이 커진 눈으로 박준호를 다시금 보았다.
햇볕에 그을렸는지 까무잡잡한 피부에 밀짚모자, 헐렁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부사장?’
부사장이 어떤 존재인가?
수호 길드의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부사장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김미소다.
김미소가 누구인가?
자주 자리를 비우는 박수호를 대신해 실질적으로 수호 길드를 이끄는 리더!
수호시티를 총괄하는 수호시장까지 역임하고 있는 인물!
일인지상 만인지하의 자리가 아닌가?
그 힘이 얼마나 막강하냐면, 이 한반도 내에서만 영향력을 내는 것도 아니다.
한반도연방의 의장인 류담 대통령이 바지사장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실질적 권력을 누리는 사람.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미국 대통령보다도 더 인지도가 있으며,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가 바로 김미소다.
수호 길드의 부사장 자리는 바로 그런 것이다.
“부, 부, 부부부사장니임?”
직원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다.
지금 눈앞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막강한 2인자가 있다고 생각해보라.
“맞아요.”
“어떻게 부사장님이 둘…….”
직원은 빠르게 생각해냈다.
각성자 등록증이 거짓인가?
아닌데, 메모리스톤이 쓰이는 걸로 아는데.
“아!”
번뜩이며 떠오르는 존재에 직원의 얼굴이 밝아졌다. 신입직원 교육 때 스치듯 지나간 수호 길드 조직도가 떠올랐다.
워낙에 많은 직원을 수시로 채용해 어수선할 때 입사했지만, 그래도 하루의 교육 이수를 했다.
분명 수호 길드에는 부사장이 둘이었다.
하나는 내정의 왕 김미소.
하나는 사장님 동생.
“사장님하고 정말 많이 닮으셨습니다.”
“……그래요.”
박준호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걸렸다.
이게 보편적인 평가일 것이다.
사장 박수호의 동생이라서 부사장 자리에 앉은 박준호.
‘내가 뭘 하더라도 형의 아성을 넘을 수 있을까?’
아니, 김미소 부사장도 못 넘을 텐데…….
준호는 괜히 가라앉는 마음에 발길을 뗐다.
어서 용무만 마치고 돌아가야지.
계속해서 불사조가 신경 쓰였다.
“가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애초에 내부 포탈망인 포탈존은 수호 길드 소속의 용병들의 원활한 출동을 위한 것이다.
동맹 도시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개척도시가 위기에 놓였을 때 출동해 구원하기 위해 용병들이 머무르는 외성 내에 지었다.
수호 길드 소속의 용병이라면 외부인처럼 출입증도 필요치 않았다.
“하아, 날씨 맑다.”
대격변 이후 가장 긍정적인 변화라면 이게 아닐까?
더 이상 화석연료 따위는 쓰이지 않는다.
아니, 쓸 수가 없었다.
몬스터들과 버려진 필드들의 증가로 정비되지 않는 도로, 불가능한 해상운송과 항공로로 석유는 인류에게 강제로 외면당했다.
모든 공장들이 몬스터 그 자체를 자원화할 수 있는 혈석을 이용해 돌아간다.
혈석 엔진은 누가 뭐래도 차원산업시대의 막을 연 혁명적인 발명품이다.
그에 반해 나는 어떠한가?
혈석 엔진은커녕, 그냥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혈석 한 조각 정도 될까?
“에휴, 빨리 마치고 돌아가자.”
박준호는 괜한 상념을 털어내고 길을 걸었다.
외성 남문에서 쭉 뻗은 대로는 내성까지 쭉 이어진다. 정기적으로 운행되는 셔틀 외에도 마차도 다니고, 소 떼도 다니는 정겨운 풍경을 감상하며 준호는 한숨을 쉬었다.
“낯설군.”
어쩌면 그래서 타이베이 개척마을에 남았는지도 모른다.
3공격대를 맡아 의욕있게 용병들을 조련했을 때는 삶의 활력을 느꼈다.
하지만, 그 이후 다른 공대장들이 전부 신내림을 받아 G급 각성자로 거듭될 때 준호는 소외되었다.
이후에 G등급이 되었지만, 그때 그가 느낀 감정은 환희보다는 안도감, 그리고 미안함이었다.
‘능력도 없는 동생을.’
형은 자신이 불쌍해서 마지못해 신의 힘을 나눠주지 않았을까?
신을 형으로 둔 동생의 비애가 이런 것인가?
‘나도…….’
힘이 되고 싶다.
짐이 되는 건 싫다.
셔틀에서 내려 내성문으로 향하는 준호를 맞이한 건 내성 남문 수비 번을 서고있던 일곰이었다.
“쿠오!”
“오랜만이다.”
커다란 일곰이와 주먹악수를 하곤 안으로 들어서자, 오가는 사람들이 인사해온다.
기밀이 많은 내성 안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입사한 지 꽤 됐기에 준호를 얼굴만 보고도 알았다.
본사 가장 위층에 위치한 수호 길드 사장실로 들어서니 형과 김미소 부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왔냐?”
“형…….”
형이 신계에서 돌아왔다.
그런데 이 마음은 뭘까?
가족을 모두 잃고 유일한 피붙이 아들 하나 건사하기 위해 아등바등할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그때 돌아온 형과 지금의 형은 같은 사람이 맞는 걸까?
“뭘 그렇게 서 있냐?”
“응? 아, 아냐.”
“앉아봐.”
자리에 앉은 박준호는 힐끗 수호를 살폈다.
그 기색에 수호가 피식 웃었다.
“뭘 그리 훔쳐보냐? 뭐 묻었냐?”
“아니……. 그냥 낯설어서.”
“……!”
수호는 깜짝 놀라 준호를 보았다.
“낯설다고?”
“아, 아니야. 하하. 형이 고생해서 그렇겠지.”
“자세히 말해봐.”
의외로 진지한 수호의 얼굴에, 준호는 당황하며 말을 정리할 타이밍을 놓쳤다. 하지만 입술은 눈치 없이 말을 뱉었다.
“아니, 그냥 형이 조금 다른 사람 같아서.”
“으음.”
수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스스로도 이따금씩 품었던 의문이다.
죽은 신들의 기억.
마석을 흡수하며 전생의 여러 삶들이 지금 수호에게 흡수되었다. 자아 또한 뒤섞여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으나 그것이 표출될 정도는 아니었다.
여러 삶이라 해도 기본은 같은 ’박수호’의 여러 삶이니까.
준호를 보는 수호의 눈빛에 언뜻 기대가 내비쳤다.
‘감이 좋은 건가?’
신계에서 돌아오고 나서, 누구도 준호와 같이 말하는 이가 없었다.